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디자인社 ‘탠저린’ CEO 마틴 다비셔 당신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당신을 이끄는 것… 그런 것이 훌륭한 디자인이죠 삼성 이건희 회장에게 묻고 싶어요 디자인을 통해 어디로 갈 것인지
런던=김현진 산업부 기자 입력 : 2007.10.05 14:06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탠저린(Tangerine)은 세계적인 제품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를 키웠다. 뉴캐슬대학 졸업 후 탠저린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첫 발을 내디딘 아이브는 현재 전 세계 젊은이들을 아이팟으로 사로잡았다. 당시에도 탠저린의 CEO였던 마틴 다비셔(Darbyshire)는 “하지만 결국 애플이 그를 키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너선을 애플이 아닌 델에 넣었다면 아마 그가 오늘만큼 성공적이지는 못했을 겁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아는 CEO(스티브 잡스)가 버티고 있으면 디자이너가 헛걸음할 확률이 획기적으로 줄어들면서 일하기가 훨씬 편해지죠.”
탠저린은 항공기 인테리어, 자동차, 가전제품, 휴대폰, 엘리베이터, 고객 서비스 등 광범한 영역으로 디자인을 확장하고 있는 회사다. 다음은 다비셔와의 일문일답.
―오늘날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한 디자인은 어떤 디자인인가요?
“블루오션이건 레드오션이건 소비자들을 ‘설득’하는 디자인이 돼야 합니다. 당신의 제품이 레드오션(red ocean)에 있는 경우엔 일단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고 우리의 제품을 사도록 설득해야 하고, 블루오션(blue ocean)에 진입할 때는 소비자들이 전혀 접하지 못한 제품을 사도록 ‘설득’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그 어느 때보다 소통(communication)이 중요해지죠. 소비자들과의 소통에 디자인만큼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디자인은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언어와 같으니까요.”
―디자인이라는 언어를 가장 효율적으로 구사한 사례를 들어 주신다면?
“모든 사람들이 애플을 그 예로 들 거예요. 애플이 세계 최고의 디자인이라는 찬사를 듣는 이유는? 단순히 겉모양 때문만은 아니죠. 애플은 제품과 광고, 소비자들과의 소통과 교감을 완전히 하나로 통합시켰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일일이 음반 제작자들과 가수들을 찾아가 ‘아이튠스’는 분명히 실현될 것’이라고 이들을 설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겠어요? 벤츠의 경우엔 ‘문이 제대로 닫히는’ 디자인을 연구하는 데 수년을 투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결국 벤츠라는 자동차를 사라고 설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자동차를 사기 위해 당신은 일단 겉모습을 보고 만족한 후 차에 한 번 타 보겠죠. 문을 닫을 때 느낌까지 좋다면 바로 그때 구매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고의 디자인이라는 게 있을까요.
“나는 최고의 디자인은 보이지 않는다고(invisible) 생각합니다. 암스테르담의 스키폴공항을 걸어 보신 적이 있나요? 이곳엔 수많은 표지판들이 정말 적재적소에 붙어 당신이 원하는 곳을 매우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게 해줍니다. 당신이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정말 필요한 위치에 꼭꼭 붙어 있어요. 이와 같이 아주 훌륭한 디자인은 ‘당신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당신을 이끄는’ 것입니다.”
―최악의 디자인은?
“최악의 디자인이라면…. 에어버스의 A380을 꼽겠어요. 600명의 사람을 한 공간에 타게 한다면…. (그는 생각도 하기 싫은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만약 내리는 데 1시간이나 걸리는 에어버스와 30분 걸리는 보잉 747 중 하나를 고르라면 어떤 기종을 타겠어요? 물론 에어버스 입장에선 혁신이지만 고객의 입장에선 ‘글쎄’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에어버스는 왜 그런 기종을 만들었을까요?
“몇년 전 에어버스 사람들은 항공산업의 미래를 내다보며 세계화에 따라 항공기를 이용하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판단했어요. 따라서 당연히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항공기의 용량과 효율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겠죠. 이용자가 증가했다는 점은 맞았지만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이코노미석) 산업의 수익은 점점 낮아지기 시작했죠. 많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것보다 소수의 부자들을 상대로 하는 사업이 훨씬 수익이 좋아졌다는 뜻입니다. 모든 항공업체들은 비즈니스석·일등석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합니다. 획기적인 디자인을 통해 소비자에게 적당한 보상을 줘야 합니다. 미국이나 유럽 노선의 경우엔 비즈니스석이 꽉꽉 차죠. ‘서비스’까지 효과적으로 디자인했기 때문입니다.”
―서비스를 디자인한다? 새로운 개념이네요.
“서비스를 디자인한다는 것은 결국 ‘소비자들의 경험을 디자인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에요. 즉 소비자들의 감정을 디자인하는 거죠. 항공기를 타는 데 있어서 소비자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게 뭔지 아세요? 바로 사람들이 항공 티켓을 손에 쥐는 순간 항공사에 의해 통제된 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비자들은 자유를 원했습니다. 샴페인이나 고급 음식이나 제품들은 그들이 늘 누리는 것들이죠. 우리는 브리티시항공의 일등석을 디자인하면서 이러한 부분을 고려해 ‘자기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의자’를 디자인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의자를 디자인할 수 있다는 생각은 누군가에 의해 통제된다는 생각을 잠재워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요?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중역들이 디자인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고, 어떤 전략을 발전시켜 나가는 데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느냐가 중요합니다. 아직도 아시아 기업들의 경우엔 디자인을 통해 뭘 얻고 싶은지, 경영전략에 디자인이라는 요소를 어떻게 녹일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누가 디자인 부문을 전담하는지 분명하지 않은 경우도 많고, 뚜렷한 비전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건희 회장에게 거꾸로 ‘디자인을 통해 어디로 갈 것인지’를 묻는 게 흥미로울 수 있어요. 기업들은 디자인을 통해 자신이 어디에 도달하려고 하는지 먼저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