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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변의 음수대, 신규 증설보다 불량 음수대의 개수가 먼저다
까미노는 국도를 떠난 후에도 한동안 현계를 따른다.
국도를 떠난 길(R. Alto da Pata ~ R. Flores) 가에 음수대가 있다.
1947년에 프레게지아 바르꼬수(지자체 Mealhada의)가 설치했다는데 음수 부적격(impotável) 안내
판이 부착되어 있다.
설마 설치 당시부터 그러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
'음수 부적격'에서 '부'(im)자가 빠지고 아구아 뽀따벨( άgua potάvel/食水)이라는 안내판을 보게 될
날은 언제 ?
까미노 뽀르뚜게스에서도 매일같이 다섯 손가락 안팎의 음수대를 거쳐왔으나 뽀르뚜갈 땅에서는 음수
가능한 곳이 전체 뽀르뚜게스를 통해 20%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짐작된다.
보수와 개수 등 관리에 등한하기 때문일 것이다.
곳곳에 경쟁적으로 설치하듯이 보수와 개수도 그렇게 해야 할 것임에도 고작 부적격 안내판의 부착이
관리 의무의 완수라고 생각하는가.
까미노변에 음수대를 왜 설치하는가.
설마, 뻬레그리노스에게 식수를 제공하기 위한 음수대가 아니고 음수 여부와 관계 없이 단지 개수(個數)
를 늘리는 전시 효과가 설치의 이유인가.
이같은 의구심을 불식하려면 음수대의 신규 증수(增數) 보다 불량한 음수대의 개수(改修)가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늑장 대응이 까미노변의 음수대에 한한다면, 단지 뽀르뚜갈인들의 뻬레그리노스에 대한 관심과 성의의
부족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까미노가 이베리아 반도 전역에 퍼져 있으나 발원지가 스페인이기 때문인지 뻬레그리노스에 대한 열성
에서 두 나라 사람들(스페인과 뽀르뚜갈) 간에 온도 차가 있는 듯 하니까.
그러나, 공공 편의시설 전반에 걸친 국민젹 나태성 때문이라면?
어떤 일을 하다가 관련된 전기 시설의 고장과 가스(Lpg Gas)의 부족으로 난감한 처지가 된 적이 있다.
즉시, 신고와 주문을 했다.
한낮에 했건만 24시간이 훨씬 지난 다음날 석양에 간신히 해결되었다.
하마터면 크게 낭패할 뻔 했다.
중미의 멕시코에서 겪은 일인데 현자, 군자가 아니고 범부일 뿐인 나의 깨달음이 적지 않았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이 된 것이다.
생산(공급)이 소비(수요)를 따르지 못한 아날로그(analogue) 시대에는 전자가 왕이었다면 과잉생산의
디지털(digital) 시대에는 후자가 왕이다.
애프터 서비스(A/S) 경쟁의 시대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소비자인 나에게는 신속하고 충실한 서비스를 요구할 권리가 있으며, 종래에는 그 권리를 십분
사용했건만 그 권리 행사에 소극적이게 되었다.
그렇게 해도 뽀르뚜갈의 음수대와 멕시코의 대응보다 신속하고 정확한 서비스를 하며 왕 대접을 받고
있는데 낯 붉힐 일을 왜 하는가.
절박하게 다가오는 십자고상
잠시 후 플로레스 길 왼쪽의 미니 마켓(Mini Mercado)에 뭘 사러갔다가 물건은 사지 못하고 출입구가
다를 뿐 한집인 까페(Carlos da Bina)에서 맥주 1캔을 또 마셨다.
렌디오사와 싸르젠뚜 모르(Sargento Mor)를 비교하며 피식 웃었다.
65c를 지불하며 생각난 것은 렌디오사.
이 집이 인색하다기 보다는 그 집이 후(厚)한 까닭이리라.
그래야 맘이 편하다면 그것이 정답이다.
남행 기준, 까미노의 우측(西)은 아베이루, 좌측(東)은 꼬임브라 형국이다.
그래서, 라가르 길(R. Lagar) 왼쪽의 까뻴라와 이스뜨라다 라메이랑 길(Estr. Lameirão) 왼쪽의 예배
당(Nicho de São Romão)은 꼬임브라의 프레게지아 쏘셀라스의 예배당이다.
1km쯤 후의 쏘브레이라 길(R. Sobreira) 우측 예배당(Capela de Adões)은 당연히 아베이루의 지자
체 메알랴다에 속하는 예배당이고.
곧, 현계가 끝나고 온전한 꼬임브라 길이 시작된다.
삭막한 까미노라고 느낄 때가 간혹 있는데 어린이놀이터(Parque Infantil de Trouxemil)가 반가웠다.
