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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는 이국적인 나무다.
그 나무를 보면 웬지 핀라드와 스웨덴 같은 북유럽이나 러시아의 겨울이 연상된다.
백야처럼 뽀얀속살이 겉으로 드러난 느낌때문일까.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는 아니다.
은빛으로 밝게 빛나는 자작나무숲은 금방 눈에 띤다.
북위 45도 이상에서만 자란다는 말이 있지만 꼭 그런것은 아니다.
지난 가을 단풍이 한창 화려한 때깔을 드러낼때 지리산 피아골 트레킹에 나섰다.
세차게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좁은 계곡 바위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계곡넘어 좌측 산기슭에
자작나무숲이 마치 하트모양으로 둥그렇게 모여있는 모습에 눈에 띄었다.
흔치않은 광경이었다.
그래도 자작나무를 제대로 보려면 강원도 인제 원대리로 가야 한다.
숲속에 눈이 쌓여 있는 겨울이면 더 좋다.
원대리 자작나무숲을 보려면 원대리 산림감시초소 주차장에서 내려 임도로 한참 올라가야 한다.
완만하고 부드러운 길이라 힘들지도 않다.
처음가는 사람은 잘못 온게 아닌지 헷갈릴 수가 있다.
자작나무숲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산허리를 몇구비 돌아 3.5km 지점에 다달으면 어느새 서쪽 방향의 구릉지에
자작나무숲이 어느새 눈앞에 펼쳐진다. 전혀 딴세상 같다.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바람이 불면 자작자작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자작나무숲은 바라만 봐도 눈이 즐겁다.
20m이상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은 미끈한 몸매. 그리고 곱고 하얀 피부.
그 나무가 군집을 이루고 있으니 풍경은 말할것이 없다. 괜히 '숲의 귀족' , '나무의 여왕'이 아니다.
그 전날 충청이남지방에는 눈이 엄청나게 왔지만 강원도에는 거의 오지 않았다.
하지만 자작나무 숲에는 유독 눈이 쌓여있었다. 양지가 아닌 음지에 숲이 있기 때문이다.
마침 성탄절이 멀지 않아서 그런지 루돌프사슴이 끄는 마차를 탄
산타크로스가 튀어나올것 같은 분위기다.
숲은 넓지도, 깊지도 않다. 조림했기 때문이다.
1990년 초반부터 조림되기 시작했으니 이제 수령이 갓 스물을 넘겼다.
산속에 움푹 들어 앉아 한참동안 외지사람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등산코스도 아니고 트레킹 코스로도 미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3~4년전부터 미디어에 소개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숲에 들어서면 자작나무 코스(0.9km), 치유 코스(1.5km), 탐험 코스(1.1km)등 세 개의 산책코스가 있다.
코스이름엔 큰 의미가 없다. 너무 짧기 때문이다.
왜 굳이 이름을 붙여 구분지었을까 의문스럽다.
코스에 구애받지 말고 그냥 자작나무숲을 헤메다보면 영화속 '겨울왕국'처럼 동심으로 돌아간듯 하다.
그 길을 걸으면 일상의 스트레스도 훌훌 사라지는것 같다.
시각적으로 은빛 피부를 가진 키큰 나무가 파란 하늘아래 빽빽히 서있는 풍경이 보여주는 이미지 때문이다.
자연스레 스마트폰에 손이 가는것은 이때문이다. 어떤 각도로 찍어도 작품사진이 나온다.
자작나무 숲을 벗어나면 바로 임도가 나온다. 가는길이 아쉬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산림초소에서 자작나무 숲까지 왕복 8km.
길지않지만 자작나무 숲에 얼마나 머무느냐에 따라 소요시간은 길어질 수 있다.
'당신을 기다립니다'는 자작나무의 상징어다.
눈이 오는 어느 겨울날, 자작나무숲길을 찾으면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할것 같다.
첫댓글 멋진곳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