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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입대
태환이는 공장을 그만두고 그동안 약장수도 해보고, 와이셔츠 행상도 해 보고 이것저것 다
해보았지만 잘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다시 양복일을 배우기 위해 ‘계림 양복점’에 찾아 갔더니 신사복 일을 배워 보라고 해서
태환이는 요즘 다시 양복점에 다니게 되었다.
명순이도 피복 공장에 열심히 나갔다. 그래서 이럭저럭 세끼 밥은 먹고 살았는데, 얼마후 또
문제가 생겼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팔리게 된 것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최 전도사님 배려로 그동안 집세도
안내고 그냥 살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방을 얻어서 나가려면 당장 집세가 문제였다.
그렇다고 최 전도사님 이사 가는곳까지 따라 갈 수도 없었다. 여태까지도 공짜로 살면서 신세를
많이 졌는데, 더 이상 신세를 질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번에 전도사님 아들이 결혼을 해서 며느리와 함께 살려고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는
거라는데 말이다.
여하튼 간난이는 돌아다니면서 알아보기나 하자고 했다. ‘혹시 보증금 없이 그냥 월세를 받는 집이
있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생각을 하고 무작정 다니면서 알아보았더니 하늘이 도우셨는지 마침
그런 집이 있었다.
금호동 로터리에서 무학 여고 쪽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는데, 그 고개 마루에 상수도 배수지가 있고,
배수지와 길 사이에 조그만 교회가 하나 있었다. 교회 이름은 ‘금호감리교회’ 라고 했다.
그 교회 벽을 끼고 돌아가면 낭떠러지에다 돌로 축대를 아무렇게나 쌓아 올리고, 가건물로 지은
집이 있었다. 그 집은 시멘트 블록으로 벽을 만들고 지붕은 루핑으로 덮여 있었다.
그리고 그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따로 방 하나를 덩그런히 지어 놓았는데, 그 방을 보증금 없이
그냥 월세만 조금씩 내고 살라고 했던 것이다. 다행이었다.
집이 아무려면 어떠랴! 비를 피할 수 있고,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간난이네
사정으로는 감지덕지였다.
그런데 한편으론 겨울에 집이 바람에 넘어가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 질 것이
겁이 나긴 했다.
아무튼 간난이네는 그 집으로 이사를 갔다. 다행히 집주인 식구들이 모두 마음이 좋았다.
주인집엔 어른 두 내외와 아들 네 명, 막내딸이 하나 있었다. 막내 딸 이름은 ‘왕자’였다.
딸 이름을 왜 왕자로 지었는지 궁금했다. 하여간에 그 집을 ‘왕자네 집’이라고 불렀다.
왕자 아버지는 연탄 아궁이도 고치고, 집 짓는데서 블록도 쌓는 노동자였고, 아들 두명도 일정한
직업 없이 닥치는 대로 노동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나머지 아들 둘과 왕자 이렇게 셋은 아직 학교에
다녔는데, 왕자는 간난이네가 이사 온 그 이듬해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왕자 엄마는 전형적인 한국 시골 아낙으로 마음씨 좋고, 순박한 사람이었다.
간난이네가 왕자네 집에서 살면서 교회는 바로 옆에 있는 ‘금호감리교회’에 나가게 되었는데
이 교회는 특이하게도 목사님이 여자였다.
간난이는 이 교회에서 집사 직분을 갖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간난이는 ‘권 영희’ 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호적에는 원래 ‘권 간난’ 이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언젠가 간난이가 충주에서 살 때
너무 살기가 고달프고, 하는 일마다 되는 일이 없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써 그러면 안되는데
‘점쟁이’를 찾아 간 일이 있었다.
그 점쟁이는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지리산인가 태백산인가 하는 유명한 산에서
10년간 도를 닦은 유명한 도사라고 했다. 소문에 의하면 사주를 대고 이름만 대면 무엇이든 다 알아
맞히는 쪽집게 도사라고 했다. 그때 그 점집에서 들은 말이 이름이 안좋아서 그런일이 생기는 것이니
이름을 바꾸라는 것이었다. 편안할 ‘영(寧)’자에 기쁠 ‘희(喜)’자를 써서 ‘권영희’ 라고 지어 주면서
호적과 상관없이 영희라고 자꾸 부르다 보면 만사가 다 잘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이름을 ‘영희’ 라고 부르게 됐다.
