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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양자역학 (Quantum mechanics) 원문보기 글쓴이: 실비아
[일드] 에디슨의 어머니 1화 : 거짓말에 대한 이론^^에디슨의 어머니 1화 : 거짓말에 대한 이론^^www.mgoon.com
자연계안의 먼 우주의 허공은 Zero point 에너지로 가득하다.
그곳은 절대온도 0( -273) 의 단위에 해당하며, 진공도 공간의 구분 없이 어떤 물리적 에너지도 그리고 초속 30만 킬로미터의 빛의 입자도 모두 얼어 붙는다
그런데 근래들어 과학의 진보로 유일하게 관찰된 것은 바로 무한히 빠른 스피드로 움직이는 양자요동 뿐이였다...
이를 양자역학에서는 양자진공(quantum vacuum) 혹은 제로포인트 필드로 명명된 이것이 온 우주의 배경공간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1입방미터(어떤 정육면체나 기하학적 공간의 부피를 구할때 쓰는 단위)의 이 허공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입자쌍의 진동(양자요동 quantum fluctuation) 에너지를 다 합하면 그것만으로도 지구상의 바닷물을 모두 증발시킬 수 있다
과학계 일각에서는 무한한 공짜 에너지인 이 영점 에너지를 프리에너지라고 불리고 또 이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만약 성공한다면 이야말로 미래의 가장 획기적인 대체에너지가 될 것이다
예컨데, 과학자들의 염원은 제로포인트 안의 무한에너지 위에서 하나의 고립파를 형성하여, 전파처럼 우주공간에 퍼져나가고 거기에 영점 에너지가 공명하여(TV의 전원 에너지와 같은 역할을 하여) 신호가 증폭되면 그 염원이 거시적 물질세계라는 스크린 위에 현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Zero point feild 라고 불리는 Free Enegy 바로 물질우주를 빚어내는 근본 질료인 셈 입니다
가해자들이 악용하는 마인드컨트롤 전파무기의 인공빙의 증상이나 인공유체이탈 실험 또한 이 우주의 절대온도 0(-273)도안에 초속30만 KM 로 움직이는 빛의 입자도 다 얼어 붙어서 이론상, 불교의 닙바나 상태처럼 진공도 무진공도 그 어떤 물질도 절대 존재해서는 안되는, 곳에서 과학자들의 예상과 역행하고 무한히 빠른 미세한 움직으로 이루어져 있는 양자 진공안의 양자요동만 남아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마인드컨트롤 웨폰이 TI들에게 가할 수 있는 물질은 양자요동 그 이하도 이상을 뛰어 넘을 수 없는 우주의 원초적 원소를 악용한다는 것이 곧바로 반증된다
따라서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이 양자요동의 실체를 근거로 하여, 만일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영역을 통하여 따스한 말한마디로 상대방과 마음을 주고 받으면서 심령치유가 되는 그 근원의 불운한 마음 상태를 가해자들이 이곳에서 인위적으로 마음에너지의 불균형을 초례했다라고 가정을 하고 본지를 이어간다면, 전적으로 이 요동치는 퀀텀에너지의 불균형으로 발생된 문제라고 볼 수있기 때문에, 따라서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이 양자요동의 실체를 근간으로 하여, 만일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영역을 통하여 따스한 말한마디로 상대방과 마음을 주고 받으면서 심령치유가 되는 발생 기전의 우울하거나 불운한 마음 상태를 가해자들이 인위적으로 마음에너지의 불균형을 양자 물리학자들은 아래와 같이, 충분히 이 요동치는 퀀텀에너지의 불균형으로 발생된 문제라고 간주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양자요동의 구조를 잘파악하고 퀀텀에너지 불균형만 잘 잡아주면 충분히 피해를 최소화 할 수있다는 것이 실증된다.
