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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소증 -
고소증은 급성 고산병(Acute mountain sickness, AMS) , 고소뇌부종(High altitude cerebral edema, HACE), 고소폐부종(High altitude pulmonary edema, HAPE)의 3가지로 나뉜다. 급성 고산병은 고지대에 도착하여 6시간내지 12시간만에 나타나는 두통, 구토, 식용부진, 피로감, 어지러움, 불면 등을 의미하며 대부분 저절로 호전되지만 드물게 고소뇌부종과 고소폐부종과 같은 치명적인 질환이 나타나기도 한다.
급성 고산병과 고소뇌부종은 같은 병태생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저산소증에 의한 뇌혈관 이상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되며 고소폐부종은 저산소증에 의한 폐혈관 이상에 기인한 것으로 생각된다. 고소증의 가장 중요한 예방의 원칙은 신체가 고소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이는 것이다. 고소에 신체가 적응하는 것은 매우 복합적인 생리적 작용으로 저산소 상태에서 일어나는 과호흡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소증의 발생은 고지를 오르는 속도, 다다른 고지의 높이, 잠을 자는 곳의 높이, 개인의 생리적인 특성 등으로 결정된다. 보고에 따른면 해발 1,850m 내지 2,750m에서는 22%에서, 해발 3,000m에서는 42%에서 고소증을 겪는다고한다.[출처] 고소증과 고산병의 치료와 예방|작성자 hgranada
머리가 약간 욱신거리는 느낌에 잠을 깬다.
혹시 고소증?
고소증에는 머리를 따듯하게 해야한다기에 ABC에서 쓸려고 준비한 겨울용 모자 바라클라바를 꺼내 뒤집어 쓴다.
어제 저녁부터 일행중 일부는 고소증에 대비해 준비한 타이레놀 등 약을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해발 3,000m에서는 42%의 사람이 고소증을 겪는다는데, 이곳은 해발 3,230m가 아닌가?
바라클라바를 쓰고 잔 덕분인지?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머리가 산뜻하다.
시원한 공기를 폐부 깊숙히 들여마시며 화장실로 간다.
롯지 뒤로 보이는 마차푸차레와 안나푸르나봉(몇봉인지는 잊었음. ㅠㅠ)이 선명하다.
이대로라면 MBC(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와 ABC(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서 안나푸르나의 연이은 설봉을 확실하게 볼 것 같은 예감에 가슴이 설레인다.
새벽녁에 똑딱이로 찍은 것이라 사진이 선명치 못하나... 실제로는 엄청 근사했다.
오른편이 '마차푸차레'인데... 일명 Fish Tail(물고기 꼬리)이라고도 부른단다. 왼쪽으로 흘러 떨어지는 봉우리의 라인이 물고기 꼬리 같기 때문이란다.
- 안나푸르나 ABC -
새벽밥을 먹고 05시 15분에 트레킹의 최종 목적지인 ABC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뗀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나도 준비해간 고소약을 한 알 먹는다.
ABC에 올랐다가 다시 이곳으로 빽해야 하기에 대부분의 포터와 쿡은 이곳에 머물고 가이드 두 명과 포터 두 명만 동행한다.
내 포터인 '솔롬'이 무겁지도 않은 내 배낭을 얼른 둘러멘다(사실은 라마가 내가 좀 늙었다고 배려한 것 같다)
천천히 걸으라는 '라마'의 말이 있었으나 별 이상도 느끼지 않기에 나의 고질병인 빨리 걷기가 또 발동한다.
'솔롬'과 둘이서 서서이 걸음 페이스를 높힌다.
높이가 3,700m인 MBC에 도착해 오른쪽으로 바라보이는 '마차푸차레'를 보니 그야말로 장엄 그 자체이다.
먼저 도착했으나 카메라가 없는 나는(몇번 말했지만... 나는 그 흔한 똑딱이 카메라 하나 없다 ㅠㅠㅠ) 눈카메라만 연신
찎어댄다.
아름답고 장엄한 이 모습을 보면서 酒님을 모시지 않기에는 나는 너무 酒님 사랑이 많은 광신도이다.
고소증은 다음 문제이고 캔맥주 한 통을 사서 의자에 앉아 담배까지 한 가치 빼어문다.
그런데... 그런데... 갑자기 운무가 몰려오더니. ㅠㅠㅠㅠㅠ
뒤의 일행이 이 장관을 못보아서 어쩌나... 하는 미안함과 아쉬움 보다는 이 경치를 그들이 사진에 담지 못한다면
나에게 사진을 못보낼텐데 하는 아쉬움이 더 컸다는 것이 솔직한 고백이다(그들도 걸어오면서 그 모습을 보기는 했다지만...
우째 나에게 보내온 사진들이 없다. 위치상 사진 찎기가 좋지않았던 모양이다.)
잠시 합류했던 일행과 또 떨어져 먼저 ABC로 향한다.