뽀르뚜갈의 어린이 놀이기구에서 천진난만한 늙은 어린이가 되어 보았다.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잖은가.
상통하는 무엇(공통분모)이 있다는 뜻이다.
단순하다는 것, 그러므로 천진난만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리라.
티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한 사람으로는 어린이 밖에 없으며, 그래서 예수가 그렇게 말했으리라.
어린이가 되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신약 마태복음18 : 3)
잠시지만 행복했다.
까미노 노변(R. Nsr. dos Aflitos)의 휴게 광장에 작은 건물이 초소(哨所)처럼 서있다.
소규모 슈라인(shrine)에 불과한데도, '고통받는 주님의 예배당'(Capelinha do Senhor dos aflitos)
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과장이 심한 듯 하나 아무 이름이면 어떠냐.
목표 꼬임브라의 속보(速步)를 위해서는 잠간일 망정 휴식이 필요한 늙은이에게 그 공간임이 분명한데.
절박하게 다가오는 십자고상(十字苦像) 앞에 무릎이 절로 꿇렸다.
만민의 고통을 대속하는 분임이 분명하지 않은가.
까미노는 남동진하는 쌍띠아구 길(R. São Tiago)을 따라서 지자체 꼬임브라의 프레게지아인 뜨로제밀
(Trouxemil)의 다운타운을 지난다.
마을광장(Largo da Igreja)에 교구교회(Igreja Paroquial de S.Tiago de Trouxemil)가 있고 교회의
역내애는 부속묘지(Cemitério da Igreja de Trouxemil/Casa Mortuária de Trouxemil)도 있다.
한 이베리아 반도지만 스페인과 뽀르뚜갈의 다른 점 중 하나는 교회 부속 묘지의 유무다.
스페인의 교회(내가 본 모든 교회)에는 부속 묘지가 있다.
교회의 규모와 비례되는 묘역인데, 묘지 없는 교회는 상상마저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교인과 교회묘지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뜻이다.
사망한 신도의 유택이 있을 곳은 당연히 교회 묘역이라는 것인데, 뽀르뚜갈은 다른 것 같다.
뽀르뚜갈에서는 교회를 건성으로 지나쳤기 때문에 보지 못한 것인가.
교회에 딸린 묘지를 본 것이 여기가 처음이니까.
뜨음해 가는 순례자상
교회 앞 광장에는 까미노 순례자상(像)이 서있다.
데형 상을 보기는 오랜만인 듯 하며 파띠마에 다가갈 수록 더 뜸해 가는 것 아닌지.
파띠마의 출현으로 자국인들(뽀르뚜갈인)의 까미노 열정의 온도가 미세하게나마 내려가고 있단다.
이 항간의 평이 단순한 풍설로 그치지 않는다면 지구촌민 전체를 사로잡은 까미노 열망도 하향 곡선의
시기를 앞당길 수 있기 때문에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큰 규모의 어린이집(Centro Social e Paroquial de Trouxemil IPSS)도 있다.
맡긴 부모들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으려면 맡겨진 이린이들이 마냥 즐겁고 행복할 수 있어야 하는 집.
이와 같은 뒷받침 없이, 알량한 금전으로 출산을 기대하고 독려하는 자들이 나라를 좌지우지 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얼마나 참담한가.
"둘도 많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며 젊은이들의 왕성한 정력(정관)을 예비군 훈련 면제라는 독사탕과
바꿔치기 한 악귀들이, "자녀에게 최고의 선물은 동생"이라는 가당찮은 소리를 질러대고 있는 현실이.
시가지의 많지 않은 건물들 중 중심 건물은 뜨로제밀의 청사(União das freguesias de Trouxemil e
Torre de Vilela)다.
2013년에 또히 지 빌렐라(Torre de Vilela)와 합병한 마을의 새 청사란다.
아게다의 관광안내소가 연상되며 마을 비블리오떼까(Biblioteca/도서관)와 한집살림을 하는 건물.
마을 도서관에 관심이 있으므로 아무리 바빠도 내부를 살펴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문이 잠겨 있기 때문이었는데 면적은 넓으나 하는 일은 우리의 통반 보다도 적은 마을의 아담하고 깔끔
한 건물처럼 마을이 주는 인상도 그랬다.
뜨로제밀을 떠난 두스 자신뚜스 길(R. dos Jacintos)은 IP3도로를 지층으로 입체 횡단한 후 중께이라
지 뜨로제밀 길(R. da Junqueira de Trouxemil)이 되어 동으로, 남으로 나아간다.
이 길과 함께 로터리를 4분의 1쯤 돌아 남하하는 까미노 뽀르뚜게스는 뽀수길(R. Poço)을 따라 희망의
성모예배당(Capela de nossa Senhora da Esperança)을 지난다.
