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찰(韓國寺刹) 편액(扁額) 사진모음 (1)§
-편액(扁額)이란-
건물이나 문루 중앙 윗부분에 거는 액자
널빤지나 종이 또는 비단 등에 글씨나 그림을 그린 것이다.
대부분 가로로 길죽하여 횡액(橫額)이라고도 하고,
보통은 현판(懸板)이라고 부른다.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나 글씨의 경우 대개 대형이므로 대자(大字)라는 별칭도 있다.
편(扁)은 서(署)의 뜻으로 문호 위에 제목을 붙인다는 말이며,
액(額)은 이마 또는 형태를 뜻한다.
즉, 건물 정면의 문과 처마 사이에 붙여서 건물에 관련된 사항을 알려 주는 것이다.
중국 진(秦)나라 때 건물 명칭을 표시한 것을 서서(署書)라고 한 것이
편액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쓰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는 사찰 건물은
물론 도성과 문루, 궁궐 전각, 지방관아와 향교·서원·일반주택에까지 붙여졌다.
여기에 쓰이는 한자는 전서와 예서·해서·행서·초서 등 매우 다양하며,
요즘에는 한글로 된 편액도 많아졌다.
건물의 얼굴이므로 건물 격식에 어울리는 글씨와 장식을 더한다.
글씨의 경우는 당대 명필과 고승·문인의 것이 대부분이나,
더러는 옛 선현의 글씨를 모아 만들기도 하고 활자체나
특별히 만든 글씨로 장식하기도 한다.
글씨는 금니와 은니·먹·분청·호분 등으로 쓰고,
틀은 무늬와 색채를 넣어 주련(柱聯)과 함께 건물의 중요한 장식 수단이 된다.
이렇게 편액은 건물에 멋을 내는 수단임과 동시에 건물 명칭과 내력,
역사와 인물, 일화 등을 담고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조:두산백과사전)
전북 부안 능가산 내소사 일주문 -일중(一中)김충현(金忠顯)(1921~2006) 書-
그는 일찍이 한글 쓰기에 관심을 두어 여건이 어려운 일제시기에
[우리글씨 쓰는법]이라는 궁체 쓰기에 대한 저서를 냈고, 궁체 쓰기 작품을 창작하였다.
궁체 작품활동과 더불어 국내 유명기념물의 글씨를 많이 써서 남기는 등
국내외에 그의 한글 궁체의 금석문이 많이 있다.
한편 한자 예서체 느낌의 판본체를 최초로 창안하여 보급하여 초중등 교과서의
모범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북 부안 능가산 내소사 천왕문 -일중(一中)김충현(金忠顯)書-
경북 문경 운달산 김룡사 봉명루 -일중(一中)김충현(金忠顯)書-
일중 김충현 선생님 특유의 예서체입니다.
경기 양평 용문산 용문사 일주문 -일중(一中)김충현(金忠顯)1986년 書-
경기 양평 용문산 용문사 일주문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1986년 書-
양평 용문산 용문사 관음전 -일중(一中)김충현(金忠顯)書-
전북 고창 도솔산 선운사 -일중(一中)김충현(金忠顯)書-
일중 김충현은 대학강사, 교육기관 이사장, 서예단체장, 예술원 회원 등으로 활약하면서
한문서예와 한글서예의 일가를 이룬 서예가이다.
대구 팔공산 파계사 일주문 -일중(一中)김충현(金忠顯)書-
일중 김충현 선생님 특유의 예서체입니다.
경남 양산 천성산 홍룡사 요사채 -일중(一中)김충현(金忠顯)-
전북 정음 내장산 내장사 범종각 -일중(一中)김충현(金忠顯)-
강화도 낙가산 보문사 일주문 -여초(如初)김응현(金膺顯) (1927~2007) 80세書-
여초 선생은 1956년 서예단체인 ‘동방연서회’를 창립해 반세기 넘게 한국 서예계를 이끌어 왔으며,
작년 11월 타계한 친형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 선생과
함께 20세기 후반 한국 서예의 양대 산맥으로 불렸다
강화도 낙가산 보문사 일주문 -여초(如初)김응현(金膺顯) (1927~2007) 80세書-
수많은 대가들을 길러낸 스승이었기에 선생은 세계적으로도 그 명성을 떨쳤다.
중국 서단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그의 글씨를 접하고 모두 감탄을 금치 못했다는 일화는
서단에서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중국에서부터 시작된 필법이지만, 한국 대가의 손에 의해 완성된
서법미학의 경지가 오히려 중국인들을 매료시킨 셈이다.
