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moosim이가 지난 4월 중순에 아래와 같은 글을
11회 카페에 올린적이 있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을 순형 후배가 올렸는데 너무 정성스럽고,
깊이 있는 내용이라서 입이 다물어 지지가 않습니다...
시간있는 분 한번 읽어 보세여~~~
재미 있어여~~~
제목 : 순형 님한테 질의!!!
온갖 푸르름이 그 생기를 더해가는 때에
11회 친구와 그 가족들에게 경사스러운 일이 많아서
가슴 흐믓하네여~~~
참 오랫만일세...
11회에는 순형 후배를 비롯하여 훌륭하신 사댱님
그리고 인재들이 많아서 언제 들어와도 활기가 넘치네여~~~
향토사학자에 버금 가는 식견과 능력을 가진 후배님한테
우리들이 자란 시골에 관련된 내용을 좀 물어볼려구여???
괜찮지여???
다시면에는 많은 마을이 있잖아여???
열거해 보자면...
강암춘(표준말은 촌이겠지), 대룡춘, 칠봉춘, 호도춘, 영계춘, 유황춘, 쌍암춘, 영아춘...
월멸실, 사구실, 물안실(대곡)...
가삿굴(가동), 삽짝굴(운암), 중꼴(중동)...
그외에는 대부분이 두글자 또는 세글자로 끝나는 마을(부락) 같은데...
신용, 흑암, 초동, 죽지, 학정(메), 후석, 두만, 시계, 월곡, 반계, 송촌, 낭동, 직문, 화동, 조등, 월천, 영촌.....
위와 같이 마을 이름이 크게 ~춘, ~실, ~골, 그리고 기타인데
그 기준이 어떻게 되나여???
넘 어렵습니까?
씨알데기 없는 질문으로 피곤하게 하고 있습니까?
짜증내지 말고 알면 좀 갈쳐 주세여~~~
잘 갈쳐주면 또 다른 거 물어볼려구여...
날마다 좋은 일 많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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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순형 후배의 답글 입니다....
선배님 반갑습니다.
아이고 선배님!
정말 오랜만이고요,
또한 무척 반갑습니다.
지금 술 이빠이 마시고 들어와 카페가 그립고
친구들이 그리워 술김에... 그리고 오랜만에 우리 카페를 방문 했는디...
선배님께서 왠??? 방문...질문이라고요?
암튼 엄청 반갑습니다.
그런데요!
저에게 무슨 향토사학자까지??
중학교 졸업 무렵
우리마을 1년 선배 이상수(큰 이상수)선배님과
나눈 이야기중에 우리 고고학(考古學)한번 해 볼까??
라고 같이 말했던 적이 있었는데 선배님께서 말씀하시니 기억이 생생합니다.
사실은요
저는 전기(電氣)를 전공했고 전봇대나 뺀찌 정도는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 일로 밥 벌어 먹고 살고 있고요.
그러던 중
법(法)에 관심이 조금 있어서 법학(法學)을 하기도 했습니다.
고시도 한번 해볼까 하다가
뺀찌가 좋아서 그냥 뻰찌로 밥벌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공학을 하다보니 항상 딱딱하기도 하고 삶의 유연성도 부족한 것 같아서
가끔씩 취미로 사진, 비디오, 인터넷, 장고, 단소, 키타, 음악 등등을 좋아 했었고,
언젠가는
풍수지리와 수맥에 대해 깊이 빠져 본적이 있었습니다.
풍수지리는 최창조 교수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이 아주 재미있게 잘 하셔서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
우리 다시에 대해서는
풍수지리를 연구 하면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맞는지는 몰라도 나름대로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다시... 땅은
지금으로부터 1억 8천년에서 1억 3천년 전 쯤에 생긴 중생대 쥬라기
대보화강암류라고 합니다.
... (중략) ...
물론
영산강 주변은
모래성분이 많은 편이고,
포전(浦田)들은 단무지 무우 재배에 양호한 땅으로 유명 했지요!
... (중략) ...
다시의 지형은
백두대간 남쪽인 전라북도 장수 영취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호남정맥(湖南正脈)이라고 합니다.
이 산줄기의 한 가지는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의 경계를 이룬
장성 입암과 갈재에서 영광 불갑산으로 뻗었고,
이른바 노령산맥이라 부르는 이 멧발은 남서쪽으로 오르내리다가
목포 유달산 까지 이어집니다.
다시는
이 산줄기에서 나온 두갈래 멧발에 자리잡고 있는데,
한줄기는 나주와 함평의 경계에서 서쪽으로 건너 남쪽으로 내려온
백룡산(白龍山)능선이고,
또 한줄기는 금성산(나주)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온 신걸산(信傑山)
이라고 풍수지리학에서는 보고 있습니다.