희망의 성모길(R. nossa Senhora da Esperança)에서 발베르지 길(R. de Valverde)에 드는 것은 인
적 있는 길에서 인적이 없는 길로 전환하는 과정이라 할까.
발베르지 길 이후는 꼬임브라까지 남은 길 8km쯤에서 반 이상 침묵할 수 밖에 없는 길이며 뜨로제밀
에서 아데미아, 꼬임브라로 가는 길이라는 뜻의 안내판 하나 뿐이니까.
더구나 대부분의 길 양쪽을 한 여름의 무성한 가로수로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영농을 위한 수로가 가로 세로로 뻗어 있으며 길과 동행하거나 길을 가로지르는 수로에 다리도 있지만,
다리 위를 걸으면서도 다리를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명소는 커녕 다리 축에 들지도 못할 다리 아닌 이 다리가 이 길에서 명소로 대접받고 있다.
이스뻬르띠나 길(R. da Espertina)의 다리 '뽄치 지 이스뻬르띠나'(Ponte de Espertina)다.
하켄 크로이츠가 왜 까미노에 출현하는가
까미노는 이스뻬르띠나 길에서 우측 길(R. Nova de São João)로 옮긴다.
이전 길이 반농로(반은 교통로)라면 이 새(nova) 길은 완벽한 농로다.
N111 도로까지 500m도 되지 않는 짦은 구간이며 중간 쯤에 자리한 세례 요한 예배당(Capela de São
João Baptista da Adémia de Baixo)을 지나는 길인데 내게는 여간 아닌, 큰 충격을 안겨준 길이다.
이 길 외에도 여러 루트의 까미노에서 받아온 충격이기는 하지만.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면 농경로일 뿐인 이 길이 준 충격이 아니다.
까미노가 아니라면 걷지 않았을 것이므로 귀책 사유가 있는 길도 아니다.
굳이 책임소재를 가려야 한다면 모든 루트의 까미노에서 받은 충격이므로 까미노를 지목해야 하겠으나
까미노가 제공하지 않았을 뿐더러 까미노와도 무관한 그림이 준 충격이므로 까미노도 무죄다.
그렇다면 유죄는 그림인가 그림을 담은 공간인가.
그러나 그림과 공간은 사유하는 생명체가 아니고 스스로는 아무 짓도 할 수 없는 무기물일 뿐이다.
결국 그림을 그린 사람과 공간의 제공자가 유죄?
공간 제공자도 그림으로 인한 피해자다.
음흉한 목적으로 같은 그림을 모든 까미노의 도처에 무수히 그린 자(들)만 가해자로 남는데 이 가해자의
처벌은 가능한가.
도대체, 그 그림은 무엇인가
하켄 크로이츠(Haken kreuz/독일어로 갈고리십자가)다.
유럽 전체를 짖밟아 신음하게 했으며 2차세계대전을 일으켜 온 세계를 피로 물들게 한 나치스 깃발이다.
패전으로 사라진 깃발이 부활한 것인가.
까미노의 곳곳에 등창하고 있으니.
지하에서 꿈틀거리며 힘을 비축하다가 까미노의 뻬레그리노스를 빙자해 지상으로 나온 자들인가.
까미노를 걸으면서 이 자들이 제2의 나치 건설을 들고 나올 것을 상상하면 모골이 송연하기를 거듭하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충격이 있겠는가.
힌데, 니치스(Nazis)의 후예들은 왜 까미노를 택했을까.
4년 전인(2015년 기준) 2011년에 비해 부쩍 늘어나고 있는 까미노의 하켄 크로이츠.
나치스의 창당 해(1919년)로부터 100년 해인 2019년을 기해 어떤 일을 꾸미고 있는가.
(2022년말 까지는 특별한 징조가 없지만)
독일은 프랑스처럼 직접 맞대고 있는 국경국은 아니지만 프랑스 다음으로 가까운 근접 대국이다.
(벨기에, 룩셈부르그와 스위스도 있으나)
내가 만난 2차 세계대전 이후 세대 중 알레만들은 다행히도 순수한 뻬레그리노스의 열정을 가진 사람들
이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평생의 계획이 까미노 메인 루트를 완주하는 것이라는 독실한 가톨릭 신도들이라 한꺼번에 완성한 나를
한없이 선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그들 개개인의 순수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머리가 워낙 크기 때문인지 속내를 알기 어려운 사람들이기도 하며, 게르만이라는 민족주의,
국가주의 앞에서 개인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심각하게 볼 수 밖에 없는 그들이다.
인접, 근접 양 대국은 유럽 역사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을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후예들이다.
스페인- 프랑스 국경인 프랑스 길과 아라곤 길(Somport)의 피레네산맥을 넘을 때도 생각했듯이 지금은
펄럭이는 EU의 깃발 아래에서 조용히 있지만 마냥 잠자고 있을 그들(독일과 프랑스)이 아니지 않은가.
