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나시다(막 16:1-8; 눅 24:1-12; 요 20:1-10)
(마 28:1) |
안식일이 다 지나고 1)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갔더니 |
(마 28:2) |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
(마 28:3) |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
(마 28:4) |
지키던 자들이 그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
(마 28:5) |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
(마 28:6) |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
(마 28:7) |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
(마 28:8) |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시68:11 |
(마 28:9) |
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
(마 28:10) |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
경비병의 보고
(마 28:11) |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마27:65 |
(마 28:12) |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
(마 28:13) |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
(마 28:14) |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
(마 28:15) |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
제자들에게 할 일을 분부하시다(막 16:14-18; 눅 24:36-49; 요 20:19-23; 행 1:6-8)
(마 28:16) |
○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 마26:32 |
(마 28:17) |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아직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더라 |
(마 28:18) |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
(마 28:19)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2)세례를 베풀고 |
(마 28:20) |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
1. 헬, 그 주간의 2. 헬, 또는 침례
- 28:1-15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 다른 제자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이 두 마리아는 다시 한번 주님의 무덤을 찾았다. 아마도 이들은 전날에도 예수님의 장사를 면밀히 관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른 아침에 무덤을 또 찾았다는 것은 지난밤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눈물로 밤을 지새운 것이 분명하다.
1절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유대인의 하루는 오후 6시부터 시작하여 다음날 오후 6시에 마치는 것이다. 안식 후 첫날 미명 ejpifwskouvsh/(에피훠스쿠세)은 현재의 일요일 이른 아침, 밝아지기 시작할 때를 말한다.
2절 굴려내고 ajpekuvlisen(아페쿨리세)는 예수께서 나오시기 위함이 아니라 여인들이 들어갈 수 있게 돌을 굴려낸 것이다.
마가는 이들이 온 목적은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미리 사두었다가 그것을 바르기 위해서 무덤에 왔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마태는 그들이 온 목적은 무덤을 다시 한번 보기 위함이었다고 말한다.
마태는 이미 장사지낸 굴은 봉인되었고 파수꾼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몸에 향유를 바른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그 향유는 필요 없게 되었다.
3절
희거늘 leuko;n(류-콘) "하얀, 빛나는" 밝게 빛나는 것을 뜻한다.
9절
만나 ajphvnthsen(휘펜-테-센) "만나다, 마주치다" 여자들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예수의
부활하신 몸을 처음으로 만지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 후 사람을 만나신 것은
1) 막달라 마리아에게(요20:14-18), 2) 무덤에서 돌아가는 여자들에게(마28:8-10), 3) 베드로에게(눅24:34), 4)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눅24:13-31), 5) 도마를 비롯한 제자들에게(눅24:36-43, 요20:9-24), 6) 약 8일 후에 다시 도마와 제자들에게(요20:24-29), 7) 디베랴 호숫가에서 7제자들에게(요21:1-23), 8) 11사도에게(눅24:50-53, 막16:19-20)
28:16-20 마지막 명령
19절 모든 pavnta(판-타) "모든, 온, 만민"의 뜻으로, 이제 복음은 유대인과 그 땅의 경계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명령하신다. 뿐만 아니라 족속 e[qnh(에드네)는 "이교도, 이방인"이란 말로 유대민족 위에 이방인에게도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의 모두 단수로 나타난다. 이것은 3자가 모두 동일함을 의미한다. 이름으로 o[noma(오노마) "이름, 권위, 대의"의 뜻으로 세 이름에 대해서 하나 하나의 이름을 별도로가 아니라 모두 단수로 묶어서 하나의 개념으로 말씀하신다. 이것은 [삼위일체]를 증명하는 것이다. 제자들에게는 이 세 이름을 사용하라는 것은 하나님과 주 예수그리스도의 모든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이 무소 부제의 권위를 부여한 것은 제자를 삼아서 1) [세례를 주고], 예수께서 분분한 모든 것을 2) [가르치고], 3) [지키게 하라]는 것이다.