그때에 명순이도 ‘경숙’ 이라고 이름을 바꿨고, 태환이는 한자만 ‘불꽃 환(煥)’자를 ‘기쁠 환(歡)’자로
바꾸어 쓰라고 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써 기독교에서 그토록
금기시하던 미신을 의지해 이름까지 바꾸게 되었다는 것이 말이다. 웃지 못할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데 그때 그 도사의 말에 홀려서 또 한번 웃지 못할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태환이가 스물한 살을 못 넘기고 죽는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릴 때 황달에 걸려서 죽다가 간신히 살아나고, 아버지도 없이 홀어머니 밑에서
힘들게 살아온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는다니 간난이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던 것이다.
그런 말을 들으니 기가 막히고, 사지에 맥이 쑥 빠져서 간난이는 이미 이성을 잃고, 그 도사에게
매달렸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들이 죽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는지 방법 좀 알려 주세요, 무슨 일이라도 할 테니
제발 좀 알려 주세요”
그랬더니 도사가 부적을 하나 써 주면서 이렇게 말을 했다.
“이것을 아들이 항상 지니고 다니게 하고, 그믐날 밤 자시(子時 밤11시~새벽1시)에 밥 한 그릇에
살아있는 약병아리 한 마리를 가지고, 네거리에 나가서 약병아리 목을 칼로 자르고, 병아리에게서
흐르는 피를 네거리 사방으로 뿌리고, 밥도 그렇게 뿌리면서 사방 신께 ‘병아리의 남은 목숨을
태환이에게 주어서 목숨을 연장하게 해 주십시오’ 라고 빌고, 그런 다음 병아리를 네거리 복판에
파묻으시오” 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하면 태환이가 병아리의 목숨을 이어 받아서 수십 년은 더 살게 된다고 했다.
이 얼마나 어리석고 웃기는 이야기인가? 병아리 목숨이 길어봐야 얼마나 길다고...
하지만 간난이는 대부분의 자식있는 어머니들이 그러하듯이 아들의 목숨이 걸려있다는 소리를 듣고
그렇게까지 이성적인 판단을 할 겨를은 없었나보다.
결국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러나 병아리의 목을 산채로 자를 자신이 없었다.
평소에 간난이는 남이 닭을 잡는 것도 구경을 못하는 여린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아들의 목숨을 연장 시킬 수 있는 방법이 그것이라면 해야만 했다.
그래서 간난이는 친정 어머니 최씨부인과 상의를 했다.
그랬더니 최씨부인은 “그것이라면 무엇이 어려울 게 있느냐? 내가 병아리와 밥을 준비 할 테니,
너는 그믐날 태환이를 데리고 멀미로 오너라.” 하셨다.
최씨부인은 교회에 권사님이다. 교회에서는 그러한 미신을 믿지 않을뿐더러 그러한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지만 최씨부인에겐 간난이가 하나 밖에 없는 무남독녀 외동딸이었다.
열 달도 못 채우고 여덟 달만에 세상에 태어나 무엇하나 부러울거 없이 자라서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랐건만, 나이 삼십도 못 돼서 남편과 생이별을 하고, 어린 자식을 둘이나 데리고
고생하면서 사는 것을 보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팠던 것이다.
그런 딸 때문에 남 몰래 흘린 눈물이 또 얼마였던가! 밤새워 하나님께 기도는 또 얼마나 했던가!
그런데도 딸의 고생은 끝이 없었다. 그런 딸이 유일하게 의지하고 사는 아들이 스물도 못 넘긴다는
말을 들었으니 딸의 마음이 오죽하랴! 그래서 최씨부인은 딸을 위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보다 더
한 일도 할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최씨부인은 양자로 맞이한 아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토지 분배를 당하여 재산이 줄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아직 부자로 넉넉하게 살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 같아선 간난이에게도 재산을 뚝 떼주어
잘살게 하고 싶었지만, 그 또한 뜻대로 되지 않았다.
당시엔 양자로 맞이한 아들이지만 호적상 재산 상속자로 돼 있었기 때문에 모든 재산은 그 양아들
앞으로 상속이 돼 있었던 것이다.
최씨부인은 마음이 순하기만 했지, 모질지를 못해서 혹시 시집간 딸 때문에 집안에 불편한 일이라도
생길까 봐 내색도 못하고 마음만 아파했던 것이다. 그래서 울 때도 남몰래 울고, 기도도 남이 잠자는
시간에만 몰래 하곤 했다.
간난이는 그믐날 밤 태환이를 데리고 멀미로 갔다. 태환이는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이다.
태환이는 병아리를 목을 자르는 일이며, 닭의 목숨이 사람에게로 옮겨 온다는 얘기도 믿을 수 없었다.
