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7080 노래마을인가
비종교적 문화 활동 내세운 열린 공간
노래 다시 부르고 싶은 사람들이 주민
무욕(無慾)의 단계 까지는 아닐 지라도 신선했다. 시카고 7080 노래마을은 그렇게 열려 있었다. 옛노래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만 저만 하게 모여 기타 치고 노래 흥얼거리다 보니 노래가 사람을 부르고 그 사람들이 노래를 부른다.
이 모임을 리드하는 오정훈씨는 기독교에 묶여 있는 문화활동의 무대를 넓혀 보고 싶다는 뜻을 보이고 있다. 그도 교회에서 지휘를 하고 교회에서 성가를 부르는 사람이다. 그가 사회활동을 조금 하다 접한 한인들 중 비기독교인이 적지 않더란다.
내가 매주 화요일 모이는 노래마을에 간 이유는 세시봉 열기가 이곳에 어떻게 반영되어 가고 있는지 보기 위해서 였다. 거기서 다른 얘기를 들었다. 한국에서의 세시봉 열기 보다 먼저 시작한 노래모임이었고 비 기독교, 아니 종교와 무관한 문화활동을 해 보자는 취지가 5주 전 열매를 맺었다는 배경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시카고에서 시카고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펼쳐 지는 크고 작은 행사들 중 기독교를 뺀 문화행사를 꼽는다는 게 어려웠다. 한국의 가수 초청행사와 전통예술 공연이 고작이 아닐까 싶다. 문화가 교회 중심으로 생산되다 보면 에트닉 그룹으로서의 시카고 한인 문화가 기독교 문화로 특징 지워질 수도 있다. (아, 사실은 우리 문화라고 타인종에게 내보이는 모든 공연, 전시에는 그 흥성한 기독교 문화가 없다. 타인종 보기에 ‘한인 문화=기독교 문화’ 등식은 성립할 것 같지는 않다.)
기독교 문화가 큰 축인 것 만은 사실이지만 문화가 다양할 수록 발전한다는 점에서는 경계해야 하는 부분이다. 7080 노래마을이 종교적인 색채를 배제하고 정치색도 띠지 않으며 그저 순수한 마음과 노래 만을 동력으로 움직인다는 게 신선했다. 그렇다고 순수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뭔가를 주창하는 순간 또 다른 세(勢)가 만들어 지고 그 세력 안에 그들이 배제했다는 것들이 숨어들 수가 있으니까.
이런 계산을 한 적이 있다. 시카고에 한인교회가 200개 남짓이다. 쪼개지기도 하고 통합(이건 별로 들어 본 기억이 없다)하기도 할텐데 교회 수만 오르락 내리락 할 뿐 교인 수는 변함없다. 한 교회 평균 교인 수를 100명으로 잡으면 기독교인은 2만명이다. 평균 100명도 너무 많이 잡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시카고 지역 한인수는 늘 시빗거리다. 센서스를 근거로 추산하면 6만명 선이고 더 크게 잡으면 8만이다. 이 수치대로 라면 3분의 1, 또는 4분의 1이 교회에 출석한다. 그런데도 “어느 교회 나가세요”라고 묻는 사람들은 아예 모든 시카고 한인들이 교회에 나가는 걸로 믿고 있다. 성당도 있고 절도 있는데, 종교생활 자체를 하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을 텐데 그저 단정적이다. ‘어느 교회’를 묻는 이면에는 배타성과 동질성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두 속성은 항상 따라 다녀 문제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이들은 이상하게 소외된다. 교회 행사가 아닌 대부분의 모임과 각종 행사에서도 목사가, 아니면 장로가 기도로 행사를 시작한다. 모두가 기독교인인 것 처럼, 당연한 것 처럼 굳어진 순서가 됐다. 기독교인 보다 많은 비기독교인이 비주류로 밀려난다. 이로 인해 행사 후 주최측 내부에서 티격태격 시비가 붙기도 한다.
노래마을의 탄생이, 비록 이 마을을 이끄는 오정훈씨가 탈 종교화를 말했다고 해서 한인사회의 탈 기독교 현상은 아니다. 반기독교적인 운동도 물론 아니다. 그 자신이 기독교인이고 단지 문화의 다양성과 열린 문화를 지향하는 것 뿐 이니까. 기독교 중심의 일률적인 문화 보다는 보다 다양한 문화가 제공되고 수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생겼다고 보면 무방할 것이다. 기독교식의 기도로 시작하는 모임이 싫은 사람들 중 7080 노래를 좋아 하는 사람이면 이 모임에 제격이겠다.
7080 노래마을이 10명이 모이다 짧은 시간에 50명으로 늘었다지만 앞으로 백명, 2백명으로 회원이 증가할 것 같지는 않다. 그저 동호인 모임으로 명맥을 유지할 수도 있고 더 발전해 발표회도 가질 수 있다. 지금 이 노래마을에 가는 관심은 이 모임을 구성한 사람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한국의 세시봉 열기, 또는 7080의 부활과 연결되어 있다. 그 문화적 향수를 다시 느끼고 싶어 하는 사람들 앞에 때 맞춰 나타난 것일 뿐일 수도 있다.
일시적이든 한 시대상의 반영이든 노래마을을 만들고 거기서 노래하는 문화의 틀은 아름답다. 그저 노래하고 좋은 얘기, 좋은 글을 나누고 웃고 즐기는 공간이어서 좋다. 시카고 7080 노래마을에는 우선 한국서 요즘 다시 뜨는 옛노래들로 가득하다. 그 노래들을 다시 불러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주민’이 된다.
여기에는 종교가 없다. 세대의 구분, 노래마을을 꾸미는 사람들은 이것도 없었으면 한다. 잡상인은 출입금지다. 과거의 민주화 운동하는 분위기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기에는 정치도 없다. 마치 존 레넌의 <이매진> 가사 처럼 나라도 없고 종교도 없고 소유도 없다. 그런 공간, 그런 시간이 시카고 한인사회에 마련되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배타성은 빼고 동질성은 다양화하는 시도여서 좋다.<2011.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