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에서 새싹을 재배하여 사시사철 먹기도 하고, 현미가 먹기 어렵다 하여 발아현미가 인기 상품으로 각광을 받기도 하는데 새싹과 발아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한다.
뿌리와 씨앗은 부모이고 새싹과 발아는 자녀라고 생각할 수 있다. 동물은 부모와 자녀가 개체로 분리하여 존재하고, 식물은 부모와 자녀가 동체로 존재하는 형태가 다를 뿐, 어미가 어비의 도움을 받아 새끼를 낳아 번식시키는 생명의 법칙은 동일할 수밖에 없다.
감자나 무가 새싹을 낼 때는 새싹 뿌리의 언저리가 푸른 색을 띄기도 하고 쓴 맛이 나기도 하는데 그것은 새싹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모성 본능이 새끼를 보호하듯이 뿌리가 독성을 뿜는 이유는 외부로부터 새싹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니 동물이나 식물이나 생명을 번식시키기 위한 본능이 같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싹이 인간과 동물을 위한 용도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새싹이 웰빙식품일 수 없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발아하는 뿌리와 씨앗은 말할 것 없이 새싹에는 독성이 있을 수밖에 없고, 새싹의 독성이 미미하다고 해도 많이 먹어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콩나물도 먹지 않아야 할 것이 아닌가?”
콩나물은 떡잎 색깔이 노랗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콩나물을 동물과 비교하면 떡잎이 노란 것은 임신중이고 초록은 바깥 세상으로 태어난 아이와 같은 것이어서 초록은 모성 본능이 의지적으로 강렬하게 작용하지만 노랑은 태중의 아이와 같아서 모성 본능이 의지적으로 작용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떡잎이 노랗다고 하여 독성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콩나물은 수천년 동안 상식한 식품이어서 한국인의 인체가 콩나물 독성에 견딜 수 있는 능력을 충분하게 배양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콩나물을 상식해 온 민족에게는 안전식품일 수 있다는 것이다.
푸른 색의 새싹에 독성이 있다고 해도 어쩌다가 한번씩 먹는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인체는 새싹의 독성을 견디지 못할 만큼 나약하지도 않고, 독약도 잘 쓰면 약이 될 수 있듯이 적당한 독성은 오히려 약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푸른 색이 돋지 않는 식물은 상식해도 괜찮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 과학으로 증명이 되는 것만 인정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개체의 모양이 같은 것이 없듯이 식물도 종류에 따라서 푸른 독성, 붉은 독성, 하얀 독성, 색깔이 없는 독성, 무형의 독성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뿌리와 씨앗이 어미로 작용하는 한 새끼에 대한 모성본능이 다변다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진국도 처음에는 새싹이 인기상품으로 각광을 받다가 독성이 문제가 되어 시들해져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강 건너 불보듯이 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인은 귀가 얇고 주체성이 없어서 매스컴에서 보도하고, 유명 인사가 한마디 하면 요란을 떨기 일쑤인데 그것은 잘못된 교육 탓이다. 교육이 주입과 암기로 일관하고 입시를 위한 도구로 삼는 바람에 생각하는 능력, 창의성과 지혜를 추구하는 능력이 사장되어 왔기 때문이다.
본인이 새싹과 발아를 이야기한 것은 식물의 독성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지혜를 추구하여 건강을 스스로 지켜가는 것이 가장 좋은 건강법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임을 이해하기 바란다.
금빛산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 발아현미를 먹고 있었는데 고려해야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