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용산 신학교 성당(원효로 성당) / 2015.01.09
서울 용산구 원효로 4가 1 ☎ (02)701-5501
'조선 가톨릭 성직자의 요람
최초의 근대식 신학교'
조금 전 순례했던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당과 같이
이곳도 방학 중에만 순례가 가능한 곳입니다.
현재 '성심수녀회'와 '성심 여중고'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옛 용산 신학교(龍山 神學校) 성당은 1902년에 축성된 건물이다.
여기에는 한국 천주교회의 첫 방인 사제였던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가 축성 당시부터 1958년까지 모셔져 있었고
조선 교구 초대 교구장이었던 소 브뤼기에르 주교와
제8대 교구장이었던 뮈텔 주교의 유해가 거쳐 갔던 곳이다.
원효로 성당과 용산 예수 성심 신학교(1887~1942)
용산 신학교(龍山 神學校)와 원효로 성당(元曉路聖堂)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학교와 그 부속성당이었다.
지금도 꽤 높은 언덕인 이곳은
원래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함벽정(涵碧亭)이 있던 곳이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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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2년 6월에 완공된 용산예수성심신학교
옛 배론신학교를 방문한 정규하 신부 일행(1931) ↑
용산신학교와 원효로성당(龍山神學校와 元曉路聖堂)은
당초 1977년에 대한민국의 사적 제255호로 지정되었다가
2012년 6월 20일 문화재의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하여
서울 용산신학교는 사적 제520호로..
서울 원효로 예수성심성당은 사적 제521호로..
분리하여 재지정하였다. [출처 : 위키백과]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는
1855년 충청도 배론에 세워진 신학당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예수 성심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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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형에 맞추어서 건립하여 전면에서는 3층 건물
언덕 위 후면에서는 단층 건물로 보이죠..
(독특한 점은 전면에 출입구가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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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에 완공된 '예수성심 성당'은
서울에서 3번째로 완공된 서양식 성당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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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문 입니다(입구에 순례 확인 스탬프가 있어요)
성당 안으로 들어 갑니다.
성당 내부의 모습도 참 소박하고 아름답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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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가 성당지하에 1958년까지 모셔져 있다가
현재는 '혜화동 성신학교'에 모셔져 있답니다.
제대 아래 꾸며진 구유도 소박한 것 같네요..
이 성당은 많은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치 되었던 곳인데
출입구 안쪽 상부에 있는 이 동판은
건축 기간 (1899-1902)
김대건 신부님의 라틴어 이름 'A.K'
생존 연대(1821-1846)를 의미한답니다.
혜화동 성신학교, 명동 성당, 절두산 등지로 옮겨 모셔졌고..
8명의 역대 조선 교구장들의 유해는
'용산 성직자' 묘지로 안장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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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비석 십자가의 길
성모 비석
전면 : 聖母爲我等祈(성모위아등기 : '성모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후면 : 1906 ASR M(숫자와 이니셜) ;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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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 기념관
한국 최초의 신학교 건물이었던(1892년에 축성)
'성심기념관'입니다.
예수 聖心안에 한마음 한뜻
현재는 '예수성심수녀회' 관구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곳은
1957년 6월에 '성심수녀회'가 '파리 외방 선교회'로 부터 매입하여
현재까지 '성심수녀회'와 '성심 여중고'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사 건물들 건축 연혁
* 1958년 누나의 중학교 입학식에
부모님 따라 왔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흑백 사진으로도..
(이 시절에는 흑백사진만이 확실하게)
반세기가 훌쩍 지나쳐버린 57년 전의 일이군요..
옛 용산 신학교 성당(예수 성심 수녀회, 성심여중고) 순례를 끝으로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이제 집으로 돌아갑니다.
= 오늘의 복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