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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14
1. 펜트 하우스 / 복도 ( 다른 날, 낮 )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사마귀.
벨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열린다.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은... 나라!
안내하려고 한걸음 옆으로 서는 사마귀. 잔뜩 긴장한 나라, 살짝 눈인사하고 내린다.
사마귀가 앞장 선다. 심호흡하는 나라, 가방끈을 고쳐매고 따라가는.
2. 펜트 하우스 ( 낮 )
응접 소파에 앉아있는 나라, 겨우 엉덩이만 걸치고 불편한 자세.
그 앞에 느긋하게 앉아 있는 흥삼, 서명 용지를 훑어 보는 중이다.
나라 : 한번 훑어 보시면, 시민들 의견이 어떤지 이해가 되실 거에요.
흥삼 : (대충 넘기면서 보는) ...
나라 : (초조하게 기다리는) ...
흥삼 : 근데... 이걸 왜 나한테 가져 오셨을까? (시선 들어서 보는) 시청이나 시민 단체, 뭐 그런 곳에 갖다줘야 할 서류같은데?
나라 : (주눅들지 않고) 미래도시 프로젝트에 대해 저두 좀 알아봤어요. 동시에 여러 군데를 재개발하는데,
서울역 근처는 회장님이 추진하신다면서요?
흥삼 : (여전히 웃으면서 끄덕) ...
나라 : 힘들게 준비하신 사업인데, 다짜고짜 중단해달라, 그런 무리한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무조건 다 쫓아내고, 철거하고... 그런 식의 재개발은 피해주십사... 부탁드리러 온 겁니다.
흥삼 : (미소로 바라보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요, 나라양.
나라 : (표정) 네?
흥삼 : (가르치듯 차근차근) 서울역 일대가 새롭게 단장되면, 가장 많이 혜택을 보는 게 이 지역 주민이고, 노숙자들이에요.
나라양이 일하는 병원만 해도 그래요. 지은 지 오래 돼서 낡고 비좁죠?
나라 : (부정하지 못하는) ...
흥삼 : 그거보다 훨씬 크고, 현대적인 병원이 들어서면 노숙자들 의료 문제도 쉽게 해결됩니다. (다정하게) 내 말... 알아듣겠어요?
나라 : (표정 굳는) 회장님이야말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네요. 아님... 모른 척 하시는 건가요?
흥삼 : (꿈틀) ...!
나라 : 지금도 혜택받기 어려운 사람들이에요. 근데, 그때가서 다 해결될 거라뇨? 그럴 리가 없잖아요.
그건 희망이 아니라 희롱이죠.
흥삼 : (언짢지만 매너모드 유지하며) 나라양이 애쓴다고, 서울역 노숙자들을 다 구제할 순 없어요.
나라 : 회장님이 도와주시면 되죠. 한가족이나 다름없다면서요?
흥삼 : 내 식구들은 내가 챙길 테니까... (서명묶음 돌려주며) 나라양은 이런 일 그만 둬요.
그 나이엔 연애도 하고... 뭐, 다른 재미있는 일이 훨씬 많을 텐데... (미소) 우리 장태호 과장이 너무 곁을 안주나?
나라 : (화끈! 모욕 당한 기분에 벌떡 일어난다)
흥삼 : (태연하게) 참, 할머님 일은 유감이에요. 그날 무례하게 굴었던 직원은 따끔하게 주의를 줬어요.
흥삼을 흘겨보는 나라, 서명용지를 가방에 챙겨서 문으로 간다. 기다리고 서 있다가 문을 열어주는 사마귀.
나라 : (나가려다가 휙 돌아보는) 이번엔 겨우 천 명이지만, 다음 서명은 만 명 채울 거에요. 그 다음엔 더 많이 받을 거구요.
...안녕히 계세요.
나라가 찬바람 풍기고 나간다. 미소가 남아있지만 찌푸리는 흥삼.
3. 거리 일각 ( 낮 )
방금 전 기세와 달리, 시무룩해서 걸어오는 나라. 문득 멈춰서서 가방 안의 서명 용지를 꺼낸다.
정말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걸까... 마음이 무거워지는 나라.
4. 폐버스 안 ( 낮 )
침상에 앉아있는 미주, 종이를 한장씩 넘긴다. 김의원, 문차관, 그 밖에 관료나 정치인의 사진과 인적 사항들.
맞은 편에 앉아 있는 태호.
태호 : 낯이 익죠? 곽회장 뒤를 봐주는 정치인, 관료들이에요. 꾸준히 뇌물 받아 처먹는데, 소화불량두 안걸려요, 그 인간들.
미주 : 뇌물 스캔들로 흔들어 보려구요?
태호 : (자신만만한) 언론에 흘리고, 검찰에두 찔러야죠. 도덕성 시비에 휘말리면 한중 그룹도 사업 강행이 어려울 겁니다.
미주 : 증거는요?
태호 : 이제부터 찾아 내야죠. 곽회장 컴퓨터, 비밀 금고... 어디든 털면 나올 거에요.
미주 : (심드렁히 자료를 덮는) 헛수고에요.
태호 : (멈칫) ...?
미주 : 회장님이 어떤 사람인지 아직 모르네요, 장태호씨.
태호 : 무슨... 뜻입니까?
미주 : 그 사람은 자료를 남기지 않아요. 받는 쪽은 잊어 버려도, 주는 쪽은 뒷일에 대비해서 근거를 남기는데...
회장님은 그런 흔적같은 거, 아예 만들지 않는다구요.
태호 : (몰랐던 사실, 놀라는) ...확실해요?
미주 : 실망이네요. 자기가 노리는 사냥감에 대해서 좀 더 연구해야겠어요.
태호 : (입맛 다시는) ...
미주 : (자료를 돌려주며) 뇌물 스캔들은 포기해요. 어설프게 건드렸다간 장태호씨가 위험해질 거에요.
태호 : 밀어서 안되는 문이면 당겨서 열어야죠.
미주 : 네?
태호 : (자료를 후루룩 넘기며 보는) 곽회장 커넥션 말고, 다른 쪽으로 뚫을 수 있을 겁니다.
미주 : 말은 쉽네요. ...되겠어요?
태호 : 그게 내 주특깁니다. 말은 쉬운데, 실천은 어렵게 하는 거.
미주 : (짧은 냉소) 건투를 빌어요. (일어나다가 버스를 둘러본다, 종구 생각에 착잡해지는) ...
태호 : (미주 표정을 보자, 무슨 느낌인지 아는) ...
미주 : (태연하게, 농담 삼아) 너무 정리정돈하지 말아요. 아저씨가 알면 짜증내겠네.
태호 : (묵묵히 보는) ...
5. 폐차장 ( 낮 )
버스를 내려서는 미주. 배웅하려고 따라 나오는 태호.
저만치서 걸어오던 나라가 멈칫 선다. 미주를 보고 뜻밖인.
나라 : 어... (꾸벅 인사) 안녕하세요?
미주 : (가볍게 목례) ...네.
태호 : (의아한) 웬일이에요?
나라 : (허둥대며) 아... 그러니까 그게... 난 두 분이 계신 줄 모르고... 그냥 지나가다 들렀는데...
미주 : (미소) 오해하지 마세요. 아저씨 물건 가져갈 게 있어서 들렀으니까.
나라 : (황급히 고개 젓는) 아뇨, 제가 왜 그런 오해를... 아니, 그게 아니구... 제가 장태호씨 때문에 오해할 이유가 없는데...
미주 : 그럼 다행이구요. 나중에 봐요.
나라 : 가시게요? (저도 모르게 폴더 인사) 안녕히 가세요.
그런 나라가 귀여운 미주, 태호에게 눈인사하고 지나쳐간다.
미주가 멀어지면 서로 쳐다보는 태호와 나라, 딱히 할 말이 없어서 벌쭘한데.
태호 : (나라 손에 서명용지 묶음 보고) 서명... 벌써 다 받은 거에요?
나라 : (내려다보며 맥이 풀린) 아... 이거.
나라, 낡은 소파로 가더니 털썩! 앉는다. 태호도 맞은 편 소파에 앉고.
나라 : (기운 빠진) 태호씨 말이 맞나봐요. 이런 종이뭉치만 갖구선 할 수 있는 게 없네.
태호 : 왜요?
나라 : 이거 들구 태호씨네 회장님 찾아갔다가 보기좋게 무시당했어요.
태호 : (표정) ...!
나라 : 서명 더 받아낼 거라구 큰소리는 쳤는데... (멍하게 천정을 보는) 모르겠어요, 이젠.
태호 : (안스럽게 보다가) 그래도 그 짧은 시간에 천 명이나 채웠잖아요. 나라씨 아니면 못해요, 그거.
나라 : (입술 삐죽하며 쳐다보는) ...쓸데없는 짓이라구 핀잔 줄 땐 언제구.
태호 : (억울하게 보는) 왜 이래요? 나두 서명은 했어요.
나라, 휴... 한숨 쉬며 다시 천장을 본다. 태호도 자기 할 일 떠올리며 눈 감은 채 생각에 잠기고.
나라 : (문득 둘러보며) 근데... 혼자 지내면 무섭지 않아요? 쇳덩어리 밖에 없어서 좀 삭막한데.
태호 : (눈 감은 채 대꾸없는) ...
나라 : 자요?
태호 : ...생각하는 겁니다.
나라 : 졸았으면서.
태호 : (눈 뜨고) 나라씨는 이 뙤약볕에서 서명을 천 명이나 받았는데, 난 뭘 어떻게 해야 되나... 그 생각했어요.
나라 : (에개개, 싶은) 그래서... 생각났어요?
태호 : (씨익 미소) ...
6. 상가 사무실 ( 낮 )
모니터에서 고개 드는 영칠. 태호가 옆에 서 있고.
영칠 : 최인구? 그게 누군데요?
태호 : 한중그룹 임원이었는데 얼마 전에 잘렸어. 인적 사항, 경력, 근황... 암튼 알아낼 수 있는 건 전부 뒤져봐.
해진 : (다가오는) 한중그룹은 왜? 세화 네트워크에 작업 들어가는 거 아냐?
태호 : (돌아보는) 그럴 일이 있어.
해진 : (삐진 척) 거, 매니저가 눈 시퍼렇게 뜨구 있는데 선수 혼자 스케줄 잡고 그러지 맙시다.
태호 : (웃는) 나중에 설명해줄게. (핸드폰이 울린다, 한쪽으로 가면서 받는) 네, 회장님.
