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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잡아라. 발전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Below outlines a pleasant approach to achieving happiness-an approach that relies on responsibility for and commitment to yourself, plus an appetite for living and a desire to be all that you choose to at this moment. There are two central themes through the pages. The first involves your ability to make choices about your own emotions. Begin to examine your life in the light of choices you have made or failed to make. This puts all responsibility for what you are and how you feel on you. Becoming happier and more effective will mean becoming more aware of the choices that are available to you. YOU ARE SUM TOTAL OF YOUR CHOICES, and with an appropriate amount of motivation and effort you can be anything you choose. The second theme that will be emphasized is that of taking charge of your present moment. It is an essential part of eliminating your erroneous zones and creating your happiness. There is only one moment in which you can experience anything, and that is now, yet a great deal of time is thrown away by dwelling on past or future experiences. Turning your now into total fullfillment is the touchstone of effective living, and virtually all self-defeating behaviors (erroneous zones) are efforts at living in a moment other than the current one.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이반 일리치의 죽음)의 주인공 이반 일리치는 죽음의 신을 기다리며 다른 사람에게 철저히 지배당했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그는 체제에 순응하기 위해 이제껏 자신의 인생을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체념해왔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죽음의 신을 기다리면서 그는 자신의 일생을 이렇게 회상한다.(그리고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다.)
“만일 내 일생이 모두 잘못된 것이라면…..””What If my whole life has been wrong?”… 이전에는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었던 것, 다시 말해 그 동안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느낌이 결국은 진실일지도 모른다고 그는 문득 생각했다. 이제껏 사소한 충동이 일어나면 그것을 곧바로 억제해왔는데, 실은 그런 충동이 오히려 진짜이고 그 외의 것들은 모두 가짜였던 것이 아닐까? 직책도, 생활과 가정사도, 사회적 또는 직무상의 이해관계도 모두 가짜였는지도 모른다. 이런 것들을 모두 성실하게 지키고자 노력했던 그는 갑자기 그 모든 것들이 덧없게 느껴졌다. 이 세상에 지켜야 할 것 따위는 아무것도 없었다…. It occurred to him that what had appeared perfectly impossible before, namely that he had not spent his life as he should done, might after all could be true. It occurred to him that his scarcely noticeable impulses, which he had immediately suppressed, might have been the real thing, and rest false. And his professional duties and the whole arrangement of his life and of his family, and all his social and official interests, might all have been false. He tried to defend all those things to himself and suddenly felt the weakness of what he was defending. There was nothing to defend …
행복한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다. 행복을 선택하라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려면 먼저 매우 그릇된 통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가장 잘못된 통념은 ‘똑똑함’에 관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똑똑함이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다시 말해 일정 수준으로 읽고 쓰고 계산하는 능력, 추상적인 등식을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하는 능력으로 저울질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Taking charge of yourself involves putting to rest some very prevalent myths. At the top of the list is the notion that intelligence is measured by your ability to solve complex problems; to read, write and compute at certain levels; and to resolve abstract equations quickly. 똑똑함에 대한 그런 통념 때문에 정규교육과 우수한 성적을 자기 성취의 진정한 잣대라고 단정 짓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되면 학식깨나 있다고 거들먹거리는 사람, 상대적으로 의기소침해지는 사람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우리들은 ‘빛나는 졸업장’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 어떤 학문 분야-수학, 과학, 풍부한 어휘, 잡다한 기억력, 속독 등-에 귀재인 사람들이 ‘똑똑하다.’고 믿게 됐다. 그러나 지금 정신병원은 번듯한 학력을 가진 환자들로 넘쳐 난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하여간 똑똑함의 참된 척도는 하루하루를,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얼마나 제대로 즐겁게 사느냐다. 따라서 지금 행복하다고 느낀다면, 그리고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위해 한 순간 한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면 똑똑한 사람이다. 물론 지적 능력은 행복을 위한 유용한 보조수단이다. 그러나 학교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해도 자신을 위해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면, 혹은 적어도 불행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다면 똑똑한 사람인 것이다.