모두가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그래서 이름도 그냥 전에 쓰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고, 부적도 지니고
다니질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간난이가 아들 부적을 가지고 다녔다.
간난이는 이런 아들에게 거의 애원하다시피 부탁을 했다.
“이 엄마의 소원이니 나중에 후회 하지 않도록 한번만 내 말좀 들어다오” 결국 태환이는 그런 어머니의
간절한 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아들은 어머니를 따라가게 되었다.
밤중이 되어 미리 맡겨 두었던 병아리와 밥 한공기, 초 한자루를 준비해서 멀미 동네입구에 있는
네거리로 갔다.
그믐밤이었지만 불빛이 있어서 그런지 그렇게 어둡지는 않았다.
최씨부인과 간난이 그리고 태환이, 이렇게 셋은 네거리 복판에서 밥을 놓고 촛불을 켜고 도마와
칼을 앞에 놓고 그 앞에 앉았다. 간난이와 최씨부인은 앞에 앉아 있고 태환이는 뒤에 서 있었다.
최씨부인이 말했다.
“내가 자를까? ”
“아니요 어머니, 제가 할 게요.”
“네가 자를 수 있겠니?”
“예, 제가 할게요” 간난이는 눈을 감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용서 하세요. 이 어리석고 힘없는 영혼을 용서 하세요. 제발, 아들만 오래 살게 해 주신다면
모든 죄는 제가 받겠습니다.”
간난이는 다시 눈을 뜨고 병아리를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내 아들을 위한 일이라면 이 보다 더한 일이라도 해야 한다’
간난이는 마음을 독하게 먹고 심호흡을 한번 한 뒤 눈을 질끈 감고 병아리의 목을 향해 칼을 힘껏 내리쳤다.
‘싹둑’ 하는 촉감과 함께 온 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이제 피가 다 나오기 전에 얼른 길에다 뿌려야 한다.
“제발 북방신님! 이 병아리의 목숨을 내 아들 태환이에게로 옮겨 오래 살게 해 주십시오”
이렇게 빌며 사방으로 사방신께 골고루 뿌렸다. 최씨부인도 밥을 가지고 다니면서 골고루 뿌리며
간난이처럼 빌었다. 태환이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었다.
의식(?)을 모두 마친 간난이는 네거리 복판을 호미로 깊이 파고 병아리의 머리와 몸을 단단히 묻어 주었다.
“병아리야, 너에겐 정말로 미안하다. 어차피 너는 미물이므로 사람에게 죽을 것이 아니냐?
너의 생명이 내 아들 목숨 연장하는데 사용 되었으니 참으로 미안하고 고맙구나!
자, 꼭꼭 단단히 묻어 줄 테니, 나를 용서하고 부디 편히 쉬어라 ”
생각해보면 참으로 미련하고 우매한 인간의 어리석은 행동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이런 인간을 불쌍히
여기셨는지, 아니면 부모의 자식에 대한 무한 사랑을 아시고 가엾게 여기셨는지, 다행히도 그 후에
아들 태환이는 아무일 없었다.
몇 년이 지나 간난이 어머니 최씨부인은 저녁에 주무시다가 자는 듯이 그대로 하늘나라로 소천 하셨다.
기독교 교리에 어긋난 행동을 한것에 대한 죄스러움이었을까! 그뒤로 간난이네 식구는 왕자네 집에서
살면서 전보다 더 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태환이는 청년부에서 회계를 맡아보고, 가끔 특송을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태환이는 이제 바지를 만드는 기술자가 되었다.
이 무렵엔 ‘계림 양복점’에 있지 않고 종로3가에 하청을 받아서 양복을 만드는 공장에 다니고 있었다.
보수도 이제 월급이 아니고, 바지 하나 만드는데 얼마씩 계산해서 받는 그런 일을 했다.
그래서 수입도 월급 받을때 보다는 많았다. 이제 얼마 지나면 돈도 조금씩 저축이 될 듯 싶었다.
그렇게 나름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이었다.
그러니까 그때가 1959년 12월 22일이었다. 여느때처럼 태환이가 아침을 일찍 먹고 도시락을
싸가지고 출근을 하려고 하는데 간난이 마음이 영 불안하다.
“얘 태환아, 너 아무 일 없니?”
“왜요? 아무 일 없는데요.”
“아니다 왠지 네가 고단해 보여서 그런다. 어서 출근해라, 영 고단하면 오늘 하루쯤 쉬던지”
“아니요 괜찮은데요. 그럼 다녀 올 게요.”
태환이는 그렇게 출근을 했다. 그날은 무슨 일인지 하루종일 간난이 마음이 잡히질 않았다.