이 문장을 다시 정리하면 eij" to; o[noma(에이스 토 오노마)인데 이것은 "그의 이름으로"보다는 [그 이름 안으로]가 더 충분한 의미를 전달할 것 같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최고의 약속을 주신다.
e{w" th'" sunteleiva" tou' aijw'no"(헤어스 테스 쉰텔레이아스 투 아이오노스)는 현시대의 종말까지를 뜻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를 말하고 있다.
항상 pavsa" ta;" hJmevra"(파사스 타스 헤-메라스) pavsa"(모든) hJmevra"(시간)에 대해서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살아나시다(마 28:1-10; 눅 24:1-12; 요 20:1-18)
(막 16:1) |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
(막 16:4) |
눈을 들어본즉 벌써 돌이 굴려져 있는데 그 돌이 심히 크더라 마27:60 |
(막 16:5) |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눅24:4, 요20:12 |
(막 16:6) |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
(막 16:7) |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요20:6 |
(막 16:8) |
여자들이 몹시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마28:8, 눅24:9 |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시다(마 28:9-10; 요 20:11-18)
(막 16:9) |
2)[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눅8:2 |
(막 16:10) |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이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알리매 |
(막 16:11) |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눅24:11 |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다(눅 24:13-35)
(막 16:12) |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 눅24:15 |
(막 16:13) |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알리었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 28:16-20; 눅 24:36-49; 요 20:19-23; 행 1:6-8)
(막 16:14) |
○그 후에 열한 제자가 3)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눅24:36, 요20:19, 고전15:5 |
(막 16:15) |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4)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
(막 16:16) |
믿고 5)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
(막 16:17) |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6)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
(막 16:18) |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눅10:19, 행28:5 |
하늘로 올려지시다(눅 24:50-53; 행 1:9-11)
(막 16:19) |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
(막 16:20) |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6)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행5:12, 히2:4 |
1. 헬, 그 주간의 2. 어떤 사본에는, 9-20절까지 없음 3. 헬, 기대어 누워(유대인이 음식 먹을 때에 가지는 자세) 4. 헬, 온 창조세계에 5. 헬, 또는 침례 6. 또는 이적
- 16:1-8 예수께서 부활하심
- 마28:1-8, 눅24:1-12, 요20:1-10 비교하라
주일새벽 미명이었다(눅24:1). 길고 힘들었던 안식일이 끝나고 두 마리아는 예수의 시체에 향유을 넣기 위해 일찍 길을 떠났다. 그들의 마음은 무거웠을 것이며 착잡한 심정으로 땅을 쳐다보고 무덤입구까지 와서 무덤을 4절 눈을 들어
ajnablevyasai(아나불렢사사이)
본즉 qewrou'sin(데오루신) 놀라움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큰돌이 무덤에서 굴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5절 두
마리아는 또 한번 더 놀랐다. 그것은 예수의 시체는 없고 천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천사는 분명한데 네 복음서들이 표현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마태는 "그 형상이 번개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마28:3), 누가는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눅24:4), 요한은 "힌 옷 입은 두 천사가"(
요20:12)라고 묘사한다. 이런 차이점은 초자연적인
부활에 대해 그들이 전해들은 대로 기록한 것이므로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이에 대해 이상근은 억지로 조화를 시킬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차이가 있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이다."고 했다. 6절
살아나셨고 hjgevrqh(에게르테)는 "살리심을 받았다"는 뜻으로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말한다(
행3:15,
행4:10,
롬4:24,
롬8:11,
고전6:14,
고전15:15,
고후4:14,
벧전1:21).
16:9-20 마가의 긴 맺음말
마28:9-20, 눅24:13-53 , 요20:11-23 비교하라
마가의 긴 맺음말은 요한복음 20장에 있는 막달라 마리아의 이야기와, 누가복음 24장에 있는 엠마오로 가던 제자와, 마태복음 28장에 있는 지상명령을 함축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서 의심을 받고 있는 부분이다. 말씀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마가가 기록한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9절은 1절과 아무 연속성이 없다는 것이다. 마가는 다른 기자들과 달리 자신의 자료로만 기록해 나갔기 때문에 사건의 연속성이 긴박하면서도 연결이 잘 이루어져 있는데 유독 마지막의 이 부분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부분의 저자가 마가이든 아니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할 필요는 없다. 성경은 때로는 한 장을 혼자 다 기록한 것도 있지만 한 권을 여러 사람이 기록하거나 편집되어진 것도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우리에게 성경으로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부활 후 예수님의 출현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보여졌다. 그녀는 누가복음 8:2에서 일곱 귀신에게 구원을 받은 여인이다. 이 여인은 낙담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지만 믿지 못했다.