ABC의 롯지가 멀지 않은 곳에 안나푸르나 방문 환영아치가 서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사진을 찎지만 나와 '솔롬'은 또 그냥 눈도장뿐이다.
드디어 안나푸르나 트레커들의 최종 목적지인 높이 4,130m에 위치한 ABC(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이다.
산으로 둘러쌓여 아늑한 분지 형태이다. 환희보다는 마음이 착 갈아앉는 느낌이다.
맥주 한 캔을 사들고 의자에 앉았으나 환상적인 전망을 자랑한다는 안나푸르나의 연봉들은 보이지 않고
'마차푸차레'만 구름 사이로 가끔 모습을 보일뿐이다.
다시 한번 오라는 안나푸르나 여신의 뜻으로 받아드리며 맥주를 꼴깍인다.
내가 만약 안나푸르나에 다시 한 번 올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춥더라도 눈을 충분히 볼 수 있는 계절에 다른 코스로
오를 것이다. 그러나 과연 또 올 수 있을까?
장 사장은 알프스의 몽브랑과 남미의 파타고니아, 그리고 아프리카의 키리만자로를 오른 후 사파리를 같이 하자고 꼬시는데(?)
나도 꼭 가보고 싶은 그곳들이지만 실업자인 주제니 경비 문제도 만만치 않고. ㅠㅠ.
그러나 쩐과 건강이 허락되다면 몽브랑과 파타고니아, 그리고 키리만자로는 한번 꼭 가볼 작정이다.
일행과 합류해 롯지로 들어가 차를 한 잔 마시며 잠시 한담을 나눈다.
롯지의 사방 벽에는 이곳을 다녀간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사진과 간단한 소감글들이 가득하다.
심지어는 사진과 자신의 프로필을 써놓고 구애를 하는 글도 있다. 그야말로 세계적으로 애인을 구한다.
'라마'가 이제는 내려가는 길이니 술을 한 잔 마셔도 된단다.
그래서..."벌써 한 캔 했는데요. 헤헤헤"
못말리는 늙은이라고 속으로 혀를 찼을지도 모르지만 고소증도 없이 잘 걸으니 할말은 없었을 것이다.
올라오는 도중에 고소증 탓인지? 힘이 들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포기하고 내려가는 50대 초반의 사람도 서너명 보았지만,
나는 아직 너무 싱싱하고 힘도 철철 넘친다(자랑이 넘 심했남? 허지만 싱싱하고 힘이 철철 넘치는 데는 두 다리 뿐이다. ㅋㅋㅋ)
ABC의 롯지에서 차를 마시며. 뒤로 사진들과 소감문들이 보인다.
나도 약간의 한기를 느껴 봄, 가을용의 앏은 우모복을 꺼내입었다.
롯지를 나와 위령탑이라고 해야하나(정확한 이름을 잊었다) 여하튼 이곳에서 변을 당한 모든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허술한 움막집 같은곳으로 향한다.
4,130m의 고지대인데도 꽃들이 눈에 띈다.
짙은 보라색과 빨간색의 자그마한 꽃들이 너무 앙증맞고 귀엽다(카메라 없음의 슬픔이여. ㅠㅠㅠ)
위령탑(?)에 오르니 '라마'가 하얀 천을 나에게 주며 그 안에다가 걸란다.
죽은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고 우리들의 안전산행을 기원하는 의미란다(거는 것도 찍었는데 사진은 없다)
그곳에 잠시 머물다 단체사진과 독사진들을 찍고 안나푸르나에게 이별을 고한다.
깃발 처럼 펄럭이는 것의 이름이 '룽다'라는데, 아마도 이또한 죽은이들을 추모하는 의미이리라.
- 폭포들 -
MBC 근처 부터 부슬거리며 내리던 비가 MBC 롯지에서 점심을 먹고 나니 폭우 수준으로 변했다.
여태껏은 저녁에 내리던 비가 아침에는 그쳐서 트레킹 때는 비를 맞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비 맞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겠다.
다들 우비와 판초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오늘의 잠자리인 '히말라야' 롯지로 출발한다.
나는 또 우중 단독산행이다.
길이 뻔하니 '라마'도 달아나는 나를 말리진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만 혼자하는 우중산행은 언제나 묘한 느낌과 더불어 많은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
더군다나 우리의 잠자리였던 "데우랄리'로 돌아와 아무도 없는 롯지 쉼터에서 마신 맥주 한 캔이 윤활유 역활을 해서
나는 10대의 소녀 감정이 저절로 이입된다.
시도 응얼응얼.... 노래도 흥얼흥얼 거리며 다리도 건너고 폭포도 보면서 때로는 앙증 맞은 야생화들과 눈마춤도 하면서
오늘의 우리 잠자리인 '히말라야'를 찾아간다.
'히말라야'로 가는 길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폭포들이 있다.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폭포들의 산 상단부는 운무 속에 가려있으니 폭포들은 마치 운무 속에서 떨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얀 비단폭 같기도 하고 하얀 밧줄 같기도한 폭포들은 마치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길 같다.
