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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의 문제 |
외부지향적 문화의 문제 |
정복지향적 자연관의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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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의미 : 공동체와 그 규범들에 대한 결속보다 개인과 그의 자유권 및 이해 관계를 강조하는 입장
긍정적 측면 : 생활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고, 어떠한 신념을 취할 것인가를 자신의 양심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됨
부정적 측면 : 개인의 고유한 가치와 기본권의 지나친 강조 → 공동체와 개인의 연결 관계나 공동체의 가치가 소홀히 다루어짐
원인 :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을 집중함 → 다른 사람의 삶이나 공동체에 대해 무관심
쾌락주의
의미 : 인간의 행복을 위해 감각적 쾌락이나 만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입장(쾌락을 최고선으로서 추구)
문제점
㉠ 개인의 보람된 삶과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요청되는 많은 선(善)들이 피해를 입거나 희생당함
㉡ 사람들의 자제력을 잃게 하고, 어떤 경우에는 동물적인 행동을 하도록 만듦
㉢ 일이나 직업을 쾌락 충족을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 간주
일, 직업의 진정한 의미 : 자아 실현의 수단, 공동체적 삶에의 참여 수단
㉣ 다른 사람이나 사회의 쾌락에 대해서 무관심 ex)스피노자
- 타인의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 침해
- 과소비를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우
㉤ 물질적 풍요가 반드시 인간의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것은 아님
- 가족과 친구, 이웃과의 인간 관계, 사람과 자연의 친근한 관계가 행복의 결정 요인
극복 방법 : 물질적 쾌락을 넘어 선 인간의 고유한 심미적․정신적 만족감 추구
② 전통윤리의 특성
▪전통윤리의 행복 : “행복은 밖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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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군자 |
불교의 무소유 |
장자의 진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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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과 수신
① 중용 ② 사단설 四端說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
불성과 수행
① 오온 五蘊설 ② 불성과 삼독 三毒 ③ 대승불교 ④ 선 禪불교 |
덕과 무위자연
① 노자 ② 장자 |
전통윤리의 사상적 근거 : 인간 내면의 강조
∘유교 : 인심(人心) = 천심(天心)
∘불교 : 인간의 마음 = 부처의 마음
자연의 모든 존재는 질서 속에 연결되어 있다.(연기설)
전통윤리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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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윤리의 특징 |
문 제 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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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유대감(인간관계) 중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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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의식, 정(情)의 윤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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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적 인간관계 중심의 유교윤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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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관계(체면, 눈치) 중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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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위주 가부장적 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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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자기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미워해 그것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기 그림자를 피하려고 더 빨리 뛰어다녔지만, 그림자가 같은 속도로 따라올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 사람은 뛰고 또 뛰다가 결국 기운이 다하여 죽었다.”
문> 전통윤리는 계승되어야 하는가?
‘아시아적 가치’와 유교 - 아직 오지 않은 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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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을 읽고 ‘아시아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우리의 미래를 위해 유교는 어떻게 정립되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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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코드가 새로 떠오르고 있다. 동아시아 삼국 가운데 유일한 현상이다. 일본은 근대화에 대한 자신감에 차 과거에 대한 향수가 없으며, 중국은 당면한 근대화 프로젝트에 바빠 전통을 봉해두었다. 한국만이 근대화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과거를 추억하고, 잊힌 유교를 다시금 돌아보고 있다.
우리의 20세기는 유교 망각의 역사다. 망국과 식민지의 굴욕감이 유교에 죄의 낙인을 찍고, 근대화의 요청이 실학에서 위안을 찾게 만들었다. 유교는 광장에 나서지 못하고, 나이든 할아버지들의 구석진 한숨 속에서 시들어갔다. 그러던 유교가 지난 세기말에 다시 조명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아이러니하게도 근대화의 성공이었다.
그동안 근대화의 장애물로 여겨지던 유교가 기실 근대화를 성공시킨 마인드라는 소리가 저쪽 태평양 건너편에서 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가 그것이다. 유교의 집단주의적 성향, 교육열, 그리고 가족을 위한 희생 등등이 아시아의 후발 국가들을 신흥 강국으로 끌어올렸다는 소식에 칩거하고 있던 유교의 사람들이 일약 환호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외환위기가 그 싹에 찬물을 끼얹어버렸다.
스토리는 계속된다. 기적같이 한국은 다시 일어섰고 그 자신감이 새로운 유교의 코드를 요청했다. 봄은 문화계로부터 왔다. 일본. 중국. 동남아를 넘어 태평양까지 진출했다는 한류의 뿌리에 유교가 거론되고 있다는 얘기는 벌써 했다. 조선의 왕과 신하, 그리고 광대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관객 1000만 명을 돌파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거기 조선왕조실록 한 줄이 있었다고 한다. 옛적 선비들의 기벽과 비현실적 고집을 다룬 책이 장안의 지가를 흔들고 있다. 이 변모는 놀랍다. 그동안 우리는 조선의 역사를 당쟁과 왕실의 추악한 음모의 시선으로만 보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왕의 남자'와 '미쳐야 미친다'의 성공을 이념이나 변명을 접고 등장인물들 각자의 삶에 렌즈를 들이댄 데서 찾는다. 조선의 역사를, 그 유교의 정치와 문화를 식민지적 상흔을 넘어 있는 그대로 따뜻하게 바라보게 된 것, 이는 가위 혁명적 전환이다.
내가 좀 오버하는지도 모르겠다. 전통을, 그 핵심 코드인 유교를 정치가 아니라 문화와 콘텐트로 접근하는 시도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조선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의 의상 소품이 화려해지고 게임 등에서는 고전에서 걸어 나온 화려한 캐릭터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흑백의 사진 속에 갇혀 있던 조선의 색동컬러가 골목 사이와 인터넷 페이지들에서 우르르 피어나는 것을 보라. 경제 규모가 커지고 지구화가 진전되는 것만큼 로컬한 문화의 폭이 커지고, 유교의 코드 또한 활력을 띠어가게 될 것이다. 그런 만큼 전문가들이 유교를 접근하는 방식도 환골탈태, 크게 변해 주어야 한다.
새봄이 오는데도 정작 유교 진영이 너무 경직돼 있다. 과거의 영광에 연연해 새 기회를 놓치고 있어 안타깝다. 공맹의 말씀에 토를 달지 않고, 가부장제는 건드릴 수 없으며, 제사는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외치는 것이 유교는 아니다. 유교는 시대와 더불어 스스로 변모함으로써 새 생명을 얻고 새 역사를 써 왔다. 그 가운데는 사서삼경을 불사르고 제사조차 폐지하자는 유교도 있다. 경전과 제사 없어도 유교는 살아 있다.
새 개척지는 어디일까. 지금 적은 문화 콘텐트 외에 한류의 기반인 가족 가치, 그리고 조직 속에서의 관계 경영,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한 독특한 인식이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은 다른 지평을 볼 것이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마저도 원론이고 원칙일 뿐, 실질의 코드는 현금의 구체성 위에서 새로 만들고 채워나가야 할 작업이라는 사실이다.
문> 물질문화는 끝인가? 정신문화를 지향하는 동양의 미래 가치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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