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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산림 대법회 제16강 -1 (2011. 6. 6.)
萬善同歸中道頌 유인물
一心頂禮 盡十方三世(진시방삼세) 一切諸佛(일체제불)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尊法(일체존법)
一心頂禮 盡十方三世 一切賢聖僧(일체현성승)
我弟子等(아제자등) 講論三藏(강론삼장) 唯願三寶(유원삼보)
爲作證明(위작증명)
南無本師釋迦牟尼佛(나무본사석가모니불) 南無本師釋迦牟尼佛
南無本師釋迦牟尼佛
無上甚深微妙法(무상심심미묘법) 百千萬劫難遭隅(백천만겁난조우)
我今聞見得受持(아금문견득수지) 願解如來眞實意(원해여래진실의)
왕복서 읽겠습니다.
大方廣佛華嚴經 往復序(대방광불화엄경 왕복서)
往復(왕복)이 無際(무제)나 動靜(동정)은 一源(일원)이라
含衆妙而有餘(함중묘이유여)하고
超言思而迥出者(초언사이형출자)는 其唯法界歟(기유법계여)며
剖裂玄微(부열현미)하고 昭廓心境(소확심경)하며
窮理盡性(궁리진성)하고 徹果該因(철과해인)하며
汪洋沖融(왕양충융)하고 廣大悉備者(광대실비자)는
其唯大方廣佛華嚴經焉(기유대방광불화엄경언)인저
故我世尊(고아세존)이 十身初滿(십신초만)에
正覺始成(정각시성)하사 乘 願行以彌綸(승원행이미륜)하시며
渾 虛空爲體性(혼허공위체성)하시니
富有萬德(부유만덕)이요 蕩無纖塵(탕무섬진)이로다
↑ 8강-1
湛智海之澄波(담지해지징파)가 虛含萬象(허함만상)이요
皎性空之滿月(교성공지만월)이 頓落百川(돈락백천)이로다
不起樹王(불기수왕)하사 羅七處於法界(라칠처어법계)하시며
無違後際(무위후제)하사 暢九會於初成(창구회어초성)이로다
盡宏廓之幽宗(진굉곽지유종)하사 被難思之海會(피난사지해회)
하시니
圓音落落(원음락락)하사 該十刹而頓周(해십찰이돈주)하시고
主伴重重(주반중중)하사 極十方而齊唱(극시방이제창)이로다
雖空空絶跡(수공공절적)이나 而義天之星象(이의천지성상)이
燦然(찬연)이요 湛湛亡言(담담망언)이나
而敎海之波瀾(이교해지파란)이 浩澣(호한)이로다
若乃千門潛注(약내천문잠주)라 與衆典爲洪源(여중전위홍원)이요
萬德交歸(만덕교귀)나 攝群經爲眷屬(섭군경위권속)이로다
↑ 9강-1
其爲旨也(기위지야)가 冥眞體於萬化之域(명진체어만화지역)하고
顯德相於重玄之門(현덕상어중현지문)이로다
用繁興以恒如(용번흥이항여)하고
智周鑑而常靜(지주감이상정)이로다
眞妄交徹(진망교철)이라 卽凡心而見佛心(즉범심이견불심)이요
事理雙修(사리쌍수)라 依本智而求佛智(의본지이구불지)로다
理隨事變(이수사변)이라 卽一多緣起之無邊(즉일다연기지무변)이
요 事得理融(사득이융)이라 則千差涉入而無礙(즉천차섭입이무애)
로다 故得十身歷然而相作(고득십신역연이상작)하고
六位不亂而更收(육위불난이갱수)로다
廣大卽入於無間(광대즉입어무간)이요
塵毛包納而無外(진모포납이무외)로다
↑ 10강-1
炳然齊現(병연제현)은 猶彼芥甁(유피개병)이요
具足同時(구족동시)는 方之海滴(방지해적)이로다
一多無礙(일다무애)는 等虛室之千燈(등허실지천등)이요
隱顯俱成(은현구성)은 似秋空之片月(사추공지편월)이로다
重重交暎(중중교영)은 若帝網之垂珠(약제망지수주)요
念念圓融(염념원융)은 類夕夢之經世(류석몽지경세)로다
