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길리엄 감독의 그 좋았던 예전의 영화들은 다 어디로 갔던가? 그 명성에 비해서 <그림형제>는 많은 실망을 안겨준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그의 유명했던 영화들, <브라질>, <피셔 킹>.........등의 품격은 다 어디로 갔는지? 요즘 크게 파퓰러한 판타지 스타일의 영화들, 그리고 블럭버스터형의 영화들을 그는 쫒아 갔는가?
그림 형제를 우리들은 잘 알고 있다. 어린 시절에 읽었던 그 주옥같은 동화들.....이 영화는 그 그림 형제들을 등장시켜 그들이 쓴 동화 속 이야기를 뒷 배경으로 깔고 내러티브를 펼쳐나간 환타지아다. 시대 배경은 19세기 프랑스 점령 하의 독일. 윌 그림(맷 데이먼)과 제이크 그림(히스 레저) 형제는 괴물들과 악귀를 물리쳐준다는 명목으로 돈을 챙기는 사기꾼 퇴마사들이다. 점령군인 프랑스 군인들에게 사기죄로 체포된 형제들은, 소녀들이 실종되는 마법의 숲 마르바덴 숲으로 가서 마귀들과 싸우라는 명령을 받는다.
각본은 어떤 면에서는 나름대로 훌륭하다. 앞서 언급한 그렇고 그런 얘기 속에 그림형제들이 썼던 동화의 이야기들을 주옥같이 뒤섞어 놓았다. 헨젤과 그레텔이 등장하고 백설공주의 거울여왕(모니카 벨루치 분)과 늑대인간의 이야기가 뒤섞인다. 영화 속에는 개구리 왕자나 "거울아! 거울아! 누가 더 예쁘니?"의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미녀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록된 그림 형제의 동화집 속에 수록된 이야기들이 구석구석에 파편처럼 흩어져 삽입되어 있다.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 형제가 오랫동안 수집한 세계 각국의 설화와 민담 등이 동화 양식으로 정리되어 수록된 그림형제의 동화집은, 독일어로 쓰여진 책 중에서 마르틴 루터의 성서 다음으로 전세계에 많이 번역되었다. 하지만 테리 길리엄 감독은 그림 형제의 역사적 업적이나, 그들의 민담 채집 과정 혹은 동화 집필에 촛점을 맞추지는 않는다. 그림 형제는 다만 판타지를 제공하는 하나의 소재, 즉 껍데기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내러티브는 어린아이들 장난에 가깝다. 그림 형제의 전기영화라면 그래도 괜찮았을텐데 문제는 그 그림 형제들이 내러티브 속에서 주인공들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각본을 쓴 사람들은 나름대로 내공을 들였는지는 모르지만 유치하기 그지없다. 개개의 이야기들은 유기적인 관계도 맺지 못하고 있고 그저 partial하기만 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림 형제는 반지원정대가 되었고 인디애나 존스, 아니 로맨싱 스톤이 되었다. 영화 <그림형제:마르바덴 숲의 전설>에서 설화들은 그것들이 탄생한 원초적 배경을 벗어나 장식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이야기들이 힘을 잃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중충한 중세의 숲에서 벌어지는 한심한 이야기에 동의할 관객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설화적 소재는 겉으로 드러나는 이야기 자체나 비현실적인 캐릭터의 독특함에 시선을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창출된 민중적인 정서나, 집단이 가지고 있는 함축된 의미들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동화는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안되는 캐릭터의 개성과 비현실적 이야기 속에는, 세계를 바꾸려는 혹은 어렵게 살아가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민중들의 뜨거운 열망들을 속에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들은 주류 세계의 주인공들이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억압을 피해 이야기를 비틀고 우회하며 비현실적 장치로 억압을 피해 나가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숨겨서 하는 것이다. 설화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 때에는 그 이면에 숨어있는 정치적 발언들을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아쉽게도 너무나 피상적으로 소재에 접근하고 있다. 그림 형제의 동화들은 어떤 동화 속보다도 잔혹하고 엽기적인 이야기들이 가득 차 있다. 그것을 산출시킨 시대의 민중적 열망을 읽지 않고 그저 현대의 CG의 기술로 비쥬얼한 접근만으로 관객에게 말하려고 한, 다시 말하면 피상적으로 접근한 결과가 이 영화 <그림형제:마르데바덴 숲의 전설>이다. 단 한가지 모니카 벨루치는 여전히 아름답다. 너무나 잠깐 나와서 아쉽지만 그녀는 아름답지만 악녀같은 모습으로 남성에게 밀착해서 남다른 관능을 선사한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에서 막달라 마리아로 나왔던 그 연기와는 정반대의 이미지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