퍼플섬은 안좌도 반월도, 박지도로 이루어졌다. 그 세 개의 섬은 거리의 가까움에도 하나가 되지 못하고 따로따로 고립되어 있었다. 그렇게 따로 놀던 세 개의 섬이 퍼플 다리를 매개로 하나의 섬으로 태어난 것이다. 이로써 3개의 섬은 한 몸이 되어 전혀 성질이 전혀 다른 새로운 섬으로 발전한 것이다. 퍼플 다리 하나가 질적인 비약을 이루게 한 것이다.
우리 회원 개개인이 반월도 박지도라면 우리 동행친구 까페는 퍼플다리인 셈이다. 회원들은 까페를 통해 퍼플섬처럼 하나가 되었고 기존의 개개인을 초월한 공동체가 된 것이다. 이제 우린 고립된 개인이 할 수 없었던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방구석에서 야외로, 밀실에서 광장으로, 우리는 질적 발전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낯선 만남이지만 이해관계 없는 만남이기에 우린 더욱 서로를 동행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외로움을 탈피할 수 있는 계기에 그치지 않고 더욱 짜릿하고 행복한 삶의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거짓 없고 성실한 참여가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이는 열심히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분의 몫이리라.
퍼플교를 디디는 회원님들. 초등생들의 낯빛으로 중학생의 발걸음으로 고등생의 환호로 넘쳐난다. 몸과 마음의 일치? 그런 것은 개나 줘버려. 우린 그런 세대는 이미 지났어. 우리는 터미네이터가 과거로 돌아오듯 그렇게 몸으로부터 나이를 역전시키고 청춘의 마음을 부활 시켰다. 그렇다. 몸으로부터 마음을 멀리 더 멀리 분리 시킬수록 우리는 젊어지고 어린아이 같은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몸에 갇혀 버린 마음이라면 우리는 오래된 몸만큼의 지겨움과 쇠약만을 맛보아야할 것이다. 몸을 떠난 우리들의 마음은 바다를 뛰어넘고 하늘을 날아간다.
어떤 여성분은 런웨이에서 패션쇼를 하듯 멋진 걸음을 보여주었고 또 어떤 여성분은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었고 또 어떤 분은 애써 점잔을 떨어 보려던 발걸음에도 흥이 묻어 나오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붉은 티의 필향님은 아메리카노인지 쥬스인지를 빨아대며 다리를 건넜고, 은발에 은빛 수염이 멋진 아다행님은 내내 점잖고 격조높은 걸음을 걸으셨지만 스마트 폰을 찍으시며 흘러나오는 느긋한 여유와 흥겨움을 끝내 숨길 수는 없었다. 테리우스님, 산친구님의 중후한 발걸음에도 호강님의 가벼운 발걸음에도 흥은 진득하니 묻어 있었다.
이처럼 몸을 떠나 마음만의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마음과 감정과 기분은 과거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절대자 중의 절대자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유일한 예외가 마음이라는 것, 마음 그것은 감성이고 바로 사랑이리다. 사랑만이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시간의 횡포로부터 변하지 않을 사랑을 얻는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위너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일 것이다. 시간이란 괴물은 몸을 죽일 수는 있어도 마음만은 죽일 수는 없다. 몸을 죽임으로써 마음을 죽일 tn 있을 뿐이다.
비로소 나는 내가 왜 이 까페에 가입하였는지를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처럼 우릴 들뜨게 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퍼플섬이었을까? 휴일 휴가라는 시간이었을까? 그것 보다는 우리 까페가 제공해 준, 운영진이 애써 만들어준 플랫폼인, 동행, 30여명의 동행, 여성과 남성이 어우러진 동행. 바로 그것이, 퍼플보다 위대한 동행이, 우릴 그저 행복의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고 볼 수 있다. 굳이 퍼플섬이 아니었더라도 수십명의 동행이 있다면 우리는 그저 행복할 것이다. 이처럼 우리 까페의 플랫폼은 위대한 것이다. 그것은 참여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짜릿한 쾌감이요 자아성취이다. 우리 까페의 플랫폼을 효과적으로 수용하는 자 그자에게 진정한 사랑과 우정 그리고 궁극의 행복이 있을 지어다.
시간 반의 걷기는 퍼플섬 여정을 마치도록 강요했다. 아쉬움은 증도의 기대감에 묻혀 버린 듯 했다. 우리는 증도의 환희를 꿈꾸며 관광버스에 승차했다. 비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졌다.
뜬금없이 버스기사님이 제안을 하셨다.
-음악을 틀어 줄까요?-
너무 조용한 우리 회원님들 보고 약간 놀라셨나 보다. 눈치를 보아하니 다른 관광팀과 몹시 다른 모양이다. 버스에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는 그런 분위기가 아닌 게 기사님이 의아하셨나 보다. 우린 노래를 틀어달라고 하였고 기사님은 급텐포의 요란한 메들리 음악을 틀었다. 회원님들은 노우를 외쳤고 7080을 틀어달라 하셨다. 기사님은 7080 노래를 틀었다. 나는 이처럼 조용하고 품위 있는 우리 회원님들이 그저 고맙고 그저 존경스러웠다. 묻지마 관광의 천박스러움은 우리에겐 없었다. 젊은청년님과 근정님도 그랬지만 회원님들 모두 품위와 교양을 지닌 분들이었다. 나는 이런 분들과 동행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적이 안심이 되었다. 퍼플섬을 떠난지 거의 두시간이 걸려 저녁 식사 장소인 송도라는 섬의 수산물 유통센터에 도착했다.
