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회진 시인의 시 "태백"
_어둠을 건너온 자작나무의 침묵속 전언
글 박철영
소싯적부터 앞동산에 오르기를 좋아했다. 그곳에 가면 아주 멀리 있는 산들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저 멀리 뿌옇던 산 너머의 산들을 언젠가는 가봐야할 곳으로 상상했다. 아직껏 미답의 산으로 남아있는 곳이 많지만 태백산도 그 중 하나로 가슴에 있었다. 마침 강회진 시인의 "사람의 깊이" 18집에 실은 시는 느낌부터 달랐다. 우선 시어에 나오는 "자작나무", "눈설레", "태백" 의 시어는 원시의 뿌옇도록 매캐한 냄새처럼 내 눈을 현란하게했다. 태초의 냄새를 도저히 색깔로는 말해 줄 수가 없다. 오직 강회진 시인만이 태백의 모습을 보았을 것이고 시로써 온전히 그려낼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
눈설레 속,
자작나무도 말이 없다
침묵이 모든 산을 얼리고 있다
어둠의 깊이 만큼
너는 차갑고
너의 창으로 들여다보는 풍경,
마침내 자작나무를 듣는다
간신히 버티는 수직의 흰 불꽃
자작나무는 어둠을 견디고 있다
초조해 마, 겨울 나무를 자르면 다홍빛 심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다른 생으로 옮겨가는 자작나무
태백에 갇혀
하염없이 자신을 울리고 있다
*고오자이 테루오
-태백- 시 전문
시인은 한폭의 화선지에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동그란 눈으로 태백의 굵직한 능선을 군데 군데 일으켜 산맥을 만들었다. 그러다 눈을 아래로 뻗어 자락을 그려넣고 허리를 느릿하게 누여 구릉을 만들었다. 마저 불어오는 바람에 가지들로 요란하게 뿌리를 흔들어 깨우고 자작나무의 나이테를 묵직한 밑둥에다 밀어 넣었다. 마지막으로 여백을 쓸더니 눈으로 소복하게 덮어주었다. 좌측 모서리에 태백 진경이라 쓰고 아래에 "강회진"의 낙관을 찍었다. 혼곤해진 땀을 닦으며 모처럼 밖으로 걸어나와 주변을 거닐고 싶어졌다. 그런데 주변의 이상한 침묵은 어둡고 깊어서 도무지 서성일 수가 없다. 그때부터 어딘가를 응시하지만 어둠에 가린 세상은 무엇하나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한참이 지난뒤 자신을 버리고나서야 자작나무의 말을 들을 수 있게 된다. "겨울나무를 자르면 다홍빛 심지/아무 소리도 내지않"던 그 밤의 침묵은 자작나무로부터 왔음을 알 수 있다. 뽀얗던 수직의 자작나무들이 야멸차게 잘려나간 것을 본 것이다. 시인은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오지인 태백을 찾아갔을 것이다. 그곳에서 안타깝게도 자작나무의 잘린 단면에서 솟구친 선홍빛 슬픔을 보게된다. 그 모습은 곧 자신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세상에서 "강회진" 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며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간신히 버티는 수직의 흰 불꽃/자작나무"에게 시인이 해줄 수 있는 말은 초조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겨우 들릴 정도의 작은 목소리 뿐이어서 그 말은 너무도 미약했다. 하지만 속 뜻은 세상에 쉽게 굴복하지않겠다는 대단한 결의였음을 알아야한다. 언젠가 닥쳐온 불안에 몸서리치면서도 자신에게 수없이 해 주었던 말이었기에 그랬다. "태백에 갇혀/하염없이 자신을 울"리는 눈물이었다고 고백하지만 그 흘린 눈물로 더 강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눈물은 심약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강한 사람에게 준 신의 축복임을 늦었지만 깨닫게 된다. 그래서일까? 시인의 눈빛이 유독 맑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