따라서, 마인드컨트롤 데미지 차폐의 모든것은 이 양자요동의 구조와 퀀텀에너지 불균형을 바로잡아 주는 것을 시작해서 이루어 진다는 것을 절대 망각 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사적인 견해로 비추어 본다면, 사실 많은 TI(targeted individual, 타깃 객체)들은 전자파 차폐보다 더 중요한 이 마음에너지 불균형과 심령보호에 필수 불가결한 퀀텀에너지 불균형을 잡아주는 선생님의 힐링 장치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더라구요
모든 TI들이 격고 있는 불운의 핵심인 양자요동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주는게 급선무인데도 말이죠...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출처: 타인의 글 인용
혹시나 동영상에서 말하는 거짓말 패러독스를 혼돈하지는 않았을까, 란 조바심에 부연 설명을 달자면 원리만 알면 굉장히 간단해요
소크라테스를 A라고하고 플라톤을 B라고 가정을 한 가운데, 여기서 A(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은 거짓말 쟁이야, 라는 명제 P에 대한 B(플라톤)이 맞아요 라는 y라는 또다른 명제로 되받아 치는 과정 중에서 한가지 오류가 생기는데요
사실 소크라테스가 기정사실화의 오류와 순환논증의 오류 및 선결문제의 오류 흑백사고의 오류 네가지를 저지르고 있거든요
즉, 명제 P: 소크라테스는 거짓말 쟁이야, 라는 전제를 뒷받힘 시켜줄 논거가 반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소크라테스가 기정사실화 해버린거죠.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명제 P의 논제를 뒷받힘 시켜줄 논거가 반증 되지않는 P를, B(플라톤)가 자기 자신 스스로가 억지로 y라는 또다른 명제를 끌어다가 맞다고 A의 P에 따른 오류 X(기정사실화의 오류, 등등)수긍 해버림으로써, 순환논증의 오류가 계속 끊임없이 이어지는 건데요 여기서 순환논증의 오류란 선결문제의 오류와 그 의미가 거의 마찬가지여서 아직 반증되지않는 사실을 두고 그 주장의 긍정하는 오류인데요
성경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복음이 그대로 옴겨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하느님은 존재하는가?
성경을 보면 존재한다 성경은 사실인가?
하느님이 쓴것이므로 사실이다. 그럼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이런식으로 아직 정당성이 확보 되지않은 반증되지 않는 전제를 가진 주장을 두고 양자가 무한 반복되는 것을 순환논증의 오륜데요 선결 문제의 오류와도 거의 유사해요
다시 본 논점으로 내용을 전환하자면, A의 P의 X라는 오류가 발생한 상태에서 이를 B가 Y라는 말로 그 X-P의 X를 긍정하는 Y로 또다른 X-y를 저지른 것인데요 이를 도식화 하자면, A-(XP) + B-(Xy) = 양자 둘 모두에게 순환논증의 오류를 일으킨다는 거에요
따라서 A가 부당한 명제 P의 X의 오류에 이견을 제시하지않고 그 P의 X에 y라는 또다른 선결문제의 오류 X를 일으키는 y를 끌어다가 대답하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순환논증의 오류를 지속적으로 발생키는 거짓말 쟁이 패러독스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보시면되요
이를 정리하자면 A가 플라톤은 거짓말쟁이다, 이에 B가 맞아요, 라고 했을때, B가 자기를 거짓말쟁이라고 수긍했기에 플라톤의 말은 모든 것이 거짓말이 됨으로, 명제 P 플라톤의 거짓말이다, 를 두고 y라는 맞아요, 라는 대꾸 조차도 거짓말이되고,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주장한 플라톤은 거짓말쟁이다, 라는 말은 플라톤은 거짓말쟁이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사전에 언급한 거짓말쟁이라는 말은, 거짓말쟁이 플라톤이 y라는 거짓말로 고정된 거짓말쟁이로써, 그 명제를 주장한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이 거짓말쟁이가 아닌데도, 거짓말쟁이라고 말한 당사자가 되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의 주장인 즉, 플라톤은 거짓말 쟁이다, 라는 명제 또한 거짓이 되고 플라톤의 주장도 거짓이 되며, 그렇다고 명제 P에 y라는 X라는 거짓 수긍을 한 플라톤이 거짓말쟁이가 아닐 수도 있다?라는 경우의 수를 덧붙이기에는 이미 플라톤이 y라고 A (y-X)에 긍정을 해버렸기 때문에 거짓말쟁이가 아닐수도, 맞다는, 아직 우주가 창조 되기 이전의 빅뱅 5분전 처럼 혼돈 에너지로 가득 들어찬 공간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좀처럼 앞뒤 앞맞는 모순을 파생 시키기 때문에, 결국, 소크라테스 또한 플라톤은 거짓말쟁이다, 라는 말을 한 장본인 마저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립니다.
이곳에서 동영상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정반대로, 소크라테스의 발언이 거짓이다, 라고 역으로 가정 했을때도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가 언급한 플라톤의 '맞아요' 라는 y라는 명제는 진짜가 되어버려요 왜냐하면, 소크라테스는 거짓말 쟁이이고, 그런 거짓 주장을 하는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을 두고 소크라테스의 말에, 맞아요, 라는 y라는 대답을 하는 플라톤은 아직 반증되지않은 소크라테스의 거짓말쟁이라는 명제 P에 플라톤은 X라는 오류가 무성한 y라는 명제로 맞아요, 라는 거짓 주장을 하기 때문에, 정반대로 소크라테스가 거짓말쟁이가 아닌 플라톤이 거짓말쟁이라는 가정을 두었던 이전의 소크라테스의 명제 P가 거짓이 아닌 진짜가 되어버린다는 것이죠.