왜 이럴까? 아무 일도 없는데... 간난이는 영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저녁때가 되었다. 그런데 평소 퇴근시간보다 많이 지났는데도 태환이가 연락도 없이 오지를 않았다.
간난이는 아무래도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만 같아서 더 이상 못기다리고 직장으로 전화를 해 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직장에선 태환이가 오늘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진작에 전화를 해볼 걸, 잘못했구나!’
간난이는 혹시 태환이에게 직장으로 아무 연락도 없었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아침에 전화가 왔었는데 파출소에 있는데 별것 아니니 염려 말라고 하면서 좀 늦을 것
같으니 사장님에게 말좀 잘 해 달라고 하면서 끊었다는 것이다.
회사사람 말로는 태환이 목소리를 들으니 무슨 큰 일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요새 병역 기피자 단속이 심하다는데 혹시 그 관계로 경찰서에 가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간난이는 그만 하늘이 노래졌다. 태환이가 붙들려서 군에 끌려가면 큰일이다.
공중전화기를 찾아 딸 경숙(명순)이에게 전화를 했다.
명순이에게 태환이가 아무래도 기피자 단속반에 붙잡힌 것 같으니 한번 알아보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간난이는 집에 어떻게 왔는지 모른다.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고, 그저 멍하기만 했다. 한참 앉아 있는데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경숙이에게 전화라도 다시한번 해 보려고 일어나려는데, 이게 웬일인가!
일어 설 수가 없다.
무릎이 펴지지를 않는다. 땅을 짚고 일어서려고 다시한번 기운을 써 보지만 무릎 밑으로는 기운을
쓸 수가 없다. ‘이거 내가 왜 이럴까? 이러면 안 된다. 어떻게든지 일어나야 한다.’
그러나 간난이는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엉금엉금 기어서 벽을 짚고 일어서려 했지만
그것도 잘 되지를 않았다. 큰일이다. 할수없이 방문을 열고, 왕자 엄마를 불렀다.
“왕자 엄마~ 나 좀 봐요”
“생전 앉아서 날 부른 적이 없었는데 웬 일이시유? 갑자기 앉은뱅이라도 됐어요?” 하며 왕자엄마가
웃으면서 들어왔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앉은뱅이가 되었나 보오.”
“원~ 태환엄마 이젠 별 소릴 다 하시우. 농담 한걸 가지고”
“아녀요 정말로 일어 설수가 없어서 불렀다우. 나 좀 일으켜 주시오”
“아니 그럼 정말로 못 일어난단 말이우? 그게 정말이우?” 하면서 얼른 부축을 했다.
간난이는 왕자엄마의 부축을 받고 간신히 일어났다. 그러나 왕자 엄마가 손을 놓자 다시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왕자엄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게 웬 일이유. 아까까지만 해도 멀쩡하더니 왜 갑자기 앉은뱅이가 됐단 말이유? 무슨 일이유 이게? ”
간난이도 어처구니가 없어 빙그레 웃으며 그간 일을 말했다.
“이거 정말 앉은뱅이라도 된다면 어떻게 하지요? 왕자 엄마”
“우습기도 하겠수. 좀 누워 있으시오. 누워 있으면 설마 괜찮아지겠지, 내가 처녀에게 전화를
해 볼 테니 누워 있어요.“ 하면서 왕자 엄마는 명순이 전화번호를 가지고 나갔다.
나갔던 왕자 엄마가 조금 있다 돌아왔다. 전화를 해보니 딸 경숙이가 돈을 좀 꾸어 가지고 알아본다고
했단다. 왕자 엄마는 간난이보고 누워 있으라고 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간난이는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이대로 내가 정말로 앉은뱅이라도 된다면 큰일이다. 내가 죄를 받는 것이 틀림없다.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속을 썩였는가? 사변 후에 그 외로우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를
제대로 모시지도 못하고, 쓸쓸하게 돌아가시게 했고, 나 혼자만 살겠다고 친정에 숨어 지냈다.
또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엔 집과 쌀까지 다 팔아서 시어머니를 독골 조카네 집에서 그 한 많은
일생을 보내게 했고, 더구나 아이들까지 내가 데려가고 시어머니는 계실 곳도 마땅히 없게 만들었으니,
아마도 억울해서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셨으리라. 그러니 내가 그 죄를 안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 내가 죽일 년이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시려는구나!
친정어머니 속은 또 얼마나 썩였던가! 그 착하신 분이 눈물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내시다가 종래엔
속이 다 타서 돌아가셨으니... 이 쓸모없는 딸년 때문에 말이다.
