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의 보일러가 고장이 났는지 밤 새 하도 더워서 창문을 열어야 할 지경으로 따뜻했다. TV에서는 연상 오늘부터 엄청난 추위가 온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실감이 나질 않는다. 오늘도 일출은 글렀다. 아침부터 찌뿌듯하니 흐린 날씨다. 07:30, 물곰탕을 잘 한다는 사돈집(속초시 영랑동 속초 요양병원 맞은 편 골목 안/033-633-0915)엘 갔더니 어제 배가 출어를 못해서 물곰탕이 안 된단다. 이 집은 그 날 잡은 물곰만 요리하기 때문에 평소에도 저녁에는 재료가 떨어져 물곰탕을 못 한단다. 그럼 어시장에서 물곰을 많이 사다가 하지 그러느냐니까 무슨 이유인지 정해진 양 만큼만 한단다. 물곰은 얼마 전까지만해도 그렇게 유명한 고기가 아니었다. 곰치라고도 하는 물곰은 생김새가 마치 물처럼 흐믈흐믈해서 물텀벙이라고도 부른다. 쉽게 상해서 과거에는 대부분 버리던 물고기다. 그런데 이 놈이 숙취해소에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귀하신 몸이 된 거다. 물곰탕 대신 생태탕이 된다고 해서 아침은 생태탕으로 하기로 했다. 이 집은 물곰탕이 안 되는 날은 무조건 생태탕이란다. 이 집 물곰탕이 얼마나 맛 있길래 연상 손님들이 왔다가는 실망스런 표정으로 되돌아 나가거나 아니면 나 처럼 생태탕을 시킨다. 물곰탕을 맛보지 못해서 무척 유감이지만 생태탕도 아주 맛있다. 특히 이 집 밑반찬이 아주 맛깔스럽고 정갈해서 좋다. 다음에 오면 꼭 한 번 맛을 보아야지.
08:20, 든든히 완전무장을 하고 길을 나섰더니 영하 8도라는데도 그리 추운 줄 모르겠다. 어제 장감 한 짝을 잃어버려서 한 쪽먼 끼고 걸어도 그리 불편하지 않다. 박제건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지만 늙그막에 무슨 청승으로 이 추위에 길에서 떨고 다니느냐.'고 걱정을 했지만 뭐 그리 고생될 것도 없다. 마침 해가 반짝 비쳐서 이제는 날씨도 좋다. 아내는 또 서울로 가기를 보류하고 따라나섰다. 발이 부르터서 아플텐데도 잘 참는다. 속초시내를 돌아서 9:40, 대포항에 다달았다. 아내는 따뜻한 생강차가 마시고 싶단다. 그런데 길 가에서 파는 생강차는 너무 엉터리다. 분말을 물에 타 주니 찝찔한 맛이 기대했던 생강차가 아니다. 하는 수 없이 주차장 옆의 긴 의자에 앉아 가져 온 커피를 타서 마셨더니 훨씬 좋다. 11:20, 해맞이 공원의 관광안내소에는 컴퓨터도 있고 급속 전화 충전기도 있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오늘 걸어야 할 길을 다시 한 번 점검하고 있으려니 안내소 여직원 이정하 양이 설록차 한 잔을 끓여 준다. 고맙기도 하지. 몸매도 늘씬하고 얼굴도 예쁜데다 마음씨까지 곱구나.
12:30, 낙산사에 도착했다. 산불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던 낙산사는 그 동안 엄청난 복구작업으로 거의 상처가 보이질 않는다. 불에 타서 죽은 소나무를 베어내고 다시 큰 소나무를 심어서 얼핏 보면 산불의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얼마나 돈을 들였을까? 그리고 그 돈은 다 어디에서 났을까? 의상대와 홍련암을 돌아나오니 공짜 국수를 준단다. 마침 시장하기도 하던 참에 아주 잘 되었다. 커피마저 공짜다. 과연 낙산사는 부자구나 . 아내는 그래도 체면이 있지, 어떻게 그냥 가느냐며 2천원만 시주를 하란다. 돌아나오는 길에 보수용 기와에 흰 글씨로 소망을 담은 글이 재미있다. '우리 가족 모두 건강, 이번 시험 꼭 합격, 낙찰 성공, 만사형통, 득남' 등 등. 그 중에서도 가장 웃기는 것은 '늘 깨어있으라. 예수님의 사랑은 크고도 크니라'다. 과연 예수의 힘은 미치지 않는 곳이 없구나. 낙산사 바로 옆이 낙산해수욕장이다. 백사장에는 한 겨울인데도 사람이 많다. 아마 오늘이 토요일이어서 그런가 보다. 2:30, 낙산해수욕장을 지나 해안도로를 따라 계속 걸었다. 동해신 묘지, 대명리조트 솔비치를 차례로 지났다. 3시가 넘어서 수산해수욕장을 지날 무렵, 수산 모텔에서 쉬어갈까 하다가 아직은 시간이 남았다고 그냥 지나쳤더니 4시가 다 되도록 마땅한 모텔이 나오질 않는다. 이제는 다리도 아프고 날씨도 점점 추워진다. 빨리 어딘가에 들어가 쉬고 싶다.
지친 다리를 끌며 동호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여기에는 무언가 있으려니 기대했지만 민박은 많아도 모텔은 없다. 펜션이 있어서 얼마냐고 물으니 10만원이란다. 나는 민박이나 펜션을 싫어한다. 민박은 터무니 없이 방값을 받으면서 서비스는 그야말로 민박수준이다. 펜션은 왠만한 호텔보다 비싸다. 공연히 화가 난다. 빌어먹을... 도데체 얼마나 더 걸어야 모텔이 나올까? 동호리를 거의 벗어날 무렵, 현대콘도텔(033-672-8777)이 보인다.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방값은 3만원이고 빈 방도 많단다. 야, 다행이다. 현대콘도텔에 짐을 풀고 앞의 식당에 가서 돼지고기 볶음을 시켜 소주를 마셨다. 이제서야 긴장이 풀리고 불안이 말짤하게 사라진다. 싫건 잠이나 자야지.
오늘 걸은 길. 속초등대-청조호-엑스포 기념관-대포리-물치항-설악해수욕장-낙산사-낙산해수욕장-동해신 묘지-낙산대교-오산리-수산리-동호리. 25.1킬로미터
첫댓글 이은수박사 황계영여사 화이팅!
황여사 같이 다닐때 너무 욕심내서 많이 걸으려 하지말고 조금씩 즐겁게 다니슈. 내일이 추위의 절정이고 모레부터 따뜻해 진대. 용기를 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