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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v.daum.net/v/20250704181906180
일본 기상청은 대중들 사이에서 퍼지는 대지진 설은 낭설이라고 일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례 없이 잦은 빈도로 일어나는 도카라 열도의 지진으로 대지진에 대한 두려움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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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들의 예언과 종말론의 실체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기상이변과 지진, 해일 등의 각종 천재지변이 자주 일어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종말론이나 인류의 미래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재난은 왜 생기는 것이며 인류는 과연 안전하게 살 수 있을까?
붓다는 《 장아함경 대본경 》 에서 우주의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순환이치에 대해 설명하면서 <괴>의 시기에는 "사람들의 惡業이 점점 성하면, 산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며, 강과 바다가 마르고, 별이 떨어지며, 해와 달도 빛을 잃고, 불과 바람이 일어나 모든 것을 태워 마침내 세계 전체가 파괴(壞)된다."고 하였다.「人民惡業漸熾,則山崩地陷,江河涸竭,星辰隕落,日月無光,火風齊起,焚燒一切,乃至世界俱壞。」
즉, 세상의 재난은 자연재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중생들의 도덕적 타락과 악행에 따른 결과라고 강조한다.
인간 세상이 파괴되는 시기에는 도둑질, 음행, 살생, 거짓말 등의 악업이 만연하고, 대규모의 전쟁, 기근, 질병이 발생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함께 지은 악업(공업)의 결과로 집단적인 고통이 생기는 것이기에 모든 악행을 금하고 선행을 권했다.
마찬가지로 마태복음 24 : 1 ~ 30의 기록을 보면 말세의 징조에 대해 예수는 다음과 같이 당부하는 구절이 있다.
"예수께서 감람산(橄欖山)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묻기를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主)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迷惑)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不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늘나라의 복음(우주의 진리)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創世)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 날들을 감(減)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減)하시리라.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인자가 생각하지 않은 때에 오리라.” (마 24:42, 44)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때도 그러하리라…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하다가,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느니라.” (눅 17:26–27)
위 구절을 요약해보면 우주의 진리가 세계 각지에 전파되고 나서야 큰 환란이 오는데, 그 환란을 감하지 않으면 모든 중생이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택하신 자들을 구하기 위하여 환란의 정도를 감하여 종말은 면한다. 말세에는 성인을 자칭하는 거짓 선지자가 많이 나타나므로 함부로 믿지 말라. 말세에 인자(메시아)가 출현하니 깨어있으라. 핵심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인용하는 것은 바로 노스트라다무스나 마야문명의 예언들이다. 노스트라무스의 예언은 시의 형태로 씌어진 것인데, <고도 벤>이라는 일본인이 <제세기> 시편을 해석하다가 "99년 7월에 하늘에서 공포의 대왕이 내려와 앙골모아 대왕을 부활시킨다" 라는 부분에서 해석을 못하고 막혀버렸다. 이 구절 어느 부분에도 지구가 멸망한다는 언급이 없는데도, 대순000 같은 일부 사교단체들은 이 구절이 바로 99년 7월에 지구가 멸망한다는 예언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시를 끝까지 해석했는데, 그 시들 중에는 핵폭팔에 의한 제3차 세계대전을 묘사한 글도 있는데, 주목할 것은 '어떤 일이 일어나면 자신의 예언이 거기서 끝난다' 라고 언급한 부분이 있다. 즉, 미래의 사건들은 가변적이라는 것이다.
왜 가변적일까?
한 사람의 운명은 생각과 말과 행위의 선악을 통해 길흉화복이 정해지기 때문에, 인생에 닥치는 행복과 불행의 사건들은 우연이 아니라 인과의 법칙에 따라 그 자신의 마음이 창조해낸 결과물이다. 그래서 正法에 따라 탐욕과 분노심을 내려놓고, 건강하고 착한 사람으로 거듭나면 그의 운명은 변하기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깨달은 성자들은 제자들에게 사주팔자나 관상, 풍수 등을 보라고 하지 않는다.