또 서울에 와선 어떠했는가! 태환이가 처음 서울에 올 때 혼자 올라가서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객지에 너 혼자 보내는 것은 안심이 안되니 내가 함께 가서 돌봐 주어야 한다며 따라와서
오히려 짐만 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내 아들 태환이는 그렇게도 하고 싶어 하던 공부도 하지 못하고
식구들 먹여 살리느라고 고생만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이제 기술을 배워서 조금 안정이 되려고 하니까 잡혀서 군대에 가게 되다니...
이게 웬 일이란 말인가! 이 모든게 다 내 죄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이렇게 간난이는 이런저런 지난 일들을 곰곰이 생각하며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나는 죄를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게 의지하고 살던 아들 태환이를 이제 오늘부터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간난이는 온 세상이 텅 빈 것만 같았다. 땅이 꺼지는 것 같고, 가슴이 허전하고, 머리가
띵 해 온다. 천장이 빙빙 돈다. 방바닥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그러다 그만 간난이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꿈인가? 생시인가? 돌아가셨다고 생각했던 분들이 모두 살아서 앞에 계신다. 시아버지도 계신다.
저만치 서서 나를 쳐다보고 계신다. “아버님 살아 계셨군요? 이리 오세요.” 대답이 없다.
그냥 쳐다만 보시다가 어디론가 가신다. 시어머님도 그 자리에 계셨다.
“어머니 어머님도 살아 계셨군요.” 하지만 시어머님도 역시 아무 말씀도 없이 그냥 쳐다만 보시다가
사라지신다. 친정어머니도 계셨다. “어머니! 어머니 왜 쳐다보기만 하세요. 말좀 해보세요”
하지만 어머니도 그냥 계신다.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이번엔 남편 윤 옥씨가 이리로 걸어온다.
빙긋이 웃으며 걸어온다. 간난이는 그만 어처구니가 없다. 왜들 저러지? 왜 저렇게 말도 없이 그냥
서 있기만 하는걸까? “당신 왜 웃기만 해요?” 그러나 언제 돌아 섰는지 벌써 저만치 걸어간다.
“아니 왜 오다 그냥 가요? 할말이 있어요. 이리좀 와봐요” 그러나 대답도 없이 그냥 간다.
이상들도 하다. 왜 아무 말들도 안하지? 도대체 다들 어디로 가는 걸까? 이번엔 태환이가 저만치서
벙글벙글 웃으며 왔다 “어머니 저 왔어요.” 반갑다. 태환이는 말을 한다.
“얘 태환아, 너 어디 갔다 오니? 내가 얼마나 찾았는지 아느냐?”
“응 저기 좀. 그런데 나 지금 아버지 만나고 오는 길인데요” 하면서 태환이는 간난이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얘, 너 왜그러니? 내 얼굴에 뭐라도 묻었니?”
“그게 아니구, 저기,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어머니는 아무 죄가 없대요. 죄는 아버지가 많데요.
그러니 그런 생각은 하시지 말고 열심히 사시래요.”
“그래? 네 아버지가 그러데? 근데 집엔 왜 안오신다니?” 그러나 태환이는 그 대답은 하지 않는다.
단지 “그런데, 저도 어디 좀 갔다 와야 되는데 어머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하는 것이다.
태환이는 방에는 들어오지 않고 끝내 밖에 서서 말을 한다. “들어와 왜 밖에 서서 그러니?” 하고
간난이가 말을 하자 태환이는 여전히 들어올 생각은 하지 않고 “아니 저 바빠서 가야 해요 저기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한다. 태환이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과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모두 젊은 사람들이다. 태환이는 벌써 그 쪽으로 가고 있다. “얘, 태환아 뭐 좀 먹고 가야지.
옷도 갈아입고” 그러나 태환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괜찮아요. 이제 시간이 없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하면서 그 사람들 속으로 섞여 버린다.
간난이는 태환이를 찾으려고 했지만 도대체 어디 있는지 보이질 않는다.
“얘, 태환아 어디 있니? 태환아! 태환아” 그때 누군가 간난이 몸을 마구 흔들었다.’
간난이는 눈을 번쩍 떴다. 딸 경숙이가 간난이를 흔들고 있다.
“얘 경숙아, 태환이 못봤니 ? 금방 왔다가 저리로 갔는데...” 간난이의 말에 경숙이도 깜짝 놀라면서
주위를 살폈다.
“어디? 언제 태환이가 왔어요? 난 못 봤는데?”
