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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사단 사령부 법당인 광복 통일사는 부대내에 위치해 있다. 주요 시설로는 법당과 종각, 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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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중 수많은 전투…현 백마고지 관할 1978년 법당 신축후 20여 법사 거치며 포교 민통선 안 통일각 법당과 사리탑도 조성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그래서 사찰 기행의 발길을 한국전쟁의 상흔이 남아있고, 남북분단의 현실을 체감할 수 있는 북쪽으로 돌렸다. 서울서 2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경기도 연천군에 위치한 5사단 법당인 광복 통일사다. 제 5보병사단은 우리나라 중부전선을 지키는 최전방 철책부대다. 열쇠부대로 더 유명한 5사단은 경기북부의 최전방인 연천과 철원 지역 등으로 가는 병사들이 거쳐가는 관문이다. 1948년 경기도 수색에서 제 5여단으로 창설된 후 1949년 사단 승격 뒤 부대가 이동해 현재의 위치에 주둔하게 됐다.
모든 부대가 마찬가지겠지만 5사단은 특히 한국전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5사단은 육군본부의 소환으로 서울 용산에 올라와 북한군 남하 지연 작전에 참여한다. 1950년 7월 1일부터 시흥으로 지연전을 전개하며 철수하게 되는데, 이 과정서 대다수 병력이 분산돼 사단이 해체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후 1950년 10월 8일 부산, 대구, 마산에 주둔중이던 연대들을 근간으로 대구에서 재창설 됐다. 재정비된 5사단은 한국전쟁중 수 많은 전투를 치르게 되는데, 그중에서 특히 피의능선 및 가칠봉 전투가 유명하다. 또한 그 유명한 백마고지도 바로 5사단이 관할 및 경계를 하고 있다.
이렇게 역사와 전통이 있는 제 5사단사령부 법당은 광복 통일사다. 1978년에 신축됐다. 교회가 1980년 이후에 지어졌으니 사단내에서는 최초의 종교시설인 셈이다. 통일사 건립은 당시 불자 사단장이었던 김복동 장군의 발원에 의해 시작됐다.
강건욱 통일사 주지 법사는 “법당이 있기전엔 사단내에 사건사고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복동 사단장님이 발의를 하셨고, 월정사 탄허 큰 스님께서 오셔서 직접 법당 위치까지 정해주셨다고 합니다. 당시로서는 큰 돈인 1천여만원의 모연금으로 68평 규모의 법당이 세워졌습니다.”라고 설명한다.
법당서 본격적인 법회활동은 1978년 제 18대 군종참모인 김선근 법사(동국대 명예교수)가 부임하면서 부터다. 이전인 1962년에는 용림포교당이 연대급에 50평 규모로 건립돼 장병 불자들이 신행활동을 했고, 1971년에 들어와서 대대급에 심원사 군법당이 지어져 군포교 도량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후 1978년에 제 모습을 갖춘 통일사는 현 주지 법사인 강건욱 법사에 이르기까지 20명이 거쳐가며 왕성한 포교활동을 펼쳤다. 현재는 예하대대까지 총 11개의 소규모 법당을 거느리고 있다.
통일사는 부대밖에 있는 대다수 군법당과 달리 영내에 위치해 있다. 정문인 위병소를 통과해 10여분 걸어 올라가면 일주문이 보인다. 영내에 위치한 군법당에 일주문이 세워져 있는 것은 흔치 않은 풍경이다. 제법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길이 길다. 부대안에 있어서인지 주변 정리가 깨끗하고 정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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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앞에 모셔진 약사여래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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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을 중앙으로 좌측에는 종각이, 우측에는 바위앞에 약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다. 불상 규모는 작지만 영험해 군 불자들은 물론 일반 신도들이 자주 찾아와 기도를 하는 곳이다.
법당은 제법 넓다. 일요법회에 1백명 정도 장병 불자들이 찾아 온다고 하는데, 그 정도 인원이 법회를 보기엔 충분하다. 불단에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법당 옆에는 여느 군법당에도 있는 상담실이 있다. 여기서 강건욱 법사는 자살방지교육이라든가, 군생활중 개인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장병불자들을 상담하며 심리치유를 해준다.
강건욱 법사는 “군포교는 한국불교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포교를 위한 초석이 될만큼 중요한 황금어장입니다. 군 장병들이 미래 한국불교의 호국신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군장병들이 있는 현장으로 직접 찾아가는 법회 활동을 할 것입니다.”라고 각오를 피력한다.