法門重疊(법문중첩)은 若雲起長空(약운기장공)이요
萬行芬披(만행분피)는 比華開錦上(비화개금상)이로다
↑ 11강-1
若夫高不可仰(약부고불가앙)이라 則積行菩薩(즉적행보살)도
曝鰓鱗於龍門(폭시린어용문)이요 深不可闚(심불가규)라
則上德聲聞(즉상덕성문)도 杜視聽於嘉會(두시청어가회)로다
見聞爲種(견문위종)이라 八難(팔난)에
超十地之階(초십지지계)하고 解行在躬(해행재궁)이라
一生(일생)에 圓曠劫之果(원광겁지과)로다
師子奮迅(사자분신)에 衆海頓證於林中(중해돈증어임중)이요
象王廻旋(상왕회선)에 六千(육천)이 道成於言下(도성어언하)로다
啓明東廟(계명동묘)하니 智滿不異於初心(지만불이어초심)이요
寄位南求(기위남구)하니 因圓不逾於毛孔(인원불유어모공)이로다
剖微塵之經卷(부미진지경권) 則念念果成(즉염념과성)하고
盡衆生之願門(진중생지원문) 則塵塵行滿(즉진진행만)이로다
↑ 12강-1
眞可謂常恒之妙說(진가위상항지묘설)이요
通方之洪規(통방지홍규)며 稱性之極談(칭성지극담)이며
一乘之要軌也(일승지요궤야)로다 尋斯玄旨(심사현지)하고
却覽餘經(각람여경)하니 其猶杲日麗天(기유고일려천)에
奪衆景之耀(탈중경지요)요 須彌橫海(수미횡해)에
落群峯之高(낙군봉지고)로다
是以菩薩 搜祕於龍宮(시이보살 수비어용궁)이요
大賢闡揚於東夏(대현천량어동하)로다
顧惟正法之代(고유정법지대)에도 尙匿淸輝(상닉청휘)어늘
幸哉(행재)라 像季之時(상계지시)에 偶斯玄化(우사현화)하고
況逢聖主(황봉성주)하며 得在靈山(득재영산)하야
竭思幽宗(갈사유종)하니 豈無慶躍(기무경약)이리요
↑ 13강-1
題稱大方廣佛華嚴經者(제칭대방광불화엄경자)는
卽無盡修多羅之總名(즉무진수다라지총명)이요
世主妙嚴品第一者(세주묘엄품제일자)는
卽衆篇義類之別目(즉중편의류지별목)이니
大以曠兼無際(대이광겸무제)하고
方以正法自持(방이정법자지)하고
廣則稱體而周(광즉칭체이주)하고 佛謂覺斯玄妙(불위각사현묘)하
고 華喩功德萬行(화유공덕만행)하고
嚴謂飾法成人(엄위식법성인)하고
經乃注無竭之涌泉(경내주무갈지용천)이로다
貫玄凝之妙義(관현응지묘의)하며 攝無邊之海會(섭무변지해회)하며
作終古之常規(작종고지상규)로다 佛及諸王(불급제왕)을
並稱世主(병칭세주)오 法門依正(법문의정)을
俱曰妙嚴(구왈묘엄)이니 分義類以彰品名(분의류이창품명)할새
冠群篇而稱第一(관군편이칭제일)이니라
斯經(사경)이 有三十九品(유삼십구품)하니
此品(차품)이 建初(건초)일새
故云大方廣佛華嚴經世主妙嚴品第一(고운대방광불화엄경세주묘엄품
제일)이라하니라
↑ 14강-1
“그대 삶이 경전이다.” 라고 하는 무각스님이 번역하고 해석한 금강경 야보송. 야보스님의 송을 해석하고 번역한 내용을 법공양을 올렸습니다.
이 무각스님은 처음부터 여기서 공부하신 스님인데, 얼굴 모르지요? 잠깐 일어나서 얼굴 한 번 비춰주세요. 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 서울에서 강의도 많이 하고 또 해외포교도 많이 하고 하는 그런 경험도 있고, 혜거스님의 상좌로서 탄허스님의 孫상좌지요. 공부하는 집안이라 아주 알뜰히 공부를 해서 우리 대중 가운데 이런 책이 나왔습니다. 또 후속으로 이와 같은 책이 여러 스님들 사이에서 계속 좀 나왔으면 하는 그런 바람입니다. 잘 읽어보시고 포교와 전법에 많은 보탬이 됐으면 싶습니다.
오늘 유인물 우선 볼까요?
萬善同歸中道頌(만선동귀중도송)이라는 유인물입니다.