개인에게 닥치는 질병이나 불행한 사건과 마찬가지로 지구상의 재난은 우연하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 70억 인류의 부정적인 마음과 기운들이 모여서 창조해낸 결과물이다. 지구의 운명도 개인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집단의식의 변화에 따라 미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집단의식이 선하게 변하면 어떤 시기에 발생할 재난의 강도가 대폭 줄어들거나 혹은 뒤로 늦춰지거나 혹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 노스트라다무스가 언급한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것은 과거 성자들의 계시에 따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 바로 우주의 진리를 깨달은 眞人(大覺者)이 출현하여 진리가 세상에 널리 전해지고,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참답게 수행하여 본래 성품인 사랑과 자비심을 회복하여 좋은 사람으로 변하는 경우를 말할 것이다.
《디가니카야 차카바티 시하나다경 》과 《미륵하생경 》 기록에 의하면 붓다는 일부 제자들에게 "佛法이 쇠퇴하고 사회가 타락에 빠질 때 미륵불이 다시 등장하여 법(道)을 펼칠 것이니, 그 때를 기다리라" 하였다. 즉, 석가모니 불교가 쇠퇴하는 말법시기에 미륵부처의 출현으로 새로운 佛法이 전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인자가 출현한다는 예수의 계시와 일치한다.
노스트라다무스나 여러 예언가들이 언급한 3차 대전이나 여러 재난들에 대한 예언이 1990년대 후반부터 잘 맞지 않는 이유는, 첫째는 그 예언 자체가 부정확한 정보일 수도 있을 것이며, 둘째는 바로 노스트라다무스가 어떤 일이 생기면 자신의 예언이 끝나버린다고 언급한 것 처럼, 현재 대각자가 우주의 진리를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60년대 말 시중에 국선도 단전행공을 처음 전한 청산선사는 '나는 道의 씨앗을 뿌리러 온 사람이고, 거둘 사람이 따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거둘 사람이 나타나면 당신처럼 도를 닦기 위해 속세를 등지고 산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고, 세속에서 수련해도 과거 산중의 수련보다 빠르게 성취된다 하였으며, 난세의 피난처는 바로 마음을 닦는 道場이라며 心田善化(마음을 선하게 변화시키는 것)를 강조했다.
격암유록에서도 진인의 출세와 사람들의 수행여하에 따라 말세에 닥칠 전염병에서 살아남는 사람의 수가 千祖一孫이 될 수도 있고, 一祖十孫으로 될 수도 있다고 하였으며, 피난처는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진리 아래 머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군계일학(群鷄一鶴) 즉, 가짜 구세주들의 무리 속에 한 명의 眞人이 숨어있는데, 진인은 시비구설에 휘말리게 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도 이미 알고 있는 바, 예수와 석가모니불이 진리를 전할 당시에 기존 종교였던 유대교나 바라문교가 자기들 종교의 교리를 고수하며, 예수와 부처님이 진리를 전하는 것을 교란시키고 핍박했던 것처럼, 그와 비슷한 일들이 마찬가지로 발생할 것이기에, 진인은 당연히 시시비비에 휘말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기존의 종교가 변질되어 사람이 깨달음을 얻어 해탈시킬 수 없게 된 작금의 말법시대야말로 온갖 가짜 구세주와 재림예수, 수련으로 돈벌이에 치중하는 사이비 기수련과 사이비종교, 난잡한 수련단체들이 판을 치고 있는데, 그 속에 군계일학처럼 숨어있는 진인(대각자)는 과연 누구이며 우리는 어떻게 분별해야 할까?
진인은 반드시 2가지를 겸비해야만 한다. 하나는 마음의 해탈(청정심)이고, 다른 하나는 지혜의 해탈(깨달음, 開悟)이다.
마음의 해탈이란 탐욕과 분노로 인한 일체의 번뇌가 소진되어 청정심을 회복한 상태를 말한다. 지혜의 해탈이란 業에 의해 봉폐되었던 지혜가 다 열려서 우주 각 공간의 실상과 생명의 존재방식을 보고, 우주의 진리를 원만하게 아는 것이다.