7. 펜트 하우스 ( 낮 )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에 박힌 태호 사진. ‘김종현’이란 이름으로 위조된 신분증이다.
내심 감탄하며 들여다보는 태호. 그 앞에 악어, 고무줄로 묶은 두툼한 신분증 뭉치를 가방에 챙겨 넣으며.
악어 : 남대문 신화백이라구, 이 바닥에선 알아주는 기술자여. (생색내며) A급 딱지니께 워디 가서 내밀어두 들통날 일 없을겨.
흥삼 : (침실에서 내려오는) 지문도 일치시켰냐?
악어 : (얼른 일어나며 배시시 웃는) 아유, 고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쥬.
(넌지시) 근디... (태호를 흘끔 보는) 월매나 중요헌 껀수를 맡기셨길래 요러케 유비무환이셔유?
흥삼 : (뜨악하게 쳐다보는) ...
악어 : (이크!해서) 아니 뭐... 되게 궁금한 것은 아녀유.
흥삼 : 독사하구 넌 서울역이나 제대로 단속해. 태호나, 태호네 애들이 하는 일, 기웃거리지 말구.
악어 : 언제는 끼워줬남유?
흥삼이 부릅뜨자, 얼른 인사하는 악어, 태호를 살짝 째려본 뒤 돌아선다.
나가는 악어를 못미덥게 보면서 소파에 앉는 흥삼.
흥삼 : 욕심도 많은데, 시기심은 더한 녀석들이다. 니 꼬투리 잡히기만 벼르고 있을 거야.
태호 : 조심하겠습니다.
흥삼 : 작전도 새나가면 안되고.
태호 : 네.
흥삼 : 그 신분증도, 너 움직이는데 문제 생기면 안되니까 준비한 거다. (힘을 실어) 이제부턴 작전에 올인하는 거야.
자칫 실수하면... 절대 복구 못한다.
태호 : (눈빛으로 다짐하듯) 명심하겠습니다.
흥삼 : (끄덕하고, 표정 풀며) 그리구 너... 애인 단속 좀 해야겠더라. 외모는 곱상한데 너무 앙칼져.
태호 : (표정) ...애인, 아닙니다.
흥삼 : (코웃음치고) 작전 계좌는 열어놨다. 확인했지?
태호 : (불쾌함 감추고 차분히) 네, 차질없이 진행하겠습니다.
8. 상가 사무실 ( 저녁 )
돋보기 낀 채 영문잡지를 읽는 조회장.
태호는 영칠 옆에서 출력물을 들여다본다. 최이사의 사진과 경력 사항이 담긴 내용.
영칠 : 그 최이사라는 사람, 에누리 없이 한방에 잘렸더라구요. 이 아저씨 라인탔던 실세들도 이상한 데로 발령나고, 퇴직하구...
완전 공중분해 됐어요.
태호 : (주의깊게 보는) ...
그때, 문이 열리고 해진과 오십장이 들어선다.
오십장 : 음마? 회장님두 오셨소?
조회장 : (돋보기 벗으며) 장이사가 할 얘기가 있다구 해서 왔네.
해진 : (태호에게) 무슨 일인데 야간 소집이야?
태호 : (표정) 다들 모여 봐요.
문으로 가는 태호, 밖을 한번 살피고 문고리를 잠근다.
영칠도 소파로 오고, 둘러 앉은 멤버들, 의아한 눈빛으로 태호를 본다.
태호 : (진지한 눈빛으로) 이제부터 내 얘기 잘 듣고... 본인들이 결정해요. 계속 함께 할지, 빠질 건지.
해진 : (웃음) 뭔 소리야? 곽회장이 시킨 작전은 벌써 하구 있는데.
태호 : ...그 일이 아니에요. (하나씩 둘러보며 눈을 맞추고 난 뒤) 내가... 박살내버릴 겁니다, 곽흥삼!
일동 : (충격) ...!!
9. 할매 식당 / 안채 ( 저녁 )
피곤한 표정으로 들어서는 나라.
할매가 빨래 걷은 바구니를 들고 나타난다. 얼른 다가가서 바구니를 받는 나라.
나라 : (쪽방을 돌아보는) 왜 이렇게 조용해요?
할매 : 몰러. 워디서 또 뭔 작당을 허는지... (흘겨보는) 오늘두 길바닥서 헤매다 온겨?
나라 : 헤매긴... 여기저기 들를 데가 있어서...
할매 : (혀를 끌끌) 그깟누무 서명, 백날 천날 받아봐라, 그 눔들이 콧방구나 뀌것냐?
나라 : (속상한) 내가 알아서 할께요. (안방으로 돌아서는데)
할매 : 밥 처묵고 들어가! 달구 새끼 한마리 삼 넣구 푹 고았응게.
할매, 부투룽히 식당으로 향한다. 지쳤던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나라.
10. 상가 사무실 ( 저녁 )
놀라서 말문이 막힌, 어안이 벙벙한, 눈만 멀뚱멀뚱... 태호의 얘기를 들은 해진과 오십장, 영칠은 반응이 제각각이다.
조회장은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겨 있고...
태호 : (예상한 반응이다, 차분하게 계속하는) 당연히 어렵고, 생각보다 위험 할 거에요.
여기서 빠진다구 해도 괜찮아요. 다 이해하니까.
영칠 : (다른 사람 눈치 보는) ...
해진 : (평소답지 않게 심각한 고민) ...
오십장 : (문득 갸웃해지며) 근디 말여, 동상. 서울역 거시기허는 사업을 파토낸다구 혀서, 곽가놈이 망하는 건 아니잖여?
손해는 쪼까 보것지만.
태호 : 지금 다 설명할 순 없는데... 곽회장이 오랫동안 준비한 계획이 있어요.
세화 네트워크에 작업 들어간 것두, 그 준비과정이구요. 곽회장이 목표 달성을 눈 앞에 뒀을 때...
(눈빛 형형해지며, 으르렁) 그 마지막 순간에 끝장내 버릴 겁니다.
일동 : (표정) ...!!
태호 : (이글거리는) ...
해진 : (불쑥 일어나며) 아무리 생각해두 난 별루야.
태호 : (멈칫) ...!
해진 : (괴롭게 내뱉는) 태호씨 말마따나 종구 형님 복수... 그래, 나두 뭐든 하구 싶어. 분하고 억울하니까!
근데... 그런다구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와? 우리가 복수하겠다구 설치면 그 형님이 좋아할 거 같냐구?
태호 : (묵묵히 보는) ...
영칠 : (착잡해지며) 다른 건 모르겠는데... 나, 악어한테 명의 뺏기구 질질 짤 때... 종구 형님 아니면 못찾았을 거에요.
해진 : 임마! 너만 그런 줄 알어? 나두 첨에 서울역 와서 뱀눈한테 두들겨 맞구 있었는데, 그 형님 덕분에 살아 남았어!
짜식이 지만 의리있는 척 하구!
오십장 : 아따, 언성 높이지 말랑게! 우리 동상 말을 새겨 들어야제. 결국 성님 복수도 복수지만,
돈자랑, 심자랑허는 놈들이 결탁혀서 서울역을 뜯어 먹게 냅두믄 안된다, 이 야그 아녀? (태호를 돌아보는) 나 말이 맞제?
태호 : (고개를 떨군 채, 대꾸없는) ...
일동 : (의아해서 보는) ...?
태호 : ...미안해요. (힘겹게 고개 든다, 가라앉은) 종구 형님 복수도, 서울역을 위한다는 얘기도... 결국엔 다 핑계에요.
오십장 : 고것이... 뭔 소리여?
태호 : (천천히 일어난다, 일행을 둘러보는) 사실... 내가 주식 작전에 실패했던 거... 곽회장 함정이었어요.
일동 : (놀라는) ...!!
태호 : 나두 얼마 전에 알게 됐어요. 그래서... 내 인생 이렇게 처박은 그 인간, 어떻게든 복수하겠다... 오직 그 생각에 미쳤나봐요.
(쓴 웃음으로 보는) 나... 여러분 부추겨서 이용하려구 했어요. ...미안합니다.
얼떨떨한, 혹은 무거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해진, 오십장, 영칠.
면목없는 태호, 말없이 문으로 간다.
조회장 : 장이사.
태호 : (돌아보는) ...
조회장 : 죽은 류씨나 자네 복수든, 서울역을 위한 일이든... 뭐라구 이름 붙여두 아무 상관이 없네.
...사필귀정. 세상 일은 반드시 올바른 쪽으로 흘러가는 법이니까.
(일어나서 다가간다, 수첩을 꺼내는) 이번 일에 얼마나 필요한가? 말만 하게.
태호 : (먹먹해서 보는) ...
영칠 : (책상으로 가며) 곽흥삼 컴퓨터 해킹해볼까요? 분명히 야동같은 거 숨겨 놨을 텐데.
오십장 : 거, 천정 안무너지니께 그라고 서있덜 말구, 싸게 와 앉어. 우덜이 뭘 워치케 할지, 동상이 일러줘야 알제.
해진 : (태호와 시선 마주치자, 멋적게 웃는) 나두 까맣게 잊구 있었네.
우리 원래 목표가 서울역 넘버원, 곽흥삼 제끼는 거잖아. 안그래?
동료들한테 고맙고, 미안하고... 가슴이 뻐근해지는 태호, 아무 말도 못하고 바라보는.
11. 폐차장 ( 밤 )
기분좋은 미소로 걸어오는 태호, 멈칫 선다. 폐버스 창틀에 앙증맞게 놓인 화분 하나. 나라가 꾸며놓고 간 것이다.
(이후에 나라는 폐차장에 올 때마다 화분을 가져와서 버스를 꾸밀 예정)
더욱 기운나는 태호, 재킷을 벗고, 줄넘기를 꺼낸다. 몸을 푸는 태호의 경쾌한 스텝.
12. 신경 정신과 / 진료실 ( 낮 )
화면 바뀌면... 리클라이너 소파에 누워있는 사내가 보인다. 상담 소견서를 적는 의사.
최이사, 괴로운 한숨을 쉬고 의자에서 일어나 앉는.
13. 신경 정신과 / 대기실
최이사, 진료실을 나서다가 주춤, 본다. 초로의 사내, 조회장이 간호사를 붙잡고 하소연하는.
조회장 : (울상인) 의사 선생님부터 당장 뵈어야겠수. 어서요.
간호사 : (타이르는) 예약을 하구 오셔야 돼요, 선생님.