불교에는 많고 많은 글이 있지요. 그 중에서도 서문으로서는 우리가 방금 읽은 서문. 서문은 3대 서문을 치는데, 우리가 방금 읽은 往復序 序文을 제일로 치고,
一物序(일물서)라고 해서 금강경 五家解 함허스님의 서문을, 아주 빼어난 글이고 그 지견이 하늘을 찌를 듯한 그런 높은 지견으로 뛰어난 글이기 때문에 一物序도 그에 못지않습니다.
馬防序(마방서). 라고 해서 임제록서문을 쳐줍니다.
임제록서문을 쓰신 馬防이라고 하는 그 당시에 아주 유명한 뛰어난 학자인데, 임제스님의 어록서문. 그것을 쳐줍니다. 그런데 그런 서문이라든지ㆍ경이라든지ㆍ반야심경ㆍ보현행원품ㆍ보안장ㆍ보문품. 이런 아주 짤막짤막하고 중요한 뜻이 담겨있는 그런 글들이 참 많은데, 짧고 정말 불교의 심오한 뜻과 또 우리 불교인으로서 입에 익숙한 발심이라든지ㆍ불도라든지ㆍ6바라밀이라든지ㆍ기타 부처님께 예배하는 문제ㆍ분향, 향을 사르는 문제ㆍ불사하는 문제, 이런 등등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불교용어. 그것을 여기에 다 모아서 그러한 것들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실천하는 것이 과연 대승 불교적이고, 아주 뛰어난 안목으로 사는 불자의 삶인가? 하는 그런 입장에서 볼 때는 이 萬善同歸中道頌이라고 하는 이 게송 지나갈 것이 없습니다. 아주 뛰어난 내용입니다.
이것은 永明延壽禪師(영명연수선사, 904~975)의 글로써 마지막 결송으로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여섯 권짜리 책인데 結頌(결송). 결론적으로 총 정리해서 게송으로 이렇게 한 겁니다.
이것을 제가, 흔히 萬善同歸中道頌이라. 만선동귀집에서 많은 설명을 하시는데, 그 내용은 결국은 온갖 불교수행. 여기 발심이라든지ㆍ불도라든지ㆍ6바라밀이라든지ㆍ예배라든지ㆍ찬탄이라든지ㆍ참회라든지 이런 것 등등, 이것이 전부 불교에서 말하는 善입니다, 선행입니다. 수행이고 선행인데 이것은 결국은 中道로 돌아가야 된다. 또 中道로 돌아간다. 中道에 입각해서 보시를 하고ㆍ발심을 하고ㆍ불도를 닦고ㆍ선정을 닦고ㆍ인욕을 하고 해야지, 이것이 중도적인 입장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수행이라고 할 수가 없고, 바람직한 삶이라고 할 수가 없다. 하는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다 도를 통하시고, 이론에 밝으시고 해서 그 나름대로 불교를 아는 것을 정리하신 분들이 수천ㆍ수만ㆍ수십만ㆍ수백만에 이르는데, 이 永明延壽禪師는, 여기 그 전에 [보살계를 받는 길] 이라는 책들 아마 가져가셔서 읽으셨을 줄 믿는데, 거기에 봐도 불교적인 안목이 아주 최고로 높은 분이고 또 이 분은... 제가 성철스님 모시고 살 때, “어떻게 하면 불교를 제대로 알 수가 있습니까?” 했더니, “종경록을 읽어라ㆍ종경록을 열 번이든 스무 번이든 읽어라.” 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종경록 이라는 것이 100권입니다.
이 永明延壽禪師 책입니다.
지금 근세에는 불교를 이론적으로, 또는 그 소견으로 제대로 알고 정리해서 표현한 분이 사실은 탄허스님하고 성철스님입니다. 이론적으로 표현해 놓은 분이요. 알기야 다 알고 다 도도 높고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체계를 세워서 딴 사람에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 제가 본 스님 중에서는 근세에는 탄허스님과 성철스님 이지요. 왜냐하면 그 분들은 강의한 책이 있고, 강의한 테이프도 있고, 그런 것이 당신들의 공부를 딱 정리한 겁니다. 성철스님은 스스로 “딴 사람들이 나보고 中道狂(중도광)이라고 한다.” 이런 말을 썼어요. 그런 말을 했듯이, 당신이 알고 있는 불교를 중도라고 하는 이 한 마디 말로 회통을 합니다. 중도로 회통을 해요. 일체 불교 이론을 전부 중도로 회통을 하는 그런 분입니다. 그래서 유명한 100일 법문도 처음부터 끝까지 중도로 일관된 말씀을 하셨습니다. 中道라고 하는 것은 말씀 드리면 그런 것입니다.
