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자로 푸는 세상만사 정호정
강남구민회관의 논어 교실에 우연히 가게 되어 첫 시간부터 즐거운 마음으로 수업을 받아온 지 벌써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바로 길 건너에 위치하고 있어 얼마 안 걸리는 거리였지만 그 당시는 무릎 수술을 한 후라 몇 번씩 쉬어 가며 강의에 참석하였다.
노대홍 선생님의 열강에 감명받았고 교실 분위기도 옛 학창 시절을 돌아보게 한 정다운 시간들이었다. 마침 강남구에 사는 김선진이 흥미를 가질 것 같아 나와 보라고 권했다. 시집을 여럿 낸 중견 시인으로 모든 일에 착실하기 그지없고 주위의 친구에게 배려하는 마음씨는 누구도 따르기 어렵다. 모임에서 권유를 받고 다른 학구파 친구들이 모두 몰려들었다. 처음에는 동창 친구들이 모이는 것이 재미 있었고 차츰 논어의 깊이에 빠져들게 되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선생님은 늘 온갖 성의를 다하여 강의를 이끌어 가신다. 시험이 없고,예습 복습이 없으며,숙제가 없는 '삼무(三無)교실'이라며 우리의 부담감을 덜어 주신다. 그래도 규칙을 어기고 살짝살짝 예습 복습하는 사람이 더러 있는 것 같다.
열띤 강의의 무게와는 달리 그저 왔다갔다 하며 금방 배운 것도 흘려버리게 되는 안타까움이 계속되고 있다. 아, 벌써 십년이라니 ! 아무래도 책거리 같은 간단한 잔치는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숙제가 아니니까 잘릴 염려는 없겠지.앞으로는 적극적으로 강의에 임하고 제대로 된 수업태도 를 가져보려 한다.
이번 여름 오년만에 유럽 2주일과 미주 6주일으 다녀왔다. 유럽에서는 현란한 문화유산을 둘러보며 큰 감명을 받았고 미국에서는 하와이에서 국제회의 참석 등 보람있는 시간을 가졌다. 긴 외국여행 중에도 줄곧 동서양의 차이를 생각하며 한문 공부의 시작을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문교실에 오면 옛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시험 때가 되면 서로 "나 공부 하나도 못했어" 했듯이 여기 서도 책도 한번 안 펴봤다는 등 엄살을 떤다. 그러나 주위에 있는 동지들은 모두 굉장한 실력가들이다. 왜 이 교실에 나오는지 의심이 가는 친구도 있다.
그동안 여러가지 일도 같이 겪었다. 교실이 없어 옮겨 다니기도 하고 행사에 맞추어 억지춘향격으로 소풍도 갔다. 빼놓을 수 없는 추억거리도 많이 생겼다. '엄마는 선비'라는 한시집, 공자의 고향인 중국 곡부로 수학여행을 간 일, 영월의 김삿갓 박물관과 단종 묘에도 가고, 수원화성 답사, 청남대와 하늘물 빛정원 방문,다산 유적지 답사, 창덕궁과 후원 방문 등 봄가을로 가는 나들이도 잊지못할 행사들이었 다. 자세한 기억이 안나면 김수철 동지가 올려놓은 카페에 들어가 보면 된다.
아무쪼록 이 교실이 더욱더 활기차게 이어가기를 기원하며, 선생님의 건안하심과 불타는 호학정신이 우리에게 더 많이 전달되기를 소망한다. 수업시간 중에 알려주신 조선시대 문인 채무일과 채수 조손간 의 한시 대구를 주고 받은 것을 나의 선친의 친구 분이 나에게 전해주며 "너의 아버지는 어릴 때 한시 를 지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지" 하셨던 생각이 나, 여기에 적어 본다.
채수의 손자 채무일이 나이 겨우 5,6세 때 할아버지 등에 업혀 눈길을 가다가 강아지의 발자국을 보고 매화를 상기하여 할아버지가 던진 구절을 듣고 되돌아 손자는 즉각 닭의 발자국을 보고 대구를 지었 다는 이야기다.
개가 달리니 매화가 떨어지네(犬走梅花落)
말이 끝나자 채무일이 대구를 지었다.
닭이 지나가니 댓잎이 이루어지네(鷄行竹葉成) -어우야담 하권에서
|
첫댓글 10년 중,고,대학 다더한세월,,,정호정동지 더욱건강하시고 아울러 노대홍선생님도, 또한 내짝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