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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코패스를 피해가는 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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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주민들은 게으르며, 속임수와 갈취의 명수”라고 얘기했던 케빈 메어 미 국무부 일본 부장이 경질당했다. 메어 부장은 지난해 12월3일 미국 아메리칸대 학생 14명을 상대로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이전과 관련한 비공개 강연을 하면서 그런 말을 했다. 비공개 강연이었으니 마음놓고 얘기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게 그의 본심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강연 기록이 밖으로 새어나갔고 일본까지 흘러가 소동이 난 모양이다. 메어 부장이란 자가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오키나와 총영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걸과 봐서 그의 발언을 의도하지 않은 우발적인 것, 실수 따위로 얼버무리기도 어려울 것 같다. 그의 그 말은 평소 오키나와 사람들에 대한 그의 신조, 그 자신의 평가(편견)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그야말로 속내다.
국무부는 그 발언의 정치적 파장을 겁내 허겁지겁 메어의 목을 자르는 걸로 수습하려 했지만, 실은 메어의 얘기는 곧 그를 둘러싼 조직 즉 국무부 주류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메어의 그런 생각은 평소 그들끼리 끊임없이 떠들어대던 농담과 진담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한국인은 들쥐와 같아서, 누가 지도자가 되든지 따르기만 할 뿐이다. 민주주의는 한국인에게 적절한 시스템이 아니다.” 1980년 광주항쟁 진압군을 두둔했던 주한 미군 사령관 존 위컴이 한 말이다. 메어 발언의 복사판이다. 물론 위컴이 그 말 했다고 목이 날아간 건 아니다. 미군 장성 위컴의 목줄이 일개 국무부 부장급 메어의 그것보다 더 질겨서였는지, 아니면 한국이란 나라가 일본이란 나라 변방의 일개 현보다 더 헐값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아마 주한 미국문화원 점거사건 등과도 무관하지 않을 텐데,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주한 미국 고위 외교관(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이 한국 대학생들을 ‘버릇없는 놈들’이라고 욕한 적도 있다. 백인과 그들의 부와 문화를 선망하며 아부하고 고분고분하는 것 같던 한국의 ‘아이들’이 어느날부턴가 갑자기 자신들을 쌀쌀하게 대하면서 비난까지 하고 나섰을 때 그들이 느꼈을 당혹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그들 눈에 여전히 굽실거리는 기성세대들과 달리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미국에 대들며 나가라고 고함치는 대학생들이 요즘 말로 얼마나 ‘싸가지 없고’ 위험천만한 존재들로 비쳤겠는가. 주한 미국 관리들의 그런 푸념과 욕과 경멸은 곧 자기존재에 대한 위기감, 정체성의 혼란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미국인들에겐 너무나도 편안하고 익숙했던 과거와 갑자기 결별을 선언해버린 한국의 아이들.
오키나와 후텐마에는 미 해병대 기지가 있다. 이젠 다들 알고 있겠지만, 오키나와는 일본 영토의 0.6%밖에 안 되는 면적인데 주일 미군기지의 75%가 몰려 있다. 2차대전 뒤 패전한 일본 지배세력이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7년에 걸친 미 군정체제를 마무리할 때 일본 보수세력들이 미일 안보조약을 동시에 체결해 안보를 미국에 내맡기는 대신 일본영토를 미군 기지로 내주고 천황제와 일본 보수정치의 안전을 보장받았을 때, 그들은 오키나와를 제물로 삼았다. 오키나와는 본래 독립 ‘류큐왕국’으로 중국, 조선, 일본 등과 교역하며 나름 잘 살아가던 나라였으나 근대에 들어와 중국 조선이 쇠퇴하고 일본이 발흥하면서 일본에 복속당하는 전형적인 제국주의 식민지배 패턴을 밟게 된다. 류큐가 오키나와로 일본에 복속된 것은 19세기 말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이다. 일본 보수우파들은 자신들의 체제 보장 대가로 미국에 기지를 제공하면서 그 짐을 거의 몽땅 오키나와에 지워버린 것이다. 오키나와는 지금도 일본에서 가장 낙후되고 경제적으로 못사는 지역이다. 제주도보다 훨씬 작은 오키나와 섬 20% 이상을 미군기지가 뒤덮고 있다. 후텐마기지도 그 중의 하나다.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제주도가 경제적으로 득을 볼 것이라는 선전에 현혹당해서는 안 된다.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오키나와의 현실은 잘 보여준다.