두 번째 실의와 좌절에 빠져 패잔병처럼 엠마오로 가는 제자에게 나타나셨다(눅24:13). 그리고 세 번째 열 한 제자에게 나타나셨다(눅24:25).
마가복음의 결론은
15절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전하라, 전파하라" khruvxate(케룩사테)는 선교에 대한 명령이다(마3:2, 마28:16-20, 눅24:46-48, 요20:21, 행1:8).
19절 하늘로 올리우사 부활 후 40일이 되어서(행1:3) 베다니 부근(눅24:50)의 감람산(행1:12)에서 승천하셨다
(눅 24:4) |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요20:12 |
(눅 24:5) |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
(눅 24:6) |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마17:22 |
(눅 24:7) |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
(눅 24:9) |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마28:8, 막16:10 |
(눅 24:10) |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
(눅 24:11) |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
(눅 24:12) |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요20:3 |
엠마오 길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다(막 16:12-13)
(눅 24:13) |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
(눅 24:14) |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
(눅 24:15) |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
(눅 24:16) |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
(눅 24:17)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
(눅 24:18) |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요19:25 |
(눅 24:19) |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
(눅 24:20) |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눅 24:21) |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행1:6 |
(눅 24:23) |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
(눅 24:24) |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
(눅 24:25) |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
(눅 24:26) |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
(눅 24:27) |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
(눅 24:28) |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
(눅 24:29) |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
(눅 24:30) |
그들과 함께 2)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
(눅 24:31) |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눅4:30 |
(눅 24:32) |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3)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
(눅 24:33) |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
(눅 24:34) |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
(눅 24:35) |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다(마 28:16-20; 막 16:14-18; 요 20:19-23; 행 1:6-8)
(눅 24:36) |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
(눅 24:37) |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
(눅 24:38) |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
(눅 24:39) |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
(눅 24:41) |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눅24:11 |
(눅 24:42) |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
(눅 24:43) |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행10:41 |
(눅 24:44) |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마16:21, 막8:31 |
(눅 24:45) |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
(눅 24:46) |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
(눅 24:47) |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
(눅 24:48) |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
(눅 24:49) |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
하늘로 올려지시다(막 16:19-20; 행 1:9-11)
(눅 24:50) |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행1:12, 행2:3 |
(눅 24:51) |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4)[하늘로 올려지시니] |
(눅 24:52) |
그들이 4)[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
(눅 24:53) |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
1. 헬, 그 주간의 2. 헬, 기대어 누워 있는지라(유대인이 음식 먹을 때에 가지는 자세) 3. 헬, 불타지 4. 어떤 사본에는, 이 괄호 내 구절이 없음
- 24:1-12 예수께서 부활하심
- 마28:1-10, 막16:1-8, 요20:1-10 비교하라
1절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사복음서가 똑같이 언급하고 있는 이날은 유대인들의
안식일을 마치고(토요일 일몰이 되면 끝이 난다) 밤에는 아무 일도 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새벽까지 기다려, 어둠이 거치기도 전에 달려갔을 것이다. 이날은 현재의 일요일 새벽이 된다. 기독교의 주일은 이 날을 기준 한 것이다.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예수의 시체에 바르고 장례를 마무리하기 위해서였다.
2-3절 마가는 이 여인들이 걸어가면서
안식일전에 그 무덤을 확인할 때 굴려 닫은 돌을 어떻게 옮길까를 염려했다고 전한다. 누가는 이미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무덤으로 들어갔다. 무서운 마음으로 무덤으로 들어갔는데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
4절
이를 인하여 근심할 때에 여인들은 예수의 부활은 생각지도 못했다. 시체를 누가 옮겨간 것이 아닌가 하는 이유로 근심했다(
마27:64). 그 순간 갑자기 나타난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
행1:10 참고)은 천사임이 분명했다. 마태는 돌문을 치운 한 천사가 여인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마가는 여인들이 무덤에 들어간 후에 흰옷 입은 청년이라고 언급한다. 요한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말한 흰옷 입은 두 천사를 말한다.
