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 마늘을 보면서: 유전학과 태교 ②
리센코의 영욕(榮辱)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서방 국가와 한국에서는 멘델의 유전법칙을 가르쳤으나, 공산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과 중국, 북한에서는 라마르크의 ‘용불용설’과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과 함께 ‘리센코의 법칙’만 가르쳤고, 독재자 스탈린(Iosif V. Stalin) 사후에야 ‘멘델의 법칙’을 가르쳤다. 특히 리센코 법칙은 리센코가 멘델이 ‘형질은 유전되어도 사상은 유전되지 않는다.’라는 주장에 대하여 그는 ‘사상도 유전된다.’라고 하는 등 멘델과 반대되는 ‘후천성 획득 형질의 법칙’이라는 스탈린의 통치전략과 잘 어울리는 새로운 학설을 주장하였다.
원래 리센코가 주장한 춘화처리농법(미추린농법, 또는 야로비 농법)이란 겨울철 농작물의 씨앗을 몇 주 동안 저온 처리하여 봄철에 심는다는 러시아의 전래농법이기도 하였다. 이를 리센코가 학술적으로 뒷받침해 주자, 소련은 정부가 국민들의 식량을 책임지는 공산주의이므로, 농산물 증산이 가능하다는 그의 주장을 곧바로 채택하여 소련의 많은 지역에서 그의 방식대로 농사를 지었다.
단기적인 결과는 기대에 부응하였다. 당시 소련의 열악하고 엉망인 농업환경에서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소맥을 재배하는데 춘화처리를 조직적으로 적용한 결과 과거보다 3배의 수확을 얻었다고 우크라이나 인민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보고했을 정도다. 그는 이어서 툰드라 지방에는 토마토, 중앙아시아 지역에는 사탕무를 재배하는 것이 좋다고 제안했다. 리센코의 업적은 워낙 두드러졌으므로 1930년에 오뎃사 유전학연구소장으로 임명된다.
과학과 정치가 확실히 구별되지 않았던 당시 사회주의적 유전학을 제창했던 리센코는 스탈린의 마음에 들어서 멘델 유전학의 배척했는데 그 운동을 ‘리센코이즘’이라고 불린다. 리센코는 전성기 그의 야로비농법을 주장하며 반대파 학자들을 억압했다. 종래의 올바른 유전학을 지지하는 학자는 검열이나 억압의 대상이 되어 많은 사람이 처형됐다. 리센코주의는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과학계뿐만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의 전반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다.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리센코는 ‘맨발의 과학자’로 영웅시되었고 그의 연구 성과는 대대적으로 선전되었다. 그는 1940년 소련 과학원 산하 유전학 연구소 소장이 되었다. 스탈린 지지를 등에 업은 리센코는 자신의 학설에 반대하는 과학자들의 숙청에 앞장섰다. 리센코주의 농업 정책은 1960년대 중반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스탈린의 죽은 뒤에 어느 정도의 이전 체제 비판이 가능해지면서 소련의 과학자들은 리센코 학설의 비과학성과 리센코의 과학적 정적 탄압을 고발하고 나섰다. 1957년에는 소련을 방문한 북한 잠학 분야의 석학인 계응상(桂應祥, 1891~1967)도 리센코의 이론에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계응상은 리센코주의가 득세할 당시 리센코주의의 추종자들과의 마찰에도 불구하고, 고전 유전학에 기반한 자신의 연구를 지속하였다. 소련에서 여론이 리센코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지면서 1965년 리센코는 실각하고 소련에서의 리센코주의 농업 정책은 끝이 났다.
일반적으로 월동 식물은 생명력이 강해진다. 그러나 리센코의 학설은 그 특성이 곧바로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자신이 직접 실험하여 완성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것은 수많은 학술적인 자료로 제창했지만 결국 작물이 그런 반응을 나타내지 않는 것이 확인되면서 몇 가지 반론에 직면하게 된다. 더구나 1963년 기근으로 인해 소련의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고, 리센코의 사이비 과학에 기반을 둔 농업 기술 정책은 기근 피해를 극대화 시켰다.
특히 사상도 유전된다는 주장은 스탈린을 감동시키었고 일약 학자 중의 학자로 국민들의 숭앙을 받았다. 바로 “부모가 골수 빨갱이 공산당이면 자식도 골수 빨갱이 공산당이 된다.”라는 논리 때문이었다. 그러나 스탈린 사망(1953)이후 흐루쇼프의 집권으로 그의 집무실에 붙들리어가 “이 미친놈아, 빨갱이가 유전되면 스탈린 자식들은 왜 저 모양이냐?”라는* 지탄과 함께 돌아오지 못하는 시베리아 소호즈(집단농장)로 유배당하였다.
* 스탈린의 자식들 중 장남 야코프는 전사했고, 차남 바실리는 스탈린 사후 중노동수용소에 갇혔다가 60년 풀려났지만, 2년 뒤 알코올 중독으로 숨졌다. 외동딸 스베틀라나 알릴루예바는 스탈린 사후 흐루쇼프한테 찍히고 망명지인 미국에서는 CIA한테 감시당하며 불안에 떨며 양로원에서 살다가 죽었지만, 천수를 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