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경남여고 교장실에서의 청마 유치환
나의 ‘시’란 것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시’라는 허울을 허가 없이 빌려 뒤집어쓴 것에 불과하다.
유치환『제9시집』(1957)
청마靑馬 유치환의 문학 생애를 일관하는 특징 가운데 가장 이채로운 것은, 그가 일제 강점기와 분단 시대를 철저하게 겪었으면서도 당대의 담론적 주류와 크게 조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령 그의 문학 행위는 우리 문학의 담론적 축을 형성했던 ‘순수/참여’ 범주나, ‘리얼리즘/모더니즘’, ‘전통/실험’등의 주류적 맥락에서 비껴 난 독자적 자리에 놓여 있다. 그만큼 그는 ‘생명’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하여 고유한 음역을 보여 준 시인이었으며 나아가 우리 시사의 주요 흐름이었던 ‘정한情恨’이나 ‘순수 서정’의 범위에서도 한껏 벗어나 있는 이채로운 존재임에 틀림없다.
유성호(한양대 교수)「유치환론」,『근대의 안과 밖』(2008) 서문 가운데
거제 방하리 청마기념관 동상과 시비
◼ 시작 경향
유치환이라는 시인을 논할 때 “생명파”(生命波)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서정주, 오장환, 김동리와 함께 생명에 관한 관심을 시작(詩作)화하며 “인생파”(人生派)라고도 칭해졌던 이 유파는, 1930년대 당시 순수 기교주의적 경향과 그에 반하는 모더니즘 경향이 대립하며 양분화되었던 시단에, 새롭게 등장하였다. 1936년 간행된 시 동인지 《시인부락》과 유치환이 주재한 시동인지 《생리》(1937)에 나타난 생명의식에서 발화된 “생명파”는 인간의 삶과 생명에 대한 열정과 이에 대한 탐구를 강렬한 의조로 시화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에 반하는 허무와 애수 또 이를 극복하려는 이념과 의지들을 작품 속에서 그려내고 있다. 생명파 시인들은 삶 속에서 시적 주제를 찾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그들에게는 천착해야 할 주제였으며, 그들은 인간의 내면과 존재의 이유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들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바탕에는 내향적이던 유치환이 일본에서의 중학교 시절, 요시다 겐지로의 『생명의 미소』를 비롯한 일본 시인들과 니체, 파스칼의 철학을 접하고, 관동대지진을 겪으며 한국으로 돌아오게 도는 과정에서 지니게 된, 생명존중 사상과 허무주의 그리고 아나키즘적 사고가 자리한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 시학
1. 순정과 사랑의 시학
유치환 시편의 속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그가 토박이말을 중심으로 하는 기층 언어보다는 한자어의 미학적 가능성을 최대한 실험한 시인이라는 것이다. 가령 유치환의 시어 가운데에는 한자 사전에도 없는 한자어 조어造語가 매우 빈번하게 나타나며 토박이말로 바꾸었을 때 정서적 이해가 훨씬 용이했을 표현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특히 무거운 주제를 드러낼 때 한자어의 빈도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시의 시편들 가운데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들의 대부분은 이처럼 생경한 한자어의 남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작품들이다.
청마 시의 주요 이미지는 ‘깃발’, ‘바위’ 그리고 ‘바람’이다. 그의 시에서 ‘바람’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바람’은 자신은 보이지 않으면서 사물을 움직이게 하고, 땅에 있는 것을 눕히거나, 공중으로 들어 올린다. 또한 ‘바람’은 물결(그의 시 「그리움」에서의 ‘파도’)과 같이 파동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부드러운 존재이다. 청마 시에서 바람이 흔드는 것은 시인의 마음이며, 불러일으키는 것은 그리움이다. 이러한 ‘바람’을 담은 시들은 청마가 지닌 ‘순정’이 생래적인 그의 욕망이었음을 알게 한다. ‘순정’이 사랑을 만나면 이는 현실의 어떠한 제약에도 굴하지 않는 ‘열애’를 경험하게 한다. 그리고 ‘열애’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순정’은 끝없는 그리움과 애수를 토하게 된다. 사랑에 닿아 있는 마음, 사랑을 부르는 마음은 시인의 혈류 깊은 곳에 뜨겁게 흐르는 ‘순정’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2. 의지와 현실 비판의 시학 (조남현, 김인환 외, 『근대의 안과 밖』, 민음사, 2008, 59면)
청마가 일관되게 탐구했던 것은 ‘존재’ 혹은 ‘생명’에 관한 것이었다. 청마에게 무엇보다 고귀한 것은 ‘생명’이었으며 그의 시의 테마는 ‘생명’의 탐색으로 모아졌다. 하지만 그는 인간에게 삶이 곧 죽음이며, 재앙이나 고통 역시 신의 섭리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분신으로서 인간의 의지에 따라 유전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한다. 그러면 궁극적으로 허무밖에 없는 세계에서 인간이 그 존재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무엇인가 하는 곳에 그의 질문이 머물게 된다. 여기서 그의 시가 탐구한 ‘의지’의 문제가 제기된다. 청마에게 생명이란 ‘의지’에 의해 발현되는데, 인간이 그의 생명을 확장하고 존재의 완전성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이 허무 혹은 영원한 무 앞에서 자신의 ‘의지’를 실현시키는 것밖에 없었던 것이다.
청마에게 세상은 무無이며 신神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이미 정해진 운명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허무와 맞서는 자신의 의지만이 애련의 삶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자신을 인도할 수 있을 뿐이다. 즉 세상은 ‘의지를 의지하는 심각한 고행의 길’이지만, 이 길을 비껴가면 나락만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그래서 청마는 더욱 비장한 목소리로 생명을 열애하기 시작한다.
부산 용두산 공원
그리움
유치환(1908~1967)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드메 꽃같이 숨었느뇨.
그리움 2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그리움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그리움」, 전문
1949년 8월, 『신태양』.
▪ 시 속 화자는 파도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고 물으면서. 무슨 일일까. ‘임은 뭍같이 까딱 않’기에 하는 말이다. 파도가 아무리 거세게 몰아쳐 뭍을 향해도 뭍은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지 않은가. 그것을 그대로 빗대어 피도에게 묻는 것이다. 그것도 ‘어쩌란 말이냐’를 세 번 반복하며 강조하여 묻는데 그만큼 절망감에서 나온 절규로 들린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마지막 행이다.
아무리 거세게 몰아쳐도 임은 뭍처럼 까딱 않으니 나는 어쩌란 말이냐고 묻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실은 ‘날 어쩌란 말이냐’이다. ‘나는’이 아니라 ‘나를’이다. 시 속 화자 자신이 목적어가 된다. 즉 파도에게 ‘나를 어쩌란 말이냐’고 묻는 것이다. 여기서 ‘나’는 무엇일까. 그냥 시 속 화자 자신을 가리키는 1인칭 대명사이겠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나의 마음’ 혹은 ‘나의 상황’ 일 것이다.
임은 향해 파도처럼 아무리 부딪혀도, 아무리 달려들어도, 아무리 사랑을 고백해도 임은 파도에 까딱 않는 뭍처럼 꿈쩍도 않으니 ‘내 마음’을 어쩌란 말이냐, 찢어질 것 같은 내 마음을 어떻게 추스르느냐고 묻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임(뭍)은 일개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시 속 화자가 결코 다가서지 못할 어떤 절대적 존재이며 ‘나’의 상대적 왜소함은 강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