“지금 금방 갔어. 밖에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았니? 우리 태환이도 거기 있다”
경숙이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엄마 정신 차리세요, 엄마 지금 꿈을 꾸고 있어요.
금방 잠꼬대로 태환이를 막 부르더니 아직도 잠이 덜 깼어요?” 하는 것이다. 간난이는 허탈했다.
‘이 모든게 꿈이었다니...’ 간난이는 자꾸 꿈속의 일들이 눈에 어른거렸다. “얘 경숙아 담배 있니?”
“엄마 담배 끊었잖아”
“응 그래, 없으면 할 수 없지, 어떻게 됐니? 알아봤니?”
“응 알아 봤는데 잡혀간 게 확실한거 같아. 난 지금 또 나가봐야해. 을지로 2가 파출소에서 회사로
전화를 했었다니까 아마 지금은 중부 경찰서에 있을 거라고 하더라구.
지금 여기저기서 닥치는 대로 젊은 사람은 다 잡아간대. 지금이 무슨 특별 단속기간이라나?
그래서 지금 시내엔 형사들이 쫙 깔려 있어. 지금 다시 나가봐야 하는데 엄마도 같이 갈래요?”
간난이는 “그래 나도 같이 가봐야겠다.” 하면서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일어설수가 없었다.
방바닥을 짚고 일어서다가 그대로 넘어졌다
“엄마 왜 그래? 어디 안 다쳤어?”
경숙이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간난이는 어이가 없었다, 아까 기절하기 전에 일이
생각이 났다. 간난이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마 내가 이제 앉은뱅이가 되려나 보다”
“뭐요? 앉은뱅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요?”
간난이는 아까 있었던 일을 대충 말해 주었다.
“그래서 어떻게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글쎄 태환이가 왔었잖니. 그런데 와서 하는말이
어머니는 죄가 없으니 걱정 말고 열심히 살라는구나” 간난이는 기절 했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죄가 없다니 그게 무슨 말 이예요?”
“아니 내가 잠들기 전에 내가 죄가 커서 벌 받느라고 앉은뱅이가 되는구나 생각을 했었거든”
경숙이는 그 말을 듣고 펄쩍 뛰면서 “엄마는 별 생각을 다하네. 엄마가 무슨 죄가 있어?
엄마만큼 착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런 생각 말고 누워 계세요. 오늘 저녁만 쉬고 나면 내일은
괜찮을 거예요. 그럼 빨리 갔다 올게요.” 하면서 일어섰다. 경숙이 눈에 눈물이 글썽거린다.
“그래 난 아무래도 안 되겠으니까 너 혼자 갔다 와야겠다.”
“예, 너무 걱정 마요. 뭐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남들도 다 가는 건데. 암튼 얼른 갔다 올게요”
하면서 경숙이는 나갔다.
겨울철이라 오후 여섯시 밖에 안됐는데도 밖은 깜깜했다. 눈이 와서 낮에 녹았던 것이 다시
얼어붙어서 경숙이가 걸어갈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 소리가 났다.
밤 열시가 지나서야 나갔던 경숙이가 돌아왔다. 이번엔 친구 경자하고, 경자 신랑도 같이 왔다.
경자는 멀미 친정 동네에 사는 아이인데, 몇 년 전에 혼자 서울에 와서 이집 저집에서 식모살이도 하고,
공장에도 다니고 하다가 양장점 기술자 노릇을 하는 청년을 만나서 결혼식도 하지 않고, 그냥 살림을
차리고 살고 있었다.
경자 신랑 삼수는 고향이 이북 어디라고 했고, 키가 자그마하고, 앞이마가 훌렁 벗어진 사람이다.
경숙이가 경찰서에 혼자 가는 것보다 남자가 같이 가서 알아보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불러서 함께
중부 경찰서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래 어떻게 됐니? 태환이는 만나 보았니?” 하면서 간난이는 경숙이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경숙이를 보는 눈이 이상했다. 눈동자가 경숙이를 보는 것이 아니고, 어디를 보는건지 초점이
허공을 보는 것 같다. 경숙이는 이상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별 생각 없이 대답을 했다.
“아니 오늘은 못 만났어, 그렇지만 내일 아침에 일찍 다시 가 볼려구”
경숙이의 말에 의하면 경찰서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알아 볼 수도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간신히 순경을 붙잡고 물어 보았지만, 지금은 알 수가 없다고 했단다.
경자 신랑인 삼수가 경찰서 사무실로 들어가서 태환이가 여기 있나 없나 명단이라도 확인하려고
했지만, 경찰관이 보여 주질 않아서 끝내 알아 볼 수가 없었단다.