한편 깨달음의 경지는 층차가 있기에 깨달은 성자들마다 지혜와 법력은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자면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지식이 다르고, 같은 대학생이라도 지식과 능력은 서로 다른 것과 같다. 1.0의 시각을 가진 사람은 그 만큼만 보고, 2.0의 시각을 가진 사람은 더 멀리 더 미세하게 볼 수 있듯이 우주의 실상도 자기가 깨달은 경지까지만 볼 수 있고, 깨달은 층차가 높을수록 법력도 높다고 한다.
그래서 깨달은 경지가 높은 대각자라면 마땅히 사람들의 심성이 선을 향하도록 이끄는 자비심뿐만 아니라, 우주의 元力 즉 창조력도 겸비해서 물질을 개변시키고 순수한 상태로 회복시키는 법력도 있어야 할 것이다.
붓다께서 재세시에 인도 마가다국의 왕사성에서 심각한 역병(전염병)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부처님은 이 상황을 보고 “이것은 사람들의 탐·진·치 삼독(三毒)으로 인해 쌓인 共業의 과보”라고 말씀하셨다. 다만, 선업을 쌓은 자는 고통 속에서도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음을 설했다.
이는 자연재해나 전염병도 자연현상이 아닌 공동체의 집단 업력에 따른 결과임을 말한다.
1992년부터 성명쌍수의 佛法(法輪大法)으로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제도하고 있는 李洪志 선생께서는 90년대 초반부터 여러 나라의 설법에서 지구의 종말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전염병으로 나쁜 사람들이 도태될 거라고 강조하신 바 있으니, 참고하시어 좋은 사람으로 거듭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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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또 한 가지 문제가 생각나는데 일부 사람은 늘 일을 그리 열심히 하지 않는다. 사회적인 일은 무엇에나 다 무관심하고, 이 겁난(劫難)이 오기만 기다리는 것 같다. 어떤 사람은 또 나에게 묻는다. 이 겁난은 언제부터 시작하는가?
내가 학습반을 열 때 이 문제를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무슨 겁난인가? 하고 물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 겁난은 누구를 향해 오는 것인가? 좋은 사람은 겁난 속에 있지 않다. 정말로 겁난이 있더라도 좋은 사람은 모두 남겨야 하고, 나쁜 사람을 도태시킬 뿐이다. 그런데 당신은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제고하고 있는데 그런 것을 상관해선 뭘 하겠는가. 그것이 어떤 난(難)이든 당신과는 상관이 없다. 만약 정말로 겁난이 있다면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명확하게 알려 줄 수 있다. 이 겁난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예전에 사람들이 말한 무슨 지구 폭발이며, 무슨 위성 충돌이며, 무슨 홍수가 난다고 하는 이런 난을 여러분은 알고 있는데, 예전에 정한 하나하나 잇따른 난, 부동한 층차에서 정한 난은 모두 지나갔다.
혜성은 목성에 부딪쳤고 지구에 부딪치지 않았다. 그 물(水)은 이미 지나갔다. 작년의 그 물은 굉장히 큰 것으로 세계적이었지만, 이미 아주 작아졌고 그 정도로 작아진 것마저 지나가 버렸다. 많은 일이 모두 지나간 것으로 이제 이러한 난은 존재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이라면, 우리도 무슨 숨길 것이 없는바, 유일하게 존재하는 것이라면, 장래에 많은 사람들이 도태되는 일일 것이다. 아주 좋지 못한 그런 사람들은 일종의 강력한 질병 중에서 도태될 것이다. 이것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한다. 일부 사람은 늘 이런 일을 담론하는데 당신은 그러한 일을 상관하지 말라. 이런 재난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수련하고 어떻게 자신을 제고할 것인가 하는 이것이 관건 문제이다. (출처 : 북경 설법 (1994. 12. 17))
여러분 알다시피 역사적으로 아주 많은 예언가, 아주 많은 기공사, 아주 많은 종교 중에서 개오한 사람들이 인류사회 금세기 말에 나타날 이런저런 재난에 대해 아주 많이 말했으며, 심지어 인류는 곧 훼멸 될 그런 상태에 처할 것이라고 했다. 물론 이것은 내가 한 말이 아니고 그 예언가들이 한 말이다.