5절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그렇지 않아도 떨고 있던 여인들에게 갑작스런 천사의 등장은 "경이로운 두려움"
ejmfovbwn(엠포본) 그 자체였다. 놀라움이 그치기도 전에 천사의 말은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는 것이다. 이 무덤은 새 무덤이기 때문에 다른 시체들은 없었다. 이 질문은 예수님을 죽은 자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6절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두 천사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이 선언되었다. 누가는 부활의 증거로 빈 무덤을 제시한다. 누가는 여인들이 발견한대로 시체가 없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옮긴 것이 아니라
부활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만에 살아나리라"고 하셨다(
눅9:22) 이 말씀은
갈릴리를 떠나서도 계속하셨다(
눅17:25,
눅18:32-33).
10절 누가는 이 여자들의 이름을 밝히는데 최소한 5명 이상의 여자들이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한 주님을 처음 본 여인으로(
막16:9) 사복음서에 모두 나온다. 여기 외에는
눅8:2에서 한번만 나타난다.
요안나는 이곳과
눅8:2에서 나타난다.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는
막16:1에 나오며
마28:1에 있는 여인은 다른
마리아이다. 다른 여자들(
막16:1에
살로메를 포함)로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사도들에게 말했다.
24:13-35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심
막16:12-13 비교하라
이 이야기는 조금 전까지 긴박하게 이어진 내용과는 사뭇 다르다. 한적한 곳에 조용히 나타나신 예수를 그리고 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부활일에 있었지만 누가는 먼 훗날 이 때의 사건을 정리해서 기록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 제자들이 향하던 엠마오는 정확하게 어떤 곳인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
13절 그 날에는 바로 부활한 그 날을 말한다. 저희 중 둘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잘 알려진 제자가 아닌 12제자들 중의 둘이라고 본다.
14절 이 모든 된 일은 빈 무덤과 천사들에 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15-16절 부활하신 주님은 이야기를 나누며 엠마오로 향하던 이 두 제자들과 동행하기 시작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바로 알아보지를 못했다. 그 이유로 누가는 눈이 가리워져서 kratevw(클라테오) "고정되어 변동이 없음"라고 기록한다. 이곳뿐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주님의 부활이 바로 인식되지는 못했다(마28:17, 요20:14, 요21:4).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쉽게 인식되지 못했던 것은 분명하다. 부활의 육체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런 몸을 입으신 것 같다. 제자들이 같이 걷는다고 해도 주님이 계시하고자 아니하시면 알 수 없었다.
31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로 보아 더욱 그의 몸은 신비스러움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구절을 해석할 때에 영적인 해석을 한다며 마치 제자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 예수가 보이지 않았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바른 해석으로 보기 어렵다. 제자들의 어떤 영적인 문제가 있다기 보다는 예수께서 신비스러움으로 부활의 육체를 입고 계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24:36-43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심
마28:16-20, 막16:14-18, 요20:19-23 비교하라
예수의 신비스러운 나타남과 육체는 제자들로 하여금 37절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게 했다. 그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나타나기 때문에 육체가 없는 영으로만 생각했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는 38절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고 기록했는데 이 말씀을 마가는 "꾸짖으셨다"(막16:14)고 보았다. 그리고 유령으로 오해하는 제자들에게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고 하신다. 영만은 육체가 없되 온전히 부활하신 예수께는 육체도 그 전에 제자들이 알고 있던 그대로임이 분명한 것이다. 예수의 육체를 확인한 제자들은
41절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이는 부정한 것이 아니라 너무 기쁜 나머지 믿어지질 않을 정도의 감격과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43절 잡수시더라 생선 한 토막을 잡수심으로 더 완벽하게 육체의 부활을 확인시켜 주셨다.
