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1월 17일 태어난 일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는 아시아인 최초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았다. 그는 영화음악 OST에 특출한 재능을 보였는데, 영화 오스카 수상작 〈마지막 황제〉에서는 OST만이 아니라 직접 출연까지 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허수아비 만주국 황제 푸이를 배후조종하는 예비역 일본 육군대위 배역을 맡았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로렌스 반 데르 포스트 소설 〈씨앗과 파종자〉를 원작으로 한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에도 출연했다. 〈전장의 크리스마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자바섬 일본군 전선에 억류된 각국 포로들의 생활을 담은 영화로, 전쟁 중에도 인간은 서로 이해하고 화해할 수 있다는 평화 메시지를 실감나게 형상화해낸 가작이었다. 하지만 조선인 군속 가네모토金本가 네덜란드 포로를 성폭행하는 장면 탓에 우리나라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1981년 1월 17일 세상을 떠난 김종문 시인의 〈샤보뎅〉은 전통시로부터 멀리 벗어난 거리에 있는 모더니즘 작품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는 “하늘에서 모래알이 쏟아지고 있었다. / (중략) 죽어간 폐허 위에 / 집을 지으며 정원을 가꾸며 살고 있었다.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며. // 사막에서 떠나 살 수 없는 체념에서 / 해골바가지를 들고 / ‘오아시스’를 찾는 여정을 더듬어 가고 있었다. // (하략)”라고 노래했다.
폐허에 살면서도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사막에서 평생을 살 수밖에 없지만 끝없이 오아시스를 찾아서 여정을 더듬어가는 것이 인간의 한평생이다. 그런 까닭에 시의 마지막 연은 “검은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운 여인이” “저 멀리 사막 사이를 가고 있다”로 끝난다.
검은 스카프로 얼굴을 가린 것은 생존의 의지와 집념이 있기 때문이다. 〈전장의 크리스마스〉에 등장하는 각국 포로와 일본 군인들도 종전이 되어 제 나라로 돌아가기를 갈망하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조국은 제각각이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마음으로 그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트교 성경 마태복음 13장에 “우리는 씨앗이요 파종자입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종교적 의미와 관계없이 이 구절을 〈전장의 크리스마스〉에 적용하면, 사람은 누구나 평화의 씨앗이자 파종자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검은 스카프 대신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덮은 채 살아가고 있지만 마스크 착용 정신 또한 이 땅을 평화로 가득하게 하려는 인간애의 발로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