당신이 진정 똑똑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힘겨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 기분을 어떻게 다스리기로 작정했느냐에 따라 가늠할 수 있다. You can begin to think of yourself as truly intelligent on the basis of how you choose to feel in the face of trying circumstances. 이 세상에 삶의 고단함을 어깨에 짊어지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엇비슷한 어려움들을 겪고 있다. 말다툼이나 갈등 또는 타협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마찬가지로 금전, 나이듦, 병, 죽음, 자연재해, 사고도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주는 상황들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더라도 스스로를 옭아매는 수렁 같은 의기소침이나 불행을 피해가면서 상황을 잘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좌절하거나 무기력해지거나 신경질을 부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 문제들을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딪힐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이면서 그저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로 행복을 저울질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우리들 가운데 가장 똑똑한 사람이다.
스스로를 자신의 중심에 세우는 법을 배우는 데에는 완전히 새로운 사고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한 개인이 책임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작당하는 세력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그런 사고 과정을 체득하는 것이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어느 때고 나 자신이 선택한 대로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사람들은 사랑, 황홀, 기쁨뿐 아니라 화, 두려움, 증오도 자연적으로 발생한다고 믿으면서 그런 감정들을 제어하지 않는다. 그저 받아들이기만 할 뿐이다. 슬픈 상황이 벌어지면 슬퍼하고, 이내 기분이 좋아질 수 있도록 무언가 행복한 일이 생기기만을 두 손 놓고 기다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감정은 단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정서가 아니다. 감정은 선택 의지가 들어가 있는 반응이다.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으면 무덤을 스스로 파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택하지 않게 된다. 일단 감정이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똑똑함’의 길로 성큼 들어서는 셈이다. 그 길에는 신경질이라는 우회로가 없다. 우리에게는 그 길이 생소할지도 모른다. 주어진 감정을 삶의 조건이 아닌 선택으로 여긴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의 핵심이다.
“나는 내 생각을 통제할 수 있다. 내 감정은 내 생각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나는 내 감정을 통제할 수 있다.”
여기에서 대전제는 논박의 여지가 없다. 누구든 생각은 자유롭다. 사람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생각할 수 있다. 무언가가 느닷없이 내 머리 속으로 비집고 들어온다고 해도 우리는 그 생각을 몰아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정신 세계를 통제할 수 있다. 누가 나에게 “분홍색 양을 떠올려보세요.”라고 말해도 나는 초록색 양을 떠올릴 수 있다. 양이 아니라 돼지나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떠올릴 수 있다. 내 머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생각으로 통제하는 데에는 어느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
아직 믿을 수 없다면 이렇게 자문해보라.“내가 내 생각을 통제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가 하는가?” 배우자가? 직장 상사가? 아니면 어머니가? 만에 하나 그들이 당신의 생각을 통제한다면 그들이야말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사람들이다. 그들만 병원으로 보내버리고 나면 당신의 상태는 금세 나아질 것이다. 허나 우리는 그들이 나의 사고를 통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사고중추를 통제하는 것은 나뿐이다. 물론 일상생활이 아닌 조건부 실험 상황 등 극단적인 경우는 제외다. 나의 생각은 나 자신의 것으로, 오로지 나만이 유지하고 바꾸고 통제할 수 있다.
우리는 주위의 상황이나 사람들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내가 불행하다면 그 이유는 주위의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때문이다. Simply put, you believe that things or people make you unhappy because of the thoughts that you have about the people or things in your life. 거침없고 다부진 사람이 되려면 그 생각을 바꿀 줄 알아야 한다. 일단 생각을 통제할 수 있으면 새로운 감정이 생겨날 것이며 거침없는 삶을 향해 첫발을 내딛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이치는 모든 상황, 사물, 개인적 시각에 적용된다. 누군가가 죽더라도 그 죽음 자체가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동안에는 불행하지 않다. 따라서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음에 대한 마음가짐 때문에 불행한 것이다.