자국인(스페인) 다음으로 많은 독일의 뻬레그리노스 중에 나치스의 부활을 시도하는 자가 얼마쯤 될까.
일어탁수(一魚濁水)라잖은가.
수의 문제가 아니다.
제2의 히틀러, 나폴레옹이 출현하면 EU가 풍비박산 될 것이다
도미노 현상으로 UN의 깃발이 갈기갈기 찢기고 지구촌은 카오스(chaos) 상태로 전락할 것이다.
그 때, 나라의 명운은 차치하고 호구지책까지도 수출에 달려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공짜는 선 후진 나라나 지방, 빈부 가리지 않고 인기있는 무엇인가
하도 끔찍하여 상상하는 것 마저도 진저리쳐질 일이라 생각을 털고 N111 도로로 나갔다.
도로를 횡단한 후 안내판의 파란 화살표 방향인 까베수 길(R. Cabeço)을 따라 200여m에 불과한 남남
서진 길로 벨류 강(Rio Velho)을 건넜다.
강에 다리가 놓였을 텐데도 전혀 의식되지 않은 다리를.
장기간 준설을 하지 않고 방치했으며 밭을 일굼으로서 강과 밭의 구분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다리도 의식할 수 없도록 메워졌기 때문이고.
큰 비가 내리면 어떻게 대처할까.
아데미아(Adémia) 마을을 떠나, 벨류 강을 왼쪽에 끼고 동동남하와 남하, 다시 동동남하하는 까미노는
빠르쎌라르 두 깜뿌 길(R. Parcelar do Campo)을 따른다.
지도에는 강과 나란히 가는 듯이 보이나 물이 흐르고 있는지 여부는 고사하고 강의 실재 여부도 확인할
수 없도록 우거진 숲과 함께 가는 답답한 길이다.
아데미아를 거쳐서 역(逆) 'ㄷ' 자 형으로 돌아 오는, 조금 전에 횡단한 N111 도로와 합류하기 까지 답답
하고 지루한 3km쯤 이후는 이름을 N111-1로 바꿔 돌아온 길(구N111)을 따라 남하를 계속한다.
벨류 강이 위치를 바꾸는(내가 가는 방향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점에서 까미노를 동반하는 N111-1
도로는 다시 개명한다.
씨드레이라 도로(Est. da Cidreira)로.
숨통이 트인 도로는 로터리를 돌고 벨류 강의 실재도 확인하고 곧 철도와 입체 교차한다.
노상의 여러 공공 주차장들은 썰렁한데 반해 로터리 한 쪽의 널따란 주차장만 차량들로 가득차 있다.
인기 있는 까닭이 '무료'라면 썰렁한 이유는 '유료'일 것이다.
공짜는 선 후진 나라나 지방, 빈부 가리지 않고 인기있는 무엇인가.
주차 공간이 많이 필요하도록 차량이 급증하고 밀집된 건물군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면 시가지에
다가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꼬임브라의 다운타운이 틀림 없을 것이다.
자기 몸을 태워 어둠을 몰아내는 촛불이 사라지기 전 마지막 순간에 반짝 한다던가.
벨류 강도 마지막 순간에 자기의 존재를 확인해 주고 사라져버린 것인가.
애틋한 마음이 두리번거리게 했으나 찾지 못한 벨류.
5km 쯤을 걷는 동안에 실존 여부도 모르면서 애착이 가고 챙기려는 마음이게 한 강 이름, 벨류.
뽀르뚜갈어 'velho'(벨류)는 늙었다(老朽, 老齡)는 뜻이다.
늙은이 중에서도 남성 늙은이인 벨류(여성은 벨랴 Velha)다.
강이 노화되어 쓸모가 없기 때문에 천덕꾸러기로 밀리다가 퇴출되는 중인가.
그래서,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발현인가.
왠지 측은한 생각에 짠해지는데 어데서 왔는지 모르게 홀연히 나타난 강.
결단코 늙은 강(Rio Velho)이 아닌, 혈기 왕성한 청년인 듯 힘차 보이는 강(Rio Mondego)이다.
이열치열 이냉치냉?
열은 열로 풀고 냉은 냉으로 쫓는 것이 정도라잖은가.
나란히 동행해 주는 몬데구 강이 텅 빈 듯 애잔한 마음 자리를 채워주는 듯 했으니까.
스스로 다가온 꼬임브라의 관광안내소
A31(N1, IC2) 도로와 지층으로 입체 교차하고 동동남하하는 아베니다 씨다지 아에미니웅(Av. Cidade
Aeminium)에 들어섬으로서 감상적이 된 1.5km가 끝났다.
아에미니웅은 꼬임브라의 옛 이름이라니까 이미 꼬임브라의 다운타운이다.