발생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 나는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답해 줄 수 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내가 『전법륜』에서 말한 그 예와 마찬가지다. 썩은 사과 한 알, 지구는 이 방대한 우주 중에서 마치 우리가 보는 사과 한 알과 같은데, 그것은 이미 썩을 대로 썩었다. 사과 안의 매 분자는 마치 매 사람과도 같이 모두 이미 썩었다. 그렇다면 이 사과 그것을 없애 버리고, 던져 버리고, 처리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인류사회, 그것의 도덕이 모두 그런 정도로 저하(低下)되었다면 신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마치 그 썩은 사과와 같아 그것을 없애 버리지 않겠는가? 그러나 신으로서는, 우리 여러분이 알다시피 특히 인류와 근접해 있는 이 한 층의 신, 그들은 사람에 대해 모두 慈悲(츠뻬이)한지라, 그들은 곧 사람을 구해내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이 썩은 사과 그것을 구해내려 하며, 당신이 이 썩은 사과를 버리려 하지 않고 방 안에 놓아두지만, 그것은 갈수록 더욱 썩어 구더기가 득실거린다. 당신이 그 깨끗한 방 안에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사과 한 알을 놓았는데, 당신은 왜 그곳에 놓으려고 하는가? 기어코 그곳에 놓으려고 한다면 당신은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우주도 마찬가지로, 이 지구가 이미 이런 모습으로 변했는데 그래도 그것을 훼멸시키지 말아야 하는가?! 어느 신이 그것을 훼멸하지 않는다면 그 신은 곧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신과 사람은 같지 않다. 그는 이 사과를 그의 가장 원시적인 입자에서부터 신선한 것으로 개변시켜 다시 신선한 사과로 만들 능력이 있다. 그의 구조를 개변시킨다면 그것은 좋은 사과로 변한다. 그럼 누가 그것을 버린다면 누가 곧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는 일반적인 신이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 1억 명의 사람이 수련하고 있고 자신의 사상을 개변하고 있으며, 좋은 사람이 되고 착해지고 있으며, 진정하게 우주의 부동한 층차 표준에 부합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지구, 그것을 폭발시킬 수 있겠는가? 훼멸시킬 수 있겠는가? 그 예언가가 말한 그러한 예언이 실현되겠는가? 그것은 실현될 수 없다.
내가 말하건대 그 어떤 예언은,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의 예언이 더는 영험하지 않다. 왜냐하면, 인류사회에는 오늘날 대법이 전해졌으며 인심(人心)은 되돌아 올라가고 급속하게 되돌아 올라가기 때문이다. 어제 한 기자가 와서 나에게 물었다. 현재 1억의 사람들이 배우고 있고 게다가 이러한 추세는 아주 빠르게 확대되고 있으며 또한 더욱 많은 사람이 배우려 한다고 했다.
지금 1억이 되는 사람들이 자신의 도덕을 승화시키고 있는데, 이 1억의 사람들 매 사람이 또 다른 한 사람에게 와서 배우도록 알려준다면 곧 2억이 될 것이다. 그 숫자는 순식간에 배로 늘어날 것이며, 대단히 크다. 사람마다 모두 착해지고 좋은 사람이 되며 자신의 도덕 표준을 제고한다면 인류사회를, 내가 든 그 예와 같이, 이 사과가 신선한 것으로 변했는데, 그 누가 그것을 없애 버릴 수 있겠는가?