태풍 같은 자연재해도 그 자체에는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속성이 없다. 우울은 인간 특유의 감정일 뿐이다. 만약 내가 태풍 때문에 기분이 울적해졌다면 그것은 스스로 기분이 처지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태풍을 좋아해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만약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
“내가 왜 구태여 우울을 택해야 하는가? 우울해진다고 상황을 헤쳐나가는 데 눈곱만큼이라도 보탬이 되는가?”
우리들은 ‘감정은 자신이 통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외면하게 하는 숱한 변명들을 배워왔다. You have grown up in a culture which has taught you that you are not responsible for your feelings even though the syllogistic truth is that you always were. 우리가 이제껏 거듭거듭 사용해온 그런 변명의 예를 들어보겠다. 이것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살펴보자.
“너 때문에 기분 나빠졌어.”
“나도 내 감정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냥 막 화가 나. 이유는 묻지 마.”
계속 늘어놓자면 아마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위의 변명에는 하나같이 자신의 감정은 스스로도 어찌 할 수 없다는 뜻이 은연중에 들어가있다. 이제 그 목록을 정확히, 그리고 모든 감정은 자신에게 책임이 있으며 어떤 일에 대해 자신이 품고 있던 생각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나타나도록 다시 고쳐 써보자.
“네 행동에 대해 생각하다가 내 스스로 기분을 망쳐버렸어.”
“안 그런 수도 있지만 지금은 화를 내고 싶어.”
“난 화를 낼 거야. 화를 내면 다른 사람이 꼼짝 못하더라고, 내가 무섭나 봐.”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명료하다. 내 감정에 대한 책임은 바로 나에게 있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하는 대로 느끼며 마음만 먹으면 어떤 일에 대해 다른 식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내가 그러겠다고 결심만 한다면 말이다. The message is crystal clear. You are the person responsible for how you feel. You feel what you think, and you can learn to think differently about anything-if you decide to do so.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라. 불행하다고, 우울하다고, 기분이 상한다고 보탬이 되는 일이 있는지, 나를 맥 빠지게 하는 기분으로 몰아넣고 있는 생각은 또 어떤 것들인지.
생각을 바꾼다는 것, 이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일련의 어떠한 사고방식과 그에 잇따른 기운 빠지게 하는 생각들에 익숙해져 있다. 여태껏 몸에 배어 있던 습관적인 생각들을 떨쳐내는 데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행복은 그나마 쉽다. 그러나 불행해지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It is not easy to think in new ways. You are accustomed to a certain set of thoughts and the debilitating thoughts that follow. It requires a great deal of work to unlearn all of the habits of thought you have assimilated until now. Happiness is easy, but learning not to be unhappy can be difficult. 행복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태다. 그 증거는 어린아이들에게서 꾸밈 없이 드러난다. 그러나 과거에 꼭꼭 씹어 소화시킨 ‘의무’와 ‘책임’을 다시 토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을 통제하는 것은 내가 지금 또 이러는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자각’에서 출발한다. “그 사람 때문에 기분이 나빠.” 등의 말을 내뱉는 그 순간을 의식해보자. 행동을 취하고 있는 순간,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일깨워줘야 한다.
우리는 감정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사고 패턴에 길들여져 있다. 무수히 많은 시간을 들여 그런 사고방식을 단련시켜왔으니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새로운 사고방식에도 역시 그만한 시간을 들여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이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어쩔 것인가? 어렵다고 그만둘 수는 없지 않은가!