즉, 정반대로 소크라테스가 거짓말쟁이라고 했을때 플라톤은 거짓말 쟁이라는 말에, 플라톤이 맞아요, 라는 거짓말로 수긍해버리면, 정반대이기 전으로 되돌아가서 생각해본다면,
소크라테스의 거짓 주장이였던 소크라테스 언급한 명제 P: 플라톤은 거짓쟁이야, 라는 주장은 오류 X와 무관하게 플라톤이 거짓말쟁이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은, 거짓 명제 P에 자신의 y라는 거짓 명제의 오류 X를 전혀 고려하지않고 그 거짓을 수긍해버린 거짓 말 쟁이가 되기 때문에 결국 플라톤은 정반대의 경우에서도, 거짓말쟁이가 되고, 정반대의 가정 이전의 소크라테스의 플라톤의 거짓말쟁이야, 라는 명제 P는 참이 되어버립니다
원래 철학이 이런 쓸때없는 사소한 가지계의 현상 하나 하나 에서 발전해서 수학과 논리학 그리고 과학을 파생시킨거거든요
참 철학은 알고보면 굉장히 단순한 일상의 말장난이나 보통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치는 낮과 밤이 왜지는가? 무지개가 왜 생기는지?
말그대로 자연의 자연스러운 현상을 자연스럽게 넘어가야할 문제 조차도 오랜 시간 의문을 두기 때문에 외연적으로 매우 보잘것 없이 한찮아 보이지만 내연적으로는 오랜 시간을 두고 깊이 생각해본다면 굉장히 심오한 모순을 포함하고 있는 이러한 거짓말 쟁이 패러독스가 생겨나고 하거든요 그런데 이러한 거짓말쟁이 패러독스는 그냥 취미생활로 염두해두면 그냥 사고력 훈련에 좋아요
그런데 자기 생명에 위협을 줄만한 특별한 경우가 아닌, 절대로 사회에서 거짓말 쟁이 패러독스와 같은 X라는 오류를 저지르거나 또는 그와 같이, 거짓말쟁이 패러독스의 순환논증의 오류를 악용하는 부류들을 만나면 어떤 조건을 따져 볼 필요없이 그 X의 오류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해서는 안되요
철학책이나 논리학 책에서 보는 바와 다르게 미지계 너머 가지계라 불리는 지금의 모니터 앞에 자신을 서게한 현실세계에서는 매사 논리적으로 따져 묻는 이를 본다면 그 따져 묻는 논리조차도 상대방은 왜곡시키려 들거나 자신의 부당성을 따져 묻는 상대방의 그 부당성 조차 뭔가 흠잡을게 없나 억지로 라도 불만을 품고 자신의 부당한 논리를 말그대로 부당하게 만들어 버리는 모순을 저지르거든요
그러니까 애초에 그런 부류와는 상대를 하지 말거나 어쩔 수 없이 상대해야만 한다면, 최대한 상대방의 비유를 거스르지 않는, 그런 거짓말 쟁이 패러독스에서 언급되는 플라톤을 자처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하게 다가오는? 모순을 파생시키는데요 이를 플라톤은 이데아 처럼 뭔가 유토피아적인? 사상으로 타개 하려고 그랬는지 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부조리에 두고 플라톤의 이데아라는 어휘의 의미에 내포된 이상향이라는 뜻데로 이데아를 이상향으로 여기는게 체감적으로는 비현실적일지는 모르지만 내적으로는 가장 현실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참 아이러니한 세상에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두발을 딛고 서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것 가장 초급 패러독스이고, 진짜 정통적으로 배운 철학도 생들 간혹 가다 철학 카페에서 대면하다 보면은 저같은 초급생들이 이해하기 힘들만큼 고차원적인 패러독스를 다 이해하는 수준이라, 저도 그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말 못하고 곧바로 GG 칩니다...