그 큰 두 줄기중
백룡의 생기는 이불뫼재를 지나 남쪽으로 내려선 동곡리 대양매에서 두갈래로
갈라진형국 입니다.
그래서 그 산이 청림산(靑林山)과 대박산(大朴山)에 이른다고 풀이됩니다.
청림산은
여러갈래로 분기하여 땅기운을 전하고 있다고 보고 있고요.
... (중략) ...
신걸의 정기는
바로 남쪽 백호봉으로 이어져 임재의 묘가 있는 백호봉은
음택명당으로 소문난 곳 입니다.(회진 임씨... 백호..황진이...)
이 정기는 자지고개를 지나 거마산(擧馬山 :강암촌 뒷산)을 거쳐
옛 회진현터(현재 회진)를 꾸민 배경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시 정리해보면
금성산을 할애비산으로 삼아
우백호 겪인 백룡산 줄기는 북쪽으로 향하다가 서편으로 휘돌아
남쪽으로 살금살금 기면서 “샛골(수다)“에 도달해 다시의 아버지 산이 되고,
좌청룡인 신걸산은
서쪽으로 이어지다 남쪽으로 꿈틀거리며 “회진(시랑)“으로 다시의 주산이 되었다고 보고 있지요.
... (중략) ...
영산강은
다시의 남쪽을 굽비치며 땅금이 되어 감도는데,
굽이돈다는 데서 “구진”(구진포), “회진(回津)”의 땅 이름이 생겼다는 이야기로 알고 있습니다.
즉
마을 이름이나 지명은 풍수지리와 그 곳의 지형에 따라 정해지지 않았나 생각 해 봅니다.
다시의 주요 산천은
금성산, 신걸산, 백룡산, 청림산, 거마산, 천마봉, 이불뫼, 범산 그리고 영산강, 신광천, 문평천,
고막원천, 송정천, 가동천이 대표적입니다.
우리 다시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지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지만 추정하기로는 구석기 시대로 추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럼
다시라는 이름의 유래는
원래 다시면은 수다면(水多面)과 시랑면(侍郞面), 죽포면(竹浦面)의 3개 면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를 통합하여 수다면의 “다”와 시랑면의 “시”를 취해 다시면(多侍面)이라 부르고 있답니다.
... (중략) ...
1789년(정조 13년)에 만들어진 자료를 보면
<죽포면>
죽지촌(竹池村), 산직촌, 신기촌, 산두촌, 절구촌, 석포촌, 당저촌, 청림촌,
동백촌, 증문촌, 천곡촌, 송정촌 으로 되어 있었고,
<시랑면>은
동촌, 나곡촌, 모정촌, 풍호촌, 누저촌, 사직촌, 남산촌, 유산촌, 정촌, 본촌, 쌍암촌,
출동촌, 가사촌, 복암촌으로 되어 있었으며,
<수다면>은
신수촌, 송정촌, 신기촌, 계동촌, 본촌, 천변촌, 화곡촌, 영촌, 장내촌, 반계촌,
고장촌, 원정촌, 동구촌, 정가촌, 영창촌, 창촌, 후석촌으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면리제(面里制)가 정착 되었다고 하는데...
그 때 전국의 행정 형태를 보면
주(州), 부(俯), 군(郡), 현(縣), 밑에는 면(面)이 있고, 면 밑에는
리(里), 촌(村), 동(洞)이 있었는데,
그때
다시 행정 구역을 정리하면서 리, 촌, 동으로 바뀌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상기 내용을
다시정리 해 보면
주, 부, 군, 현 밑에 다시면이 있고.
그 다음
복암리, 화정리, 영동리 등등은 리(里)가 형성되고,
리 밑에
강암촌이나, 동촌, 당촌, 본촌 등등은 촌(村)이라 따르고,
그 밑에
화동, 중동, 가동 등등은 동(洞)을 따랐지 않았나 생각 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리나, 촌이나, 동은 자연스러운 행정 구역으로 생각하고요.
선배님께서 말씀하신
삽작골(운암) 등... 골은?
골짜기를 뜻하지 않나 생각하는데요.
골은 명사로 <고을>의 준말, <골짜기>의 준말, <고랑>의 준말, 깊은 구덩이로
볼 수 있습니다.