손과 발의 움직임을 조율하는 운전 연습처럼 몸을 움직여 어떤 일을 해낼 때 마음을 다스리는 법도 스스로 깨칠 수 있다. 그 과정은 감정 세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현재 내 몸에 배어 있는 습관은 평생 단련시키면서 체득한 것이다. 내가 나도 모르게 불쾌해지고 화가 나고 상처 받고 좌절하는 이유는 오랜 기간 동안 그런 사고방식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거지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거스를 생각을 추호도 해보지 못했던 탓이다. 그러나 불쾌해지고 화가 나고 상처입고 좌절하는 법을 학습을 통해 배웠던 것처럼 나를 망치는 그런 감정들을 선택하지 않는 법 역시 깨우칠 수 있다. 그러나 그저 사이즈가 맞는 옷 고르듯 한 번쯤 시도해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행복하겠다는, 내 마음 속에 불행을 만들어내는 생각 따위는 모두 없애버리고야 말겠다는 단단한 결심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내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내게 그럴 ‘의지’가 있느냐다. 앞으로 이런 선택을 하려면 감내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통제하기보다는 차라리 이성을 잃고 길길이 뛰는 쪽을 택하는 사람도 있다. 또는 동정표를 얻는 편이 행복을 얻기 위해 쏟는 노력의 보상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는 탓에 그저 체념하고 불행한 삶에 굴복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혹은 적어도 인생의 어느 순간에 불행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이다.
불행보다 행복을 선택하는 당신 앞에 걸리적거릴 것은 하나도 없다. 일상의 갖가지 상황에서 자기 파괴적인 행동보다는 자기 성취적인 행동을 택하는 것도 나의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Just as you are free to choose happiness over unhappiness, so in the myriad events of everyday life you are free to choose self-fulfilling behavior over self-defeating behavior.
우리는 어떤 경험도 즐겁고 도전할 만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따분한 모임이나 회의도 새로운 감정을 선택할 수 있는 안성맞춤의 장소다. 따분하다는 생각이 들면 흥미를 돋우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꿀 수 있다. 잘 지켜보다가 화제를 전환시킬 만한 말을 던져본다거나 소설의 첫머리를 써본다거나 앞으로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한 새로운 계획을 짜볼 수도 있다. 생각을 활발하게 바꾼다는 것은 골머리 아프게 하는 사람이나 상황을 평가하고 그것이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참신하게 생각을 바꾸기로 마음먹는 것을 말한다.
당신은 레스토랑에서 서비스가 나쁘다며 걸핏하면 화를 내는 사람인가? 그렇다면 화를 내지 말아야 할 이유를 먼저 생각해보라. 화를 내봤자 그런 사람이나 상황이 내가 원하는 대로 바뀌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 때문에, 특히 삶에서 극히 사소한 비중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화를 내기에는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런 상황을 바꾸거나 아니면 빠져 나오기 위한 전략을 짜라. 그저 안달복달하지는 말라.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꿔라. 그러면 종국에는 일이 잘 안 풀릴 때 화를 내지 않는 멋진 습관을 갖게 될 것이다.
병도 마음에서 온다고 한다. 병들 중에는 장기 기능의 이상 때문이 아닌 질병들이 많이 있다. 그런 병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없앨 수 있다. 생리학적 장애로 발병하지 않는 육체적 질병으로는 대체로 두통, 요통, 궤양, 고혈압, 뾰루지, 피부 발진, 심한 복통, 일시적인 통증 등이 있다. 그런 병들은 물론 종양, 감기, 관절염, 심장병, 사고로 인한 부상,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여겨왔던 암 같은 질병조차 사람들이 자초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일부 연구진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를 치료하면서, 환자가 어떤 식으로든 그 병을 원치 않도록 돕는 것이 그 사람 내부에 숨어서 생명을 좀먹고 있는 요인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라 믿고 있다.
질병을 스스로 부르는 환자들의 사례는 많다. 무언가 순탄치 않은 상황에 부닥쳤을 때 원인 불명의 병을 앓게 되는 사람도 있고 ‘결코’ 아파서는 안될 상황에서는 발병이 지연되다가 그 상황이 종결되자마자 갑자기 열이 나고 쓰러지는 경우도 드문 일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잡아라
행복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 있다. 제대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부정적인 감정을 판별해주는 낱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무기력’이다. 우리는 분노, 적개심, 수치 등의 감정들이 때로는 느낄 만한 것들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감정에 매달리고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감정들에 의해 옴짝달싹 못하게 되는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될 때다.
