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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새질서 (2003-07-29 10:22:24, Hit : 18, Vote : 4)
진보누리 쟁토방
Subject 주민투표제 환영한다. 그러나....
쓰레기 매립장이나 화장장 설치, 읍.면.동의 통합 여부 등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현안을 주민들의 직접 투표로 결정하는 주민투표제가 내년 하반기부터 실시될 전망이다. 행정자치부는 이런 내용의 주민투표법 초안을 마련, 오는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하겠다고 28일 밝혔다.
주민투표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중요 정책사항 등을 주민투표로 결정하는 제도로서 스위스가 가장 빈번히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간 1994년 개정한 지방자치법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주요 결정사항에 대해 주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는 법적 근거가 있었으나 주민투표의 대상, 발의자, 발의요건, 투표절차 등에 관하여는 따로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여 놓고 지금까지 주민투표법을 제정하지 아니하여 현재로서는 그 실효성이 없는 상태였다. 따라서 이번 행정자치부의 발표는 이와 같이 그간 미뤄져 왔던 실질적인 근거법을 제정하겠다는 취지라 할 수 있다.
일단 실질적인 주민자치제의 대의를 실현할 수 있는 주민투표제의 도입을 환영하는 바이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주민투표제의 대략적인 내용을 보면 과연 실효성이 있는가 하는 문제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 주민투표의 발의 요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 법안에 따르면 주민투표는 주민(자치단체 선거권자의 5분의1 이내)이나 지방의회(3분의2 찬성), 또는 단체장(지방의회의 동의를 얻어)이 발의할 수 있도록 했다. 일단 현행과 같이 부르주아가 의회 다수와 단체장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실질적으로 지역주민의 의사를 묻기 위해 주민투표를 자발적으로 실시한다고 하는 믿음은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에 불과할 것이다(오히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주민투표를 악용할 소지가 있으나 이는 뒤에서 다루겠다). 그렇다면 결국 주민들 스스로가 주민의 동의에 의해 투표를 발의할 수밖에 없는데 현행과 같은 선거권자의 5분의 1의 동의를 얻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와 관련 지난 3월 민노당의 광역의원의 조례 제정 청구 사례를 살펴보자.
"지방자치법에 의하면 주민들이 조례를 제정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데, 유권자의 5%를 모아야 한다. 말이 5%이 시도단위에서 이를 모으는 것은 사실 상 불가능하다.(왠만한 시도에서 유권자가 100만이라고 하면 5%는 5만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시군구에서 조례제정청구가 있었지만, 시도에서는 한 번도 있어 본 적이 없는데, 전남에서 전종적 의원 주도로 "전라남도학교급식식재료사용및지원에관한조례"를 무려 5만명을 모아 조례제정청구를 한 것이다.(전남은 3만 4천이 5%이다.)[전종덕 의원의 쾌거, 김정진, 2003.4.26]"
결국 향후 전종덕 의원이 주민투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20만명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소리다. 이게 가능할지 생각해보라. 이것이 지방자치단체장의 신화 김두관 행자부 장관의 작품이다.
둘째, 주민투표의 대상이 매우 협소하다. 법안에 따르면 투표 대상 안건은 조례로 정하도록 했으며, 자치사무 가운데 세입. 세출이나 공과금 부과 등 재무 사항, 공무원 보수. 인사 등 행정내부 운영 사항, 재판 중인 사항 등 7개항은 제외된다. 시설 설치에 관해서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설치권자인 쓰레기 매립장이나 화장장 등은 주민투표의 대상이 되나 원전수거물 관리시설(원전센터) 설치와 같은 소위 국가 시책은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렇듯 주민투표를 어렵게 발의한다 할지라도 주민투표의 대상범위가 매우 협소하기 때문에 이번 부안군 핵폐기물 처리장 사태와 같은 물리적 충돌은 언제든지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즉 대상범위를 정하는 데에 있어 중앙정부의 소위 국가시책이나 자치사무 중 주요사무 등을 투표대상에서 제외시킨 것은 기본적인 주민자치의 의미를 크게 축소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근본적으로 각 지방자치단체가 대상 안건을 조례로 정하게끔 되어 있기 때문에 의회나 자치단체장은 얼마든지 주민투표의 힘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이것이 지방자치단체장의 신화 김두관 행자부 장관의 작품이다.
셋째, 근본적인 문제로 주민투표는 진정한 주민의사 수렴수단으로 적절치 못하다. 이는 주민들이 계획입안단계에서부터 홍보의 부족과 정보공개의 인색함으로 인한 정보비대칭이라는 문제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정보비대칭 상태에서 시행되는 주민투표는 결국 일부 기득권세력과 여론호도세력에 의해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현재 각종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는 주민들의 참여기회를 상당부분 제약하고 있다. "공공기관의정보공개에관한법률"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의 운용에 있어 많은 부분 담당자들은 보안사항임을 들어 정보의 공개를 꺼리고 있다. 일전에 한 주간지 기자가 이에 대한 실험을 했는데 언론사 기자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공개된 정보의 질은 형편없었다 한다. 하물며 일반주민에게는 어떠할지 상상이 간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빠르면 내년 시행될 주민투표제의 법안은 그 본래 의의를 살리기에는 법안 자체와 제반 여건이 매우 후진적인 상태이다. 따라서 민노당을 비롯한 진보단체에서는 법안이 실질적인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주민투표 발의요건의 완화, 대상 범위의 확대, 그리고 주민투표의 실효성을 위한 제반 여건의 확충 등을 요구하고 관철해나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황이 이러함에도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요건인 주민투표에 대해 부르주아 신문이 어떻게 딴죽을 걸고 있는지 알아보는 것으로 끝을 맺겠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직 단체장과 의견을 달리하는 그룹에서 사사건건 주민투표를 발의해 정책 추진의 발목을 잡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또 결정과정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집단이 나올 가능성이 큰 것도 문제다.[[주민투표제 도입 의미] 진정한 地自體 개막 신호탄, 중앙일보, 2003.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