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영 국방대학교 명예교수/한국시니어과협 회원 2023년 12월 2일
카이우스 율리우스 카에사르(영어 시저; Caius Julius Caesar;기원전 100-44)가 암살되고 안토니우스가 군중에 나가서 연설하면서 카에사르 유서를 낭독하며, 카에사르가 모든 로마시민에게 75 드라마크를 주고 그리고 티베르 강건너 카에사르의 개인정원을 시민에게 개방한다는 유서를 낭독하자. 로마시민들이 극도로 분개하여 들고 일어나 카에사르 암살자들은 도망가고 안토니우스가 로마 전권을 잡았다,
뒤이어 카에사르가 카이사르의 누나 율리아의 외손자를 상속자로 지명했음이 밝혀졌으며, 카이사르 유언장에 따라 그의 양자이자 후계자로 몸이 허약한 옥타비아누스(Octavianus: 기원전 63-서기 14)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았다. 그는 아이가 어렸고(18세) 더구나 몸이 약하고 병마에 시달려 오래 살 것같이 않았다. 카이사르는 그에게 군사전문가 아그리파를 붙여두었다, 카에사르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에 카에사리온(Caesarion)이 있었으나 자기 아들로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는 카에사르 암살 주모자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와 필립피에서 전투를 벌일 때 옥타비아누스군은 브루투스군에 무너젔으나 안토니우스가 카시우스을 무찔어 결국 전쟁에 승리했다. 악티움해전에서도 옥타비아누스는 모든 지휘를 아그리파에 맡겨 승리했다. 그래서 결국 로마제국 전권을 장악하고 왕중왕 아우구스투스(존엄자)에 올랐다.
이에 비교하여 박정희 대통령이 1979년 3월 5일에 전두환 소장을 보안사령관으로 임명했을 때 파격적인 인사였다, 전임자는 육사 8기 진종채 중장에서 육사 11기로 뛰었기 때문이다. 그 사이 육사9기, 생도1기, 선임 간부 후보 츨신을 건너 뛰었기 때문에 당시 의외로 파격적인 인사였다. 군에 하나회라는 조직이 있었는데 이 하나회는 윤필용 장군이 박정희 묵인하에 조직했다는 설이 있었고 한 때 윤필용 장군이 1973년 4월 수도경비사령관 재직시 박정희 장기 집권에 대해 불평을 하다가 감옥에 감으로 해서 하나회는 몰락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 1979년 10월 26일 박대통령 시해 사건이 벌어지고 육사 5기 정승화 대장이 이 시해 사건을 신속히 처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정보에 밝은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평소 존경해 오던 박정희 대통령 시해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고 결집을 한 결과 1212사태로 이어지고 두 김씨가 서로 대통령이 되겠다고 혈투를 벌리는 사이에 생각지도 못했던 대통령이 된 것이다. 부마사태와 광주사태가 전두환 소장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의지를 이어받아 한국경제를 처음으로 100억 달러 흑자를 이루고 한국경제를 반석 위에 올려 놓고 물러났다.
참조: 김충영 저, 전쟁영웅들의 이야기(고대서양편), 두남출판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