중국서협 학술위원이며 중국서법대가인 종명선 서안교대 교수는
“고졸하나 우둔하지 않고 활달하나 법도가 있고, 염미하나 속되지 않고 웅혼하나
패도하지 않아 강과 유가 서로 돕고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룬다”고 그의 글씨를 극찬했다.
경남 남해 망운산 화방사 일주문 -여초(如初)김응현(金膺顯)(1927~2007) 書-
명지대 진태하 교수도 “여초의 세계는 문자향과 서권기가 넘치는 가운데 원숙과 창로의 경지에
들어 혼연천성하고 묘합자연하여 자신만의 서법언어를 향유하고 있다”며
“추사(秋史) 이후 여초(如初)”라고 평한 바 있다.
선생의 경지는 이미 법을 떠나 있었다. 법을 떠난 그의 필법이 가장 빛을 발한 것은
지난 2000년과 2001년 조선일보미술관과 중국 북경의 300년된 박물관 ‘영보재(榮寶齋)’의
개명(開名) 100주년 기념 초대전에서 열린 ‘좌수서전(左手書展)’을 통해서였다.
당시 교통사고로 오른팔이 골절상을 입어 더 이상 글씨를 쓸 수 없게 되자
선생은 왼손으로 붓을 잡았다.
선생이 선보인 좌수서법에는 오른손으로 써내려간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자유로움과 부드러움이 넘쳐났기 때문이었다.
대구 팔공산 파계사 -여초(如初)김응현(金膺顯)書 (1927~2007)-
여초 선생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서단의 대표적인 거목이었다.
지난해 11월 19일 타계한 친형 일중 김충현 선생과 함께 한국의 근대서단을 이끌어왔다.
형 일중 선생이 ‘일중묵연회’를 통해 후학을 양성해 왔다면,
여초 선생은 1956년 설립한 ‘동방연서회’를 통해 지금까지 7000여 명에 달하는 서예가들을
직접 길러왔다. 때문에 한국 서예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예가들의 대다수는
여초 선생과 일중 선생의 제자라는 말도 전해진다.
전남 해남 두륜산 대흥사 -여초(如初)김응현(金膺顯)書 (1927~2007)-
전남 해남 두륜산 일지암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書(1927~2007)-
영광 불갑산 불갑사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書-
속초 설악산 신흥사 사천왕문 -차우 김찬균 (此愚 金瓚均)書 -
특이하게도 편액의 오른쪽 위 귀퉁이에 한반도 지도가 두인(頭印)으로 찍혀 있고,
그 지도 안에는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통영 미륵산 관음선원의 보광루(普光樓), 양산 통도사의 범종루(梵鐘樓),
화성 용주사 천보루(天保樓) 안의 홍제루(弘濟樓)의 편액 글씨도 김찬균의 작품이다.
설악산 신흥사, 두륜산 대흥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에도
그가 글씨를 쓴 편액들이 많이 있는데, 그 편액들에는 모두 '일체유심조'가 새겨진
한반도 지도가 있다고 한다. 일종의 낙관인 셈이다.
속초 설악산 신흥사 사천왕문 -차우 김찬균 (此愚 金瓚均)書- 우리나라 지도 內 一切惟心造
부여 만수산 무량사 -차우 김찬균 (此愚 金瓚均)書- 우리나라 지도 內 一切惟心造
부산 태종대 태종사 -차우 김찬균 (此愚 金瓚均)書-
통영 미륵산 관음암 강성대 보광루-차우 김찬균 (此愚 金瓚均)書-
통영 미륵산 관음암 -차우 김찬균 (此愚 金瓚均)書- 우리나라 지도 內 一切惟心造
여주 봉미산 신륵사 -차우 김찬균 (此愚 金瓚均)書-
주자서체(朱子書體)를 즐겨 썼으며 한반도 지도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여주 봉미산 신륵사 -차우 김찬균 (此愚 金瓚均)書-
양산 영축산 통도사 -차우 김찬균 (此愚 金瓚均)書-
수정사대광전 -차우 김찬균 (此愚 金瓚均)書 (1910 ~ ? )-
해인총림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 -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 ~1933)-
본관:남평(南平). 자:용삼(容三), 호:해강(海岡), 萬二千峰主人, 白雲居士.