조회장 : 억울해서 그래요, 억울해서... 평생 뼈 빠지게 일한 회사에서 쫓겨 났는데, 내 속을 하소연할 데가 없다니까.
최이사 : (표정) ...!
조회장 : (가슴을 치며, 자조하는) 허이구... 답답해...
한심하기도, 살짝 안됐구나 싶기도 한 눈빛으로 보는 최이사, 조회장을 지나쳐 출입문을 나간다.
간호사 : 그래도 예약부터 하셔야 돼요. 언제가 좋으시겠어요?
조회장 : (갑자기 점잖고, 멀쩡한 모드로 돌변) 음... 언제가 좋을까? (출입문을 보더니) 방금 나간 환자분은 다음 예약이 언제신가?
간호사 : (황당한) 네?
14. 신경 정신과 / 주차장 ( 낮 ) (주차장은 지상, 지하 상관없음)
차에 오르는 최이사, 출발한다.
다른 차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는 태호. 병원에서 나온 조회장, 조수석에 올라탄다.
조회장 : (태연한) 모레 오후 3시라는구만.
태호 : 수고하셨어요. 간 김에 상담 좀 받으시지 그랬어요?
조회장 : (웃는) 예약만 했어. 근데... 그 친구가 정말 뇌물 리스트인지 뭔지, 그걸 갖구 있는 겐가?
태호 : 그건 회장님이 알아내주셔야 돼요. (생각에 잠기며) 정치인이나 관료들 상대로 궂은 일을 도맡아하던 임원이에요.
뇌물이든, 비자금이든... 미래도시 추진하면서 뒷거래에도 관여했을 겁니다.
조회장 : (혀를 끌끌) 정치하는 사람들, 뇌물 참 좋아해. 돈이 그렇게 좋으면 차라리 장사를 하지.
태호 : (웃으며 시동 거는)
15. 더 클럽 / 내실 ( 저녁 )
어이없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흥삼.
상석에는 거나하게 취해서 넥타이까지 풀어헤친 김의원이 미주와 나란히 앉아 있다.
흥삼 : 지금... 뭐라구 하셨습니까?
김의원 : (술잔 들다가, 귀찮다는 듯) 저번에 준 그 돌맹이 말이요, 그런 걸루다 한 열 개쯤 더 필요하다 이거지.
흥삼 : (짜증나지만 표정 관리하며) 의원님께서 필요하시다니까 어떻게든 마련해 보겠습니다만...
김의원 : (말 자르며) 역시 우리 곽회장만한 대인배가 없어요!
(미주를 보며) 요샌 앞에서만 살랑거리고 뒤에서 주판알 튕기는 쫌생이들 천지거든.
미주 : (비위 맞추며) 그만큼 각별한 분이라는 뜻이죠, 의원님이.
김의원 : (껄껄 웃는) 그런가? 난 우리 마담하구 더 각별해졌으면 좋겠는데?
미주 : (몸 기울여오는 김의원을 능숙하게 피하며) 술 쏟아요, 조심하세요.
흥삼 : (한 호흡 삼키고) 의원님.
김의원 : (미주와 지분덕거리다 돌아보는) ...?
흥삼 : (어디까지나 예의 바르게) 앞으로도 의원님께 성의를 다하고 싶은데...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김의원 : (표정 딱딱해지는) 기브 앤 테이크가 안되면 못하시겠다?
흥삼 : (접대 미소가 유연한) 그럴리가 있습니까? 외람되지만... 그저 궁금해서요.
마뜩치 않는 눈빛으로 술잔 비우는 김의원. 차분히 기다리는 흥삼.
김의원, 가까이 오라고 손짓한다. 흥삼, 바짝 다가앉는.
김의원 : 한중에서... 곽회장 솎아 내려는 거, 알구 있어요?
흥삼 : (표정) ...!
김의원 : 이유는 모르겠는데, 윤회장이 별로 탐탁치 않은 모양이야.
윤재성 그 망나니도 곽회장 떨궈내려고 여기저기 로비 들어갔구.
흥삼 : (눈빛이 파르르) ...
미주 : (무심한 척 귀를 기울이는) ...
김의원 : 이런 판국에 곽회장 카바쳐주는 사람, 나 하나 뿐이요.
(번들거리는 미소) 이 정도면... 돌맹이 열 개 값어치는 되지 않겠어? 안그런가?
흥삼 : (웃으려고 애쓰지만, 눈꼬리가 떨리는) ...
16. 더 클럽 / 홀 ( 저녁 )
종업원에게 추가 주문을 지시하는 미주. 화장실에 다녀오는 흥삼, 손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며 다가온다.
종업원이 가고나면 미주 옆에 다가서는 흥삼.
흥삼 : (나즈막히) 윤재성이 만나서 한번 떠봐. 나에 대해 얼마나 알아냈고, 일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미주 : (내실을 흘끔 돌아보고) 그쪽에서도 제법 뜯어냈을 거에요, 김의원.
흥삼 : (쓴웃음) 괜히 캐쉬당 소속이겠니? 한중그룹 최이사, 죽은 정만출... 그 인간들이 갖다바친 뇌물만 해도
건물 몇 개는 올렸을 거다.
미주 : (흥삼을 돌아보는) 윤재성한테 뭘 줘야 되죠?
흥삼 : 흘려도 상관없는 내용은 적당히 흘려.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어야 널 믿을 테니까.
미주 : 그 이상을 요구하면요?
흥삼 : (표정) ...뭐?
미주 : 객실로 가자구 하면, 따라 가냐구요? (말갛게 보는) 회장님이 시키는 대로 할께요.
흥삼 : (묵묵히 보다가) ...이제부턴 니가 알아서 결정해. 니 맘에 안드는 사내면... 억지로 안을 필요 없어.
뜻밖인 듯 쳐다보는 미주. 흥삼, 무심하게 지나쳐서 내실로 가고.
17. 폐버스 안 ( 다른 날, 낮 )
상의 걸치고 나갈 채비 서두르면서 통화하는 태호.
태호 : 아뇨, 회장님하구 일 끝나면 사무실로 갈께요. 해진씨도 거기서 봐요.
전화 끊는 태호, 버스 내려서려다 문득 돌아본다.
침상에서 잘 보이는 위치에 놓인 화분. 태호, 생수병을 열어서 물 몇 방울 뿌린다.
/ 시간경과.
기웃거리며 안을 들여다보는 나라. 아무도 없다. 얼른 올라와서 화분을 내려놓는 나라.
전에 갖다놓은 화분이 보인다. 물기를 머금고 촉촉한 꽃잎. 나라, 저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는.
18. 신경 정신과 / 대기실 ( 낮 )
들어서는 최이사. 한쪽에 멍하게 앉아있는 조회장을 발견한다.
다른 빈 자리가 있는데도 근처에 앉는 최이사, 비치된 신문을 뒤적이는 척, 조회장을 살핀다.
넋 나간 듯 초점이 없는 조회장의 눈빛.
간호사 : 조구산 환자분, 들어오세요.
끄응, 몸을 일으켜 진료실로 들어가는 조회장.
최이사, 조회장이 깜박 놓고간 두툼한 서류 봉투를 본다. 주위를 둘러보는 최이사, 호기심에 슬쩍 열어본다.
육필로 적힌 표지에 ‘恨의 備忘錄 - 태성물산 30년’
최이사, 더욱 궁금해진다. 뒷장을 들춰보면 아직 백지 상태.
19. 신경 정신과 / 진료실
메모할 준비하고 옆에 앉아 있는 의사. 리클라이너에 누워 있는 조회장, 망연하게 천정을 바라보며 얘기 중.
조회장 : ...꿈을 꾸나 싶은데 생시고, 이제 깼구나 생각했는데 아직두 꿈 속이고...
그러다 한번씩 사이렌 소리가 들려요. 왜애앵... 소방차 사이렌 알지요? 그럼 또 뒤죽박죽이 되는 거에요.
담당의사 : (조회장 표정 위로 소리) 지금은 어떠세요? 현실입니까? 아니면 아직도 꿈꾸는 중입니까?
조회장 : (잠시 생각하다가, 미소) ...꿈이지요. 꿈 속에서 내가 서울역 노숙자가 됐어요. 허허...
20. 신경 정신과 / 대기실
대기 의자에 놓인 서류 봉투. 조회장이 봉투를 드는데...
최이사 : (슬그머니) 선생님.
조회장 : (돌아보는) ...?
최이사 : 남일같지 않아서 하는 얘긴데... 그런 책 쓰시면 큰일납니다.
조회장 : (의아한) 무슨... 소리요?
21. 신경 정신과 / 주차장 ( 낮 )
차 안에서 지켜보는 태호. 조회장이 최이사와 함께 걸어 나온다.
최가 권하자 그 차에 올라타는 조회장. 시동 거는 태호, 최이사의 차를 따라서 출발한다.
22. 전통 찻집 ( 낮 )
찻잔을 놓고 마주 앉아 있는 조회장과 최이사. 테이블에 올려놓은 서류 봉투를 만지작거리는 조회장.
조회장 : (침울한) 코딱지만한 가게에서 시작해, 30년을 동고동락했습죠. 직함만 친구가 사장, 내가 전무였지...
회사를 생각하는 마음이나 거기 들인 공은 말루 다 못합니다. 헌데... 친조카나 다름없는 녀석이 사장 자리 앉자마자...
(분해서 말을 잇지 못하는)
최이사 : (짐작하는) 세대 교체에 떨려 나셨군요. 젊은 사장도 불편했을 테구.
조회장 : (억울함에 떨리는) 지가 불편하다구, 회사를 지금껏 키운 아버지 친구를 하루 아침에 팽시키다뇨!
세상에 이런 배은망덕이 어디 있습니까?
최이사 : (공감하는 한숨) 저두... 어디라고 밝힐 순 없지만 남들이 알아주는 회사에 평생을 몸 바쳤습니다.
조회장 : (슬그머니 스치는 눈빛) ...!
최이사 : 선생님하구 비슷하게 밀려났구, 보시다시피 그 울화 때문에 카운셀링까지 받구 있어요.
호주에 사는 딸내미가 하루 빨리 건너오라구 성환데, 그 결정이 쉽지가 않네요.
조회장 : 그러시겠죠. 저두 억울하구 분해서 피눈물이 납니다! (서류 봉투 움켜 쥐고 부르르) 이거라두 써서 원풀이를 하지 않으면
제 명에 못살 거외다! 회사 뒷구멍에서 일어난 지저분한 거래, 전부 다 세상에 폭로할 거요!
