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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대적 배경
19세기에 낭만주의가 널리 퍼짐으로써 유럽 사회에는 인간의 본성이나 개인의 느낌과 생각이 전보다 더 존중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소박하고 평범하며 세련되지 않은 사람이 전형적인 인간으로 여겨졌고 낭만주의자들은 그러한 사람을 이상적인 인간이라고까지 하였다. 낭만주의자들은 사람들의 소박한 삶이 문명화의 과정에서 생길 수도 있는 결함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고, 그래서 소박하고 평범한 삶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제 예술가들은 과거에 거의 손대지 않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작품 소재의 가장 소중한 근원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국민주의 음악 운동이 일어나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19세기에 국민주의 음악이 일어나게 된 또 하나의 원인은 정치적 국민주의의 발생이었다. 이탈리아와 독일이 건국되었고 전쟁이 빈번하게 발발하였다. 이제 전쟁은 과거와 같지 않아서 왕을 보위하기 위한 전쟁, 군인들만의 싸움이 아니라 국가 전체를 위한 전쟁, 나라의 모든 젊은이들이 어떤 형태로든 개입되는 그런 전쟁이 되었던 것이다. 음악에 있어서의 국민주의 운동은 아마 그런 정치적 갈등이 없었다 할지라도 일어났겠지만 그러한 정치적 상황이 국민주의 음악을 부추긴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2. 음악의 특징
예술 작품들과 관련지어 사용하는 국민주의라는 어휘는 특정한 나라나 지역 특유의 예술적 표현 형태를 확립하고자 했던 진지한 시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국민주의 음악은 민속 음악과는 구별된다.
민속 음악은 서민들의 음악이고 자연 발생적인 반면에 국민주의 음악은 국민 정신을 구체화하거나 민족적인 소재를 이용하며 음악 예술 작품을 창작하고자 노력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무소르크스키의 오페라 < 보리스 고두노프 >의 아리아는 러시아적인 예술 작품, 즉 국민주의 음악 작품이지 러시아 민속 음악은 아닌 것이다.국민주의 음악은 주로 민족 또는 국민 특유의 것으로부터 택해진 소재와 예술 음악적 표현 형태를 바탕으로 창출되었다. 국민주의 작곡가들은 자기 민족 또는 자기 나라의 전설, 전통적인 문학 작품, 역사, 자연, 서민의 생활모습 등에서 소재를 구하였으며 민요와 춤 등 전래되어 온 민족 특유의 음악들로부터 음악적 표현 형태를 찾아내어 사용하려 하였다.
국민주의 작곡가들은 마음 속에서 울려 나오는 즉흥적인 가락을 단순히 옮겨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음악적 상념(idea)을 만족스럽게 표현하기까지 몇 번이고 다시 배열, 구성하는 가운데 작품을 완성하였으며 그 작품 속에 민속 음악으로부터 얻은 독특한 음악적 요소를 사용함으로써 민속 특유의 음향을 만들어 내고자 노력하였던 것이다.그러한 작곡 경향은 음악가들로 하여금 외국 음악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도록 자극하였다.
예컨대 국민주의 작곡가들은 흔히 당시에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이탈리아어로 된 음악 용어들 대신에 자기 나라 말로 된 용어를 쓰는 경우가 나타났다. 물론 악보에 그렇게 썼다고 해서 음향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한 태도는 작곡가 특유의 사고 방식과 빠르기에 대한 자기 특유의 의식을 일깨우는 작용을 하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특히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사이에 작곡가들은 민속 음악의 요소들이 사용된 수많은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들 중에서 러시아의 무소르크스키, 림스키고르사코프, 보로딘 등과 노르웨이의 그리그, 핀란드의 시벨리우스 등은 작품 속에 그들 나라에 전래되어 온 음악적 요소들을 이용함으로써 민족성을 강하게 나타내는 데에 주력한 작곡가들이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의 비제는 스페인적인 작품 <카르멘>을, 드보르작은 미국적인 작품 <신세계 교향곡>을, 이탈리아의 푸치니는 일본을 주제로 한 <나비 부인>을 작곡함으로써 자기 민족의 것보다는 오히려 다른 민족의 소재나 음악적 특성을 이용하는 경향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이 곡의 주제가 됐던 무소르그스키의 친구, 하트만의 그림
차이코프스키 / ♬장엄서곡 1812년 (Ouverture Solennelle '1812', Op.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