인류사회의 발전, 우주 중의 일체 상태는 모두 신이 안배한 것이고 모두 법칙이 있다. 왜냐하면, 인류사회에서 나타나는 좋지 못한 상태는, 전쟁이나, 지진ㆍ홍수ㆍ유행병ㆍ전염병 등등과 기타 많고도 많은 자연재해를 포함하여, 사실 모두 목적이 있는 것으로 사람의 업을 제거해 주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상은 신에 의해 지휘를 받는다. 사람은 여태껏 자신의 사상의 내원(來源)을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은 어떻게 하고자 생각하여 그의 사상이 움직이기만 하면, 그의 이른바 영감(靈感)이 나올 때, 그는 갑작스레 그 무엇이 생각난다. 사람은 모두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하지만, 사실 아주 많은 것이 그렇지 않다. 신은 인류사회의 일체를 단단히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한 가지가 있다.
이 우주에는 이런 이치가 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무엇을 하려고 생각하는데, 사람이 한 개체로서 그가 무엇을 하려고 생각하면 역시 사람의 이 사상을 보아야 한다. 그가 수련하려고 생각하면, “좋다, 내가 당신의 수련을 돕겠다.”라고 하고, 사람이 좋아지려고 하지 않으면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라고 한다. 그리하여 사람은 곧 몹시 나쁘게 변한다. 그러나 인류사회 전체를 신이 통제한다. 그래서 사람이 좋아진다면 그는 곧 좋은 미래가 있고 밝은 앞날이 있을 것이다. 좋지 않다면 그에게 좋지 않은 미래가 있으며 암흑과 악업(惡業)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방금 나는 여러분의 수련을 말했다. 이 법을 말함에 한 단락을 끌어내어 말했다. 목적은 여러분에게 그를 소중히 여기라고 알려주려는 것이다. 오늘 1억의 사람이 배우고 있고 당신들은 이미 역사를 개변시켰다. 이는 기쁘지 않은가? 이는 위대하지 않은가? (박수) 그러나 아직도 아주 많은 좋지 못한 사람들이 있고 아직도 나쁜 짓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류는 비록 예언가들이 말한 그렇게 큰 재난이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국부적인 지역은 여전히 몹시 좋지 않은 일들이 나타나게 된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출처 : 미국동부법회설법 李 洪 志 (1999년 3월 27~28일, 뉴욕에서))
인류의 타락과 각자(覺者)의 출현
인류의 타락은 예수교가 말하는 하와(夏娃) 그때부터 시작한 것만이 아니다. 이 지구는 문명과 원시(原始)의 시대가 한 차례뿐만이 아니었고, 사전(史前)의 문명 그것 역시 훼멸되었다. 때때로 지구는 철저히 훼멸되거나 혹은 새롭게 바뀌어 완전히 새로운 지구로 만들어졌다. 인류는 겁난(劫難)을 말하지 않는가? 사실 종교에서 하는 말이다. 매번 어느 시기에 이르면 한 차례 큰 겁난이 일어나고, 매번 어느 시기에 이르면 한 차례 작은 겁난이 일어난다.
작은 겁난에서는 어느 일정 지역의 인류가 훼멸되는데, 어느 일정 지역이 몹시 나쁘게 변하면 바로 그것을 없애버린다. 지진이 일어나거나, 대륙판이 가라앉거나, 모래폭풍으로 덮어버리거나, 혹은 무슨 전염병이 돌고, 전쟁이 일어나는 것인데, 작은 겁난은 국지적이다. 큰 겁난, 그것은 거의 전 인류적인 겁난이다. 이런 큰 겁난은 오래고 먼 연대를 거쳐서야 비로소 한 차례 일어난다. 이 지구의 운행과 물질의 운동 역시 마찬가지로 그것도 법칙이 있다.
운행과정 중에 일어나는 큰 겁난은 인류가 완전히 훼멸 상태에 처함을 말한다. 하지만 소수 사람이 살아남아 일부 사전문화를 계승하여, 마치 석기(石器)시대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노동도구가 모두 없어졌기 때문에 다음 한 세대에는 더욱 나빠지며 많은 것들이 모두 실전된다. 다시 원시상태에서 번성해나가 문명과 과학기술이 나타난다. 인류의 부패에 따라 또 겁난이 나타난다. 이와 같이 성(成)·주(住)·괴(壞)의 주기적 변화가 시기를 달리하여 일어난다.