그러므로, 바야흐로 하루의 유종의 미를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시간이다.
지도가 1km 남짓 된다고 알려주는 거리 안에서 해결해야 순조로울 것이니까.
옛 꼬임브라도로(Av. Cidade Aeminium)가 끝나고 싼따 끌라라 다리(Ponte de Santa Clara)가 지척
으로 다가오는 지점, 다리 입구의 뽀르따젱 광장(Largo da Portagem)에 당도했다.
뽀르뚜갈의 대학 발상지라고는 해도 전체 인구가 14만명을 약간 상회하기 때문에 중소도시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상상이 엄청 빗나간, 큰 도시라는 것이 첫 인상인 꼬임브라(Coimbra).
지금은 도농의 구분이 사라지다시피 되었지만, 예전에 간혹 상경한 촌로들의 "현기증을 느꼈다"는 말을
과장으로 받아들였던 내가 틀렸음을 알게 해준 도시다.
뽀르뚜갈의 까미노에 들어선 이래 큰 도시 뽀르뚜를 거쳐 왔지만 해안을 따라 바이 패스했기 때문에 첫
번의 도시 체험인 셈인데, 잠시지만 어리둥절하고 어벙해졌다.
이 꼴이 완전한 시골 늙은이가 되었음을 의미하니까.
선 자리에서 한 바퀴 돌며 살펴 보았다.
관광안내소 가는 길을 물을 채비하기 위함이었는데 행운이 스스로 다가오다니.
동남쪽 빌딩숲에서 'TURISMO'가 튀어나오듯 가슴에 붙은 자그마한 건물이 달려왔다.
묻기 전에 관광안내소(Turismo Centro de Portugal /Posto de Turismo de Coimbra)가 절로 찾아
왔으니 길 나그네에게 이보다 더한 행운이 있겠는가.
단숨에 달려갔다.
까미노 지역이라 해도 관광도시 안내소의 주 고객은 뻬레그리노스 보다 일반 관광객이다.
차림이 후자로 보이는 몇명을 도상(圖上) 안내하던 20대 초반인 듯 한 두 여인 중 하나가 나를 맞았다.
기재한 방명록을 통해 내 신분을 확인한 후 그녀는 더욱 관심있게 응대하려 하는 듯이 느껴졌다.
꼬레아(Corea)라는 빠이스(Pais/국가) 보다 아누(Ano/나이) 81에 경악히는 표정이었으니까.
뻐레그리노스에게는 원하는 알베르게의 위치를 알려주는 것이 응대의 기본이다.
대부분의 뻬레그리노스는 가이드 북에서, 또는 구전으로 관심이 가는 알베르게를 이미 알고 있으므로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보편적인 안내다.
내 목적지인 '알베르게 지 뻬레그리노스 하이냐 싼따 이자벨(Albergue de Peregrinos Rainha Santa
Isabel)'의 안내도 예외가 아니다.
다만, 알베르게와 수도원이 인접해 있다면 보다 잘 알려진 수도원을 목표로 하는 것이 유라하며 아무리
자상하게 설명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늙은이에게는 보다 더 상새하게 적고 그린 약도가 효과적이다.
나는 그같은 약도를 받아들고 관광안내소를 나왔디.
그렇게 하고도, 못 미더운지 뒤 따라 나와서 몬데구 강 건너편, 지호지간의 건물을 가리키며 재삼 설명
하고 돌아가는, 손녀처럼 귀엽게 느껴진 미소형, 그녀가 어찌나 고마웠는지.
싼따 끌라라 다리(Pte. de Santa Clara)를 건너, 관광안내소에서 700m쯤이라는 수도원(Mosteiro de
Santa Clara a Velha)에 당도하는 일은 아주 순조로웠다.
한데, 이 곳의 이름에는 수도원에 'Velha(舊, 늙은)가 첨가되어 있음을 간과한 나.
13c에 몬데구 강안에 수도원의 건축이 개시되었으나, 봉헌할 때에는 범람이 잦은 몬데구 강과 공존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으며, 결국 강에서 거리가 있는 동쪽 고지대에 다시 신축하게 되었단다.
신축한 건물이 바통을 이어 받음에 따라 이(기존) 수도원은 은퇴하게 되었고.
이 은퇴 건물에 '옛'(舊/velha) 자를 추가해 박물관의 임무를 맡게 함으로서 개점 폐업은 면하게 되었고,
바통 터치한 수도원에는 신(新/nova) 자를 전치함으로서 신 구를 구분하게 했단다.
구 수도원에서 상거가 500m정도에 불과하지만 고지대라 약간 힘들여 도착한 신 수도원 앞 알베르게.
관광안내녀가 잠시 착각을 했는가.
박물관이 된 구 수도원을 지목하고 안내를 했으니.