최이사 : 진정하세요, 선생님. 욱하는 기분에 그런 책 썼다가는 되려 명예훼손이다 뭐다, 흉한 꼴만 봅니다.
조회장 : 그건 걱정마시우. 증거도 있고, 자료도 모아 놨어요. 선생은 그런 거 없으니까 하는 소리같은데...
최이사 : (쓴 웃음) 천만에요. 제가 회사에서 했던 업무가 그런 겁니다. 공개하면 세상이 떠들썩해질 만한 자료두 갖구 있지요.
조회장 : (멈칫) 그런데... 왜...
최이사 : 칼은 칼집에 들어 있을 때, 가장 날카롭다는 말이 있잖습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그런 회사 기밀,
일종의 보험같은 거지요. (나즈막히 설득하는) 그리구 웬만하면 그런 폭탄은... 무덤까지 갖구가는 게 좋습니다.
조회장 : (새삼 깨달았다는 듯 끄덕이는) ...
23. 상가 사무실 ( 낮 )
회의 모드로 둘러 앉은 태호와 해진, 오십장, 영칠. 방금 조회장의 얘기를 듣고 난 참이다.
해진 : 어디 숨겨 놨는지, 어떻게 빼내야 할지... (머리를 북북 긁는) 그게 가장 큰 숙제네.
영칠 : (질색하면서 해진의 비듬을 피하며) 서재 안에 금고나, 뭐 그런데 숨겨 놨겠죠.
오십장 : 그라믄 집이 비었을 때를 노려야 허는디... 쥐도새도 모르게 따고 들어가야 쓰것네.
해진 : (한심하게 보는) 무슨 첩보영화 찍어요? 까만 쫄쫄이두 입지 왜?
오십장 : (진담으로 듣고 자기 배를 만지며) 그려? 보기 숭헐 것인디...
해진 : (기가 막힌) 허!
태호 : (혼자 생각에 잠겨 있고) ...
조회장 : 어떻게... 장이사는 무슨 복안이라도 있나?
태호 : (고개 드는) 책에서 배운 대로 해보죠.
동료들 : ...?
태호 : (농담처럼 편안하게) 이솝 우화에 나오잖아요. 햇님과 바람... 나그네가 직접 외투를 벗은 것처럼,
최이사도 자기 손으로 파일을 내놓게 하는 겁니다.
해진 : (못알아듣고) 바람은 누가 잡고, 햇님은 누군데?
태호 : (빙긋 웃는) ...
24. 강변 일각 ( 낮 )
태호가 차에 앉아 기다린다. 다가와서 멈추는 다른 승용차.
태호, 날렵하게 차에서 내리더니 차창을 노크한다. 스르르.... 내려가면 운전석에 정민이 보인다.
누가 볼까봐 주위를 살피는 척, 하는 태호.
정민 : (냉랭한) 지금 뭐하는 거야?
태호, 여전히 주위를 경계하며 차문 열라고 손짓. 정민, 하는 수 없이 도어락 풀어준다.
재빨리 조수석에 올라타는 태호.
정민 : (코웃음) 중요한 용건이란 게, 자기 차 놔두고 히치하이킹이야?
태호 : (심각하게 보는) ...
정민 : (뭔가 있나 싶은) 태호씨?
태호 : (난처한 듯) 우리 회장님 지시 받구 조사한 게 있는데...
정민 : (기다리는) ...
태호 : (잠시 뜸 들였다가) 최인구 이사 말야. 느이 회사에서 짤린 그 양반.
정민 : (놀라고 의아한) ...?
25. 한중그룹 / 로비 ( 저녁 )
다급한 표정으로 들어서는 정민, 안내 데스크로 간다.
정민 : 회장님, 전경련 만찬 가셨어요?
안내 여직원 : 아직 출발 전이십니다. 비서실에 연락할까요?
정민 : (그렇게 부탁하려다 멈칫, 몇 초 망설이다가) 아뇨. 괜찮아요.
정민, 서둘러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26. 한중그룹 / 세훈의 사무실 ( 저녁 )
세훈, 퇴근하려고 재킷 걸치는데 정민이 황급히 들어선다.
세훈 : (웃으며) 굿뉴스! 지루한 만찬에 안따라가도 된대요. 오늘 저녁은 완전 프립니다!
정민 : (다급한) 최이사님이... (진정시키려고 숨을 고르는)
세훈 : (표정) 최이사가 왜요?
정민 : (애써 차분히) ...미래도시 프로젝트를 좌초시킬 생각이에요.
세훈 : (쿵! 놀랄 수 밖에 없는) 그게... 무슨 소리에요?
정민 : 회사 비자금으로 추진했던 뒷거래, 전부 폭로할 거에요. 그 과정에 연루된 정,관계 인사 리스트도 같이...
세훈 : (멍해지는, 그러다 문득)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정민 : (주춤하는 표정) ...
27. 강변 일각 ( 몇 시간 전, 낮 )
앞 씬의 세훈처럼 충격받은 정민, 태호를 뚫어지게 보는.
태호 : 다 된 밥에 재 뿌리게 생겼는데, 우리 회장님이 손 쓸 방법은 없구...
어쨌든 한중그룹 식구였으니까 느이 회사가 나서야 되지 않겠어?
정민 : (목소리 가다듬고) 확실한 거야?
태호 : (표정 굳는) 내가 어떤 놈인지 잊어 버렸니? 확실한 거 아니면 움직이지두 않아.
정민 : (어찌해야 될지 혼란스러운) ...
태호 : 강실장 능력이면 돌파구를 찾아내겠지. 내 역할은 여기까지다. (문을 열고 내리려다가) 아, 그리구...
정민 : ...?
태호 : 이 소스, 누가 줬는지는 감추는 게 좋을 거야. 용건이 뭐가 됐든 옛날 애인하구 몰래 만나구 그러는 거,
신경에 거슬리거든, 남자는.
정민 : (표정) ...!
28. 한중그룹 / 세훈의 사무실 ( 저녁 )
세훈, 정민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세훈 : 정민씨?
정민 : (표정 관리가 빠르다, 냉철한) 말했잖아요. 어릴 때부터 삼촌같이 따르던 분이라구.
최이사님 외동딸이 저하구 친군데... 아버지가 걱정된다구 시드니에서 전화를 했어요.
세훈 : (가늠하듯 보는) ...
정민 : (화제 돌리며) 회장님한테 보고부터 해야죠?
세훈 : (얼른 머리 속을 정리하며) 잠깐만요. 잠깐...
정민 : (기다리는) ...
세훈 : (마음을 정했다, 차분하게) 일단 사실 확인부터 해봅시다. 확실치도 않은데 섣불리 보고했다가
기전실 입장만 난처해질 수 있어요.
정민 : 시간이 별루 없어요. 자칫하면 미래도시 프로젝트는 물론이구, 그룹에도 타격이 상당할 거에요!
세훈 : 진정해요, 정민씨. (정민의 어깨를 짚고) 내 실력... 못믿겠어요?
혼란스러운 정민, 그래도 이 남자를 믿고 싶다. 겨우 미소 지으면서 고개를 젓는 정민.
그럼 됐다는 듯, 웃어보이는 세훈.
29. 상가 사무실 ( 저녁 )
태호가 영칠 옆에 서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다. 외국계 은행 화면이 떠 있다.
슬그머니 다가와서 고개 들이미는 해진.
해진 : (눈이 휘둥그래지며) 동그라미가 몇 개야, 이게?
태호 : (웃고, 영칠에게) 내가 메모해 준 경로대로 넣다 뺐다 해. 세화 네트워크에 들어가기 전까지 완전히 살균 세탁해야 되니까.
영칠 : (우쭐해서) 뽀송뽀송 건조까지 시켜 놓겠습니닷!
해진 : (입맛 다시며) 그냥 이 돈 들고 튀면 안되나? 머릿수대로 나눠서 팔자 고치고, 곽흥삼은 휘청하고.
태호 : (쓴 웃음으로 보는) 정사장 작업 들어갔을 때, 곽회장이 뭐라 그런 줄 알아요?
해진,영칠 : ...?
태호 : 가진 것만 털어갖군 안쓰러진다, 다시는 재기 못하게 확인사살해야 한다...
(웃음 끝에 번득이는 눈빛) 그 말... 곽흥삼한테 그대로 돌려 줄 겁니다. 이 돈은 잽이에요, 카운터 펀치가 아니구.
해진 : (질린 듯 침을 꿀꺽) 그런 카운터, 안맞구 싶네, 난. (태호 어깨를 두르며, 친한 척) 내가 태호씨 편이라 진짜 다행이다.
태호 : (피식 웃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번호 확인하고 표정) ...접니다.
흥삼 : (소리 - 다급한) 지금 당장 들어와!
태호 : 알겠습니다. (끊고, 해진을 보는)
해진 : (무슨 상황인지 아는) 시작한 거야? 나그네 외투 벗기는 내기.
태호 : (의미심장하게 끄덕) ...
30. 펜트 하우스 / 복도 ( 저녁 )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태호, 서둘러 걸어오는데 안에서 세훈이 나온다. 멈칫,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태호 : 보는 눈이 많은데, 드나들 때 조심하세요.
세훈 : (표정 관리하며) 급한 일이 있어서... 아무튼 걱정 고맙네요.
태호 : 아, 작업 들어가는 업체, 결정했습니다.
세훈 : 세화 네트웍스... 맞죠?
태호 : (표정, 어떻게) ...!
세훈 : 장태호씨라면 그 회사를 고를 거라구 생각했습니다. 나같아도 마찬가지였을 거에요. (안경 고쳐쓰고) 그럼...
엘리베이터로 가는 세훈을 눈여겨보는 태호. 역시 우습게 볼 상대는 아니다.
태호, 펜트하우스 앞에 선다. 숨을 고른다. 흥삼을 요리해야 할 시간!
31. 펜트 하우스 ( 저녁 )
초조한 흥삼이 왔다갔다하며 얘기한다. 소파에 앉아서 차분하게 듣는 태호. 사마귀는 문가에 서 있고.
흥삼 :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종자가 배신당해서, 실연당해서 정신줄 놔버린 인간들이야! 최인구가 미친 척, 그 폭탄 터뜨리면...
(태호를 바라보며, 상상만 해도 끔찍한) ...미래도시는 공중분해된다, 태호야.
태호 : 한중그룹에서 먼저... 돈으로 막지 않겠습니까?
흥삼 : 아쉬울 거 없이 챙겨나왔을 거다. 돈으론 안돼.