-실비아 씀
*아래의 글귀에서 인용
영점장(Zero Point)은 우리는 흔히 텅 빈 우주공간에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물리학자들은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최저 온도인 절대온도 0도(-273℃)의 진공조차도 아무 것도 없는 제로상태가 아니라 뭔가로 꽉 차 있다는 기이한 사실을 발견했다. ‘진공’에는 아무 것도 없어야 하는데 그곳은 여전히 매우 짧은 찰나에 생멸을 반복하는 입자-반입자의 쌍들로 꽉 차 있고 이론상 절대온도 0도에서는 입자마저 얼어붙어서 움직이지 않아야 하는데 실제로는 무한히 빠른 미세한 움직임이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양자 진공(quantum vacuum) 혹은 영점장으로 명명된 이것이 온 우주의 배경공간을 이루고 있는 셈인데 1입방미터의 이 허공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입자쌍의 진동(양자요동 quantum fluctuation) 에너지를 다 합하면 그것만으로도 지구상의 바닷물을 모두 증발시킬 수 있다는 계산결과도 있다. 과학계 일각에서는 무한한 공짜 에너지인 이 영점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데 만약 성공한다면 이야말로 미래의 가장 획기적인 대체에너지가 될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영점 에너지를 끌어다 쓸 물리적인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우리는 관찰자 효과를 통해서 의식으로써 양자 차원, 곧 영점장에 변화를 일으키고 따라서 거시적 차원의 현실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예컨대 우리의 염원은 영점장 위에서 하나의 고립파를 형성하여 전파처럼 우주공간에 퍼져나가고 거기에 영점 에너지가 공명하여(TV의 전원 에너지와 같은 역할을 하여) 신호가 증폭되면 그 염원이 거시적 물질세계라는 스크린 위에 현실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점 에너지가 바로 물질우주를 빚어내는 근본 질료인 셈이다.
물리학자 데이비드 봄(David Bohm), 신경생리학자 칼 프리브램(Karl Pribram) 등 몇몇 과학자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실험결과들을 설명해줄 모델을 찾다가 레이저 입체영상 광학인 홀로그래피에서 답을 찾고 물질우주는 파동의 차원에서 하나의 홀로그램 정보장으로서 존재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미항공우주국(Nasa)의 대기권 물리학자였던 바바라 브레넌(Barbara Brennan)이나 아폴로14호의 우주비행사였던 에드거 미첼(Edgar Mitchell) 같은 사람들도 우리 신체의 정보-에너지장은 우주의 에너지장과 공명을 일으켜 동일한 리듬으로 활동하면서 정보와 에너지를 교류한다고 말한다.
과학철학자 어빈 라즐로(Erwin Lazlo)를 위시한 여러 선구적 과학자들은 이런 물질우주의 정보-에너지(파동정보)를 기록할 수 있는 필름(홀로그램)은 다름 아닌 영점장이라고 주장한다. 피사체가 반사하는 빛의 간섭무늬를 기록하는 광학기술은 홀로그래피 입체영상술에 사용되는 홀로그램(필름)은 전일성, 비국소성, 4차원성 등 파동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신비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또 한 장의 홀로그램 위에는 이론상 무한대의 피사체 정보를 담을 수 있는데 이론의 실현을 방해하는 제약 중의 하나는 기록매체인 홀로그램의 감도이다.
그런데 영점장의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감도를 지닌 지극히 섬세한 매질로서, 우주에서 일어난, 일어나는, 그리고 일어날 모든 파동을 담을 수 있는 홀로그램과도 같은 역할을 하여 그곳으로부터 (영점 에너지에 의해 증폭된)물질우주라는 입체영상이 ‘현재’라는 무대 위에 비춰져 나온다는 것이다. (홀로그램의 차원은 4차원 세계라서 그 안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시간적 의미를 잃고 동시에 존재한다.)고대 인도인들은 우주공간을 아카샤(akasha)라고 부르고 거기에는 우주의 모든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그 밖의 모든 종교와 문화권의 예지자, 투시가들이 보았다고 하는 ‘하늘의 책’, ‘영계’ 등도 바로 우주의 홀로그램인 영점장에 기록된 우주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파동정보(가능태 현실)를 본 것이다. 그러니 영점장이야말로 아무것도 나타나 있지 않으나 모든 나타남(manifestation)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창조의 모태이자 우리의 바람이 현실로 바뀌는 마법이 일어나는 무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하면 우리의 의식을 현실창조의 무대인 영점장 정보가 담기기 이전, 빈 필름으로서의 영점장은 어떠한 속성도 지니고 있지 않다. 그것이 영점장의 유일한 속성이다. 그러한 제로 상태의 영점장에 나의 정신 에너지를 동조시키기 위해서는 나의 의식상태도 아무런 속성을 띠지 않는 제로 존재상태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나’라고 여겼던 속성들을 버리는 훈련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의식을 텅 비워서 무속성의 제로 상태로 만듦으로써 우주의식에 접속하기만 한다면, 그리고 거기서 하나의 순수한 염원을 오롯이 내보내기만 한다면, 영점 에너지가 거기에 공명하여 레이저 입체상보다 더 선명한 물질현실을 만들어내는 것은 우주의 법칙이자 약속이지,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무한한 우주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마음껏 꿈을 펼치는 현실창조자의 자격을 획득하게 된다.
출처: 의식을 제로 : 현실을 창조하는 마음 상태 중, 저자, 천시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