구 수도원(박물관)에서 성의있게 안내함으로서 애로가 전혀 없었으니까.
경로우대
벗겨진 이마에 큰 주름이 유난히 많은 사제 복장 남이 호들갑이라고 할 만큼 반가이 나를 맞았다.
까미노에서 내가 나이 덕을 보는 것은 대부분의 분야에서 거의 일상화 되어 있다.
오스삐딸레로스( Hospitaleros)는 물론 뻬레그리노스 간의 자발적 노인 공대는 특정국 사람 외에는 범
지구적(pan gloval)이다.
내가 새벽부터 해 지기 직전까지, 온 종일 걸을 수 있는 것도 노인 공대에 하나같이 앞장서고 있는 지구
촌민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호(好) 시즌(season)에는 거의 모든 알베르게가 베드(bed)의 배정순을 입실순으로 하므로 벙크의 경우
꼴찌 입실자는 벙크의 최악인 상층 어디에 배정되는 것도 행운으로 여겨야 한다.
미명부터 어둑발 직전까지 종일 걷는 것이 일과라 꼴찌로 도착될 수 밖에 없는 내게는 입실거부를 면한
것만도 천만 다행이며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s)를 불러야 할 이유가 될 정도다.
그런데도, 나는 항상 하층 최선의 베드에서 하루의 피로를 풀게 된다.
늦게 당도하는데다 만실일 때 입실 거부가 당연하지만 늙은이를 차마 내쫓지 못하는 오스삐딸레로스가
간이침대를 만들어줘도 내 잠자리는 곧 안락한 베드로 바뀐다.
편한 베드를 배정받기 위해 새벽같이 출발, 속보를 했고 일찍 마친 젊은이들인데도 마치 이 늙은이에게
양보할 베드를 확보한 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자기의 편한 베드 양보에 경쟁적(?)이다.
심야에 수직 사다리로 오르내려야 하는데 젊은 자기네는 아주 쉽게 하지만 할아버지에게는 아주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하다는 것이 지구촌 젊은이들이 앞다투어 양보하는 이유다.
한국인이 가장 많은 프랑스 길에서도 이들 젊은이 중에 한국인은 없었지만, 이 시대에 이를 능가할 경로
(敬老)가 또 있는가.
하지만 5c 전, 이조 중기인 16c에 우리의 선인(松江 鄭澈)은 똑 같은 경로사상을 시조로 고취했다.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니 돌이라 무거울까.
늙기도 설웨라커든 짐을 조차 지실까>
까미노는 북한(Norte Corea) 외에는 지구상의 모든 나라 사람이 걷는 길이다.
그러므로, 까미노에서 행해지는 이같은 선행들은 범 지구적이며 글로벌 빌리지(Gloval Vilage/지구촌)
의 일체적 공동선(共同善)이라 할 수 있는데, 매번 내 코끝을 찡하게 한다.
그러나 삼강오륜의 깃발을 흔들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외쳐대고 있는 나라가 이 특정국이라면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irony)가 있겠는가.
어쩌다가 부끄럽기 짝이 없게 되었는지 서글픈 마음 금할 수 없다.
해외의 선진국으로 알려진 나라들에서 늙은이는 많은 분야에서 나이 덕을 본다.
이베리아 반도에서도 까미노와 무관한 교통비(철도와 장기리 버스 등)에서 파격적인 할인 혜택을 주며
외국 고령자에게도 경로우대 카드(TARJETA DORADA/1년짜리)를 발행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표를 먹고 사는, 소위 정치가들의 이기적 착각으로 특정분야(지하철)에 공짜(무임)세상
이 된 후 아무도 손대지 못할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렸다.
표를 잃을까 겁이 나기 때문이다.
이해가 직접 걸린 90 늙은이가 주장하건대, 무임을 지양하고 전 분야에 걸친 할인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공짜는 우대나 혜택이 아니며 인격적 괄시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공간적으로 여유롭게 배치되어 있는 7개의 목제 벙크(bunk)와 새로 교환된 깨끗한 침구.
풀(full)이라 해도 14명에 불과한데 그 인원에게는 사치가 될 만큼 최고의 주방으로 안내하며 "유 오너".
라고 말했다.
뽀르뚜갈어를 모르는 내게 오스삐딸레로가 영어로 한 말이다.
아마, " you are the owner of this kitchen"을 줄여서 한 말일 것이다.
직역하면 "당신이 이 주방의 주인"이지만 오늘밤에는 내가 유일한 투숙자라는 말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8€에 이같이 호강을 누리는 것도 민망스러운데 wifi까지.
금상첨화다.
고통의 체감은 상대적이다
아직 떠있는 해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낸다면 여간 억울한 일이 아니다.
짐을 풀자마자 나선 이유다.
