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자인회 법회 능륜스님 법문
-백만송이 장미와 애벌레의 꿈-
선정수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 다시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을 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워오라는
진실한 사랑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수 있다네
-이하 생략
《백만송이 장미》는 라트비아의 가요《마리냐가 준 소녀의 인생》이란 곡에 러시아어 가사를 붙인 노래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가수 알라 푸가초바(Alla Pugatcheva)가 불러 대중에게 알려졌다. 원제는 "A Million Of Red Roses"이다. 원곡의 가사는 보즈네쎈스키라는 사람이 썼다. 어느 무명화가가 아름다운 여배우를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마침 여배우가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에 순회공연차 오게 되었는데 자신의 심정을 장미꽃을 통해서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 화가는 집도 팔고 그림도 팔고 피까지 팔아서 100만송이의 장미를 사서 그녀가 묵고 있는 호텔 광장에 뿌려놓았다고 한다. 사랑의 결말보다 숭고한 사랑의 행위에 놀라울 따름이다. 1997년에 발표된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는 사랑을 주제로한 가사이다. 가사는 노래를 부른 심수봉 자신이 하였다.
백만송이 장미를 날마다 한 송이씩 피운다면 2739년, 매일 열 송이씩 피운다면 273년이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백만 송이의 장미를 피우는 시간을 인간의 시간으로 계산하기보다 노래 가사처럼 진실한 사랑으로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 송이 장미는 한꺼번에 피어난다고 심수봉은 노래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자기 사랑에 대한 한 치의 의심이 없을 때 진리의 꽃은 활짝 피어나는 것이다.
금강반야바라밀경의 제 14장. 상을 여윈 적멸의 첫 부분 “그때 수보리가 이 경 말씀하심을 듣고 그 뜻을 깊이 깨달아 알고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며 부처님께 사뢰었다.”라고 설하고 있다. 간절한 마음은 짭짤한 눈물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마음을 정화하고 깨달음의 혜안을 열게 하는 것이다. 수보리처럼 궁극의 깨달음을 얻을 때 우리는 참회의 눈물을 흘릴 것이다. 백만 송이의 장미는 우리가 찾고자 하는 진리의 궁극화라고 할 수 있다. 뾰족한 가시는 인간의 삶에서 받게 되는 고통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가시에 찔려 죽은 릴케처럼 가시에 찔리면 솟구치는 붉은 피의 고통을 우리는 심연에 가두고 있다. 백만 송이 장미는 불교에서 말하는 만다라의 상징적인 표현이다. 우리는 모두 먼별에서 인연 따라 업에 따라 현생에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으며 백만 송이의 장미를 꽃 피우기 위한 미션을 수행 중이다. 희노애락의 괴로움 속에서 살다보니 원래 가지고 있던 청정한 마음이 오염되어 흐려졌을 뿐 깨끗한 물과 더러운 물이 원래 한 몸이듯이 청정한 마음 또한 다르지 않다. 청정한 마음이 인간이 짓는 업에 의해 잠시 흐려졌을 뿐 우리는 본래의 청정한 마음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삶의 그릇을 반짝반짝 윤나게 닦아야 하는 것이다. 그 해답은 알고 있고, 가까운 곳에 있지만 우리는 항상 먼 곳에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하니 힘들고 지친다. 진리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혜로운 삶, 적극적인 선택의 삶을 통해 아뇩다라샴먁삼보리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노래로 시로 그림으로 글로 표현하고 말하지만 우리는 항상 먼 곳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하고 있다. 불자로서 한번쯤 읽어 볼만한 책으로 “꽃들에게 희망을” 이 있다. 트리나 폴러스 글, 그림의 동화로 첫 출간은 1972년이다. 저자인 트리나 폴러스는 국제여성운동단체 '그레일(The Grail)'의 회원이라고 한다. 동화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어른들을 위한 우화로 분류될 수 있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인 줄무늬애벌레와 노랑애벌레, 그리고 애벌레 기둥 등의 비유가 나온다. 줄거리는 대략 아래와 같다.
줄무늬애벌레가 알에서 깨어났다.
그저 먹으면서 의미 없이 몸을 불려가던 줄무늬애벌레는 더 나은 생활을 위하여 길을 떠난다. 여러 환경을 접하고, 애벌레들을 만나보고 했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 끝까지 솟아있는 커다란 애벌레 기둥을 보았다.
거기서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해 무작정 기둥에 오르기 시작한다. 꼭대기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무작정 오르지만 그곳에는 서로 밟고, 기어오르고, 서로를 누르는 경쟁뿐이다. 어느 정도 올라온 줄무늬 애벌레는 그곳에서 한 노랑애벌레를 만나게 된다. 줄무늬애벌레는 노랑애벌레도 밟고 올라가다 죄책감을 느끼고 노랑애벌fp와 꼭대기로 오르는 것을 포기한다.
서로는 땅으로 내려와 행복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줄무늬애벌레는 꼭대기에 대한 열망으로 노랑애벌레와의 행복한 삶을 포기하고 다시 애벌레기둥으로 오르기로 한다.
노랑 애벌레는 그런 줄무늬애벌래는 기다리기로 한다. 노랑애벌레는 기다리다가 늙은 애벌레를 만나 고치가 되어야만 나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그 때 깨달은 노랑애벌레는 고치를 만들어서 나비가 된다.
한편, 줄무늬애벌레는 서로를 누르며 꼭대기까지 오른다. 하지만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되고 그 때 나비가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는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서는 기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날아야하는 것을 알게 된다. 곧 그 나비가 노랑애벌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줄무늬 애벌레도 고치를 만들어서 나비가 되어 날아오른다.
“나비가 무엇인지 얘기 좀 해 주시겠어요?”
“ 그것은 네가 되어야 하는 바로 그것을 뜻하는 거란다. 그것은 아름다운 날개로 하늘을 날며 하늘과 땅을 이어주기도 하지. 그것은 꽃에서 나오는 달콤한 꿀만을 마시면서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사랑의 씨앗을 운반해 주기도 한단다.”
“아니란다. 노랑애벌레야, 누구나 나비가 될 수 있단다. 너 또한 마찬 가지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애벌레의 상태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간절히 날기를 소원해야 한다.”
“나비가 되면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게 되는데 많은 애벌레들은 그것을 깨닫고 있지 못하지. 자기 안에 나비가 될 수 있는 능력을 두고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단다. 너도 올라와서 나비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찾아보렴.”
우리는 누구나 나비가 될수 있다. 나비가 되어 날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없어 애벌레의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 스스로 애벌레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치를 찢고 나와야 하는 것이다. 갇혀진 삶에서 참다운 자유로운 삶을 찾기 위해,
나를 성찰하고 깨달음을 얻어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높이 날아오르기를 기원한다.
끝으로 윤오월을 보내면서 제사의 참된 의미를 한번 되새겨 보며 서로 마음을 나누기를 바란다. 최상의 공덕을 짓는 금강반야바라밀을 열심히 읽고 다른 이들에게도 공덕의 기쁨을 전하기 바란다.
*참고자료 namu.wiki|꽃들에게 희망을, 위키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