모든 존재는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와서 있는 것도 원리이고, 이런 공부 하는 것도 하나의 원리가 있고, 한 송이 꽃이 여기 와있는데도 그 나름의 원리가 다 있습니다. 그 원리를 이름 해서 中道라고 하는 것이지요. 부처님이라고 하든지ㆍ부처님제자라고 하든지ㆍ부처님 설법이라고 하든지, 이 모든 것들이 전부 원리가 있는데, 그 원리를 뭐라고 이름 할 것이냐? 中道라고 이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금강경을 보았습니다만, 금강경도 전부 中道 이야기입니다.
中道訟. 이것은 그 중도라고 하는 원리를 알아서 원리에 맞게 수행하는 것.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수행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존재ㆍ모든 수행은 전부 중도 원리에 입각한 것이기 때문에, 그 중도의 원리에 맞게 이해해서 수행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수행이고ㆍ이상적인 삶이고, 이것을 성공한 삶이라고 할 수도 있고ㆍ해탈의 삶이라고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짧은 글 속에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우리가 늘 일상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런 내용을 정말 중도로 이렇게 해석 하는 글은 정말 저는 못 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많은 글을 보았지만, 참~ 불교 해석을 이렇게 짧은 글 속에, 이렇게 명확하게 제대로 해석한 글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거의 첫 손가락 꼽는 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중요한 글입니다.
그래 ‘이것만 우리가 잘 이해하고, 내용을 터득하고 있으면, 이것을 포교하는데 라든지ㆍ여러분 법문하는데 라든지ㆍ또 첫째 우리가 생활 하는데 있어서, 정말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ㆍ걸리지 않고ㆍ집착하지 않고, 수행하고 살 수 있는 그런 내용이다.’ ←이렇게 저는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정말 가능하면 불교를 아는 분들에게 빨리, 기회만 되면 이것은, 이 글은 정말 소개해주고 싶어요. 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 화엄경 공부할 때도 ‘언젠가 이 글을 소개해드려야지,’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가 우리가 왕복서도 끝났고, 그래서 이것을 이번에 인쇄를 했습니다.
번호는 제가 순서대로 그냥 찾기 쉽도록 한다고 임의대로 그냥 매긴 것입니다.
萬善同歸中道頌
1. 菩提無發而發(보리무발이발)
2. 佛道無求而求(불도무구이구)
3. 妙用無行而行(묘용무행이행)
4. 眞智無作而作(진지무작이작)
5. 興悲悟其同體(흥비오기동체)
6. 行慈深入無緣(행자심입무연)
7. 無所捨而行檀(무소사이행단)
8. 無所持而具戒(무소지이구계)
9. 修進了無所起(수진료무소기)
10. 習忍達無所傷(습인달무소상)
11. 般若悟境無生(반야오경무생)
12. 禪定知心無住(선정지심무주)
13. 鑒無身而具相(감무신이구상)
14. 證無說而談詮(증무설이담전)
15. 建立水月道場(건립수월도량)
16. 莊嚴性空世界(장엄성공세계)
17. 羅列幻化供具(나열환화공구) ←16강-1
↓16강-2
18. 供養影響如來 19. 懺悔罪性本空 20. 勸請法身常住
21. 迴向了無所得 22. 隨喜福等眞如 23. 讚歎彼我虛玄
24. 發願能所平等 25.禮拜影現法會 26. 行道足躡虛空
27. 焚香妙達無生 28. 誦經深通實相 29. 散華顯諸無着
30. 彈指以表去塵 31. 施爲谷響度門 32. 修習空華萬行
33. 深入緣生性海 34. 常遊如幻法門 35. 誓斷無染塵勞
36. 願生惟心淨土 37. 履踐實際理地 38. 出入無得觀門
39. 降伏鏡像魔軍 40. 大作夢中佛事 41. 廣度如化含識
.42. 同證寂滅菩提
- 永明延壽禪師(904-975) 萬善同歸集 -
처음에 “보리심을 발 한다ㆍ발심 한다.” 그러지요? 우리가 불교에 귀의한 것이 전부 발심입니다. 발심을 우리가 “보리심을 발했다.” 구체적으로 하면 그러지요. 그것을 더 장황하게 말씀드리면 “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입니다.
그런데 그런 보리심을 발하는데, “발했다.” 고 해서 뭐 발한 흔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고, 또 그것을 우리가 추궁해 들어가 보면 발심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1. 菩提無發而發(보리무발이발)이라. 그랬습니다.