1차 까미노 뽀르뚜게스 때의 리마 강(Rio Lima / Ponte de Lima의)을 연상하게 하는 몬데구 강(Rio
Mondego)의 맑고 깨끗한 물, 고지대에서만 가능한 상쾌하게 탁 트인 전망이 나를 밖으로 유인했다.
독점하게 된 최고의 주방은 나로 하여금 북북서(11시방향)로 2.5km를 더 걷게 했다.
초대형 수퍼마켓 꼰치넨치(Continente) 까지 다녀오게 한 것이다.
비프스테이크용 쇠고기와 와인을 비롯해 몇가지를 샀다.
아무리 저렴한 대형마켓이라 해도 이 정도를 사려고 2.5km를 걷는다면 어이없는 소탐대실일 것이다.
하지만, 공식 일과에 포함되어 있는 숙박지 탐방 몫(하루 걸은 거리의 10~20%)의 실행에 해당된다면?
매우 합리적이며 바람직한 일거양득일 것이다.
그러나, 귀로에 터진 문제는 적잖이 심각했다.
찢어지고 갈라졌기 때문에 성이 난 발뒤꿈치를 달래려면 탐방 프로만이라도 절제해야 하는데도 그같은
성의를 보이지 않는다 해서 화가 잔뜩 나있는 발이기 때문이다.
산과 길 가리지 않고, 걷는 것이 평생의 일이 된 내 양 발은 불행하게도 참으로 많이 고생했다.
지구를 3바퀴 반 돌고도 남을 거리를 걷는 동안에 터지고 찢어지고 갈라지기를 다반사처럼 하여 왔지만
파업은 커녕 태업도 하지 않고 순종해 왔는데 지금은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중이며 마지막일 것이 분명한 반년간의 장도를 여의하게 마치려면 한층 더 분발해야 하는데도
어렵사리 든 잠에서 나와 약을 바르고 싸매는 등 응급조치를 해야 할 정도라면 어찌 걱정되지 않겠는가.
유럽의 기독교인, 특히 가톨릭 신도들에게 평생의 소원을 물으면 서슴없는 답으로 순례라 한단다.
내가 초로의 남녀로부터 직접 들은 답도 그랬다.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마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는 것.
한 때 소비에트 연방의 위성국이었던 동구권 나라들은 아직껏 경제적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여유로운 시간도 없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팔메로스(Palmeros/예루살렘 성지 순례자)는 이루지 못할 꿈이며 대체된 성지순례
가 까미노다.
비용과 시간이 대폭 감소되었음에도 여전히 부족한 동구권의 가톨릭 신도들(Peregrinos)에게 까미노는
옛 고난과 형극의 길에서 나아진 것이 전혀 없다.
그래서, 그네들(동구권의 Peregrina/여성 순례자)과 더불어 걷는 까미노와, 함께 묵는 알베르게애서는
목불인견의 참상을 봐야 한다.
걷는 도중에 상처를 묶고 싸매는 응급 치료가 비일비재하며 알베르게의 밤과 새벽은 조금 더 구체적인
치료에 상부상조하는 시간이다.
빠듯한 경비와 시간이기 때문에 병원 치료나 유료 교통승용구 이용을 할 수 없으며 상해나 질병으로 인
한 지연(遲延)이 불가피해도 강행해야만 하는 그네들이다.
경제와 시간의 여유가 있는 환경이 된다면 어떻게 달라질까.
예단할 수는 없으며 닥쳐봐야 정답이 가능하겠지만 그들의 전통적 신앙을 기반으로 하는 순례의 열망이
적당한 타협을 허용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크리스천이 아닌 내 헝가리 손녀(Edina)는 아킬레스건 이상으로 정상 보행을 할 수 없는데도 어떤 타협
도 없이 까미노 프랑스 길과 피스떠라 길(Fistera~Muxia)을 정상인 못지 않게 완주한 철녀(鐵女)다.
가슴이 아리고 쓰리지만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밖에 없는데, 민망스럽게도 그네들의 이같은 처지(고통)
가 내게서는 진통제 구실을 하고 있다.
저 고통들에 비하면 내 아픔은 고통이라 말하기 조차 부끄럽고 사치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되는 순간에
강력한 진통제가 주입된 듯 고통이 싹 가시며 무난히 극복하게 되니까.
30여년 전에 아내가 S대학교병원에서 장시간의 수술을 받았다
장기간에 걸쳐 고생해온 담석증 암을 일시에 수술했기 때문에 온종일 수술대에 누워있었다.
한 팀이 개복하고 담낭 제거수술을 마치면 다른 팀이 이어서 암덩어리인 갑상선과 결핵균에 점령된 임파선
을 들어내는 수술이었는데, 담랑 제거를 집도한 병원장이 수술이 모두 끝난 후 보호자인 내게 말했다.