다시 말해 인류는 예외 없이 패괴(敗壞)되게 마련인데, 매 시기 문명이 나타날 때마다, 늘 천신(天神)은 일부 대각자를 속인사회에 파견하여 사람을 제도한다. 목적은 바로 지구에서 사람의 사상과 물질의 패괴가 비례하지 않게 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이 우주 중에서 지구를 구성하는 일체 물질은 모두 일종의 특성이 존재한다. 이런 특성이 있어야만 비로소 원시적이고 무형적인 것을 유형적인 물질, 생명이 있는 물질로 이뤄낼 수 있다. 그러나 물질이 아직 패괴되기 전에 만약 인류의 사상이 패괴된다면, 이것은 허용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매번 인류의 문명이 출현하고 인류의 문화가 출현할 때면 대각자가 나타나는데 각기의 史前 시기마다 대각자가 나타났다.
이번 차례 문명에 예수, 석가모니, 노자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알려준 것과 같다. 매 시기 문명이 출현한 지역은 각기 다른 각자가 책임을 지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본귀진(返本歸真)하는지를 가르쳐, 도(道)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원만케 하고, 속인에게는 德을 중히 여기게 하여, 인류의 도덕이 상대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게 하고 사람의 사상이 쉽게 패괴되지 않도록 한다.
궁극적으로 전반 우주물질이 모두 패괴될 때 그때는 더는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오래고 긴 과정이다. 이 시기에 이런 각자가 하는 일은 인류가 패괴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 수련하여 올라갈 수 있는 사람에게는 확실하게 수련하여 도(道)를 얻을 수 있게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다윈이 말한 것처럼 원숭이에서 진화되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류 스스로 자신을 짓밟는 것이다.
사람은 모두 우주의 각개 공간에서부터 떨어져 내려왔다. 그가 그 한 층 우주 법(法)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을 때 그는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우리가 말한 것처럼 속인의 마음(凡心)이 중(重)할수록 더욱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줄곧 속인 이런 상태까지 떨어져 왔다. 고급 생명이 볼 때 사람의 생명은 당신에게 지구에서 사람이 되라는 것만이 아니며 당신으로 하여금 지구에서, 미혹된 이런 환경 중에서 하루빨리 깨닫고 되돌아가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의 참뜻으로 당신에게 하나의 문을 열어주었다.
되돌아가지 못하면 업이 커져서 훼멸될 때까지 계속 윤회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구에는 곧 여러 차례의 겁난이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지구는 바로 우주의 쓰레기장이다. 끝없이 방대한 우주에는 무수한 성계(星系)와 무수한 별(星球)이 있으며 별마다 모두 생명체가 있다. 사람은 다른 공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그 생명의 존재를 볼 수 없다. 그 생명체는 동일한 별(星球)의 다른 공간에 있으며 우리 이 공간에 있지 않기 때문에 속인은 그를 볼 수 없다.
인류는 이 공간의 화성(火星)이 아주 뜨겁다고 말하지만, 그 공간을 돌파하기만 하면 그쪽은 도리어 찬 것이다. 많은 사람이 특이공능으로 태양을 보는데, 보면 볼수록 뜨겁지 않고 더 보면 검은 것이며, 또 더 보면 서늘한 세계이다. 그 생명체가 이 물질공간에서는 이렇게 반영되지만 다른 물질공간에서는 다른 모양으로 존재한다. 그러므로 도처에 다 생명이 존재하며 사람이 존재한다.
그 층차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으면 조금씩 아래로 떨어지는데 마치 학교를 다니면서 낙제하는 것과 같이 곧 속인 중으로 떨어져 내려온다. 우주 중에서 좋지 못한 사람은 아래로 떨어지는데 우주의 가장 중심인 ― 지구로 떨어져 내려오게 된다.