보리심은 발하는 것이 없이 발하는 것이다. 뭐 “보리심 발했다.” 고 그렇게 내세울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게 이해해야 됩니다.
無發而發이라. 발함이 없이 발한다. 또 바꾸어서 말하자면, 발심 하지만 발심함이 없다. 발해도 발함이 없고, 발함이 없이 발한다. 전부 이런 식입니다.
2. 佛道無求而求(불도무구이구)라.
우리가 보리심을 발해서 불도를 구하지요? 불도를 구하는데도 구함이 없이 구한다. 불도 구한다고 간판 걸고ㆍ굉장히 하는 척 하고ㆍ특히 참선하고ㆍ계 잘 지키고 하는 이들, 굉장히 생색내고 모양내지 않습니까? 중노릇도 그럴 것 같아요. 중노릇도 함이 없이 하는 중노릇이, 그것이 제대로 된 중노릇이지,
“내 중노릇 함네.” 하고 그렇게 하는 사람, 결국은 멀리 못가지요. 결국은 말뚝 신심이고 그것은 결국은 멀리 못갑니다. 중노릇도 하는 바 없이 하고, 하되 함이 없어야 되고요. 佛道無求而求라. 얼마나 짧은 글 속에, 하~~ 이것 설명하기로 하면요? 한 구절 가지고 한 시간을 설명해도 그 설명이 부족할 정도의 그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불도를 구하면 그 다음에 묘한 작용ㆍ아름다운 작용.
3. 妙用無行而行(묘용무행이행).
妙用 = 아름다운 행입니다. 그것이 뭐겠습니까?
보살행이고ㆍ정법행이고ㆍ포교행이고ㆍ남을 배려하고 남을 위하는 행위. 묘행입니다. 아름다운 행위. 아름다운 행은 어떻게요? 無行而行입니다.
행함이 없이 행한다. 어디 가서 봉사 잘 하고ㆍ보시 잘 하고ㆍ누구 배려 잘 하고ㆍ잘 가르치고, 다 아름다운 행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하는 것이 있으면, 그 사람 하는 행이나 마음에 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제대로 된 행이 아니지요.
無行而行이라야 그것이 제대로 된 행이다. 그래서 그 다음에 우리가 궁극적으로 참다운 지혜를 터득하는 것. 佛智라고도 할 수가 있고, 깨달음의 지혜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것을 여기서는 眞智라고 했습니다.
4. 眞智도 無作而作(진지무작이작)이라. 그랬습니다.
無作而作. 지음이 없이 짓는다. ‘나에게 지혜가 있다ㆍ없다.’ 여기에 무엇인가 相이 있고ㆍ흔적이 있고 하면 그것은 지혜가 아니지요. 無作而作.
똑같은 형식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쉬워요. 그 다음에
5. 興悲悟其同體(흥비오기동체). 그랬습니다.
우리가 “慈ㆍ悲” 할 때, 자와 비를 둘로 나눠서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사무량심도 慈ㆍ悲ㆍ喜ㆍ捨. ←이렇게 나누듯이 여기도
興ㆍ悲 = 悲心ㆍ연민심ㆍ어여삐 여기는 마음, 고통 받는 중생을 슬프게 여기고, 애석해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 이런 모든 마음이 悲자에 포함되어 있잖아요. 그런 마음을 일으키되, 어떻게 해야 되요? 나와 同體라고 하는 사실을 깨닫는 겁니다. 상대를 향해서, 중생을 향해서 그런 연민심을 일으키지만, 나하고 한 몸이라고 하는, 나를 보살피듯이, 내 자신을 보살피듯이 상대를 보살피는 것. 이것이 悲心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同體임을 깨닫는다 그랬습니다. 悲心을 일으키되 同體임을 깨닫는다. 그 다음에 行慈.
6. 行慈深入無緣(행자심입무연). 慈를 행하되, 사랑하는 마음.
이것은 어머니가 그야말로 오로지 그저 사랑만 베푸는 그런 慈인데요.
慈를 행하되 無緣까지도 깊이 들어간다. 우리는 보통 인연 있는 사람, 나하고 뭔가 관계가 있고 어떻게ㆍ어떻게 어디 가서도 무슨 같은 지역이냐?
학연ㆍ지연ㆍ불자냐?ㆍ비 불자냐? 이런 것 따지지요. 그래가지고 뭔가 좀 마음을 서로 교환하고 그럽니다. 그러다가 사기도 당하고 합니다만, 그런데 사실은 그런 조건을 마음속에 갖는 것부터가 문제입니다. 불교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無緣입니다. 인연 없는 사람ㆍ조건 없는 사람. 인연 없는 사람에게 까지도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인연 있는 사람 위해주고, 사랑하고 하는 것이야 그것은 누구나 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해요. 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도 다 합니다.