아마도 지상에서 목욕을 끝낸 선녀들도 저길을 거쳐 하늘로 올랐을 것이다.
그러니 선녀들은 맑은 날이 아니고 사람들이 적고 올라갈 길이 있는흐린날에 내려와 목욕을 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믿거나 말거나. ㅋㅋㅋ
- 소똥 냄새 -
갑자기 동네 냄새가 난다.
산 생활 며칠에 나도 산짐승이 다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걷는데, 잠시 가니 소똥들이 길위에 즐비하다.
아마도 내가 동네 냄새라고 생각한 냄새가 소똥 냄새였던 모양이다.
여하튼 소똥이 있다는 것은 동네가 가깝다는 뜻이니 내가 맡은 것이 동네 냄새라 하여도 틀린말은 아닐 것이다.
정말로 곧 '시누와' 마을이다.
롯지로 들어가 젖은 옷을 잠시 갈아입고 나는 또 주님과 合一한다.
중간에서 내가 추월한 두 남자가 곧이어 도착해 점심을 시킨다.
서울 강동구에서 왔다는 두 사람은 부자간인데,포터 겸 가이드를 한 명 데리고 개인적으로 트레킹 중이란다.
그들은 아들은 물론 오십 중반의 아버지도 영어회화가 유창하다.
점심을 먹으며 몇몇 외국인 트레커들과 쏼라거리기 시작하는데 나는 멍하니 앉아 어쩔 수 없이 이방인이 된다.
- 한글 간판과 한국인들 -
'촘롱'으로 가는 길은 올때와 마찬가지로 힘들기만한 길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길고 긴 돌계단을 오르다 고개를 드니 숨을 헐떡이며 쉬고있던 외국인 여성들이 그 힘듬 중에도
미소를 보낸다.
나도 미소를 보내고 싶었지만 60여년 동안 미소에 인색했던 내얼굴은 결국 미소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촘롱' 어느 롯지에는 한글로 김치찌개, 신라면, 백숙등의 간판이 걸려있다.
ABC 어느 롯지벽에도 한글로 '이곳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써있는 것을 보았다.
정말로 안나푸르나에 한국인들이 많이 오기는 하는 모양이다.
내려오는 도중의 '데우랄리'에도 한국의 어느 여행사 이름이 적힌 카고백들이 수없이 놓여있었는데 비행기표가 없어서
많은 신청자중 80여명만 왔다니 혀를 찰 일이다.
사실 '데우랄리'를 지나면서 부터는 올라오는 수많은 한국사람들을 만났는데(굳은 표정의 얼굴을 한 사람들은 거의가
한국사람으로 생각하면 된단다) 길을 양보하여도 그 흔한 '탱큐' 한마디 없이 오르기에만 여념이 없다.
트레킹 내내 내가 수없이 듣고 수없이 건냈던 '나마스데'라는 인사를 비롯하여 Thank You, You are wellcome,
No problem 이라는 말들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언제쯤 되어야 스스럼없이 건네며 미소를 지을 수 있으려는지?
그래서 한글로 써있는 메뉴들과 환영인사들을 정말로 떳떳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가 언제 오려는지?
- 다시 '히말라야' 롯지로 -
먼저 와있던 포터들과 쿡들의 환하고 선한 웃음을 맞으며 힘들게 '히말라야' 롯지에 도착한다.
'리마'는 유자차가 들어있는 컵을 건내며 수줍은 웃음을 건낸다.
그의 수줍은듯한 웃음은 언제나 기분 좋은 웃음이다.
다섯시간 여를 비름 맞으며 걸었으니 따듯한 유자차도 좋지만 진정 더 좋은 것은 네팔인들의 따스한 가슴일 게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일행을 기다리며 나는 또 주님과 합일한다.
일행이 도착하여 옷들을 갈아입고 나니 '라마'가 방을 일일이 돌며 젖은 등산화를 말린다며 걷어간다.
이곳 롯지의 식당들 자리 밑은 천으로 가려져있는데 그곳에 석유난로를 설치해 놓고 돈을 주면 난로를 켜 무릎밑을
따듯하게 해준단다.
어제던가? 어느 롯지 식당에 붙여놓은 "ㅇㅇRuphee Per Head" 라는 안내글을 본 李 신부가 頭當 얼마라...라고 해서
웃은 적이 있는데 기왕에 Per라는 말까지 알았다면 Person 이라고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히말라야 롯지에서 저녁을 기다리며 잠시 망중한. 식탁 밑 천 속에는 석유난로가 들어있다.
저녁을 먹고 나니 7시쯤 됐다.
산중에서의 잠은 오늘과 내일뿐이라 아쉬움을 달래려는지, 우리 일행은 따듯한 식탁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여념 없지만 초저녁 잠 많은 나는 슬며시 숙소로 돌아와 축축할 수 밖에 없는 침낭 속으로 파고든다.
오늘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