횟집에 들어서자 또 걱정부터 앞섰다. 맛이 없으면 어떠지? 한달 전 답사를 왔을 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다고 큰 소리친 사장은 그 기백이 여전했다. 민어회 풀코스가 차려졌고 식사가 이어졌다. 다양한 종류의 먹거리가 있어도 나는 그저 그랬다. 내가 사는 곳 어느 곳의 횟집과 별반 다르지않는 것 같았는데, 서울 사람들의 평가는 다소 달랐다. 서울 보다는 훨씬 풍부하게 나온 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약간 안심이 되었고 나도 민어회를 즐겼다.
술을 별로 즐기지 않고 주량이 빈약해서 걱정 했지만 누구 한명 과도하게 술을 권하는 분 없었다. 그것도 너무 고마웠다.
주위를 살펴보니 내 옆좌석엔 서리풀님 필향님이 앉아 계셨다.
필향님과는 댓글로 많은 대화를 했기에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 모습도 봉사활동, 모임사진으로 많이 뵈어서 낯이 익었고 온라인 이미지 그대로 셨다. 그분을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해부학자, 지리학자, 이자 음악가 였던, 만능엔터테이너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떠오른다. 암벽등반가, 패러글라이딩, 문인협회 시인, 봉사활동가, 팬플릿 수강생, 가수 뺨치는 노래실력, 고품격의 정치의식. 내가 그동안 그분의 글로써 확인한 이력들이다. 존경받을 몸에 우러르고 싶은 마음까지.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사시는 분이 아닐까. 정말 제 주위에 이렇게 다방면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사람은 드물었다. 품성도 온화하시고 저를 무지 격려해 주신다. 이런 능력자가, 이렇게 따스하신 분이, 우리 까페 회원이라니! 이런 분과 동행친구라니. 우리 까페의 품격이 절로 격상되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말 붙이기가 조심스러웠고 초면에 실례하지 않을까 조바심이 나곤 했다. 여성회원님들과 농담도 수준급이셨다. 친화력도 장난이 아닌 듯. 나는 필향님과 서리풀님 아덴님의 농섞인 대화에 얼마나 키득거렸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언뜻 언뜻 그분의 외로운 어깨가 보였다.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함, 허전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 정체를 알 길은 없었다.
필향님 바로 옆에 서리풀님이 앉아 계셨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감을 주는 그분의 외모만큼이나 상큼하고 신선한 서리풀이라는 단어. 범상치 않은 그 단어. 서리풀이 무슨뜻일가? 검색을 해 보았다.
< 서초(瑞草)라는 말은 "서리풀"에서 나온 말로서 "상초(箱草)"라고도 불렀습니다. 고구려 때에는 쌀을 "서화(瑞禾)"라 하는데, 옛날부터 이곳 서초동에서 나는 쌀을 임금님께 바쳤다는 기록을 보아 "서초"란 좋은 일이 일어날 예감을 주는 풀, 즉 "벼"를 뜻합니다. 서초구라는 이름을 처음 갖게 된 것은 1988년 1월 1일 강남구에서 서초구가 나누어지면서 부터입니다. >
그래서 인지 서초구에는 서리풀 공원, 서리풀 터널, 서리풀 페스티벌등이 있었다.
감히 나는 서리풀님께 –댁이 서초동인가요? 고향이 서초동인가요?-라고 묻지 못했다.
언젠가 까페에서 필향님이 서리풀님의 사업장을 소개 해 준 걸 기억해 냈다. 필향님께서 광화문에 있는 서리풀님 사업장과 그 위치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해주셨다. 그랬다 서리풀님은 능력있는 CEO셨던 것이다. 저런 우아한 분에게서 저런 능력자 포스라니!!! 커리어 우먼의 이미지가 스며들자 더욱더 법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느껴졌다. 이런 멋진 분이 우리 회원님이라니! 우리 회원님들 한분한분 알면 알아 갈수록 진정성과 실력을 갖춘 분이 많다는 것. 40년 동행친구하면 너무나 쏠쏠할 것 같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하지만 소심하고 샌님 성격의 나는 내내 서리풀님께 말다운 말을 붙이지 못하고 말았다. 옆좌석에서 좋은 말씀을 나에게 해주셨는데 난 그 사장님 포스에 얼어붙은 것인지 지금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음에 기회 되면 꼭 사업장에 찾아가서 인사를 드리고 싶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을 나도 느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민어회를 먹고 나오자 노을이 지고 있었다. 노을을 배경으로 꽃사랑님 몇커트를 찍었다. 회원님들도 노을을 배경으로 몇커트 찍고 우리는 화도 팬션으로 향했다.
첫댓글 무패왕님의
추억은 끝이 없으십니다~
새록 새록 시간들이 떠오르네요~ㅎ
멋진 추억의 현장
동행친구님들의 아름다운 기억들
너무 멋지고 아름다운 묘사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무패왕님~
올라 오시기만 해 봐 ~
무패왕님 카페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긴 글 쓰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저를 이리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이 보시면 짜증 나실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ㅎㅎ
서울 오시면 존경스런 무패왕님 잘 모시겠습니다~^^
수고 많으셨네요~
ㅎ
에너지가 느껴져요
조금 일찍 이카페를 알았더라면
저도 그자리에 같이있었을텐데
아쉬워요~
즐감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