소파에 털썩 앉는 흥삼, 관자노리 짚으며 생각하는... 함께 고민하는 척, 표정이 무거운 태호.
흥삼 : (뭔가 떠올리며) ...옛날 얘기 하나 해줄까?
태호 : ...?
흥삼 : 옛날에 어떤 신탁이 있었다. 엉킨 매듭을 푸는 자가 세상을 정복한다는 신탁...
헌데 워낙 단단히 엉킨 매듭이라 다들 실패했지.
태호 : 그래서요?
흥삼 : 너라면 어떡하겠니? 신의 이름으로 꽁꽁 묶인 매듭이 있다면...
태호 : (가늠하듯 보다가) ...쪼그려 앉아 매듭이나 풀면 왕의 자격이 없겠죠.
흥삼 : (미소) ...맞아. 그 매듭을 칼로 쳐서 끊어 버린 사내가 결국 세상을 손에 넣었다. 알렉산더 대왕 얘기야.
태호 : (알아듣고 놀라는) 퇴사했다구 해두, 재벌 그룹 임원이었습니다. 섣불리 처리할 상대가 아닙니다.
흥삼 : (형형한 눈빛) 일단... 풀 수 있는 매듭인지 확인부터 해봐야지.
태호 : (의도대로 흘러간다, 그러나 짐짓 걱정스러운 표정) ...
32. 더 클럽 / 내실 ( 저녁 )
짜증을 풀 듯 언더락스 잔을 비우는 재성. 미주, 그 옆에 앉아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재성 : (소리나게 잔을 내려놓고) Not Good! 좋지 않아!
미주 : (표정 변화 없는) ...
재성 : (삐딱한 눈초리) 곽흥삼 호구조사는 나두 끝냈거든. 마담이 얘기해 준 거, 나두 달달 외구 있다 이거죠!
뭔가 결정적인 임팩트가 없는데?
미주 : 저두 회장님에 대해선 그 정도 밖에 몰라요.
재성 : (표정 고치고 미소로) 베팅액 최고로 올리고, 이제 히든 깝시다. 응?
미주 : (빤히 보는) ...
재성 : (너스레) 워우! 풀베팅 하시겠단 눈빛인데?
미주 : 한중그룹 정보가 필요해요.
재성 : (뜨악한) ...응?
미주 : 미래도시에 대한 정보도 좋구, 그쪽 회사 기밀이면 뭐든지.
재성 : (갸웃했다가 뭔가 떠오른, 씨익 웃는) 마담은 주식같은 거 손대지 마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야.
미주 : (흔들림없이) 곽회장이 알구 있어요.
재성 : (술잔 들다가 보는) ...?
미주 : 부사장님이 나한테 한 제안, 내가 자길 배신하려구 했던 거, 훤히 다 알구 있다구요.
재성 : (놀라서 굳은 채) ...그래서?
미주 : 속아주는 척, 캐내라구 하던데요. 부사장님하구 한중그룹에 대해서.
뜨악하게 보던 재성, 갑자기 크크, 웃으면서 경직됐던 목을 이리저리 꺾는다. 내내 포커 페이스로 지켜보는 미주.
재성 : 이야... 노숙자 두목이라고 얕잡아 봤네. 서울역 넘버원, 가위바위보로 차지한 게 아니었어.
미주 : 넘겨두 상관없는 정보는 저한테 주세요. 그래야 자기가 판을 장악하고 있다구 착각할 거에요.
재성 : 이중 스파이, 그거 피곤할 텐데... (흥미롭게 응시하며) 그래서... 마담은 결국 누구랑 편 먹을 건가?
미주 : (그제야 포커 페이스 풀고, 알 수 없는 미소로 보는) ...
33. 폐차장 ( 밤 )
앞 씬에서 나오지 않은 미주의 대답을 보여주듯, 생각에 잠겨있는 태호 모습.
그 앞에 앉아 있는 미주.
미주 : 최이사가 숨겨 놨다는 뇌물 리스트, 알지도 못하는 눈치에요.
태호 : (회심의 미소) 알았으면 한가하게 술 마시러 올 시간도 없죠. 중간에서 정보가 막힌 겁니다. 한중그룹 기전실에서.
미주 : (의아한) 거기 실장... 꽤 신임받는 엘리트라구 들었는데요? 곽회장한테 매수돼서 자기 보스를 배신했단 말이에요?
태호 : (묘한 미소로 보다가) 곽회장에 대해서... 마담두 연구 더 해야겠네요.
미주 : 무슨... 얘기에요?
태호 : 미국에 유학 갔던 곽회장 동생,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그 친구... 아직 멀쩡하게 살아 있습니다.
미주 : (언뜻 못알아듣고 보다가... 서서히 경악하는) ...!!
34. 폐차장 근처 ( 밤 )
걸어 나오는 미주, 길가에 세워놓은 차로 다가간다. 아직 충격이 남은 듯, 차에 오르지 않고 멍한 미주.
그런 미주를 어둠 속에서 지켜보는 시선... 독사와 악어다!!
악어 : (이죽거리며) 인자 보니께 종구 성님을 좋아혔다기보담, 폐차장에 사는 남자가 이상형인게뷰.
독사 : (매섭게 지켜보며) 요새 자주 들락거리냐?
악어 : 성님이 그랬잖유. 장태호두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을 거라구.
애들 풀어서 폐차장 감시혔는디, 마담이 얻어 걸릴 줄 몰랐쥬. 요새 아주 출근도장을 찍더라구유.
충격을 추스르고 차에 오르는 미주. 미주의 차가 멀어지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는 독사와 악어.
악어 : 저것들 정분난 거, 큰성님헌테 알려야겠쥬?
독사 : (코웃음) 넌, 쟤네들이 연애하는 걸루 보이냐?
악어 : 야?
독사 : 서마담이 다른 건 다 여우짓해두... 종구 형님한테는 일편단심이었다. 장태호도 할매식당 손녀랑 그렇고 그런 사이구.
악어 : 그러믄 저것들... 대체 뭔 꿍꿍이래유?
독사 : (폐차장쪽 돌아보며 눈빛) 이제부터 알아내야지, 슬슬...
35. 폐버스 안 + 무료병원 진료실 ( 밤 )
피로가 몰려오는 듯, 침상에 늘어지게 눕는 태호. 문득 화분이 눈에 들어온다. 미처 못봤던, 새로운 꽃이다.
나라가 왔다갔음을 짐작하고 미소짓는 태호, 핸드폰을 든다.
/ 잠이 든 환자들 살피고 병실에서 나오는 나라, 핸드폰 문자 알람이 뜬다. 확인하면 꽃다발 이모티콘이 뜨는.
태호 : (소리) 밥 해놓고 청소 해주는 우렁각시는 들어봤는데, 꽃배달하는 얘긴 첨 듣네요.
나라 : (미소 짓고, 답장한다 - 소리) 청소는 무리고, 밥은 줄 테니까 식당에 들러요.
/ 피식 웃는 태호, 답장 문자를 보내며.
태호 : (소리) 기다려봐요. 곧 나라씨가 기뻐할 만한 소식이 있을 거에요.
나라 : (의아한, 얼른 자판 찍는- 소리) 뭔데요?
태호 : (느긋한 - 소리) 그때까지 비밀.
칫! 입술 삐죽하는 나라, 화난 표정의 이모티콘 보낸다.
씩 웃는 태호, 팔깍지 베고 천정을 본다. 웃음 사라지며, 앞으로 해결할 작업에 눈빛이 서늘해지는.
36. 빌라 단지 / 출입정문 ( 낮 )
차단기가 올라가고, 최이사의 승용차가 나온다. 막 차도로 나서려는데... 그 앞을 가로막고 서는 차.
최이사, 놀라서 보면... 차에서 내리는 사마귀, 최가 앉은 운전석으로 다가온다.
최이사 : (얼굴이 기억나는) 당신... 곽회장 밑에서 일하는...
사마귀 : 회장님께서... 차 한잔 하시잡니다.
최이사 : (불쾌한) 선약이 있어.
사마귀 : (더 낮고, 위협적인) 차 한잔... 하시잡니다.
최이사 : (질린 듯 보는) ...
37. 펜트 하우스 ( 낮 )
테이블에 찻잔이 놓인다. 언짢은 기색으로 앉아 있는 최이사, 흘끔 보면 맞은 편에 태호가 어색한 웃음.
그때, 침실에서 내려오는 흥삼.
흥삼 : (활기차게) 갑자기 모시게 돼서 죄송합니다. 요샌 퇴직한 분들이 더 바쁘시던데.
최이사 : 이게 뭐하는 짓이요, 곽회장?
흥삼 : (앉으며) 길게 설명할 시간 없으니까 단도직입적으로 해결 보시죠. 얼마면 되겠습니까?
최이사 : (찌푸리는) 뭐? 그게 무슨 소리요?
흥삼 : 이사님이 꼭꼭 숨겨둔 한중그룹 파일. 특히, 미래도시에 관련된 뒷거래 리스트 말입니다. 얼마에 파시겠냐구요?
최이사 : (놀라는, 그러나 노회한 기업인이다, 표정 고치며) 지금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구만.
흥삼 : 이런 흥정, 시간 낭비에요. 서로 원하는 거 주고 받고 빨리 끝냅시다.
최이사 : 어디서 무슨 소릴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난 그런 파일이나 리스트, 가진 게 없어요. (일어나는) 이만 가리다!
흥삼 : (목소리 매섭게 바뀌는) 이사님!
최이사 : (멈칫) ...!
흥삼 : (노려보며 일어나는) 정만출 사장하고 한통속 돼서 절 따돌렸을 때... 꾹 참았습니다, 저. 헌데 이번엔 경우가 다르죠.
그땐 한중그룹 임원이라는 방패가 있었지만, 지금은 허허벌판에 혼자 서 계시잖습니까?
최이사 : (꿈틀) ...!!
흥삼 : 한중에 분풀이하는 건 좋은데, 미래도시 사업까지 불똥이 튀면 곤란 하죠.
(나즈막히, 위압적인) 그러니까... 넘기세요, 그 파일.
부르르 떨며 노려보는 최이사. 동요하지 않고 응시하는 흥삼.
태호는 다른 계산을 하면서 둘의 대치를 지켜보고...
최이사 : (짐작이 가는) ...강세훈이로군. 이번에도 그 놈이 날 모함했어.
흥삼 : (멈칫) ...!