한문에서 보시면
마을 이름에 곡(谷)을 많이 쓰는데,
이는
계곡(溪谷 : 깊은 골짜기), 심곡(深谷 : 깊은 골짜기) 등의
산과 산사이의 골짜기에 마을이 있으면 골 또는 곡을 사용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삽작골(운암)은
운암마을 뒷산에 구름바위가 있다 해서 운암이 되었다고 하며,
삽작골은, 동네 주위에 삽초(국화과에 속하는 다년초)라는 식물이 많이 서식 했는데
그래서 삽초골(삽초가 많은 골짜기) 삽작골, 출동으로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시랑골(랑동)은
고려 때 양동재와 김탁이 시랑(侍郞 )을 맡은 뒤 공민왕이 혼탁하자 이곳에 내려와 살면서
시랑골이라 불렀단 말도 있으나,
실안(산속)골..(산속의 골짜기)에서 유래 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름이 두 글자로 된 마을
조등, 후석, 반계, 두만, 송촌, 흑암...등등...
왜??? 두 글자로 된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했고요.
다만 행정명을 따르지 않았을까는 고민 해보았습니다.
아마 리나, 촌, 동을 따르긴 했을 텐데 전해져 내려오면서 명칭을 붙이기가
거북한 부분은 뒤에 붙은 행정명이 자연스럽게 없어지지 않았나 생각 하는데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몇 가지 근거로 짐작 할 수 있는 것은
조등 마을의 경우 풍수지리나 지형학 적으로 볼 때
지형이 새등처럼 생겨서 조등이라 했지 않았나 생각하며,
송촌은 원래 고장촌이라 했으며,
그런데 땅이 비옥(땅이 비옥 한곳에서는 소나무가 잘 자람)하여 소나무가 무성하여
송촌이라 했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송촌리 아닙니까?
흑암은
옛날 마을 입구에 큰 검은돌(고인돌) 3개가 있었는데
그 것을 기준으로 흑암이라 했고,
중동은 다시면 들 한 복판에 있다해서
중몰이라 부른 것이 한자로 중동이 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아참 그리고
월명실...실은?
조선시대 때 나주 목사가 이 곳을 지나다가 마을 뒷산에 떠오르는 달이
유난히 밝아 월명이라 했고, 마을 이름을 월명실이라 했다는데 맞나 모르지요?
월명실은 상월, 중월, 하월로 마을이 나뉜다는 말도 있던데?
실은?
마을을 표시하는데, 마실(마을), 마스.ㄹ(여기서 표현이 안됨) 을 표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리나 촌, 동을 쓰지 않고 실을 쓴 이유는 아마 그 마을에
지금으로 말 하면 관청(면사무소 등)이 있는 마을이 아니였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100[%] 내 생각 입니다.
...
혹은
가느다랗고 길게 펼쳐진 마을 (예, 실고추, 실버들...등등)
아구 나도 조금 연구 좀 해봐야겠네요!!
아마 옛말 중 마실(마을)이란 뜻으로 판단합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술 마시고 이제 들어와 몇 자 적어 봅니다.
술김에 마구 두둘겼는디 오타 없는지 모르겠습니다.
이해 부탁드려요.....
혹시 오타가 있어도 수정하지 않겠습니다.
또 언제 들어올줄 모르거든요!
술을 엄청 마셔야만 방문할것 같아서요.
죄송합니다.
선배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탁드리는데요!
또 질문 하신다고요?
선배님!
질문하지 마세요!!ㅎㅎㅎ
제가 무슨 선생님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고학자도 아닌데...
이 글을 쓰면서도 술은 마셨지만 많이 고민 했거든요!!
글 내용이 몇 % 나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또 선배님께서 질문 하시게 되고
내가 선배님 글에 리플 달면서 아는척 하게되면,
우리 동창들이 잘난척 한다고 미워할까봐 걱정이 많이 됩니다.
나 그만 미움받게 해 주세요!!ㅎㅎㅎ
그럼
선배님 두루두루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글/이순형
첫댓글 우와!~~~~역시 순형이 후배 답네여~~후배에 대해서 익히 많이 들었었고,우리 올케언니도 많이 칭찬 하던데 역시 정말 공부 많이 했습니다.그런데..시랑면,수다면,죽포면이 합쳐 다시면이 됐다는데 우리 월천은 어느 면에 속했는지 안나오네여~~참좋은 동네인데 휘영청 달이 냇가에 비춰 월천이라는데...
아이고!!..선배님~ 온 동네 소문 다 내셔부렀네유~~이거 어떻게 해야합니까?ㅎㅎㅎ 선배님! 부족한 글...여기까지 소문내시면 나 어떻게 하라고요?ㅎㅎㅎ..이럴줄 알았으면 많이 준비해서 쓸걸 그랬네요!.아참!! 선배님 시간나시면 제가 운영하는 전기정보마당(http://www.elecpage.com)도 놀러 와 주세요!! *안녕히계세요*
선배님들 카페(10회) 너무 잘 운영되시네요... 주인 어르신을 비롯하여 많은 선배님들 건강들하시고 많이많이 행복하세요!!!...저희 11회 카페도 종종 방문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저 나가겠습니다... 꾸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