“신교대 법당 건립 가장 큰 숙원”
주지 여정 강건욱 법사
“사단 내에서 가장 시급한 것이 바로 신교대 법당 건립입니다. 이 교육대대는 입대하는 청년들이 처음 맞는 관문입니다. 그곳서 처음 만나는 불교시설이 바로 신교대 법당이지요. 이런 중요한 포교 전진기지에 법당이 없어 강의실을 빌려서 법회를 보고 있습니다.”
강 법사는 신교대 포교의 중요성을 이렇게 피력했다. 실제로 사단내 종교시설중 유일하게 종교활동 공간이 없는 곳이 바로 불교다. 신교대 종교활동 참가 비율은 불교가 개신교에 이어 2위를 차지만, 번듯한 법당하나 없는 실정이다. 이에 반해 교회와 성당은 3백평 넘는 공간에 신축해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지난해 군종교구장 정우 스님의 원력으로 12억 여원 정도의 예산을 국방부로부터 확약 받았지만 2015년~2016년 연속사업으로 계획돼 있어 시간이 필요하다. 강 법사는 “군종교구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만큼 계속 노력해서 올해 안에 착공을 목표로 열심히 뛰겠습니다.”라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주변 안보 관광지
▲ 열쇠전망대
5사단 열쇠 부대의 대표적 전망대로서 최근에는 일반인들도 비교적 많이 찾는다. ‘열쇠 전망대’는 30분 정도면 관람할 수 있다.
전시물은 1층에만 있고 2층은 전망대이기 때문이다. 2층서 시간만 맞으면 브리핑도 들을 수 있다. ‘열쇠 전망대’는 몇몇 고지를 빼고는 전체적으로 좁고 긴 분지 지형이어서 비교적 탁 트인 전망을 볼 수 있다. GOP의 느낌이 다른 곳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전해진다. 파주 ‘임진각’이나 ‘통일 전망대’로 사람들이 찾지만, 그곳은 철책 앞에 산이 있어서 막상 북측을 바라볼 수가 없다. 그런점에서 북측과 거리상 가장 가까워 안보 여행지로서 분단의 아픔과 현실을 가장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열쇠 전망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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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고지 전적비 |
▲ 백마고지 전망대
연천 대광리서 조금만 올라가면 철원이다. 한 30분 정도 거리에 ‘백마고지 전적비’가 있다. ‘백마고지’는 6.25 전쟁 중 격전지로 유명하다. 고지 정상 높이가 포격에 의해 열흘만에 약 1m가 줄었다고 할 정도다.
고지의 모양이 말 모양이고, 화약재 등이 하얗게 앉은 모습을 따서 ‘백마고지’라 부르게 되었다. 말이 ‘고지’이지 실제론 그냥 평야 지대에 드문드문 있는 ‘언덕’ 수준이다. 그러나 평야 지역이기에 이곳에만 올라도 주변 지형을 파악하는 데에 상당히 유리하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니 그토록 치열하게 싸웠을 것이다.
예전에는 연천 ‘신탄리역’에서 내려서도 버스를 타는 등 교통이 불편하였으나, 지금은 경원선 철도 ‘백마고지역’이 새로 들어섰기 때문에 기차 등 대중교통으로도 접근하기가 좋아졌다.
철원군서 운영하는 별도의 ‘안보 관광’ 프로그램도 있다. 전망대 진입로를 따라 오르면 제단과 전적비가 나온다. 전적비는 꽤 높은 편이다. 옆면에 하늘로 오르는 백마상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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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 통일각 법당 |
▲ 통일각 법당(사진 아래)
5사단 GOP가 위치한 열쇠전망대내 통일각 법당은 우리나라서 북한과 가장 가까이에 위치한 사찰이다. 이 곳에는 석가세존의 진신사리를 봉안해 놓은 불사리탑이 조성돼 있다. 이 탑은 1992년 조성됐다. 통일각 법당의 사리탑은 민통선 안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사리탑으로서, 그 의미가 크다. 또한 통일각 법당에는 통일기원과 국운융창의 기원을 담은 종각도 있다. 사단 사령부 법당에 소속된 통일각 법당은 1979년 신축됐다.
▲ 통일교
통일각 법당과 종각을 잇는 다리다. 1979년도에 건설됐는데, 노후화 및 안전문제로 오랫동안 폐쇄됐으나, 연천군의 지원으로 올해 1월 복원됐다.
이로써 매주 최전방 법회를 오는 장병 불자들은 물론 민간인 불자들이 여법하게 법당을 참배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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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강건욱 법사님이 말씀한 바와 같이 군에 입대하는 청년들이 처음 만나는 신병교육대(신교대) 법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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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빨리 전 군에 건립되어 청년불자 포교가 더욱 활성화 되길 발원합니다.
어제가 현충일이있지요. 호국영령들께 묵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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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가 국군장병들의 귀의처가 되기를 바라며 장병들의 무운장구를 합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