사람들 말에 의하면 잡혀 온 사람들은 지금 모두 경찰서 지하실에 있는데 그 수가 수십 명이나 됐고,
오늘 저녁은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 훈련소로 떠난다고 했다.
그래서 만나려면 그때나 잠깐 얼굴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단다. 오늘도 벌써 한 차례 떠났고
그 후에 잡혀 온 사람들은 내일 아침에 떠날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경숙이는 한숨 자고 내일
새벽에 다시 가 봐야 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태환이는 아침에 일찍 잡혔을테니, 어쩌면 이미 떠난 사람들속에 있을지도 몰라,
그래도 아직 정확히는 모르니까 내일 새벽에 다시 가 봐야지” 경숙이는 이렇게 말을 하다가 갑자기
말을 뚝 그쳤다. 어머니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아까처럼 초점 없는 눈을 뜨고 있는데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엄마 괜찮아요? 내말 들리는 거야?”
“응 그래 다 듣고 있어”
“어디 아픈 거 아냐?”
“아니” 그러면서 간난이는 손을 휘휘 젔더니 일어서려다가 도로 주저앉으며 “나 변소에 좀 가야겠다.
경숙아 나 좀 부축해 다오” 이러는 것이다.
사실, 간난이는 눈도 잘 안 보이는 것이었다. 처음엔 다리에 힘이 없어 일어서지 못 하더니, 이제는
눈도 잘 안 보이는 것이다. 그런 간난이를 보고 딸 경숙이는 당황했다. “엄마, 눈이 안보여?”
경숙이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그러면서 자꾸만 간난이를 부축해서 일으켜
세우려 했다. 그러다가 이번엔 둘이 붙잡고 함께 넘어졌다. 그때 옆에서 보고 있던 경자가 말했다.
“언니 요강 없어?”
“응 밖에 있어” 경자가 얼른 나가서 요강을 가져왔다. 삼수 총각은 밖에 나가 있고 경숙이와 경자가
부축을 해서 요강에다 소변을 보게 해 주었다. 그러자 간난이는 웃으면서 “내가 너희들 덕분에 호강을
하는구나.” 한다. 경숙이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엄마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와요?” 간난이는 그래도 빙그레 웃었다.
“그럼 어떻게하니? 통곡이라도 할까?”
그렇다. 이럴 땐 원래 통곡을 해야 한다. 원래 사람은 칠정(七情)을 가진 동물이므로 갑자기 충격을
받거나, 너무 슬프거나 하면 신경에 이상이 생겨서 다리에 힘을 못 쓰거나 눈이 잘 안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치는 특별히 의학을 공부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오랜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느정도는 알수 있는 것이다.
“엄마, 그럼 울어요. 통곡을 해요. 차라리 속이 후련 하도록 통곡을 하라구요” 그러나 간난이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원래 간난이는 그런 여자였다. 슬프거나 나쁜 일이 있어도 속으로 갈무리해서 감추고, 남에게는
내색을 않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이 기분 좋도록 항상 애를 쓰고, 우스운 이야기도 곧 잘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간난이의 속에 감추어진 슬픈 이야기들은 잘 몰랐다.
하지만 딸인 경숙이는 그러한 어머니를 잘 알았다. 그래서 경숙이는 더 목이 메어왔다.
경자도 눈물을 흘린다. 그러자 간난이는 “얘, 너희들 왜 우냐? 운다고 무슨 수가 있냐?” 하더니
웃으면서 “내가 옛날이야기 하나 해줄까?” 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옛날에 어떤 여자가 아들이 둘이 있었는데 하나는 우산 장사를 하고, 하나는 소금 장사를 했더란다.
그래서 그 엄마는 비 오는 날이면 소금 장사하는 아들을 생각하며 울고, 볕이 잘나는 날이면 우산
장사하는 아들을 생각하며 울었더란다. 너희들 그 여자가 좀 청승맞다고 생각하지 않니?
이왕 그렇게 된거 바꿔서 생각하면 웃을 일만 생길 텐데 말이야”
경숙이는 어이가 없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경자가 말했다. “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우리 좋게
생각을 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일단 울음을 그쳤다.
그러나 무엇을 좋게 생각한단 말인가! 태환이가 붙들린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간난이가
다리를 못 쓰고 눈이 잘 안 보이는 것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간난이 말처럼 방에서 부축을 받으면서
용변을 보게 되었으니 호강을 하게 되어 좋다고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인지. 경숙이는 답답했다.