최이사 : 정신 똑바로 차리시오, 곽회장. 당신이 손잡은 그 사업 파트너... 그 놈은 악마요! 가면 뒤에 진짜 얼굴을 숨긴 악마!!
세훈에 대한 모욕에 꿈틀!하는 흥삼. 그때, 핸드폰이 울린다. 일순 스치는 태호의 눈빛.
흥삼, 최이사를 노려보며 통화하는데...
미주 : (소리- 사무적인) 저에요.
흥삼 : ...뭐야? (미주 얘기를 들으며 최이사를 노려보는) ...
태호 : (속내 감추고 지켜보는) ...
38. 폐차장 ( 과거, 전날 밤 )
33씬에 미처 나오지 않은 태호와 미주의 대화. 흥삼 형제의 비밀을 듣고 충격에 빠진 미주.
미주 : (멍한 느낌) 나... 회장님이 어렸을 때 살았던 집에 가본 적 있어요.
태호 : (보는) ...?
미주 : 그 정원에서... 동생하고 함께 뛰어 놀면서 자랐을 텐데...
(태호를 보는) ...무섭네요. 하나 밖에 없는 동생까지 복수극에 끌어들이다니...
태호 : (묵묵히 지켜보고) ...
미주 : (표정 고치고) 그래서... 내가 뭘하면 되죠?
태호 : (잠시 보다가) 미리 사인 줄 테니까 시간 맞춰 전화해요.
미주 : (표정) 곽회장한테요?
태호 : 용건은 간단합니다. 윤재성을 만났다가 이런 정보를 들었다...
39. 펜트 하우스 ( 현재, 낮 )
여전히 최이사를 노려보면서 상대(미주)의 얘기를 듣는 흥삼.
그 모습을 지켜보는 태호. 그 표정 위로, 앞 씬의 코치 내용 이어지는.
태호 : (소리) 최이사 파일이라는 게 있나 보더라. 윤일중 회장이 그걸 알게 됐는데
어떻게든 최이사를 설득해서 파일을 입수할 계획이다.
흥삼 : (미주에게 같은 얘기를 듣는 듯, 점점 일그러지는) ...
태호 : (소리) 그룹에 대한 내용을 삭제하고 그 대신! 그걸 곽회장을 제거하는데 써먹을 속셈이더라... 그렇게만 말하면 됩니다.
흥삼 : ...수고했어. (전화 끊고, 표정 고친다. 한결 누그러진)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거 같습니다.
태호 : (속으로 쾌재! 걸려 들었다) ...
흥삼 : (어깨를 으쓱) 파일이니 뭐니, 괜한 기우였네요.
최이사 : (내친 김에 부인하는) 애초에 그런 파일이 없다고 하지 않았소!
흥삼 : (정중하게) 결례를 범해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사님.
태호 : (흥삼의 결정을 직감하는) ...
흥삼 : (사마귀에게) ...모셔다 드려.
언짢은 표정으로 헛기침하는 최이사, 돌아서서 나간다. 그 뒤를 따라 나가는 사마귀.
차분하게 바라보던 흥삼의 눈빛이 싸늘해지고.
흥삼 : ...사마귀 따라가. 주차장에서 기다릴 거다.
태호 : (당황, 놀라는) 네?
흥삼 : 최이사 차는 폐차시켜야 되거든.
태호 : ...!!
40. 펜트 하우스 / 주차장 ( 낮 )
쿵! 트렁크에 실리는 사내... 의식을 잃은 최이사!
사마귀, 최이사 차의 트렁크를 닫고 돌아본다. 긴장해서 지켜보는 태호.
사마귀 : 공장으로 갈 겁니다. 가는 길은 아시죠?
태호, 뭔가 대꾸하려는데 사마귀는 듣지 않고 최이사 차에 오른다.
난감한 태호, 하는 수 없이 사마귀 차에 오르고.
41. 도로 일각 ( 낮 )
앞에는 사마귀가 운전하는 최이사의 차. 뒤에는 태호가 운전하는 사마귀의 차. 두 대의 승용차가 빠르게 달려가고.
42. 달리는 차 안 + 승합차 안 ( 낮 )
앞서 달리는 차의 꽁무니를 보면서 핸즈 프리로 통화 중인 태호.
태호 : 출발했어요.
/ 인적없는 이면 도로. 승합차에서 대기 중인 해진과 오십장, 영칠.
해진 : (긴장한) 우리두 30분 전에 도착했어.
태호 : 나도 따라가고 있어요.
해진 : (놀라는) 뭐? 태호씨가 왜?
태호 : (자기도 답답한) 암튼 그렇게 됐어요. (시계 흘끔 보고) 지금 속도로 달리면 15분쯤 있다가 보일 겁니다.
목표물은 앞 차에 실려 있구요.
해진 : 차종하고 색깔은? (듣고) 응... 응. 알았어.
태호 : (전화 끊는다, 긴장하는) ...
해진 : (전화 끊고 돌아보는) 손님 오시구 있단다! 준비해!
오십장, 대쉬 보드에서 뭔가를 꺼내는데... 스키 마스크다!
하나씩 나눠 갖는 해진과 오십장, 영칠. (바로 뒤집어 쓰지는 않고.)
43. 이면 도로 일각 ( 낮 )
무표정하게 운전하던 사마귀, 전방을 보더니 흠칫! 표정 굳는다.
‘검문중 - 수배자 일제 단속 기간’ 표지판 옆으로 차들이 서 있다. 한 대씩 차량 검문하는 경찰관들.
/ 사마귀 뒤에 차를 세우는 태호, 사색이 된다. 경찰관들이 트렁크까지 확인하며 검문 중이다.
최이사가 발견되면 태호의 계획까지 파토날 상황! 태호, 입술이 바짝 타들어가고.
/ 앞 차의 트렁크를 확인하고 닫는 경찰관. 이제 사마귀 차례다.
차창을 두드리는 경찰관. 사마귀, 하는 수 없이 차창 내린다.
경찰 : (경례하고) 수배자 일제 단속 기간이라 검문중입니다. 신분증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사마귀 : (지갑에서 신분증 꺼내 건네는)
/ 태호, 사마귀의 신분증을 단말기로 조회하는 경찰을 지켜본다. 자기도 모르게 핸들을 꾹 움켜쥔다. 진땀이 흐르는 초조함...
/ 사마귀에게 신분증을 돌려주는 경찰관.
경찰 : 죄송하지만 트렁크 내부도 확인하겠습니다.
사마귀 : (움직이지 않는) ...
경찰 : 선생님? 트렁크 좀 열어 달라구요.
악셀레이터에 올려놓은 발이 움찔거린다. 그대로 밀어버리고 도주해야 하나... 갈등하는 사마귀.
그때, 끼이익!! 타이어 굉음을 내며 유턴하는 태호의 차.
경찰 : (놀라서) 뭐야, 저거!
삐익!! 호루라기 부는 경찰관. 그대로 꽁무니 빼는 태호의 차.
사마귀를 검문했던 경찰이 순찰차에 올라 탄다. 사이렌을 울리며 쫓아가는 순찰차.
얼떨떨하면서도 한숨 돌리는 사마귀, 차를 출발시키며 뒤돌아본다. 멀어지는 태호의 차, 그 뒤를 쫓아가는 순찰차.
44. 도로 일각 / 다른 곳 ( 낮 )
달려오는 태호의 차. 순찰차 스피커에서 경고 메시지가 나온다.
경찰 : ####(차량 넘버) ####!! 정차하세요! 정차!!
문득 속도를 줄이는 태호, 길가에 차를 댄다. 뒤이어 순찰차가 멈추고, 경찰관들이 내린다.
태호 : (고개 내밀고 보는, 태연하게) 뭐에요? 바쁜데...
경찰 : (가스총 겨누면서, 위압적인) 내려!
태호 : (흠칫 놀라는... 척하면서) 자... 잠깐만요!
경찰 : 내리고 지붕에 손 올려! 어서!
겁 먹은 시늉하며 내리는 태호, 차 지붕에 손을 올린다.
동료가 가스총 겨눈 상태에서 거칠게 태호를 몸수색하는 경찰관. 당황한 척 하면서도 짧게 스치는 태호의 눈빛.
45. 달리는 차 안 + 이면 도로 ( 낮 )
차량 통행 없는 이면 도로에 접어드는 사마귀. 핸즈프리로 보고 중.
사마귀 : ...네. 장태호 덕분에 검문은 피했습니다. 즉시 공장으로 가서 최이사부터 처리... (하는 순간!)
쾅!! 엄청난 충격과 함께 옆구리를 들이받히는 차. 그대로 승합차에 밀리면서 길 한쪽에 처박힌다.
어딘가 부딪혀 이마에 피 흘리는 사마귀, 정신이 혼미하다.
그 어지러운 시선에... 승합차에서 내리는 스키 마스크의 사내들이 보인다.
/ 운전석으로 다가온 해진, 의식이 흐릿한 사마귀를 확인한 뒤, 깨진 창문에 팔을 넣고 도어락을 푼다.
트렁크로 가서 기다리는 오십장과 영칠.
해진, 차문을 열고 트렁크 버튼을 찾는데... 가물거리는 의식을 붙잡고 나이프 꺼내는 사마귀, 눈 앞의 사내를 향해 휘두른다.
헉! 팔뚝을 베이는 해진. 겨우 눈을 치켜뜨며 노려보는 사마귀.
열받은 해진, 공장에 끌려갔던 복수를 겸해 에라이... 펀치! 퍽!! 조수석쪽으로 축 늘어지는 사마귀.
/ 덜컹! 트렁크가 열리고 그 안에 구겨져있는 최이사! 아직 의식이 없다.
해진이 망보는 사이 최이사를 승합차에 옮겨 싣는 오십장과 영칠.
/ 이를 악 물고 정신을 추스르는 사마귀, 그 시선으로 보면... 최이사를 태운 승합차가 어느새 현장에서 멀어지고 있다.
46. 경찰 지구대 ( 낮 )
46씬의 경찰관이 신경질적으로 키보드 두드린다. 그 앞에 따분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있는 태호.
경찰 : 김종현씨! 수배범도 아니고, 음주도 안했으면서, 왜 달아났어요?
태호 : 달아나긴 누가 달아났다 그래요? 중요한 서류를 빼먹구 와서 급하게 돌아간 거라니까.
경찰 : (짜증 폭발) 거, 똑바로 앉아요!
태호 : (귀찮은 듯 바로 앉고) 이제 가두 됩니까?
경찰 : 불법 유턴에 신호 위반, 벌점하구 벌금 나갈 거에요.
