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 아날로그
김산옥
디지털 선물
생일이라고 SNS에 축하메시지가 톡톡 거린다.
어떻게 아는지 꼭 이맘때면 잊지 않고 태어난 날을 알린다. 지인, 친구, 글벗…모두들 축하 메시지를 보내온다. 아, 정말 희한한 세상에 살고 있다. 무튼 이런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다.
일일이 댓글을 쓰며 대구에 사는 E수필가가 보내온 카톡을 열어본다. <카카오톡 선물하기>OOO님이 선물과 메시지를 보냈다는 문구가 뜬다. 커피 한 잔에 케익 한 조각이다. 쿠폰을 가게 주인에게 보이고 바코드를 찍으면 커피를 준다고 한다. 요렇게 앙증맞고 귀여운 낯설기 선물은 처음이다.
가을빛 머금은 홍시 같은 선물이라 행복은 두 배로 오고, 보내온 이의 마음 씀씀이까지 덤으로 오니 기쁨의 수치를 조절할 수 없다. 행복지수가 자꾸만 올라간다. 당장 쓰지 말고 오래두고 아껴먹고 싶은 생각이다.
디지털 시대에 살아가면서도 나는 아직 아날로그다. 시대에 걸맞은 선물나누기를 나도 배워야겠다. 어느 날 문득 멀리 사는 지인에게 차 한 잔 사주고 싶을 때, 반드시 요런 홍시 같은 선물을 해야겠다.
아, 내 머릿속에는 지인들이 영상처럼 스쳐간다.
누구부터 할까….
J수필가가 만나자마자 선물이라고 카드를 내민다.
다섯 개의 꽃잎이 새겨진 연분홍빛 스타벅스 카드다. 카드 속에는 오천 원짜리 커피를 열 잔 마실 수 있는 가격이 들어 있다며 차 마시고 싶을 때 언제든 즐기라고 한다.
J에게 스타벅스 카드를 받는데 문득 드라마 한 장면이 떠오른다.
“쓰고 싶은 대로 쓰세요” 하면서 신용카드를 자식이 엄마에게 주기도 하고, 사위가 장모에게 주기도 하고, 남편이 아내에게 주는 장면을 볼 때 은근히 부러움을 감추곤 했다.
오늘 J에게서 카드를 받는데 꼭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신용카드를 받은 것처럼 어깨가 으쓱해진다. 입꼬리가 자꾸만 귀에 걸린다. 마음이 어수선할 때, 우울할 때, 즐겁고 유쾌할 때… 아, 비 오는 날이면 더 좋겠다. 이런 날 문득 찻집에 들러 검지와 장지 사이에 이 카드를 끼우고 방아쇠를 당겨야겠다. 내가 뽐 낼 수 있는 만큼의 폼을 잡아야겠다.
아, 멋진 품위유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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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선물
‘누구나 한 가지 씩 지옥을 품고 산다’고 어느 시인은 말했듯이, 별 일 아닌 것도 마음속이 시끄러울 때가 있다. 서로가 반대쪽으로 감고 올라간다는 등나무와 칡넝쿨처럼, 오늘 내 마음이 꼭 그렇다. 무심코 카톡 메시지를 열어본다. E시인이 선물이라며 나에 대한 시를 써서 보내왔다.
김산옥
연한 듯 뚝심 있고
물러 선 듯 당당하고
안마당 한가득
봄볕같이…
공평하고 고운사람!
여기에 나에 대해 덧붙이기를 김대규 선생님 <시인열전>에는 없지만… E시인 마음속 <문인열전>에는 간직한다고 한다. 어, 어깨가 으쓱해진다. 내가 꼭 뭐라도 된 것 같다.
갈등이 한순간에 해소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그 사람의 마음속 문인열전에 간직한다는 말 한마디가 얽히고설킨 갈등을 한순간에 풀어 놓는다.
몇 줄의 글로 이렇듯 큰 선물을 줄 수 있다니 ….
나에겐 너무나 과분한 선물이다.
지인 몇 분과 맛집에 둘러앉았다.
J사진작가가 점심을 산다고 한다. 밥을 사는 선물처럼 따뜻한 선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우리는 입맛에 맞는 음식을 주문하고 앉아 정담을 나눈다.
느닷없이 B소설가가 탁자위에 선물이라며 작은 상자를 올려놓는다. 닭띠라서 특별히 닭 그림을 주문한 거라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찻잔이라고 한다.
찻잔 그림 속에는 화려한 장닭 두 마리와 태양처럼 강렬한 붉은 꽃 두 송이가 활짝 피었다. 연둣빛과 하늘색이 조화롭게 바탕색을 이루고, 테두리와 손잡이는 진한 군청색으로 무게감을 더한 항아리 모양이다.
한눈에 봐도 냉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찻잔이다. 한순간에 찻잔 속에 퐁당 빠져버렸다. 감동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 으아,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문학상 보다 더 뜻 깊은 선물이다.
#안양문학 #김산옥수필가
첫댓글 언제....제 작품까지 올렸데요. 감사해요.
앞으로 좋은 작품 많이 올려주세요.
네. 같이 읽었으면 해서요.^^
맘이 뜨듯해지는 글이에요. 역시 다정한 심상이 그래로 전해지네요.
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시는 선배님 항상 감사드립니다.
연한듯 뚝심있고.
물러선듯 당당하고.
안마당 한가득 봄볓같이
공평하고 고운사람.
어쩌면 산옥
수필가님을 거울처럼도 잘 표현 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