지지배배 노래하는 저 새들도 다 해요. 새들도 다 해요. 자기 새끼 사랑하는 것이야 새들이 더 잘하지요. 동물이 더 잘하지요. 여기에 사람과 동물과의 차이점이 나눠지는데요. 불교는 無緣중생, 인연 없는 사람에게 까지도 깊이 들어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랑을 행하는,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7. 無所捨而行檀(무소사이행단)이라.
이것은 보시. 지금부터 6바라밀이 나오는데요. 버리는 바 없이 檀바라밀을 행한다. 行檀. 檀자는 보시를 행한다. 그 말입니다. 누구에게 희사를 해도, 희사하는 바 없이 無相ㆍ無住相. 그런 말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 다음에
8. 無所持而具戒(무소지이구계)라.
이것은 지계입니다. 가지는 바 없이 계를 구족한다. 그 다음에 修進.
이것은 정진이지요.
9. 修進了無所起(수진료무소기)라.
정진을 닦되 일어나는바 없음을 깨닫는다. 여기서 了자는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정진을 닦되, 정진은 뭔가 열심히 하는 것이잖아요. 뭔가 마음으로부터 아주 활발한 그런 작용이 있는 것입니다. 일어남이 있는 것인데, 일어난바가 없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 마음속에서 열심히 정진하지만, 작은 물결 하나도 일어난 사실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 대신에 열심히 정진하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習忍. 인욕인데요.
10. 習忍達無所傷(습인달무소상).
인욕을 익히되 無所傷을 통달한다. 無所傷. 상하는바 없음을 통달한다.
이것이 우리가 아~ 참고ㆍ참고, 참자ㆍ참자ㆍ참자. 하는 동안에 우리가 傷합니다. 그 물은 스트레스라고 해요. ‘아~ 참아야지ㆍ참아야지.’
그런 사이에 우리는 많은 상처를 받습니다. 그것은 정말 상처지요. 그런데
우리 불교적인 제대로 된 인욕은 ‘참자ㆍ참자.’ 해서 아등바등 그냥 그런 노력을 기울여서 그렇게 해서 참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마음에 전혀 참는다고 하는 그런 흔적 없이, 그런 작용 없이 참아야 그것 제대로 참는 것. 그것을 無所傷이라고 그럽니다. 상하는바 없음을 통달한다.
그런 내 일이라고 생각해버리면ㆍ나라고 생각해버리면ㆍ상대와 내가 둘이 아니다. 라고 생각해버리면ㆍ스트레스 받을 까닭이 없지요. 그 때는 참자고할 것도 없습니다. 참자고할 것도 없을 때, 그 때 제대로 된 인욕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지혜지요.
11. 般若는 悟境無生(반야오경무생)이라.
반야는 경계가 본래 生함이 없음을 깨닫는다. 깨달음의 지혜는 본래 말하자면 생멸이 없는 도리를 아는 것. 본래로 생멸이 없는 도리를 아는 것이
지혜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그 말이지요. 悟境無生. 경계가 無生임을 깨닫는다. 그 다음에 선정인데요.
12. 禪定知心無住(선정지심무주)라.
마음이 머무는 바 없음을 안다. 禪定은 우리가 알고 있기를 어디에 머무는 것을 禪定이라고 하지요. 아닙니다. 마음이 어디에 머물러집니까?
應無所住而生其心(응무소주이생기심)인데요. 어디에도 머물지 않도록 되어 있는 것이 마음입니다. 절대로 머물지 않고 마음이 나고 있습니다.
절대로 머물지 않고 = 應無所住. 머물지 않고 而生其心입니다.
그 마음은 흘러가고 있는 겁니다. 우리 마음 됨됨이가 본래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도 보십시오. 禪定은 마음이 無住임을 아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붙들어 맨들 그것이 끊임없이 흘러가는데 붙들어 매 지나요?
관세음보살을 부르든지ㆍ화두를 들든지 끊임없이 흘러가고, 도망가고 있는 것이 우리 마음의 본색입니다. 마음의 본색. 그런 사실을 알면 그만 아등바등 마음을 어디에다 한 곳에 붙들어 매자고 하던 것을 다 놓아버리는 것이지요. 자유로워집니다. 그 때부터는 해탈입니다. ‘아~ 마음은 이렇게 자유로운 것이구나!’ 마음은 자유로운 것이구나! 하는 것이, 그것이 禪定입니다.