태호 : (면허증 돌려 받고, 일어난다. 이죽거리며) 수고 많~이 하십시오.
47. 경찰 지구대 앞 ( 낮 )
건물에서 나오는 태호, 이죽거리던 표정 바뀌며 핸드폰 급히 꺼낸다.
태호 : 나에요. ...아니, 중간에 일이 좀 있었어. 최이사는? (듣다가 눈빛) 수고했어요. 다친 사람은 없죠? (듣고) 그래, 다행이네.
그때 흥삼의 번호가 뜬다. 멈칫, 긴장하는 태호.
태호 : 쑈하러 갈 시간 됐어요. 이따 연락할께요. (통화 종료하고, 흥삼 전화를 받는) 접니다, 회장님.
(표정은 태연한데 목소리만 놀라는) ...네!?
48. 펜트 하우스 ( 낮 )
부리나케 들어서는 태호. 그와 동시에 우당탕!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사마귀.
잔뜩 흥분한 흥삼이 씩씩대고 있다. 사마귀, 고통스럽지만 다시 무릎 꿇는다.
독사와 악어는 내심 고소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흥삼 : (다가와 서는 태호를 보고) 경찰은?
태호 : 별 문제 없었습니다.
악어 : (히죽거리는) 거 봐. 내가 에이끕이라구 혔잖여.
흥삼 : (마뜩치 않은) 웃어?
악어 : (이크! 표정 고치고)
흥삼 : 당장 애들 풀어서 최인구부터 찾아! 공장 가는 길목을 노린 거 보면 서울역 사정을 잘 아는 놈들이다.
독사 : (갸웃) 그럼...
흥삼 : 몰라 묻냐? 흩어진 정사장 부하 중에 꼴통짓 할 만한 놈들, 찾아내서 족쳐!
독사,악어 : 네!! (돌아서는데)
흥삼 : 독사야!
독사 : (돌아보는) 네, 형님.
흥삼 : (사마귀를 흘끔 보고) 이 물건, 공장으로 치워.
사마귀 : (고개 숙인 채, 멈칫) ...!
독사 : (내심 기대하며) 영감 불러서 작업할까요?
흥삼 : 일단 처박아 둬. 오늘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그거부터 깨달아야지.
사마귀 : (괴롭고, 침통한) ...
독사 : (발로 툭 건드리는) 형님 말씀 못들었냐? 일어나, 새꺄.
비틀비틀 겨우 일어나는 사마귀, 흥삼에게 목례한다. 무시하고 소파에 앉는 흥삼.
사마귀, 참담한 기분으로 문으로 가면 독사와 악어도 나간다.
복잡한 기분으로 지켜보는 태호.
흥삼 : (화는 치밀어도 착잡한) 실수같은 거 모르는 놈이 하필...
태호 : (조심스레 살피는) 배후는... 정사장네 남은 식구들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흥삼 : 무슨 소리야?
태호 : 한중그룹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흥삼 : (표정) ...!
태호 : 최이사 파일을 알게 됐다면... 그쪽도 가만 있진 않을 테니까요.
(짐짓 모른 척) 근데 윤회장이나 그 아들... 파일에 대해 알구 있는 겁니까?
일어나는 흥삼, 서성거리며 생각에 잠긴다. 흥삼의 고민을 훤히 들여다보는 태호, 표정 관리하며 기다린다.
흥삼 : (돌아보는) 한중에서도... 눈치챈 모양이다.
태호 : (일부러 놀라는) ...!!
흥삼 : 최이사를 가로챈 놈들이 윤일중 부자면... 다음 타겟은 내가 될 거야.
태호 : (놀란 표정 수습하며) 이제... 어떡하실 생각입니까?
흥삼 : (결연해지며) 최종 계획을 앞당겨야겠다. 이쪽 일은 나한테 맡기고, 넌 2단계 작전이나 서둘러.
태호 : ...알겠습니다.
흥삼 : (시선 거두고, 혼자 생각에 잠기는) ...
49. 펜트 하우스 / 복도 ( 낮 )
밖으로 나오는 태호, 멈춰서더니 문을 돌아본다.
조급해지기 시작한 흥삼... 태호가 의도한 반응이다. 입가에 스치는 쓴 웃음.
50. 상가 사무실 ( 저녁 )
겁에 질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최이사. 팔뚝에 붕대를 감은 해진이 앉아 있고, 문가는 영칠이 지키고 서 있다.
최이사 : 당신들... 대체 누구요?
해진 : (진지한) 정만출 사장님 아시죠? 저희들, 그 분 밑에서 일했습니다.
최이사 : ...!!
해진 : 곽흥삼한테 복수하려구 기회만 노리고 있었는데... 이사님이 위험하시길래 이판사판, 구해드린 겁니다.
저희 사장님하고 인연도 있으신 분이니까요.
최이사 : 어, 어쨌든 고맙소.
해진 : (눈빛 은근해지며) 무슨... 파일같은 게 있다고 들었는데요, 저희한테 넘기시죠.
최이사 : (멈칫) ...!!
해진 : 곽흥삼, 이대로 포기 안합니다. 그 파일 넘겨주시면... 저희가 곽흥삼을 잡겠습니다.
최이사 : (근엄하게 헛기침) 복수고 뭐고, 거야 당신들 문제고... (일어나는) 난 가봐야겠소.
해진 : (따라 일어나며) 저희 사장님, 해외 도피하신 거 아닙니다.
최이사 : (보는) ...?
해진 : (침통한) 장기 적출하는 공장에 끌려가서... 비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최이사 : (경악) ...!!
해진 : 아까 이사님도 그 공장으로 실려가실 뻔 했구요.
최이사 : (믿기지 않는) 어... 어떻게 그런... 말도 안되는...
해진 : 저희가 곽흥삼 잡는 걸 도우시던가, 아니면 그 자식 손에 당하시던가... 선택은 두 개 밖에 없습니다, 이사님.
최이사 : (놀랐던 표정 추스르고) 내가 그 파일을 공개하든 덮든... 당신들하곤 상관없는 문제요. (똑바로 쳐다보는) 보내 주시오.
해진 : (난감한) ...
51. 상가 사무실 / 계단 ( 저녁 )
문 앞에서 망 보는 오십장. 누군가 올라오자 주먹 쥐고 긴장! 태호임을 알아보고 휴... 안심한다.
태호 : 어떻게 됐어요?
오십장 : (문을 돌아보며) 영 말빨이 안먹히는 게벼.
태호 : (찌푸리는) ...
오십장 : 근디... 저 냥반, 다른 데로 옮겨야 허지 않것는가? 여그 있다가 들키믄 우짤라고.
태호 : 독사랑 악어가 서울역을 이잡듯 뒤지고 있어요. 등잔 밑이 어둡다고, 여기가 훨씬 안전해요.
오십장 : (그런 듯 싶기도) ...
태호 : (잠시 생각하다가) 제가 들어갈께요.
오십장 : (눈이 휘둥그레) 그라믄 다 들통나잖여!
태호 : (단단히 결심한 표정) ...
52. 상가 사무실 ( 저녁 )
똑똑, 또도독똑! 약속된 노크가 들리자 잠긴 문을 열어주는 영칠.
태호가 들어서자 놀라는 해진과 영칠, 무엇보다 최이사!
거침없이 걸어오는 태호, 최이사 앞에 선다. 냉랭하게 쏘아보는 태호.
최이사 : (뭔가 짐작한) 곽흥삼이 시켰구만! 날 구해주는 척 하면서, 파일을 빼내려구... (해진을 돌아보는) 전부 한통속이었어!
해진 : (난감한) 그게... (태호를 향해) 이 친구가 여기 나타나면 안되는데...
태호 : (감정없이 싸늘한) 앉아.
최이사 : ...뭐?
태호 : 앉으라구.
최이사 : (발끈) 이런 건방진... (하는데)
태호, 최이사의 가슴을 턱! 민다. 중심 잃고 털썩, 의자에 주저앉는 최이사.
태호, 테이블에 한발 척, 올리고 몸을 굽혀 내려다보는.
태호 : 최인구씨... 주제 파악, 사태 파악을 전혀 못하시네.
최이사 : (분노, 당황해서 부들부들) 뭐가 어째?
태호 : 당신이 무슨 독립투산 줄 알어? 우리는 일본 순사구? (코웃음) 대기업 임원이랍시구 거들먹거리면서
뇌물 받아먹고, 뇌물 찔러주고... 당신 그러구 살아온 인간이야.
최이사 : 이런, 되먹지 못한 놈...
태호 : 억울하네 이거. 당신 포함해서 윤일중, 윤재성... 서울역엔 곽흥삼에다가 죽은 정만출까지...
하나같이 탐욕스럽고, 되먹지 못한 쓰레기들이잖아, 안그래?
최이사 : (파르르 노려보는) ...
태호 : (거침없이 몰아붙이며) 내 친구한테 대충 들었을 테니까, 간단하게 끝냅시다. 파일 토해놓고, 곧장 대한민국에서 탈출해.
범죄인 인도협정 없는 스위스나 어디나... 도망칠 나라는 당신이 정하구.
최이사 : (기세에 눌린, 그러나 마지막 저항) 그렇게 못하겠다면?
태호 : 여기 모셔온 그대로 잘 포장해서 곽흥삼 공장에 보내 드릴께.
최이사 : (공포, 분노에 덜덜 떨리는) 너 이놈... 도대체 정체가 뭐냐?
태호 : ...나? (씨익 미소 짓는) ...노숙자.
판을 움켜쥔 사내, 태호의 자신만만한 미소에서 화면 멈추는!
53. 할매 식당 / 안채 ( 다른 날, 아침 )
부스스한 나라, 잠이 덜 깬 채 마당에 내려선다. 하품 늘어지게 하면서 기지개를 켜는 나라.
그러다 문득 눈을 찡그리며 하늘을 올려다 본다. 어쩐지 좋은 일이 생길 듯, 햇살이 포근한 아침.
나라, 저도 모르게 배시시 미소가 번지는데...
할매 : (소리-다급한) 나라야! 나라야!!
나라 : (흠칫 식당쪽을 돌아보는) ...?
54. 할매 식당 ( 아침 )
헐레벌떡 들어서는 나라. 할매, TV 뉴스 화면을 보고 있다.
나라 : 할머니, 왜?
할매 : (시선은 TV 고정한 채) 시방 테레비에서 서울역 어쩌구 허는디, 당최 뭔 소린지 못알아먹것어.