귀국 후 서울로 올라와 왕세자인 英親王의 사부(師父)가 되어 글씨를 가르쳤고,
1902년경 일본에 가서 사진기술을 익혀 1903년 천연당'(天然堂) 사진관 개관.
전서篆書, 예서隸書, 해서楷書,행서行書,초서草書에 모두 妙境을 이루었으며,
그림은 山水와 花鳥를 특히 蘭竹이 절묘 했다.
해인총림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 편액 -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 ~1933)-
금강산 구룡연의 20m에 달하는 미륵불(彌勒佛) 예서, 내금강의 大下奇絶)초서,
법기보살(法起菩薩) 해서 등 각서(刻書)가 남아 있다.
가야산 해인사 구광루 -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 ~1933)-
본관:남평(南平). 자:용삼(容三), 호:해강(海岡), 萬二千峰主人, 白雲居士.
가야산 해인사 대적광전 『대적광전』 -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 ~1933)-
본관:남평(南平). 자:용삼(容三), 호:해강(海岡), 萬二千峰主人, 白雲居士.
가야산 해인사 대적광전 『법보전』 -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 ~1933)-
본관:남평(南平). 자:용삼(容三), 호:해강(海岡), 萬二千峰主人, 白雲居士.
가야산 해인사 『대방광전』 -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 ~1933)-
본관:남평(南平). 자:용삼(容三), 호:해강(海岡), 萬二千峰主人, 白雲居士.
가야산 해인사 『금강계단』 -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 ~1933)-
본관:남평(南平). 자:용삼(容三), 호:해강(海岡), 萬二千峰主人, 白雲居士.
노악산 남장사 일주문 -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 ~1933)-
본관:남평(南平). 자:용삼(容三), 호:해강(海岡), 萬二千峰主人, 白雲居士.
금강산 건봉사 불이문 -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 ~1933)-
본관:남평(南平). 자:용삼(容三), 호:해강(海岡), 萬二千峰主人, 白雲居士.
상왕산 서산 개심사 -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 ~1933)-
본관:남평(南平). 자:용삼(容三), 호:해강(海岡), 萬二千峰主人, 白雲居士.
고불총림 백양사 -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 ~1933)-
본관:남평(南平). 자:용삼(容三), 호:해강(海岡), 萬二千峰主人, 白雲居士.
재약산 밀양 표충사 대광전 -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 ~1933)-
본관:남평(南平). 자:용삼(容三), 호:해강(海岡), 萬二千峰主人, 白雲居士.
태화산 공주 마곡사 -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 ~1933)-
본관:남평(南平). 자:용삼(容三), 호:해강(海岡), 萬二千峰主人, 白雲居士.
부소산 고란사 -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 ~1933)-
본관:남평(南平). 자:용삼(容三), 호:해강(海岡), 萬二千峰主人, 白雲居士.
조계산 순천 조계총림 송광사 -해강 김규진 (1868~1993)書-
본관:남평(南平). 자:용삼(容三), 호:해강(海岡), 萬二千峰主人, 白雲居士.
운제산 포항 오어사 -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 ~1933)-
본관:남평(南平). 자:용삼(容三), 호:해강(海岡), 萬二千峰主人, 白雲居士.
정족산 전등사 -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 ~1933)-
본관:남평(南平). 자:용삼(容三), 호:해강(海岡), 萬二千峰主人, 白雲居士.
삼신산 하동 쌍계사 -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 ~1933)-
본관:남평(南平). 자:용삼(容三), 호:해강(海岡), 萬二千峰主人, 白雲居士.
발본산 영월 금몽암 -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 ~1933)-
본관:남평(南平). 자:용삼(容三), 호:해강(海岡), 萬二千峰主人, 白雲居士.
발본산 영월 우화루 -해강 김규진 (海岡 金圭鎭 1868 ~1933)-
8세 때부터 외삼촌에게 글씨를 배웠고, 18세 때 청나라에 가서 8년간 書畵를 공부하고 돌아왔다.
귀국 후 서울로 올라와 왕세자인 英親王의 師父가 되어 글씨를 가르쳤고,
일본에 가서 사진기술을 익혀 1903년 소공동 대한문 앞에 '천연당'(天然堂)이라는 사진관을 열었다.
서화미술회,서화협회에 창립발기인으로 참가했으며, 계몽운동에 적극적인 활동.
전서篆書, 예서隸書, 해서楷書,행서行書,초서草書 모두 妙境을 이루었다. 출처: http://blog.daum.net/sws8007
曲"정한수 떠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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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단한 작품들 눈이 호강하고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