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친구 역설>
이한수
한수 선생과 1학년 학생 몇 명이 도서관 테이블에 둘러앉자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근 학교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학생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 한수 선생이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한수 선생은 무척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사실 까놓고 말해서 왕따 되기 싫어서 친구가 필요한 거 아닌가?”
한수 선생은 늘 이런 식이다.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고 비판적이다. 둘러앉은 학생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논리적으로 허점을 꼭꼭 짚어낼 줄 아는 명희가 애들의 답답한 속을 풀어주었다.
“그렇게 볼 필요가 뭐가 있어요? 외롭지 않으려고 친구를 사귀고 하는 건 맞는데 친구를 통해서 내 부족함도 깨닫게 되고 그러는 거지. 관계의 진실성은 아무도 모르는 거고, 그걸 그렇게 따져야 하나요?”
명희의 맞은편에 앉아서 두 사람의 말을 듣던 하늘이는 명희 말이 맞다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있지만 속으로 좀 짜증이 났다.
‘정말 한수 선생님은 왜 늘 저러시는 거야? 지난번 모임에서도 삐딱하시더니. 도대체 누가 친구 사귀는데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한다는 거야. 그냥 이런저런 계기로 알게 되고 자주 만나다 보면 서로를 알게 되어 우정이 생기는 거지.’
하늘이는 한수 선생님의 말도 마뜩잖지만 명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 듯했다. 하늘이는 선생님들과 아이들에게 말한다.
“저도 명희의 말이 어느 정도는 맞다고 생각해요. 다만 진실성을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아무런 이득이 없어도 친구와 친해지면 맛있는 것도 사주고 더 잘 대해주고 싶잖아요. 이렇게 이익을 따지지 않는 것이 그 친구에게 진실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친구가 말하기 어려운 고민을 말해 줄 때 ‘아 얘가 나를 믿는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거야말로 친구가 저에게 진실성을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식으로 서로 진실성을 알아가지 않나요?”
명희와 하늘이의 말에 굳어있던 아이들의 표정이 풀렸다.
하지만 한수 선생님은 여전히 턱받침을 한 채로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 무언가를 말할 듯 말듯한 한수 선생의 행동에 아이들은 또 어떤 이해할 수 없는 답답한 질문이 나올까 불안한 표정으로 한수 선생을 쳐다본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다현이의 목소리가 적막을 깼다.
“궁금한 게 있어요. 그럼 지금 선생님은 주위에 있는 친구 분들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현이는 생각했다. 매사 부정적이며 비판적인 한수 선생님에게 친구란 과연 어떤 존재일까. 선생님은 그 친구에게 무슨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다현의 질문에 아이들은 한수 선생을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한수 선생이 머뭇거리다 무슨 결심을 한 듯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겪었던 얘기를 해줄게요.”
아이들의 시선이 한수 선생에게로 모였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에는 공부 좀 한다 했었거든. 그런데 그놈들하고 어울리면서 완전 추락을 해 버린 거야.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그 애들과 왜 어울렸을까, 뭐가 그렇게 절박했을까, 잘 모르겠어. 그때 그런 고민이 안 생길 수가 없지. 성적은 추락하고 선생님들은 나에게 왜 그러냐고 다그치셨고 정말 멘붕이었지.”
한수 선생은 말을 멈추고 책상 위의 손만 한참 내려보다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러다가는 내 인생이 암담해지겠다는 생각은 벌써부터 있었지. 그래서 작심을 했어. 대책 없는 저 자식들과 나는 달라. 저놈들과 어울려서는 내 인생 종친다. 저놈들과 관계를 끊는다 작정했지. "
그 동안 한 마디 말도 없이 듣고만 있던 은형이가 짜증스럽다는 투로 말했다.
"공부를 하려면 친구 관계도 다 끊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잖아요."
은형이의 직설적인 말로 다시 분위기가 썰렁해지려고 하는데.
"한수 샘 완존 삐질이 소심남이었나봐요."
하늘이가 웃으며 한수 선생을 놀리자 아이들이 와르르 웃으며 다시 분위기가 가벼워졌다. 진지맨 한수 선생이 웃음을 머금고 아이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말했다.
“너넨 그럼 그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 거 같니? 그놈들이 계속 나를 찝쩍거리는데 미치겠더라”
맨 앞자리에 앉아있던 수민이가 바로 대답했다.
“저를 괴롭히면 그 아이들을 학교 측에 학교폭력으로 신고했을 꺼 같아요.”
수민이 짝인 하영이는 “전 그런 상황이 오면 전학 갈 꺼에요!”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둘의 말에 공감하면서 ‘그게 정답’이라고 말했다. 교실은 또다시 시끌벅적해졌다. 그때 은형이가 좀 언성을 높여 쏘아붙였다.
“야, 그게 친구냐? 친구한테 그럴 수 있는 거냐?”
직설적인 은형이가 또다시 반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었다.
한수 선생은 은형이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은형아 그럼 넌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어떻게 하겠니?”
“음.. 저는요, 친구들한테 진지하게 속사정을 얘기하고 양해를 구할 거 같아요. 친구라면 이해해주면서 도와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럼 만약 그 친구들이 너를 이해해주지 않는다면 어쩔꺼니?”
“친구들과 관계를 다 끊고 그냥 혼자 다닐 것 같아요. 그게 더 마음이 편할 것 같고 스트레스도 덜 받으니까요.”
은형이는 단호하게 말하면서 상체를 세우고 의자를 뒤로 밀어 테이블에서 멀어졌다.
#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이 인물의 동작 표정을 묘사하고 대사를 많이 넣어서 쓰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