1995년에 미 해병대 병사들이 오키나와 현지 여중학생을 집단 성폭행한 사건이 일어났고 오키나와 주민들이 들고 일어섰다. 주민들은 미군에 사과하고 보상과 재발방지를 요구했고 기지 철수도 요구했다. 누가 말했듯이 그런 사건이 그때 어쩌다 일어난 건 아니며, 그런 일은 미군기지가 있는 한 오히려 일상적인 일이었다. 다만, 세속적 계산에 찌들지 않은 어린 여학생이었기에 그 사실을 공표하고 항의할 수 있었을 뿐이며, 그와 유사한 성폭행 사건은 오히려 미군기지 주변에는 늘 일어나는 일상사였고 나이든 피해자들은 돈벌이를 위해 생존을 위해 또는 주변의 눈이 무서워 입을 닫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게 보는 게 상식적이지 않을까. 오키나와인들 중에 실제로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키나와 주민들의 반기지 운동, 미군기지 철수 운동은 그때부터 본격화했다. 오키나와의 느적된 불만과 반기지 정서가 그 사건을 계기로 불타올랐다.
후텐마기지는 기노완이라는 도시 한복판에 큰 비행장을 지닌 해병대 항공기지다. 활주로가 도시 중앙을 차지하고 때로 인근에 추락사고까지 일어나는 아주 기형적인 기지요 도시다. 주민들이 도시의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고 지독한 소음을 내뿜고 있는 기지의 철수를 요구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미군기지가 지역경제에 뿌리는 돈, 그리고 본토가 아닌 오키나와에 미군기지를 붙잡아두려는 일본 중앙정부의 무마책으로 그 지역에 뿌려지는 각종 정책예산들로 오키나와가 얻는 경제적 혜택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로 인해 오키나와가 잃는 것에 눈을 감아서도 안 된다. 길게 보면 잃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세월이 갈수록 오키나와 현지주민들이 바로 그 플러스 마이너스 계산에서 미군기지 때문에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다고 여기는 경향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다는 게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후텐마 미군기지 철수운동은 그렇게 해서 불타올랐고, 그 기세가 일정 선을 넘자 당시 일본 집권 자민당과 미국은 후텐마기지를 폐쇄하는 대신 그 북동쪽 헤노코 기지 옆 해안지역에 새 비행장을 만들어 이전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오키나와 현 내 이전이 아니라 현 바깥, 즉 일본 본토나 미국령 괌 또는 미 본토로의 철수, 또는 부대의 해체를 요구했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총리가 바로 이 후텐마 기지의 현 바깥 이전을 공약으로 내걸고 야당인 민주당을 여당으로 만든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집권했다. 물론 하토야마 압승이 모두 후텐마 공약 덕인 건 아니지만 이전 자민당의 외교안보 정책과 결별한다는, 새로운 정책을 시작한다는 상징으로서 후텐마 기지 이전 공약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하토야마가 집권하자 미국 보수 매파들은 초조해졌고 자칫 오키나와 미군기지 전체가 철수위기에 직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결국 그들은 오랜 친미정부 아래서 양성된 일본내 주류 친미세력들과 협공해 하토야마를 권좌에서 밀어냈다. 그때 하토야마가 후텐마기지의 오키나와 현 바깥 이전 공약을 철회하고 헤노코로의 이전, 즉 자민당과 미국이 예전에 합의했던 기존 이전안으로 후퇴하면서 그 구실로 내세웠던 것이 한국 천안함 침몰이었다. 그는 천안함 침몰을 북(중국)의 위협과 연결하고 미군의 동아시아 주둔이 갖는 억지력의 효용, 전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요소를 자신의 공약 철회 명분으로 앞세웠다. 정치가들이란 어느 나라나 별로 다를 게 없는 모양이다.
메어의 발언은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둘어싼 그 밀고 당기는 싸움 과정에서 불거진 것이다. 거기엔 주둔군의 고압적인 자세와 자기중심주의, 이기주의, 약한 타자에 대한 우월감과 경멸이 짙게 배어 있다.