뉴스 진행하는 앵커 뒤로 ‘미래도시 프로젝트 / 메가톤급 부정 의혹’이라는 배경 화면.
나라, 황급히 리모컨으로 볼륨을 키운다.
앵커 : (소리 커지면서) ...검찰은 물론, 청와대와 감사원, 주요 언론사에 제보된 한중그룹의 비자금 및 뇌물 리스트는
지난 7월 이 회사를 퇴직한 최인구 전무이사가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나라 : ...!!
55. 윤회장 저택 / 서재 ( 아침 )
충격에 빠진 윤회장과 재성, TV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앵커 : 특히 한중그룹이 차세대 경영 혁신의 대표 사업으로 내세운 미래도시 프로젝트와 관련해 정치권 인사를 비롯,
주무 부처 관료들까지 포함 된 전방위적 로비와 뇌물 거래가 오간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재성 : (더듬거리며 어딘가에 핸드폰 거는) ...
윤회장 : (멍한 채 뉴스만 보는) ...
앵커 : 청와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어제밤 주요 비서진, 각료들이 참석하는 긴급 회의가 소집됐으며,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재계에 만연한 부정부패에 대해 신속하고 엄중한 대처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재성 : (넋이 나간 채 돌아보는) 검찰총장님... 전화 안받는데요?
윤회장 : (벌컥) 김장관한테 전화 넣어!
재성 : (허겁지겁 다른 번호 누르는)
56. 한중그룹 / 세훈의 사무실 ( 오전 )
벌컥! 문 열고 들어서는 정민. 세훈, 굳은 표정으로 뉴스를 보고 있다.
정민 : (충격, 어쩔 줄 모르는) 세훈씨!
세훈 : (TV에 시선 고정한 채, 감정없는) 쉿... 뉴스 보는 중이에요.
세훈의 시선을 따라서 보는 정민. 뉴스 속 앵커 멘트가 이어지는.
앵커 : 최인구 이사는 어제 오후, 인천공항을 통해 스위스로 출국한 사실이 확인됐으며,
검찰은 리스트에 언급된 정,관계 인사들을 이례적으로 긴급히 소환해, 의혹 사실에 대한 진위 여부를 조사할 예정입니다.
정민 : ...!!
세훈 : (표정 변화 없고) ...
앵커 : 그럼 현장에 나가 있는 최호영 기자를 불러 보겠습니다. 최기자?
스튜디오와 청사 앞을 연결하는 이원 생방으로 뉴스 화면 바뀌고.
기자 : 네, 저는 지금 대검 청사가 있는 서초동에 나와 있습니다.
앵커 : 오늘 긴급 소환되는 인사에는 누가 포함돼 있습니까?
57. 검찰 청사 앞 ( 오전 )
리포트 중인 기자 뒤로 분주한 취재진이 보인다.
기자 : 민우당 김수한 의원을 시작으로 국교부 문기환 차관, 남진수 국장 등 뇌물 수뢰 리스트에 거명된 정,관계 유력 인사들이
줄줄이 소환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때 차량 도착하고, 김의원이 내린다. 우루루 몰려드는 취재진.
검찰 직원의 보호를 받으며 이동하는 김의원. 플래시 세례를 받으면서도 특유의 번들거리는 웃음으로 손을 내젓는.
김의원 : 오햅니다, 오해. 성실하고 진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허허...
58. 펜트 하우스 ( 낮 )
우두커니 서서 TV를 보는 흥삼, 어금니를 깨물고 분노를 참는다.
소파에 앉은 미주는 불안하고... 다른 방송사의 여자 앵커가 보도 중.
여자앵커 : 검찰은 미래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해온 한중그룹 실무자를 소환하는 한편,
관련 투자자들에 대한 수사도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배경 화면이 ‘미래도시 사업 - 전면 재검토’로 바뀌는 순간, 흥삼이 꿈틀! 얼어붙는다.
여자앵커 : 한편, 감사원에서는 수뢰 의혹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한중그룹의 미래도시 프로젝트에 대해, 사업 타당성 여부를 비롯,
인허가 과정을 정밀 감사할 방침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실상 사업 백지화가 예상되는 감사원의 이번 조치로...
팟!! TV를 끄는 흥삼. 울 안에 갇힌 맹수처럼 서성거리다 책상으로 간다.
책상 위에 펼쳐진 서울역 지적도. 이글거리며 보던 흥삼, 거칠게 종이를 찢어 버린다.
흠칫 놀라 일어나는 미주.
갈갈이 찢겨져 허공에 날리는 종이 조각들. 책상을 짚고 선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흥삼.
미주 : (걱정스러운) ...회장님.
흥삼 : (분노를 삭히며, 차분해지는) 갈아입을 옷 좀 챙겨라.
미주 : 네?
그때 노크 소리 난다. 흥삼 부하의 안내 받고 들어서는 검찰 수사관들.
예상한 듯 싸늘해지는 흥삼. 미주는 놀라서 보고.
수사관 : (신분증 보이며) 검찰입니다. 새서울 개발연대 곽흥삼씨, 맞습니까?
흥삼 : (의연하게 옷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독사하구 태호한테 연락해. 하루 정도 비울 거라고.
59. 상가 사무실 ( 낮 )
쾅! 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오십장. 컴퓨터 앞의 영칠, 소파에 기대있던 태호와 해진이 쳐다본다.
오십장 : 들었는가? 곽흥삼이가 검찰에 잡혀갔다는구마!
해진 : (벌떡 일어나는) 진짜요? (태호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는) 천하의 곽흥삼이 콩밥 먹게 생겼네! 응?
태호 : (피곤하고 심드렁한) 그냥 참고인 진술이에요. 하루 이틀 조사받구 나올 텐데 뭘.
영칠 : (실망하며) 겨우 그걸로 땡이에요? 빵에 가는 거 아니구?
태호 : 증거도 없지만, 만에 하나 증거가 있다구 해도, 기껏해야 2~3년 형으로 끝나.
(매서워지는) 그 정도 처벌은 곽흥삼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동료들 : (표정) ...!
오십장 : 좌우당간 그 잡놈이 서울역 거시기해 불것다는 계획은 스돕됐잖여.
태호 : (끄덕) 이제 겨우 시작이에요. 마음 급해진 곽회장이 작전을 서두르면... 카운터 날릴 타이밍이 닥칠 겁니다.
단호하고 자신만만한 태호를 보며, 새삼 전의를 다지는 해진, 오십장, 영칠.
문득 하품하며 기지개를 켜는 태호.
태호 : 최이사 파일 뿌린다구 며칠 날밤 깠더니, 죽겠네. (일어나는) 나, 눈 좀 붙이고 올께요.
해진 : 걱정 붙들어 매구 내년까지 푹 자. 세화 네트워크는 우리가 준비하고 있을께.
태호 : (피식 웃곤, 해진의 팔을 보는) 팔은 좀 나았어요?
해진 : (움직여보이며) 그럭저럭... (생각난 듯 히죽 웃으며) 사마귀 그 자식 한테 한방 날리니까 속이 다 시원하대.
공장 끌려가서 고생했던 생각하면... 어휴.
태호 : (사마귀를 떠올리는 표정) ...
60. 폐건물 / 창고 ( 낮 )
독사 부하가 들어선다. 빛도 안들어오는 공간에, 팔 다리가 묶인 채 옆으로 쓰러져있는 사마귀, 초췌하고 지저분하다.
빵을 하나 던져주고 나가는 독사 부하.
몸을 움직여 기어가는 사마귀, 입을 겨우 움직여서 빵을 씹는다. 생존 본능과 독기로 형형한 사마귀의 눈빛!
61. 검찰 청사 / 복도 ( 낮 )
검찰 수사관과 함께 걸어오는 흥삼, 당당한 표정과 걸음걸이. 맞은 편에서 나타나는 세훈과 다른 수사관.
멈칫, 시선 마주치는 흥삼과 세훈. 흥삼, 세훈과 엇갈릴 즈음, 쓱 쳐다본다.
흥삼 : 미래도시 사업, 백지화된다는 뉴스 봤습니까?
세훈 : (착잡한 표정) ...
수사관 : 사적은 대화는 삼가세요.
흥삼 : 실망입니다. 한중그룹같은 큰 회사에서 일처리가 그 모양이라니.
수사관 : 곽흥삼씨!
냉랭한 웃음 던지고 지나쳐가는 흥삼. 세훈, 착잡하고...
62. 폐차장 ( 낮 )
나라, 화분 몇 개를 예쁘게 진열하고, 두 어걸음 물러서서 살핀다. 보기좋게 예쁘다.
흡족한 나라, 돌아서다가 이크! 지친 표정으로 걸어오던 태호가 힘없이 웃으면서 쳐다본다.
태호 : 잡았다, 우렁각시.
나라 : 아... 지나가는 길에 잠깐 들른 거에요. (퀭해 보이는 태호 몰골에) 어디... 아파요?
태호 : (소파에 털썩) 아뇨. 피곤해서 그래요. (하품하며) 좀... 바빴거든요.
나라 : (가만히 보다가) 태호씨가 한 일이죠? 재개발 사업 중단된 거.
태호 : (올려다보는) 날 너무 과대평가하시네. 내가 좀 잘나긴 했지만, 그 정도 능력은 없어요.
나라 : 그때 문자했잖아요. 기쁜 소식 있을 거라구.
태호 : (모른 척, 코를 긁는) 그랬나?
나라 : (짐짓 흘겨봤다가 미소) ...고마워요. 할머니 걱정두 한시름 덜었어요.
태호 : (역시 미소로 보다가) 그럼... 부탁 하나만 들어 줄래요?
나라 : ...?
태호 : (소파 옆자리를 가리키며) 잠깐 앉아봐요.
나라 : (긴장하는) 왜요?
재차 앉으라고 눈짓하는 태호. 나라, 조심스레 옆에 앉는다.
태호, 나라 어깨에 가볍게 머리를 기댄다. 흠칫, 곁눈으로 보는 나라.
태호 : (눈 감는) 10분... 아니, 딱 5분만... (졸음이 쏟아지는) 나라씨 어깨 빌릴께요.
나라, 뭐라 쏘아붙일까 싶은데... 숨소리 조용해지며 잠드는 태호.
어이없는 듯 보던 나라, 체념하고 가만히 자리를 지킨다.
나라가 꾸며놓은 화분, 그 옆에 나란히 기대앉은 태호와 나라. 태호는 꿈을 꾸고, 나라는 미소 머금는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두 사람의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