24:44-49 예수의 마지막 분부
44절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는 구약에 예언을 총칭하는 것으로 신약에서 구약을 가리킬 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서신서들)" 이라고 할 때가 많았다(눅16:16, 29, 31, 눅24:27, 마5:17, 행28:23 등).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예수의 부활을 확인한 제자들에게 자신이 말했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알려준다(눅9:31, 눅18:31-33, 눅22:37). 45절 마음을 열어 nou'n(누운) "이해력, 판단"을 말하는데 예수를 의심하던 마음이 믿음으로 변화되어 dihvnoixen(디아노이젠) "완전히 열렸다"고 말한다.
48절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메시야(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말씀과 복음에 대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을 성취시킨 분으로의 증인이 된 것이다. 증인 mavrture"(말튀레스)는 mavrtu"(말튀스)의 복수형이다. "순교자"(martyr)라는 말이 이 단어에서 나왔다. 이 증인들이 순교하였기 때문에 붙여지게 된 것이다.
49절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이곳에 성령이라는 단어가 없다고 성령으로 해석하는데 조금도 망설일 이유가 없다. 요한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기록했다(요14:26, 요15:26). 이 예수님의 약속은 사도행전 2:1-4에서 이루어진다.
24:50-53 예수의 승천
막16:19-20 비교하라
50절 저희를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누가에 의해서 예수님의 승천 장소가 밝혀지고 있다. 그곳은 베다니의 감람원(행1:9-12)이었다. 손을 들어 저희에게 축복하시더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손을 들어 축복기도를 하시며 거의 동시에 하늘로 ajnefevreto(아네페레토) "올리우셨다".
52절 경배하고 proskunhvsante"(프로스퀴네산테스) "예배를 드렸다"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예배의 대상임을 말하고 있으며 이 때부터 예수에 대한 예배가 시작된 것을 말한다.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실망과 좌절 그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혀있던 제자들이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49절에서 당부하신 대로("예루살렘" 성에 유하라) 돌아가고 있다. 53절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이모임은 마가의 다락방으로 이동되고 성령의 역사가 있은 후 "성전"에서 "교회"의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변화하게 된다.
* 51절 [하늘로 올리우]시니와 52절 [그에게 경배하고]에 [사각 괄호]로 묶은 것은 어떤 사본(스테판)에는 있고 어떤 사본(알라드본)에는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시다
(요 21:1) |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요21:14 |
(요 21:2) |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
(요 21:3) |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눅5:5 |
(요 21:4) |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
(요 21:5) |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눅24:41 |
(요 21:6) |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
(요 21:7) |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아8:7, 눅7:47 |
(요 21:8) |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1)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
(요 21:9) |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요18:18 |
(요 21:10) |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
(요 21:11) |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
(요 21:12) |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
(요 21:13) |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
(요 21:14) |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요20:19, 요20:26 |
내 양을 먹이라
(요 21:15) |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2)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
(요 21:16) |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
(요 21:17) |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
(요 21:18)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
(요 21:19) |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요12:33, 요18:32, 빌1:20, 벧후1:14 |
(요 21:20) |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요13:25 |
(요 21:21) |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
(요 21:22)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
(요 21:23) |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고전4:5, 고전11:26, 약5:7, 계2:25 |
(요 21:24) |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 요15:27 |
(요 21:25) |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 요20:30 |
1. 200규빗 2. 또는 것들보다
본서의 내용은 사실상 20장에서 결론을 맺었으며 본 장은 후기 형태로 세 번이나 예수를 부인한 베드로를 어떻게 예수께서 회복시켜 주시는지(15-19절), 요한이 죽기 전에 예수의 재림이 있게 된다는 초대 교회 내의 헛소문을 교정하고(20-23절), 예수 부활 이후의 선교사역이 제자들에 의해서 수행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 21:1-14 디베랴 바다에 나타나심
- 1절 디베랴 바다
는 여러 이름으로 불러졌는데 바다를 중심으로 길게 뻗어있는 지역들이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불리는 이름이 있는가 하면 지역적으로 불려진 이름이 있기 때문이다. '갈릴리 바다'(
요6:1), '긴네렛 바다'(
민34:11), 겐네롯 바다(
수12:3), '게네사렛 호수'(
눅5:1) 등으로 불러졌는데 "디베랴 바다"라고 불러진 이유는
갈릴리 지방의 수도였기 때문일 것이다.