무기력은 어떠한 행동에도 나서고 싶지 않은 소극성에서부터 우유부단과 망설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당신은 화가 나면 말이나 감정 또는 행동을 아예 접어버리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무기력한 사람이다. 당신은 쑥스러워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과 접촉하기를 꺼려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무기력한 사람이다. 그러면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어야 할 경험까지 놓치게 되는 셈이다. 미움과 질투로 몸져눕거나 혈압이 올라가지는 않는가? 또 그것 때문에 직장에서 일을 하는 데 지장을 받지는 않는가? 어느 순간에 느낀 부정적인 감정 때문에 잠을 청할 수 없거나 배우자와 잠자리를 할 수 없는가? 이 모든 것들은 무기력의 징후들이다. 무기력이란 ‘그 정도가 심각하든 경미하든 내가 원하는 정도로 기능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아무리 증상이 경미한 무기력이라 해도 그 무기력에 맞서 싸울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현재’와 밀착해 현재의 순간들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효율적인 생활의 핵심이다. One way to combat immobilization, however slight, is to learn to live in the present moment. Present-moment living, getting in touch with your “now”, is at the heart of effective living. 사실 지금 이 순간에는 다른 순간이 끼어들 틈이 없다. 존재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뿐이다. 미래는 다가오면 맞아야 할 또 다른 지금 이 순간일 뿐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어떤 순간이 그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는 그 순간을 살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는, 우리가 현재를 깎아내리는 문화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래에 대비하라, 뒷일을 먼저 생각하라, 쾌락주의자가 되지 말라, 내일을 생각하라, 은퇴를 준비하라 등.
현재를 회피하는 것은 우리 문화의 병폐다. 우리는 끝도 없이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도록 강요당한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현재의 즐거움뿐 아니라 영원히 행복을 피해다니는 태도다. 미래가 다가와 현재가 될 때 우리는 그 현재를 또 다시 미래를 위한 준비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언제나 내일을 위한 것이기에 영영 부여잡을 수 없게 된다. Avoiding the present moment is almost a disease in our culture, and we are continually being conditioned to sacrifice the present for the future. Carried to its logical conclusion, this attitude is not merely the avoidance of enjoyment in the now, but an evasion of happiness forever. When the future does arrive it becomes the present and we must use it to prepare for the future. Happiness is something for the tomorrow and therefore ever elusive.
항상 함께 있지만 부여잡기 어려운 현재라고 하는 순간들은 그 안에 자신을 내맡길 때 가장 아름답게 체험될 수 있다. 현재의 매 순간을 힘껏 들이마시고 이미 끝난 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는 아예 신경을 끄자, 내가 가진 유일한 것인 현재의 순간을 꽉 붙잡자, 바람, 희망, 후회는 현재를 기피하기 위한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전술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
현재 기피증은 미래의 이상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미래의 어떤 기적 같은 순간에 인생은 역전될 것이며 모든 일이 제자리를 잡고 행복을 발견하게 될 거야, 졸업, 결혼, 출산, 승진 등 인생의 획을 긋는 중요한 일을 이루면서 본격적인 인생이 시작될 거야.” 라는 식이다. 그러나 정작 그런 상황을 맞이했을 때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상상했던 기대 수위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첫날밤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보라. 그토록 기다렸건 만 황홀한 무아지경이나 실신할 일도 없다. 대신 왜 사람들은 그걸 두고 그토록 야단법석을 떠는 것인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기분만 남는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감정만이 전부이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어떤 상황이 기대에 어긋날 경우 이상화를 통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악순환을 생활화해서는 안 된다. 현재를 현명하고 알차게 살아가는 전략을 통해 지금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버려야 한다.
