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산고택이 위치한 춘양은 소나무 중 최고로 꼽는 금강송의 집산지였다. 금강송이 ‘춘양목’으로 불리는 이유다. 기차도 제대로 들르지 않던 춘양에 영주와 철암을 잇는 영암선 철로가 지나치도록 노선을 억지로 돌려 놓았다는 곳이다. 저 유명한 ‘억지춘양’이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
춘양은 태백과 소백의 사이, 양백지간에 사방이 1,000m 이상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로 김기덕 영화감독과 이창동 전 문화부장관의 고향이기도 하다. ‘정감록’에서 기록된 바, 전란을 피할 수 있다는 십승지 중 하나다. 춘양면 석현리 각화산 중턱에 위치한 태백산 사고지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해 왔던 전국의 5대 사고지 중 한곳이다.
오대산, 전주, 강화 정족산, 무주 적상산 등지의 사고가 임진, 병자 양란때 모두 소실된 데 반해 태백 사고에 있던 실록은 일제때 일본군에 의해 사고가 소실되기 직전 규장각으로 옮겨져 지금의 소중한 역사 자료로 남아있다. 임진왜란 당시 서애 유성룡이 선조를 모시고 의주로 몽진했을 때 서애의 큰 형님이 서울의 부모를 모시고 거꾸로 남으로 피란 와 거처했던 곳도 봉화 춘양이다.
봉화는 관직을 버리고 초야로 찾아 든 양반이 많았던 만큼 정자의 수가 수십 개에 달한다. 춘양면 학산리의 ‘와선정(臥仙亭)’은 그 중 독특한 곳으로 병자호란 이후 벼슬을 버리고 이 곳에 은거하며 대명절의(大明節義)를 지키겠다고 모인 5명의 선비가 지은 정자다.
운곡천과 금강송이 어우러진 풍경이 멋스럽다. 400여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년 중복날이면 그 후손들이 모여 우애를 다지며 선현의 뜻을 좇고 있다.
애당2리의 참새골, 석문동 계곡은 여름철 최고의 피서지다.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바람은 시원하다 못해 싸늘하고 그 물의 차가움이란 전국에 견줄 곳이 없다고 한다. 날이 더워질수록 그 냉기가 더하다는 계곡. 그래서 한 여름에도 긴 팔 옷을 준비해야 하고 야영이라도 할 참이면 두꺼운 이불이 필요한 곳이다.
계곡을 타고 오르면 태백산으로 이어진다. 산행길은 대부분 암벽이 아닌 부드러운 흙길로 무릎, 발목에 부담이 덜하다. 순백의 산목련이 아직도 꽃을 피우고 있고 지난 밤 내린 비에 우수수 떨어진 찔레꽃이 그 길을 수 놓고 있다.
문수산 자락 북쪽의 서벽은 한때 스키장 조성이 추진됐던 깊은 산골. 금강송의 거대한 군락이 남아 있어 ‘천상의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바로 아래에는 혀끝을 알싸하게 만들며 툭 쏘는 약수, ‘두내약수탕’이 있다.
춘양(봉화)=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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