나타내셨으니 ejfanevrwsen(에파네오센) "명백히 나타내다, 밝히 드러내다"로
요2:11에 처음
갈릴리에서
표적을 보여주실 때도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라고 하셨다. 이 장소가 다시
갈릴리 지방이라는 것과 처음
표적과 이제
부활의 육체를 입으신 예수께서 자신이 보여줄
표적(
마12:38에서
요나의
표적-부활)을 그동안 언급하셨다는 흥미로움이 있다. 본문은 요한이
제자들과
갈릴리로 갔음을 별도로 기록하지는 않았으나 본문은 간접적으로
제자들이
갈릴리에 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2절 이곳에 있는 제자들은 모두 7명이었다. 시몬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세베대의 아들들(요한과 야고보) 다른 제자 둘(정확히 알 수 없지만 빌립과 안드레로 추측한다)
3절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고 말하고 다른 제자들도 쫓았다. 베드로의 이 말은 그가 과거의 직업으로 돌아가겠노라고 선포한 것으로 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무례함을 달래기 위해서인지 정확히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 없이는 이들은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4절 날이 새어갈 때 prwi?a"(프로이아스) "새벽,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 어둠이 아직 완전히 걷히지 않아서, 안개가 있어서, 바닷가에 계신 예수님이 너무 멀리 계셔서 알 수 없었는지는 모른다. 이러한 상황적인 면에서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설마 이곳에 예수께서 나타나시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5절 얘들아 Paidiva(파이디아) "어린이"를 가리키는 말이나 현재 어른들에게도 사용되기도 한다고 한다. 옮긴다면 "여보게들, 젊은이들" 정도일 것이다. 예수께서 이 말로 제자들을 부르신 것에 대해서 여러 해석이 있지만 친근감을 더해주는 애칭으로 불렀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고 물으실 때 mhv ti(메 티)로 부정관사와 명사를 사용하여 이미 고기가 없음을 알고 계시면서 묻는 것이다. "고기"로 사용된 prosfavgion(프라스파기온)은 "빵과 함께 먹는 반찬"을 의미하는 물고기를 뜻한다. 아마 예수께서는 '아침으로 먹을 물고기를 잡았느냐'라고 물어보신 것 같다.
6절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이 장면에서는 갈릴리 어부생활을 했던 제자들을 테스트하려고 했다거나 그들의 방법과 전혀 다른 방법을 제시함으로(배 오른편) 고기가 가는 길을 아시고 가르쳐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밤새도록 던진 그물을 그저 한번 더 던져보라는 것이었다. 이미 제자들은 이미 유사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눅5:1-11). 바로 말에 주춤거릴 필요 없이 순종했던 것이다. 그리하면 얻으리라 "얻으리라"로 번역된 말은 ijscuvw(이수퀴오) "할 수 있다"이다. 실망한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의 의미는 '네 말대로 오른편에 한번 더 던져보아라 너희는 할 수 있다'는 외로와 힘을 주시는 말씀이었다. 아마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순간 힘이 솥아 오르며 믿음이 생겼을 것이다.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eJlkuvsai(엘퀴에인) "끌어올리다"는 그리스도에게 사람을 인도하는 말로도 사용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요6:44, 요12:32).
7절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은 제일먼저 주님을 알아보았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알려주었다.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옷을 벗고 있었던 것은 고기를 잡기 위해 편안한 복장으로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만나러 그는 헤엄치고자 했다. 배가 서서히 육지에 다다르는 것을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수영을 하려면 옷을 벗고 있는 상태가 편안한 것인데도 그는 옷을 다시 입었다. 이것은 예수를 만나기 위한 그의 예의로 옷을 입은 것이다.
8절 오십 간쯤 phcw'n diakosivwn(페콘 디아코시온)은 "이백 규빗"인데 1규빗이 45cm 된다고 볼 때 육지에서 배까지의 거리는 약 90m이다(공동번역은 100미터로 번역했다). 작은 배를 타고 고기든 그물을 끌고 고기를 옮겼다.
