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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증명」
정지아, in 「제4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2018)」, 문학사상, 2018, pp. 228-251.(P.315)
- 정지아(1965-) 전남 구례, 중앙대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수료. 1990년 『빨치산의 딸』을 출간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고욤나무〉가 당선.
*** 우리나라 철학 교육에서 ‘신 존재 증명’으로 번역되어 있는 것이 일본제국주의 잔재라는 생각이 든다. 실재 번역은 이제 ‘신 현존 증명’으로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소설의 제목도 내용상으로 「존재의 증명」이라기보다 「현존 증명」이 더 나을 것이다. 작가의 글투는 존재가 아니란 현존으로 쓰고 있은 것 같다. 주인공의 하루 이든 또는 삶의 나날이든, 존재가 아니라 현존이다. 이를 실존으로 하는 것도 일제의 영향이리라. (52RLH)
* 인간이 안다는 것을 백지(tabla rassa)에서 출발한다면, 자신이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하는 말이 맞는 말인가? 공(空)은 공이 아니라 비규정적인 것들로 가득 차 있는 무엇이다. 그 무엇을 없다고 하는 것은 이익 또는 관심이 없어서 규정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 공(空)을 철학적 본질로서 아페이론으로 또는 집합론에서 공집합일 수 있다. 공집합은 없는 것이 아니라 있기는 있는데 현재 요소로서 있는 것과 다른 것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자아(自我)라는 것은 원래 무엇으로 있는 것이지만 이것 또는 저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아? 그것은 무엇인가? 즉 이뭣꼬 라고 다시 물을 때, 인간의 본성 인간의 자연이 무엇인가라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무엇을 영혼이라 부를 수 있지만, 영혼은 이데아도 관념도 개념도 아니라 자라서 성숙하고 확장하며 생성하면서 형성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비규정적이기에 없는 것 같이 여겨지지만 그래도 있다. (52RLG)
** 안다는 것을 규정이나 정의를 통해서 하는 것도 있지만, 느낌과 분위기를 통해서 아는 것도 있다. 벩송이 공감성을 통해서 아는 것이 토대이며 심층에 가깝고, 추론적 지성에 의해 일반화에 의해 아는 것은 상층이며 사회적이라고 보았다. 이 둘의 인식이 다른 길이라는 것을 고대철학도 근세철학도 알고 있었는데 서로 대응하거나 정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여겼다. 벩송이 이런 것을 철학사에서 이원성처럼 여긴 것이 착오라고 한다. 하나의 현존(실재성) 속에서 어느 부분이 먼저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양면성을 띠고 나타난다고 한다. 이 양면성을 지닌 인간의 의식이 의식의 이중화에서, 두 개의 실체니, 두 개의 속성이니, 인격의 분열이니 설명하고 해석하려 했다. 두 개의 실체니 속성에서 뭔가가 갈라지는 것이 있다고 여기는 것, 이것을 선승들이 선문답하며너 말하는 족족 개구즉착(開口卽錯)이 되거나, 또는 서양의 유머의 발생으로 파라독스드을 생산하거나, 쓸데없는 모방물들을 생겨나게 한다. 그런데 그런 모방물이 겉으로만 드러난 현상들(색, 色)이고 실재는 드러나지 않은 안면(공空)인 셈이다. 그런데 그 공(空)은 볼 수 없고 표현할 수 없지만, 내재하는 실재성이라는 점에서 현존(색, 色)이며, 이 현존에 비해 덧없는 현상들은 공허할 정도로 얇은 막과 같은 것이기에 공이라 할 수 있다. 환상에서 슈퍼맨이 지구를 구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 그것이 현존에서 얇은 습자지가 팔랑거리며 아파트 단지에서 떨어지는 모습과 같았다. (56PKC)
***
윌리엄 제임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어떤 이가 뉴욕의 자기 상점을 가지고 있는 부른(Bourn)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어느 날 자기 상점에서 내가 여기 왜 왔지 라고 문득 자문하였다. 