메어 부장이란 자가 오키나와 주민들을 게으른데다 갈취와 속임수의 명수라고 얘기한 건, 위컴 주한미군 사령관이 한국인들을 민주주의 할 자격도 없는 쥐새끼라로 한 것이나 주한 고위 미 외교관이 한국 대학생들을 버릇없는 자식들이라고 한 것의 복사판이다. 그건 강자의 눈치를 살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약자들의 처지를 이해할 수 없는, 약자의 처지에 공명할 수 없는 지배자, 강자의 싸이코패스적 특성이다. 대체로 정신병자는 억압당하는 약자가 아니라 억압하는 강자다. 강자의 그런 싸이코패스적 특성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보편성을 지닌다. 유럽 백인들이 아메리카를 점령하고 약탈과 살륙을 일삼으면서 원주민(인디언)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함으로써 자신들의 반인륜적 패악질이 가져다줄 심리적 압박감을 날려버렸듯이, 수천만의 아프리카 원주민을 노예로 붙잡아 팔아먹고, 짐짝처럼 배에 처박아넣고 수백만을 죽였을 때 그들을 짐승으로 간주함으로써 죄책감을 털어버렸듯이. 백인들은 그들의 손가락 까딱 한 번으로 생사가 갈리는 절망적 상황에 처한 인디언이나 흑인들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오키나와 주민들을 두고 ‘게으르고 비열하고 속이고 갈취한다’고 비난했던 메어 부장이란 자와 꼭같은 시선으로 바라봤을 것이다. 그게 절대 강자, 지배자의 한계다. 그들이 싸이코패스가 될 수밖에 없는 건 그들은 결코 약자의 처지가 돼 그들과 공명하고 그들을 이해할 필요도 이유도 없을 만큼 절대적으로 강자이기 때문이고 배곯을 걱정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품위있고 우아하다고 착각하는 그들 눈엔 살기 위해 아득바득 몸부림치는 약자들의 모든 것이 비열하고 더럽고 속이는 짓으로 비칠 것이다. 부와 안락한 삶에 갇혀버린 그들의 굳어버린 상상력은 그 틀을 벗어날 수 없다. 생존조건이 그들을 다른 종류의 인간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건 졸지에 삶터와 재산을 날려버리게 된 용산 재개발지구 서민들의 몸부림을 바라보는 가진 자들과 그들의 머슴노릇을 하는 국가 공권력 집행자들의 시선과도 닮은 꼴이다. 시위 진압 경찰 간부들이나 집권세력에게 생존을 위해 저항하는 약자들의 몸부림은 그저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받아내기 위해 비열하게 더럽게 속이고 갈취하고, 말도 안 되는 주장만 늘어놓는 위험분자들, 제거해버리고 싶은 사회부적응자들, 배우지 못한 놈들이었을 것이다. 조선을 점령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배에 저항하는 조선의 독립운동가들을 바라본 시선도 하등 다를 바 없었다. 그게 이른바 ‘불령선인’이었다. 조센징은 더럽고 마늘냄새나고 게으르고 비열하고 속이고 남의 것 갈취하고… 그들 무력 지배자들이 피지배자들을 향해 끊임없이 쏟아낸 저주들이 모두 같은 계열이다.
메어 부장이란 자가 한 말은 애써 꾸며낸 거짓이 아니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게 몇년간 오키나와 총영사로 있으면서 현장에서 그가 겪으면서 끌어낸 결론이리라. 그의 눈엔 실제로 오키나와 주민들이 게으르고, 속임수와 갈취의 명수처럼 비쳤을 것이다. 용산참사 진압 경찰이 절대 볼 수 없었던 가난한 자들 몸부림 뒤의 진실을, 메어 부장이란 자도 볼 수 없었을 뿐이다. 한때 자신들이 크게 신세졌던 이웃 나라, 어쩌면 같은 조상을 두고 있을 이웃을 조센징이란 경멸적인 어투로 부르며 멸시하고 탄압했던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왜 그들에게 조선인들이 때론 저항하고 때론 굽실거릴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를 상상하지도 공명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던 것처럼. 어쩌면 오늘 한국인 다수가 자신들보다 경제적으로 못하다고 느끼는 베트남이나 동남아인들, 중국인들에 대해 품고 있는 우월의식 속에도 그 못난 인간적 한계가 또아리를 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때 자신들이 당한 그 수모를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하는 대상을 향해 그대로 투사하는 악순환. 복제된 싸이코패스. 북쪽에 대해 남쪽 주민들이 느끼는 복잡한 다중의식 속에도 싸이코패스적 요소가 엄존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멀리 갈 것 없이, 산업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당한 특정 지역 사람들을 꼭같은 시선으로 바라보며 수군대는, 터무니없는 편견에 사로잡힌 자들이 여전히 활개치는 오늘의 대한민국.
메어 부장이란 자, 위컴 사령관이라는 자, 그리고 고위 주한 미 외교관, 지독한 인종주의와 편협한 민족주의에 사로잡혔던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자들, 아메리카 침탈 백인들, 죽음의 노예 상인들, 용산 비극을 만들어낸 주역들, 그리고…
엄청 변하는 것 같지만 또 전혀 변하지 않는 세상. 어느날 내가 누구를 욕하고 싶을 때, 그런 자들의 그 변함없는 지독한 역사를 한 번 떠올려 보는 것. 약자인 오키나와 주민이 강자 메어의 눈에 왜 그렇게 비칠 수밖에 없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도록 세상은 여전히 뒤틀려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