사람은 속인사회 중에서 윤회하는데 윤회는 꼭 사람으로 되는 것만이 아니다. 그는 많고도 많은 물질, 많고도 많은 식물, 많고도 많은 동물 심지어 미생물로까지 전생(轉生)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윤회 중에서 모두 자신이 한 모든 좋지 못한 일 ― 업력(業力)이 따라다니게 된다. 생명이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德과 업력으로서 영원히 몸에 지니게 된다. 만일 업력이 커서 나무로 전생되면 나무에도 업력이 있게 된다. 동물로 전생되면 동물도 업력이 있게 된다. 지구상의 벽돌, 흙, 돌, 동물, 식물은 모두 업력이 있다.
현재의 말겁시기 사람에게는 먹는 약이나 주사약이 이전과 같은 효과가 없는데,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현대인들은 지은 업이 너무나 많고, 강대하여 원래의 약 효과가 하나도 없고, 그 병을 전혀 없애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센 약을 대량으로 쓰게 되면 사람은 중독된다. 지금 많은 병은 아예 치료하지도 못한다. 지구 전반이 다 이러한데 사실 모든 것이 아주 심하게 패괴되었다.
예수는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죄를 감당할 수 있었고, 석가모니부처는 사람을 제도하느라 49년간 온갖 고생을 겪었다. 그들은 중생을 널리 제도함을 말하지 않았는가? 그럼 무엇 때문에 그들은 사람을 모두 위로 데려가지 않았는가?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 한 층의 표준에 부합되지 않아서 올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층이든지 어느 한 층의 표준이 있다. 당신이 대학생이 될 자격이 없는데 당신이 대학에 다닐 수 있겠는가? 당신은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고 신체가 너무 무거워 올라가지 못한다. 당신의 도덕표준이 어느 위치에 있다면 당신은 바로 그 위치에 있게 된다. 유일한 방법은, 마치 학교에 다니는 것과도 같이,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올라가고, 남아 있는 것은 갈수록 더 패괴하니 그들은 곧 그를 훼멸(銷毁)해 버리는 것이다. 쓰레기가 이미 썩었는지라, 우주를 오염시킬 수 없기에 훼멸할 수밖에 없다.
중생을 널리 제도한다는 그것은 부처가 한 말이다. 다시 말해 여래 그 층차 중에서는 중생을 널리 제도함을 주장하지만, 여래를 배로 초과한 그처럼 큰 부처는 속인 중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 더 상관하면 한마디 말에도 속인 중에서는 곧 변화가 생기므로, 더 관여할 수 없다. 그의 역량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더 크다면 지구는 부처의 발가락 하나도 놓을 수 없고, 또 더 크다면 지구는 부처의 솜털 하나도 놓을 수 없다.
부처의 말은 곧 법(法)이다. 말하면 곧 변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구의 일을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 단지 여래가 중생을 널리 제도하고 보살이 중생을 널리 제도함을 말할 따름이다. 여래불(如來佛)은 사람을 속인이라고 하지만, 더욱 높은 신(神)이 아주 높은 층차에 도달하여 되돌아보면 여래 역시 속인이다. 그렇게 높은 신(神)이 사람을 보면 미생물보다도 못하다. 척 보니 이처럼 썩은 곳이니 없애버리자! 훼멸해 버리자!! 지구는 바로 이러한 곳이다.
사람에 대하여 불쌍하다고 말하는 그것은 사람에 가장 근접한 이 한 층의 부처가 말한 것이다. 예수 역시 여래 이 층차이며 노자 역시 마찬가지다. 더욱 높으면 사람 중의 일을 상관하지 않는다. 사람이 그를 불러도 듣지 못한다. 사람이 그의 이름을 불러도 다 그를 욕하는 것으로 되는데 마치 대변 속에서 나오는 소리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같다.
(출처 ㅡ 李洪志 사부님 저서 전법륜2 ) https://www.dafamedia.or.kr/book/HTML/zfl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