도대체 그래서 제임스가 그를 대담하면서 자세히 탐색해보니, 그는 브라운(Broun)이라는 목사이며 시카고에 살았다고 한다. 시카고에 조사하니 어느 날 브라운 목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 브라운이 맞다. 제임스의 해설에 따르면 브라운은 목사가 하기 싫어서 어느 날 돈은 찾아서 뉴욕에서 조그만 상점을 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가 다시 본래의 자기를 찾아서 상담을 했다고 한다. 벩송은 이 사례를 이중인격의 예로서 제시하였고,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고 하였다. 사중 인격도 있다고 한다. 벩송은 이에 대해 스키조(분열증)라고 명명하지 않았지만, 들뢰즈가 말하는 스키조일 것이다. 이 단편 소설은 분열증을 그려보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자아가 성립되지 않아도 살아간다까지는 아니지만, 또는 자아의 상실은 자신의 일을 잊게 하지만, 자기의 취미 또는 취향(심미적 인식)은 그대로 살아있다고 작가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것이다. 취향과 취미, 향(냄새)와 (입)맛, 놀이와 오락 등이 자아의 자연(본성)으로서 마치 전제처럼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기억 상실이라고 하더라도 예술적 감성 또는 감화가 바탕(심층)으로 남아 있어서 신체가 자기 안정성(생존성)을 유지한다고 한 것 같은데, 그럴까. 작가는 부분상실 또는 망각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지, 자아의 분열증 또는 이중인격의 탐색하지는 않은 것 같다. 조금이라도 잊어보는 것이 삶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럴까. 부분상실 또는 부분망각은 어느 인간이든 행위의 갈림길에서 하나의 선택에서 이미 다른 하나를 망각으로 밀어낸다. 인간은 총체적 기억을 통해서 살지만, 추억들 중에서 많은 부분들을 망각으로 밀어내면서 자기 긍정을 계속 유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52RLH)
*****「존재의 증명」 내용 중에서
“저․‥… 저를 아니시나요?” (230)
“저에 대해 또 알고 계시는 게 있나요?”(230)
“제가 뭐하는 사람 같으세요?” (231)
“그 밖에 저에 대해 아시는 게 있나요?” (232)
그는 지갑을 열었다. 지갑 안은 토넷 No. 14만큼이나 단순 했다.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은 물론 그 흔한 카드조차 없었다. 든 것이라곤 빳빳한 5만 원권 몇 장뿐이었다. (235)
이래서 아이폰을 쓰는 건가 의심하면서 그는 즐겨찾기를 검색했다. 어떤 번호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연락처를 다시 검색했다. 단 하나의 번호조차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236)
그는 여기라도 제발 단서가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트위터를 열었다. .. 각 트위터마다 음식, 의자, 조명, 영행에 관한 남의 글과 사진들이 가득 차 있었다. 기억을 잃은 그가 떠올렸던 커피와 의자에 관한 정보의 출처가 트위터였던 것이다. (237)
“정말입니다. 갑자기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제 이름도요. 어디 살았는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누군지 좀 찾아주세요.” (240)
“일단 지문 조회부터 해 봅시다.” (241)
그의 생각에도 그랬다. 지금 그가 한 영어는 영국 억양의 보스턴 사투리에 가까웠다. 미국 중에서도 동부 뉴욕 부근에 거주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243)