9절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밤새도록 고기를 잡고 지칠 대로 지쳐있는 제자들을 위해 마련 예수님의 이 아침준비는 제자들이 감동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10절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고 시키신 것은 예수께서 마련하신 고기가 부족해서라고 보기 어렵다. 오병이어의 기적도 일으키신 분이(요6:1-13) 부족하게 준비하실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그들이 잡은 고기에 대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그에 대한 축복과 교훈을 주고자 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1절 일백 쉰 세 마리의 고기를 잡았다. 이 내용으로 인해서 수많은 우화적 성경해석을 낳게 했다. 그러나 요한이 숫자까지 기록한 것은 이 날에 있었던 일이 역사적 사실이며 어부들은 고기를 팔거나 나룰 때 고기를 세어서 하기 때문에 고기의 숫자를 정확히 기록할 수 있었다. 한편 고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ijcquv"(잌뒤스)는 '하나님의 아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머릿글자를 따 놓은 것과 일치해 초대교회에서는 물고기를 기독교인을 상징하는 부호로 사용했다.
12절 와서 조반을 먹으라 ... 묻는 자가 없더라 이미 제자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이와 같이 하실 분은 예수님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또한 그의 따뜻한 음성에 이미 그가 주님이신 사실을 알았고 제자들은 그 아침의 현실이 꿈처럼 믿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사실이었으며 제자들은 밀려드는 감격에 차마 예수께 말을 건네지 못했을 것이다.
13절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에서 왜 이와 같은 행동을 하셨는지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해 스스로 식사를 준비하시고 또 모자라는 부분을 공급하시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위해서 기꺼이 봉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자들이 잡아온 것은 고기였다. 빵은 예수께서 마련하신 것이었다. 혹자는 이 때의 일이 오병이어(요6:1-13)와 같은 역사가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14절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부활 후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에게(요20:16), 두 번째 도마 외의 제자들이 모였을 때(요20:19-23), 세 번째 도마를 포함하여 다른 제자들이 모였을 때(20:26-29)와 그리고 네 번째 나타나심이다. 그러나 제자들에게만은 세 번째가 된다.
21:15-23 베드로에게 양을 먹이라 부탁하심
15절 요한의 아들 시몬아 예수께서 처음 베드로를 만났을 때 불렀던 이름이다(요1:42). 예수님이 지어주신 '반석'(베드로)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세 번이나 부인함으로(요18:17, 25, 27) 이름에 맡지 않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 그의 이름을 부르고 계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책망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명을 주기 위해서 다정하게 부르시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께서 이렇게 물으신 것은 다른 제자들은 어떠하든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자부하던 베드로의 자신감을 의식하였기 때문이다(마26:33, 35, 눅22:33, 요13:37).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는 ajgapa'/"(아가페) "신적 사랑, 헌신적인 사랑"으로 물으셨는데 베드로는 filw'(필로) "애정"으로 인간적인 사랑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이 단어의 구분을 요한은 특별히 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면서 인간적인 사랑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요3:16, 요5:20, 요14:21, 요16:27).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음에도 다음에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은 내 어린양을 먹이라였다. 본 절과 17절까지 '먹이라' -> '치라' -> '먹이라'는 명령이 연속된다. '먹이라'는 것과 '치라'는 명령은 구분 된다기 보다는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어린양이라고 표현하신 것은 그만큼 베드로에게 주어진 양들은 매우 어리고 나약한 존재라는 것이다.
16절 두번째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첫 번째는 다른 사람들과 관계되어서 질문하시고 본 절에서는 베드로 자신이 얼마나 사랑하느냐를 묻고 계신 것이다. 베드로의 대답은 전 절에 종속시키면서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로 같은 대답을 하고 있다. 예수님의 대답 또한 내 양을 치라이다. 17절에도 나타나는 "내 양"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베드로에의 양이 아니라 주님의 양이다. 베드로는 일시적으로 주님의 양을 돌보는 임무를 부여받고 있는 것이다.
