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하반기
추석 만상(萬想)
벌초를 다녀왔다. 한해에 딱 한 번만 치루는 연례행사다. 벌초를 마치면 의무적으로 해야 할 일은 전혀 없다. 솔직하게 말하면 ‘심심하거나 지루하다’라고 할 수도 있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편하다. 무슨 말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 할 일이 없는 긴 연휴라서 좋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마음속에는 표현되지 않는 무수히 많은 추석 감상이 도사리고 있다.
추석 연휴가 끝나면 중간고사가 시작되었다. 이런 의도는 학생으로서는 기분이 참 나빴다. 시험 기간 직전의 추석 연휴를 시골 큰댁에서 보내야 한다는 게 짜증 나는 일이었다. 하루도 아니고 이틀 밤을 자야 하는 것도 늘 부담스러웠다. 뭐 이런 사소한 것들은 문제도 아니었다. 큰아버지와 아버지는 형제뿐이지만 할머니의 조카는 남자만 열셋이었다. 그러니까 큰아버지께서는 사촌 열다섯의 맏형이시고 할머니께서는 그들의 제일 큰어머니였다. 그들의 증조부. 조부의 차례는 큰댁 대청마루에서 족히 마흔 명이 넘는 남자들만의 모양새 나는 위세였다. 나는 그들의 아랫대 맏조카였기에 추석날 아침이면 깊이 고개를 숙여 인사치레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 이런 이유로 추석이 싫었다.
명절 대이동이 해마다 반복되었다. 추석 연휴가 끝날 때쯤이면 아버지께서 교통사고 사망자가 몇이나 되냐고 물었다. 어느 해는 서른 명이 넘었고, 쉰이 넘었던 적도 있었다. 2016~2018년 추석 연휴 교통사고 사망자는 연평균 37.4명이었다. ‘조상 모시러 고향에 오다가다 젊은이들이 먼저 조상이 된다’ 하시며 혀를 차던 아버지 모습이 선하다. 그래서인지 역귀성이 유행처럼 번졌다. 코로나 팬데믹 전에는 큰댁 대청마루에서 열 명 남짓 단출하게 차례를 지내니 번잡하지 않아 좋았다.
농사지으며 고향 땅을 지키시던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고향 산천에 누우셨다. 삼 년을 코로나 팬데믹 핑계로 몸 편히 살다 보니 솔직히 그 어르신들의 기제사는 언제 어디서 모시는지 모른다. 추석날 차례도 지내는지 어떤지도 모른다. 자손들이 성묘를 오기나 하는지 나는 모른다. 다들 그래그래 살고 있다. 그렇게 살아도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재종 동생이나 삼종 동생들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섭섭하다.
이번 추석 연휴는 엿새나 되어 참으로 무료하다. 색동옷 입고 어리광 부리면 손뼉 쳐 주실 부모님도 다른 세상에 가셨고, 명절이라 찾아오는 며느리나 사위도 없다. 그러니 예쁜 손주는 안아볼 꿈도 못 꾼다. 다행인 것은 서른이 넘은 자식 놈 둘이 긴 연휴를 함께 먹고 마시기를 반복해 주니 고마울 뿐이다. 내심 하나쯤은 짝을 맞춰주면 좋으련만 그럴 마음이 전혀 없어 보인다. 자식이지만 맘이 상할까 봐 빈말로 빈정거리지도 못한다. 추석이라는 명절이 자꾸만 추억거리가 되려고 한다. 무료한 추석의 원인을 제공한 아들과 딸에게 “아~! 쪼~옴. 가라”라고 소리라도 지르면 내년 추석은 가족이 하나쯤은 더 늘 수도 있지 않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