집을 찾을 가능성은 이제 휴대폰 추적뿐이었다. ... [휴대폰] 개통자는 62세 부산 사는 남자였던 것이다. 게다가 그 남자는 최근 사망신고 된 상태였다. (243-244)
“[211동] 701호가 자가인지 전세인지 좀 알 수 있을까요? 그래야 이 분 신원을 확인할 수 있어서요.” .. “자가 소유네요. 근데 소유주가 이 분은 아닌데요. 연세가 있으세요. 여자구요. 53년생 송경자씨가 소유주네요.” (247)
세계 최초의 투명의자 라 마리를 디자인한 필립 스탁(Philippe Starck, 1949-)은 부자를 위해 2억 달러짜리 요트를 디자인하지만 가난한 사람도 살 수 있는 2달러짜리 우유병도 디자인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취향이란 그런 것이다. 취향은 돈이 결정하지 않는다. 사람의 품격이 취향을 결정한다. 아니 전제와 결론이 바뀌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깝다. 취향이 곧 사람의 본질인 것이다. 기억은 사라져도 취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그렇게 믿었다. 이토고 소파가 잠을 불렀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편안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혼란스럽고 고단한 하루였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도 상관없었다. 이 집의 공간을 채운 것들이 곧 그였다. (250-251, 마지막 문단 끝부분)
[그나마도 커피, 의자, 등의 기호(취향)이야 시대의 자식이니 그럴 것이다. 그가 들어간 공간이 그를 인식하게 하는 근거로 삼는 것은 자기(soi)이다. 생명체는 그것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토지와 산과 물 그리고 오랜 과정에서 먹었던 밥 김치 등이 무의식에 있다. 그 무의식의 상실이 아니라, 그 무의식을 집어삼키고 덮고 있는 의식이 그가 살아온 취향(기호)이다. 취향은 삶의 미적 감정을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에 젖어서 습관화된 제국주의 산물이다. 누릉지, 막걸리가 생각나지 않을까? 그가 사는 환경이 특별한 커피와 특별한 잡지에서나 보는 의자를 보고서 살았던 그 흔적들, 추억들이다. 추억들은 기억이 아니라 환경에서 부딪힌 골패인 공간의 산물이다. 그래서 그런 공간을 자기(soi)라고 한다. 자아는 같잖은 생각과 사랑을 느끼는 결에서 생성하였고 하고 있고, 할 것이다. (52RLI)
# 참조***********
[로스팅(Coffee Roasting): 생두(Green Bean)에 열을 가하여 볶는 것으로 ... 팍' 하고 튀게 되는데 이때 시점을 1차 pop 또는 1차 크랙 이라고 합니다. / 여기서 팝(pop)이라 하는 것은 팝콘이 튀겨질 때 ‘팍 팍’ 또는 ‘팝 팝’이라는 소리에서 나온 의성어 이다.
[하라(Harrar): 하라(하라르) 커피는 에티오피아를 대표하는 전통 커피이다. 하라르는 에티오피아 동부에 위치한 도시로 하라리 주의 주도이며 인구는 147,306명, 높이는 1,885m이다. / 에티오피아 Harrar 녹색 커피는 Longberry (가장 큰 커피 콩), Shortberry (작은 콩), Mocha (Moka, Mocca) 등의 원두 커피 로 이루어져 있다
[피베리(Peaberry)는 커피콩의 일종이다. 일반적인 커피열매는 커피체리 안에 두개의 콩을 가지고 있으나, 피베리(Peaberry) 한 개의 콩만을 가지고 있는 변종이다. ]
[발퀴레 로시(Wlaküre rossi): 도자기 찻잔.]
[토넷 No.14: 이 의자를 만든 미하릴 토넷은 금형틀 안에 나무를 넣고 구부리는 획기적인 기술을 발명했다. 한마디로 산업혁명기의 기념비적 작품인 것이다. (234)]
[루이고스트(Louis Goaste): 산업디자인계의 거장 필립스탁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루이고스트(Louis Goaste) 체어입니다. 프랑스 루이 15세 시대에 유행하였던 신고전주의 스타일을 그만의 느낌으로 재해석하여 고안한 제품이다.]
*** 커피 볶는 법
왼쪽 원두^^
신맛, 떫은 맛, 휑한 맛
3분 30초 - 1팝
4: 30초 - 1팝 활성화
수망높이 올리고
5: 30초에 -1팝이 잦아든다
6: 30초에 2팝
7분 20초에 쿨링
오른쪽 원두^^
쓴맛, 단맛조금, 바디감...