톨스토이 작품에 나오는 이반 일리치처럼 삶을 되돌아볼 때 이미 해버린 일에 대해 후회할 일은 별로 없다. 가슴에 굽이굽이 한이 되어 남는 것은 대개 하지 못한 일들이다. 그러므로 요지는 명백하다. 실행에 옮겨라! 지금 이 순간의 가치를 알아보는 안목을 길러라. 인생의 순간순간을 붙잡아서 음미하라.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겨라. 자신을 망치는 방식으로 현재의 순간들을 모두 잡아먹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은 영영 놓치고 만다.
발전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
자신이 바라는 대로 행복하고 충실한 삶을 꾸려나갈 때에는 두 가지 동기에 의해 자극을 받는다. 둘 중에 비교적 보편적인 동기는 부족한 면을 메우고자 하는 ‘미완’ 또는 ‘미흡’의 동기다. 반면 좀 더 바람직한 또 다른 동기는 발전을 향한 ‘성장’의 동기다.
현미경으로 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지만 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같은 현미경으로 이번에는 산호 조각을 살펴보면 산호는 계속 성장하며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을 말하자면 산호는 살아 있고 돌에는 생명이 없다. 살아 있는 꽃과 죽은 꽃은 어떻게 구별하는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 살아 있는 것이다. 생명의 유일한 증거는 성장이다! 이는 우리의 정신 세계에도 적용된다. 성장하고 있는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이다. 성장하고 있지 않다면 죽은 사람이나 다름 없다.
기왕이면 부족한 점을 보충해야 할 필요보다는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에 자극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항상 성장하고 발전하며 보다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무기력하거나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감정에 잠기기로 했다면 그것은 성장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있는 것과 같다. 성장 동기란 바꿔 말하면 더 큰 행복을 위해 나의 생명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무언가 나쁜 짓을 저질렀기 때문에, 또는 어떤 식으로든 불완전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개선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이 아니다. 성장을 동기로 삼는다는 것은 내가 인생의 모든 현재의 순간들을 직접 지휘한다는 의미다. 지휘를 한다는 것은 내가 나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이다. 나는 그때 그때 대처에 급급하거나 세상을 그저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선택하는 사람이다. Acorollary of choosing growth as motivation is personal mastery in every present moment of life. Mastery means you are the decider of your fate; you are not a coper, or a striver, or someone who adjusts to the world.
조지 버나드 쇼는 자신의 작품‘워런 부인의 직업’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현 위치를 자신이 처한 환경 탓으로 돌린다. 나는 환경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은 스스로 일어서서 자신이 원하는 환경을 찾은 사람들이다. 만약 그런 환경을 찾을 수 없다면, 그런 환경을 만든다. People are always blaming their circumstances for what they are. I don’t believe in circumstances. The people who get on in this world are the people who get up and look for circumstances they want, and if they can’t find them, make them.
이런 식의 자기실현을 이루기 위해서는 내가 내 정신의 주인이며 나의 감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끊임없이 마음 속에 되새겨야 한다. In order to master this kind of fulfillments, you’ll need to repeat endlessly that your mind really is your own and that you are capable of controlling your own feelings.
*참조문헌: Your Erroneous Zones(Wayne W. Dyer)
있는 힘껏 살아라. 그렇게 살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살아갈 인생이 있는 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인생을 가졌거늘 도대체 무엇을 더 ‘가지려 하는가?”…..잃게 되어 있는 것은 잃는 법이다. 이 점을 명심하라. …..아직 운이 좋아 인생을 더 살아갈 수 있다면 모든 순간이 기회다. ….살아라! “Live all you can; it’s a mistake not to. It doesn’t so much matter what you do in particular, so long as you have your life. If you haven’t had that what have you had. …What one loses one loses, make no mistake about that… The right time is any time that one is still so lucky as to have…Live!”《헨리 제임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