암 덩어리인 갑상선과 임파선까지 들어낸 대수술이라 회복기간에 고통이 심할 것이라고.
보호자도 미리 각오하고 대처하라는 주의환기용 주문이였다.
그러나 전혀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라던 개복부위에 원인이 분명치 않으며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왔다.
급기야 극약(마약) 처방을 하고 재수술 준비까지 할 정도였다.
이 북새통에 각오했던 암(갑상선과 임파선) 통증은 느껴보지 못한 채 끝났다.
그래서, 내 아내는 남들이 느꼈으며 증언하는 경부의 고통을 모른다.
고통 체감이 상대적임을 의미한다.
무형의 느낌에는 붙박이(객관적) 기준점(선)이 있지 않으며 상대적이기 때문에 제각각이다.
동구권 여인들이 많이 걷는 프랑스 길과 노르떼 길처럼 그네들과의 접촉이 잦으면 웬만한 고통은 어렵
잖게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뽀르뚜 길에서는 그네들 같은 뻬레그리노스와의 접촉이 거의 없기 때문에 유사한 고통이라 해도
참아 내기가 힘겹다.
보다 더 심한 이웃의 고통을 통해서 덜한 내 고통을 치유하게 된다면 이기적인가.
이 이치는 이기적이라기 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는 이유다.
대학 없는 꼬임브라와 꼬임브라 없는 대학
비탈진 길에 세운 건물의 하부가 높은 축대로 되어 있다면 그 길이 심한 비탈임을 의미한다.
"자라에 놀란 사람 솥뚜껑에도 놀란다"는 격인가.
몬데구 강의 잦은 범람을 피해 세운 대체건물 답게 높은 축대 위에 지은 수도원의 길.
슈퍼마켓에 갈 일이 없었다면 2번째 오르는 일도 하지 않았을 만큼 된비알 길이다.
이 된비알 때문에 슈퍼마켓에 가는 일을 포기할 뻔 했으니까.
알베르게 앞에 당도했을 때 어데선가 본 듯 생소하지 않으나 냉큼 생각나지 않는 얼굴과 마주쳤다.
낮술에 취해 있는 이 중년남은 수일전 봄베이루스 숙박소에 늦게 들어와서 새벽에 나간 뽀르뚜게스다.
그 때 짐작했던 대로 까미노를 배회하는 홈리스(homeless)?
저녁거리가 충분하고, 오스삐딸레로의 허락을 받아야 되는 일이지만 함께 숙박할 요량을 말하려는 순간
에, 이 사람 벙어리인 듯 말 없이 떠나버렸다.
그도 나를 기억하는 듯이 보였으며 여기는 그 때처럼 불쑥 들어와서 자고 성난 듯이 나가버려도 될 집이
없는 유명 도시인데도.
쏠로(solo)의 허전함이 스쳐간 한 순간 후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바이하다(Bairrada)의 와이너리를 지나면서도 시음하지 못한 미련 때문이었는가.
마켓에서 바이하다산(産) 와인만 찾는 유난을 떨어 사온 와인을 반주로 한 비프스테이크 저녁을 먹었다.
까미노에서 자작 식사로는 최고급이었다.
1병을 깨끗이 비울 만큼 술술 들어가는 술이기 때문에 주로(酒路)를 차단하느라 애를 먹을 정도였다.
최고로 안락한 알베르게의 밤을 자축한다며 삽시간에 와인 1병(700ml)을 마신 후 밤 새도록 고생했던
전력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그래야 했다.(메뉴'까미노이야기' 까미노 프랑세스9번 글 참조)
잠자리에 드는 것 외에는, 오카리나로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르는 것을 포함하여 하루의 일체가 완료
된 후 강 건너편 꼬임브라의 다운타운에 눈을 맞추었다.
뽀르뚜갈의 옛 수도였으며 대학의 발상지라는 꼬임브라.
밤낮 가리지 않고 전자를 느낄 수는 없으나 후자는 밤낮 구분 없이 실감이 난다.
저 도심에서 대학을 뽑아내면 어떤 꼴이 될까.
뽑아낸 자리를 무엇으로 채워야 균형이 잡힐까.
대학 없는 꼬임브라와 꼬임브라 없는 대학은 상상마저도 할 수 없도록 양자는 불가분의 관계?
그러나 꼬임브라 없이도 대학은 가능하지만 대학이 없으면 꼬임브라도 없을 것이다.
수도(首都)가 빠져나간 꼬임브라는 여전히 건재하지만 대학이 빠지면 꼬임브라도 없겠으니까. <계 속>
발베르지(R. de Valverde)길~이스베르띠나 길(R. da Espertina)
~ 노바 지 상 조앙 길(R. Nova de São
João)
갔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