그렇게 밤이 깊어 갔다. 이튿날 새벽부터 경숙이는 중부 경찰서에 가서 태환이를 보려고 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이 지하실 비상구를 통해서 하나씩 나와서 버스에 타는 것은 보았지만,
그 곳에 태환이는 없었다. 경숙이는 맥이 탁 풀렸다.
‘태환이는 어제 간 것이 틀림없구나.’하고 경숙이는 생각했다.
태환이는 을지로 2가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종로 3가로 가려고 ‘을지극장’ 앞을 지나가는데 가죽잠바를
입은 사람이 갑자기 어디선가 다가와서 증명서를 보자고 했다. 자기는 형사라면서 지갑을 꺼내서
빼지를 얼른 보여 주고는 주머니에 넣었다.
태환이는 ‘도민증’과 ‘제 2국민역병 수첩’을 꺼내서 보여 주었다. 그랬더니 그 형사가 말하기를
“충주에서 왔군.” 하면서 태환이 증명서를 자기 주머니에 넣고서 “이 증명이 맞는지 확인 좀 하려고
그러니까 따라와” 라고 했다. 태환이는 순간 당황했다.
“증명서가 뭐 잘못 됐나요?”
“아니야 증명서는 틀림이 없는것 같지만, 확인을 해봐야 하니까 따라와” 하면서 태환이를 을지로 2가
파출소로 데리고 갔다. 파출소에는 태환이보다 먼저 잡혀 온 사람이 둘이나 더 있었다.
순경들은 자기들끼리 뭐라고 하더니 세 사람 이름을 적고서 순경 한사람이 증명서를 가지고 나갔다.
눈치를 보니까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다. 그래서 태환이는 순경에게 부탁해서 일단 직장에 좀 늦는다고
전화를 했다. 그래서 양복 공장으로 전화를 해서 증명 조사를 하느라고 파출소에 와 있으니 좀 늦어지던지
못 갈 거 같다고 했다. 그 후로 태환이는 중부 경찰서로 끌려갔고, 그 곳 지하실에 갇혀 있다가 한 시간쯤
지나 버스를 타고 ‘서울 사범 대학’ 운동장으로 갔다.
그곳엔 이미 젊은 남자들이 천 여 명 정도 집결을 해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청량리에서 기차를 타고
논산 훈련소로 끌려갔다.
이렇게 얼떨결에 태환이가 훈련소에 도착 했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고, 건빵 한 봉지로 저녁을 떼우고,
입대 첫날밤을 그렇게 보냈다.
경숙이가 파출소로, 경찰서로 뛰어 다닐 때 태환이는 이미 기차 안에 있었고, 저녁에는 논산 훈련소에서
자고 있었던 것이다.
경숙이는 ‘이제 어떻게 하나’ 하고 망설였다. 오늘도 태환이를 못 만났다고 어머니에게 말을 해야
할 것이 큰일이다. 그렇다고 말도 없이 바로 직장으로 가자니 거동도 마음대로 못하시는 어머니가
얼마나 애타게 기다리실까 하고 생각되서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아시게 될 것인데 집으로 가자’
경숙이가 집에 왔을 때는 정오가 다 되어 있었다. 간난이는 눈을 말똥이며 방안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다행히 얼굴색은 평온해 보였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짐작하고 있는 사람처럼.
“경숙아 네가 고생이 많았다. 배고프지? 얼른 밥 먹어라”
“응 엄마도 배고프지?”
“나야 뭐, 집에 앉아 있는데 ”
“나 밥 먹고 직장에 가야해. 오후에 간다고 전화 했거든”
“그래 내 걱정은 말고, 왕자 엄마가 잘 해주니까 걱정 말고 다녀와라”
간난이는 태환이를 만났냐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경숙이도 태환이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상생활은 계속 되었고 한 열흘 정도 지나자 ‘논산 훈련소’ 중대장이라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다.
태환이는 건강하게 훈련에 임하고 있으니 아무 염려하지 말라고, 책임지고 안전하게 보살펴 줄테니까
걱정 말라고 했다.
이제 태환이가 군대에 간 것이 확실해 졌다. 그리고 건강하게 훈련을 잘 받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간난이의 마음이 한결 편안해 졌다. 그렇게 한달쯤 지나자 간난이는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고, 눈도
그전처럼 잘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태환이에게서 편지도 왔다. 일요일에는 면회도 된다고 해서 간난이는 음식을 좀
만들어서 경숙이와 함께 훈련소에 면회도 갔다. 오랜만에 만난 아들은 좀 그을리기는 했어도 군대
가기전보다 더 건강해 보였다. 간난이는 이제 전처럼 건강을 회복했고 전처럼 다시 명랑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