13. 鑒無身而具相(감무신이구상)이라.
하~, 이것도 참 좋은 구절입니다. 본래 우리가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그것이 반야심경에서 관세음보살의 안목이지요. 無身을 鑒 = 본다. 비춰본다. 거울 鑒자지요? 無身. 우리 몸은 본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인 줄을 환히 비춰 봐요.
그러면서 누구보다도 비싼 영락 구슬을 몸에 걸친 분이 관세음보살이고ㆍ화장을 가장 진하게 한분이 관세음보살이고ㆍ가장 비싼 옷을 입고 있는 분이 관세음보살입니다. 그것이 具相이라고요. 具相. 어줍짢은 수좌생활 할 때, 옷 막 그냥 함부로 입지요. 아주 머트롭고, 옷 함부로 입고, 모양새 함부로 하고 그렇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무상의 도리를, 無身. 無眼耳鼻舌身意의 도리를 알지만 모양을 잘 갖추면서ㆍ행위를 잘 갖추면서 사는 것. 이겁니다. 이것 참~ 기가 막힌 이야기지요.
鑒無身而具相이라. 형상을, 상을 갖춰야 된다. 모양새를 갖춰야 된다. 그것 형식 아니냐?ㆍ형식 아니냐? 우리가 불교에서 제일 잘 쓰는 소리가 그 형식이 무슨 필요 있느냐? 고, 절대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具相. 상을 갖춰야 되는 겁니다. 형식을 갖춰야 돼요. 그렇다고 無身의 도리를 모르나요? 알지요. 이 대목을 설 할 때 으레 관세음보살이야기를 합니다. 관세음보살은 누구보다도 無眼耳鼻舌身意를 아는 분이지만, 누구보다도 가장 비싼 영락 구슬을 걸쳤고ㆍ가장 비싼 옷을 입었고ㆍ가장 화려한 화장을 했고요. 가장 멋을 잘 부렸고ㆍ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우정 그렇게 나타내고 계신 분이 관세음보살이 아니냐? 이 한구절만 해도 오늘 아주 참 큰 소득입니다. 이렇게 알아야 됩니다.
14. 證無說而談詮(증무설이담전)이라. 그랬습니다.
진리가 말할 것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부처님도 마지막에 가서는 “나는 한 마디도 말한 바가 없다.” 라고 했잖아요. 無說을 깨달아요. 證無說. 말할 것이 없는 도리. 진리는 한 마디도 말할 것이 없는 도리를 다 깨달았지만, 談詮입니다. 끄트머리 詮자는 이치라는 뜻입니다. 이치를 말한다. 말할 것이 없는 도리를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이치를 말하는 겁니다. 이치를 말하되 사실은 말할 것이 없는 도리를 알고 있어야 됩니다. 아~! 대단한 내용이지요. 證無說而談詮이라. 과거 깨달으신 부처님이나 조사스님들은 다 그 많은 말씀을 했지만, 언제나 證無說而談詮. 말할 것이 없는 도리를 환히 알면서 이치를 누구보다도 많이 말씀하셨습니다.
15. 建立水月道場(건립수월도량)이라.
이것도 참~~ 좋은 말이지요. 우리가 축원문에도 청정도량ㆍ수월도량, 이런 말을 하는데, 水月道場을 건립한다. 물에 비친 달입니다. 우리가 어떤 불국사 같은 아름다운 사찰을 여러 수백 개ㆍ수천 개를 건립하더라도 그것은 물에 비친 달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 건립해야 됩니다. 물에 비친 달그림자. 그것, 실재하지도 않는 것 뭐 건립할 것이 있느냐?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건립해야 그것이 제대로 건립하는 것이지, ‘이것은 실재하는 것이다ㆍ이것은 무너지면 큰일 나는 것이다ㆍ이것은 영원한 것이다.’ 이렇게 집착하고 건립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불사를 하고 있지요. 각자 나름대로 크고 작은 불사를 다 하고 있습니다. 도량을 다 건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水月道場이라는 사실을 알고 건립해야 된다 이겁니다. 뒤에 가면 “大作夢中佛事(대작몽중불사)” 이런 말이 있습니다. “夢中佛事” 꿈에서 하는 불사를 크게 지어라. 그런 말이 뒤에 나오는데... 그 다음에
16. 莊嚴性空世界(장엄성공세계)라.