3분 15초-1팝
5분10초-활성화
5분 30초-수망높이 올리고
6: 10초-2팝
8:00-2팝 활성화
11:00분 2팝이 계속 진행된다.
12:00쿨링했다.
[아르튀르 랭보(Jean Nicolas Arthur Rimbaud, 1854–1891) 프랑스 시인. 1872년 7월 7일 베르렌과 함께 벨기에로, 1973년 6월에 두 연인은 런던에 있었다. 7월 8일 랭보 브뤽셀에서 베를렌과 재결합하다. 1973년 7월 10일 술에 취한 베를렌이 랭보에게 두 발의 총을 쏘았다. 베를렌은 8월에 2년형을 언도 받았다.]
[재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 1959-). 미니멀리즘 대표자. 영국을 대표하는 산업 디자이너
[로스 러브그로브 (Ross Lovegrove, 1958-) "캡틴 오가닉"이라 불리는 유기적 디자인의 대가. 영국의 산업디자이너.
[필립 스탁(Philippe Starck, 1949-) 프랑스의 제품 디자이너. 파리 에꼴 카몽도(École Camondo)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968년에 그는 공기 주입식 제품들을 생산하는 그의 첫 번째 회사를 설립 하였고, 1969년에는 피에르 까르뎅(Pierre Cardin)의 아트 디렉터가 되었다. // 까르댕(Pietro Costante Cardin, 1922-) 이탈리아 출신 프랑스인, 디자이너, 사업가]]
(4:07, 52RLH) (4:16, 52RLI) (4:31, 56PKC)
# [2019년 여름 이야기이구나]
* 예전에는 하지(夏至)가 지날 때부터 장마가 시작되고 매미 소리가 요란했는데, 올해는 오늘 밤 2시가 되어서 처음으로 매미 한 마리가 매~엠 약하게 소리 내다 그쳤다. 그리고 조용하다. 소서(小暑)와 대서(大暑) 한 중간인 이때까지, 서울이 건조했다는 것이다. 여러 마리의 매미 합창을 아침부터 들을 수 있을라나. (52RLH) ***
하루 종일 들을 수 없었다. 이날 한 차례 비가 왔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점심 먹고 나서야 인왕산 밑에서 매미소리를 듣는다. 매미는 땅 속이 질펀해야 무른 땅을 헤집고 허물을 벗으로 나오는 것인가 보다. (52RLI)
## [여러 해 지나 덧붙이다.]
* 어제(230427) 트윗에서 보니 경남 양산으로 내려간 시민 문재인이 ‘평산책방’을 열었다고 한다.
- 이 날 추천의 책이 “아버지의 해방일지”라고 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창비, 2022년 09월 02일, 268쪽
또한 영화 “문재인입니다”가 5월 11일 개봉할 것이라 한다.
= [추억들은 많지만 기억을 이어가는 것은 삶이다. 추억들의 장면은 역사 속에서 환원될 수 없는 영원으로 남아있다. 벩송에 따르면. 그 추억 장면들은 바꿀 수 없는 영원환 장면이지만, 세월을 이어가며 살아있는 이미지로 현재에 등장시키는 것은 인민이다. 이 작가가 추억들을 맞추어보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기억의 능력이 있느냐고 물을 것이다. 추억들의 장면들은 좌측에서 또는 우측에서, 멀리서 또는 소문으로 들어서 아는 방식에서 등등에 따라 다르다. 그 기억의 권능이 현재에 작동하는 방식에 따라, 꼴꽁이든, 우파이든, 평범하든 좌파이든, 빨찌산이든 분류가 될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차이, 구별 등이 아니라, 삶에서 오랜 과정에서 노력하며 계열을 지니는 분류가 필요할 것이다. (56OM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