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공파와 호장공계대상공파 의 문제
사단은 모든 정황으로 보았을때 창원의 2003년8월16일 추경각 기공식기공식을 대종회장 황명수 종친 임원진 내빈 등 성대히
식을 거행할때 기세에 눌려 2004년(갑신년)에 완공했을때 황연조씨(黃演祚) 축간사를 써 주셨다. 2002년에 중앙종친회 부회장
황대섭(黃大燮)씨는 창원황씨 연원에 대한 고찰(考察)을 잘 쓰셨다.내용의 결논은 조부(祖父)가 고손(高孫)이 되고 손자(孫子)가
고조부(高祖父)가 되는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확실한 고증이 안된것을 가지고 큰발견을 하는것 처럼 하는것은 조상에 대한
큰 죄를 짖는 것이란점 을 명심하기 바란다.라고 했다.그러나 문제는 우리 대상공파에서 나온다 추경각을 세울때 2004년 창원황씨
갑신보(甲申譜)부록 8위묘제 축문에 顯 始祖考 侍中公, 顯 先祖考 大相公, 顯先祖考 6위 府君之墓 라했다.창원의 시조를 시중공이라 했다. 발행인:黃河亮 편집인:黃相範 또 하나는 창원황씨 가승 (단편)은 2011년에 발행인:黃演祚 편집인:黃泳斗 甲申譜부록
이 같게 편입해 놓았다 .이렇게 꼬이는 사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근거없는 시조을 근거을 제공 해주었다. 시중공은 시조로
대상공은 선조로 해놓았다. 불확실 하다는 근거을 평산 무송유씨 고려 개국공신 유금필(庾黔弼)의 사위로 여러책에 기록했 놓았 는대 유금필의 족보에는 아들만 3형제로 나왔으며 사위(婿)충준은 없는데시중공계은 유금필의 사위라고 기록해 놓았다 .평산무송유씨 대동보를 확인해보면 사위 황충준은 없었다.서울시 중앙도서관에서 평산무송 유씨 대동보를 확인해 보았다.
이것 하나면 거짖으로 편집한것을 알수 있다.2002년에 황대섭씨가 종보에 고찰을 잘 써놓았는다. 2004년 창원황씨 족보 부록과 창원황씨 가승에서도 시중공이 창원황씨 시조로 기재해 뒤집어 놓았다.창원황씨 시조로 인정해 주었다.
불확실한 고증으로 시중공과 호장공계 대상공파은 불편할것 없이 역사적 판단을 해서 한가족의 상대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시중공에서 하허하기가 십지않을 것이다.황철현씨가 만든 창원황씨 이야기책 일질과 황원황씨 유적지책 일질에도 그렇게 기록해 놓았다. 문제의 본질을 인정해야하는 대상공파의 하나의 문제는 대상공 24개 지파가 화합과 단합이다.상선약수(上善若水)란 말이 이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맑다는 뜻으로 윗종친들은 그러지 못한것이 모든 실적으로 보인다.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느냐 하는것을
생각하면 밤잡을 이룰수 없을 것이다.미약하나 나중은 성대하리란 명언을 믿어 본다.대상공24개 지파을 잘추스러 화합하고 단합해야 한다.옛날에는 전처자손과 후처자손을 칭을 두어서 후실자손은 처마밑에서 제례하고 본처소실는 대청에서 제사을 올리는 상후 하박의 불신을 만든 옛날 예기 있다. 지금은 다 같은 자손으로 그런 일이 없고 현세대는 화합해서 화목하고 단합해야만 서로 협력하고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을수있는 삶의 길이 있다..황영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