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4.
불일폭포 가는 길
지리산이 해를 가렸다. 해가 중천이면 기온이 오를 테고 더우면 산을 오르기 힘들 것으로 생각했다. 새벽 5시에 일어났다. 간단하게 채비하고 쌍계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6시가 다 되어 간다. 동쪽으로 삼신봉이 떡하니 버티고 섰으니 두어 시간은 볕을 만날 일이 없어 보인다. 쌍계사에서 출발한 길은 매우 가파르다. 국사암 삼거리까지는 겨우 300m 정도지만 빈속에 먹은 물이 기어오를 판이다.
남명을 따라나선 길이다. 남명이 12번째로 지리산을 여행하고 쓴 책이 <유두류록> 이다. 지난 며칠 동안 관련한 책 두 권과 월간잡지 <불광, 지리산> 편을 뒤적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조금이라도 더 알아야 더 많이 보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다. 막상 지리산에 안기고 나니 몸이 곤하다. 이 길은 과거로 가는 길이다. 오백 년 전 남명의 길을 따라 걷고 있다. 그래서 이리 곤한가.
남명의 눈으로 쌍계사를 살핀다. 1,200년 전에 고운 최치원이 썼다는 사슴 정강이뼈 필체의 쌍계 석문을 지난다. 필체가 아무리 봐도 고운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천하의 고운이 쓴 글씨체라기에는 의구심이 가시지를 않는다. 팔영루가 보이고 진감선사대공탑비는 보존 처리 중이라 아쉽다. 108 계단을 걸어 청학루와 팔상전을 지나서 금당 앞에 선다. 남명이 언급한 서방장과 동방장이 금당을 호위하듯 자리를 잡고 있다.
길은 잘 관리되고 있다. 남명처럼 나뭇가지에 매달리거나 잔도를 타고 오를 일은 없다. 오백 년이 지난 원숭이 바위에는 글자를 식별할 수도 없고 고운이 청학을 타고 가야산으로 떠났다는 환학대도 그저 그렇다. 해발고도 580m의 불일암에서 360m 완폭대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했다. 일행이 나무를 잡고 타고 내려갔다는 <유두류록>의 내용이 인제야 기억난다.
“세상 밖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니었다. 여름 가뭄으로 수량이 적어 용의 소리는 들을 수는 없었다. 60m의 높이를 가진 불일폭포는 가히 지리산 10경이라 할만해 보인다. 겸재 정선의 수묵화와 이호신 화백의 그림이 게시되어 있어 아쉬움을 달랜다. 부족한 모든 것들은 여름이나 가을을 기약한다. 그때는 남명의 눈이 아니라 미래로 가는 나 자신의 눈이어야 한다.
길은 사람이 있어 아름답다. 불일폭포를 오르는 사람은 다양하고, 여럿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스무 명 정도가 교사의 인솔로 불일폭포에 간다고 줄지어 걷고 있다. 귀여워 죽겠다. 인솔 교사가 한마디 던진다. “중간에 포기할 수도 있어요.” 포기한들 어떤가. 도전 자체가 이미 아름다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