성품이 空한 世界를 장엄해요. 그러니까 자기 사는 방이라든지ㆍ절이라든지ㆍ도량이라든지, 온갖 것을 잘 꾸며야 됩니다. 꾸미되, 性空世界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 꾸며야 됩니다. 텅 비어서 空한 도리. 텅 비어서 空한 도리를 알고 마음껏 땅도 사들이고ㆍ절도사들이고ㆍ산도 사들이고, 그래놓고는 내놓을 때는 척 내놓고, 떠날 때는 미련 없이 떠날 줄 알고...
이 性空世界를 알고 그 도량을 장엄하면 하등의 문제가 없을 텐데, 그것을 모르고 ‘아~ 이것은 영원한 것ㆍ이것은 내가 애써서 한 것. 이렇게 하고 하니까 그만 다 해놓고도 복 다 까먹고 가는 것이지요. 마이너스 통장가지고 가는 겁니다.
莊嚴性空世界라. 性空世界를 장엄한다. 자기가 사는 동안은 열심히 불사해야 됩니다. 장엄해야 됩니다. 그러면서 性空世界임을 알고 장엄하라. 그 다음에
17. 羅列幻化供具(나열환화공구).
우리가 부처님 앞에 공양구 많이 올리지요? 정말 엄청난 공양구 올리지 않습니까? 초파일 돼 보십시오. 그것이 羅列幻化供具입니다. 환화와 같은 공양구라고 하는 사실을 알고 나열하는 겁니다. 아~ 참! 대단한 말씀 아닙니까? 그렇게 알고 공양구를 올리는 겁니다. 열심히 올려야 됩니다. 우리가 정성껏 올려야 되고ㆍ많이 올려야 되고요. 그러면서 幻化供具. 환화와 같은 공양구라고 하는 사실을 투철해야 됩니다. 幻化供具라고 해서 하나도 안 올리고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면 그것은 또 안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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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고맙습니다..나무대방광불화엄경 _()()()_
中道의 원리에 맞게 이해해서 수행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수행이고 성공과 해탈의 삶이다...고맙습니다. _()()()_
정성어린 녹취 덕분에 복습을 잘하였습니다 _()()()_
[妙用無行而行...] [鑒無身而具相...] [建立水月道場...] 釋대원성 님! 수고 하셨습니다. _()()()_
수고 하셨습니다..._()()()_
妙用無行而行, 修進了無所起, ...建立水月道場.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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眞智도 無作而作(진지무작이작)... 修進了無所起(수진료무소기)...고맙습니다. _()()()_
鑒無身而具相.羅列幻化供具..고맙습니다._()()()_
應無所住而生其心(응무소주이생기심) 어디에도 머물지 않도록 되어 있는 것이 마음..... 절대로 머물지 않고 마음이 나고 있습니다.절대로 머물지 않고 = 應無所住. 머물지 않고 而生其心입니다. 그 마음은 흘러가고 있는 겁니다. 우리 마음 됨됨이가 본래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禪定은 마음이 無住임을 아는 것..............
釋대원성 님! 고맙습니다.
中道訟. 이것은 그 중도라고 하는 원리를 알아서 원리에 맞게 수행하는 것.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수행이라는 것입니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鑒無身而具相...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_()()()_
석대원성님~!
고맙습니다.
요즘 萬善同歸中道頌 을 한문으로 쓰고 옆에 보살님 처럼 한글로 달아 봤습니다.
재미있으면서도 석대원성님이 얼마나 공들여서 녹취를 하고 계신지 다시 한번 보살님께 머리숙여 인사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마음이 가득하세요~~~
_()()()_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_()()()_
永明延壽禪師 萬善同歸中道頌 : 中道에 입각해서 보시 하고ㆍ발심 하고ㆍ불도 닦고ㆍ선정 닦고ㆍ인욕 하고,, 중도적인 입장에서라야 제대로 된 수행이고 바람직한 삶이다. 존재의 원리가 바로 中道이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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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_()_
萬善同歸中道頌 ... _()_
감사 합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았읍니다
萬善同歸 中道頌... 고맙습니다. 대방광불화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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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의 삶 무생 무주 묘행 나무대방광불화엄경
鑒無身而具相
修進了無所起(수진료무소기)라.
정진을 닦되 일어나는바 없음을 깨닫는다.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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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의 도리를, 無身. 無眼耳鼻舌身意의 도리를 알지만 모양을 잘 갖추면서ㆍ행위를 잘 갖추면서 사는 것. 이겁니다. 이것 참~ 기가 막힌 이야기지요...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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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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