17절 세 번째 ... 근심하여 예수께서는 같은 질문을 세 번씩이나 반복하고 계신다. 베드로는 아마도 자신이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한 것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순간 그는 "근심하여" lupevw(뤼페로) "고통 하다, 슬프게 하다, 서운하다"의 뜻으로 말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간절히 진심으로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아시오매" ginwvskw(기노스코)라고 말했다. 15, 16절에서 "아시나이다" oi\da(오이다) "보다, 깨닫다"만 있는데 본 절에는 두 단어를 모두 사용하여 oi\da", su; ginwvskei"(오이다스 호 기노시스) 자신이 얼마나 주를 사랑하는지 주님이 친히 더 잘 아실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이나 같은 의미의 질문과 대답을 주셨다. 이렇게 하심으로 세 번이나 부인하여 떨어진 명예를 확실히 회복시켜 주셨고 베드로에게도 자신을 가지고 사역할 수 있도록 힘을 주셨다.
18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ajmh;n ajmh;n levgw(아멘 아멘 레고)는 요한만이 사용한 것으로 요한은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과 임무나 명령을 할 때 아멘 아멘을 사용했다. 요한은 또한 '아멘'이라는 단어를 항상 말씀의 첫 부분에 두 번을 반복적으로 기록함으로 말씀의 중요성을 증가시켰다.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이것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행보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띠 띠고"는 유대인의 옷은 띠를 제대로 메어야만 제대로 갖추어 입은 옷이다.
늙어서는 내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은 베드로에 대한 예언이 틀림없다. 베드로도 십자가에 달려서 팔을 벌리고 죽었다. 이 기록은 1클레멘트5:4, 6:1 유세비유스 교회사(Eusebius The Ecclesiastical History 2.25)에서 전하고 있다. 베드로가 예수의 세 번 질문에 '내 양을 먹이라'는 명령을 잘 이행하고 그의 마지막까지 보고계시는 주님의 예언이다.
19절 어떠한 죽음으로 "죽음" qavnato"(다다토스)은 자연적 죽음이 아니라 복음을 증거하며 양을 돌보다 순교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베드로의 이 죽음은 하나님께 "영광" doxavsei(독사신)을 돌리는 것이었다.
나를 따르라 !Akolouvqei(아콜루데이) "좇으라, 따르라"고 명령하신다. 베드로가 가는 길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십자가의 길임을 말해준다.
20-21절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사랑하시는 제자(요한)는 예수를 따르고 있었다. 이미 여기서 베드로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제자가 예수를 따르고 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15-17절에서 주어진 "내 양을 먹이라"또한 베드로를 주시해서 말씀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베드로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에게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주시는 말씀인 것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마지막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 갑자기 다른 제자의 마지막에 대해서 궁금해진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질문한 것이다.
22절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이 말은 현대인의 성경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고 해도 그것이 네게 무슨 상관이냐?"로 번역되었다. 너는 나를 따르라 suv moi ajkolouvqei(쉬 모이 아콜로이데이)고 반복하신다. 여기서 su(쉬) '너'가 강조를 나타내기 위한 위치에 놓여있음을 살펴야 한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요한의 운명과 베드로의 운명 모두가 하나님께 달려 있는 것으로 독립적인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다.
23절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이 말씀이 초대 교회에게 잘못 알려졌던 것을 요한 자신이 스스로 밝혀주고 있다. 초대교회 사람들에 의해서 요한은 죽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오해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 본인 요한은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고 다시 정정해 주고있다.
21:24-25 결론
24절 이 일을 증거하고 이 일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는 본서의 저자가 확실히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예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제자로서 베드로와 같이 성격이 급하고 불같은 면은 없지만 반대로 온유하며 예수께 많은 사랑을 받았던 본인을 본 복음서에서 겸손하게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한번도 밝히지 않은 체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라는 식으로만 기록을 남겼다.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줄 아노라 본서의 증인으로 "우리"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정확하게 누구를 말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사도 교회들', '에베소의 장로들', '요한의 동역자들' 아니면 본서를 읽는 모든 독자들을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
25절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줄 아노라는 사실상 본서의 글을 마감한 요20:30절과 같은 의미로 보아도 좋다. bibliva(비블리아) "책, 두루마리 책"을 가리키는 이 말은 '파피루스'를 말하는데 현재의 종이와 달리 많은 분량을 차지했다. (그러나 확실히 이 용어는 신학자 모리스(L. Morris)가 말한 것처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유쾌한 과장법'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사본에는 본 절의 마지막에 아멘(Amhvn.)이 있다.
저자 이영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