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이른바 '
돈봉투 파문'으로 시끄럽다. 그 가운데 주류 언론이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지만, 민주
통합당에서는 '조용한 혁명'이 진행 중이다. 국민참여선거인단 포함해 총 80만 명의 유권자를 앞에 둔 초유의 상황에서, 9명의
주자가 민주통합당 대표 자리를 두고 뛰고 있다. 그 가운데 민주통합당의 '불모지'
대구에 출사표를 던진 3선의 김부겸
의원도 후보 중 하나다.
지역주의 타파를 내걸었던 90년대 말 '통추(국민통합추진회의)' 막내로 노무현, 제정구, 김원기 등과 함께 정치를 했던 김부겸이 자신의 고향 대구로 내려간다는 것은, 당연할 것 같지만 전혀 당연하지 않은 일이다. 우리 사회 정치
지형이 그렇게 만들었다. 한나라당에도 그런 인물이 있다. 박근혜 위원장의 신뢰를 받고 있는 이정현 의원이다. 그는 광주 서구을에 도전한다. 아직 한나라당을 "광주 학살자의 후예들이 모인 당"으로
생각하는 광주 한복판, 한나라당의 불모지에 도전장을 냈다.
두 사람의 도전이 수십년 고착된 '한국형 지역주의'를 단박에 깰 수 있다고 보는 사람은 없다. 다만, 한명, 두명의 노력이 쌓이면 작은 '변화'가 생길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고성국의 정치in>은 민주통합당 지도부에 도전하면서 대구 출마를 선언한 김부겸, 한나라당 박근혜 위원장의 '복심'으로 광주 출마를 선언한 이정현, 두
인사를
릴레이로
인터뷰할 예정이다. 첫 주자로 민주통합당 경선에 전념하고 있는 김부겸 의원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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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통합당 김부겸 의원 ⓒ프레시안(최형락) |
"국민참여선거인단 60만 넘어…정치인들 두려워해야""김부겸 의원은 6명을 뽑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안정권에 들어간 것 같은데, 어떻게 보나?"
"안정권이라는 게, 모르죠. (
웃음) 이 정도 되면 한 쪽에서 왕창
밀면 달라진다. 지금 (후보) 하나 하나 다 강점이 있다. 박용진 후보도 진보 세력들이 '저 사람 죽여서는 안 된다' 하면서 도와주더라. 이학영 후보는 시민 사회
진영에서 도와준다. 이인영 후보도 강점이 있고, 이강래 후보는 또
조직이 있다. 모르는 것이다."
"선거인단이 총 80만 명 정도다. 이 정도 될 줄 예상 못했나?"
"그렇다. 지금
여론조사는 인지도 조사인데, (결과는) 알 수 없다고 본다."
"이런 열기, 열기라고 표현하나?"
"열기라기보다 세상에 대한 분노 폭발이다. 지금까지는 그런 계기가 없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밖에 못해' 하고
화가 났는데, (정치에 참여할) 구실이 생긴 것이다. (유권자들이) '정치권을 한번 혼내보자' 하는 것이다."
"정치권이 다 떨고 있는 것인가?"
"어제 민주당에서 민주통합당으로
화장한 지 며칠 지났다고 갑자기 매력이 생겨서 70만 명 가까이 온다? 그렇지 않다. 한 때는
안철수에 대한 열광으로 갔다가
서울시장 선거 때는 박원순에 대한 지지로 갔다가, 정치적
이벤트가
생기니까 막 들어오는 것이다. 이런 것을 (정치인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표현해도 될까?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의 '글로벌 앵거(분노)'의 한국판인가?""그런 형태로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앵거'라고 하는데 우리가 분노의 대상이라기보다, (유권자들의) 분노의 표출 방법이다. 사회로 보면
건강한 것이다. 우리가 배운
정치학, 정당론에는 이런 게 없다. 실질적으로 새로운 정치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의 '돈봉투 발언'으로 시끄러운데 얼마 전 토론회에 나갔는데 누가 묻더라. 나는 '내가 아는 한 없다. 앞으로도 유권자 숫자가 확 늘면 불가능하다'고 했다."
"굉장히 의미심장한 변화의 시작이다."
"시민사회 쪽에서 주로 주동을 했었다. 끝까지 (국민선거인단 모집 방식) 이것을 관철시켰다. 당내에는 반발이 많았었다. 결국에는 타협은 됐는데, 그렇게 보면 그 분들이 우리 (과거 민주당)보다 훨씬 대중의 마음을 잘 읽었다고 본다."
"정치권 밖에서 정치권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몫이 있는 것이다. 저는 이번 전대 과정에서도 그 사람들의 대표성이 표현됐으면 좋겠다."
"(시민통합당 출신들도) 고민하고 있다."
"한나라당도 비대위원 11명 중에 6명이 외부인사다. 외부 인사의 힘을 빌어 수술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중으로부터 외부 자극이 왔고, 그 쪽은 대중은 아니지만 상징적인 사람들이 와서
정수리를 때리고 있는 상황 같다."
"민주통합당 입장에서는 당도 나름 괜찮게 통합을 했고, 한국노총이 통합된 정당에 직접 참여하는 등 새로운 일들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노동 세력이 정치권에
파견을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주체로 정당에 들어온 것은 우리 정치사의 큰 변화다."
"또 70만 가까이 대중 선거인단이 모인 것도 최초고, 모바일 투표도 최초다. 그런 엄청난 사건을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문이나 TV 뉴스에는 밀린다. 어떻게 봐야 하나?"
"SNS 상에서 많이 화제가 되기는 하는데, 기존 제도 언론이 너무 냉대하는 것 같다. 그 점이 섭섭하다. 진보든 보수든
모두가 닥친 위기를 자기 나름대로 몸부림을 치고
지혜를 모아
극복해 가고 있는데, 흥미는 저 쪽으로 간다. 누가 돈을 받았다고 하더라, 아니라더라. 이게 무슨 '선데이서울' 수준인가. 우리 보도를 통해 저쪽에 자극을 주고, 저쪽 보도를 통해 우리 가 자극을 받고 그런 방식으로 가면 좋을 것 같다."
"20대, 30대, 이제 위로만 받고 살수 없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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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층의 분노가 눌리고 있다가 터져 나오니까 안철수 교수와 같은, 정치권에서 보면 '무명'에 가까운 인물인데도 (유권자들이) 몰입을 하는 것이다."ⓒ프레시안(최형락) |
"서로가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민주당이 20대 비례대표를 '슈스케(슈퍼스타케이)' 방식으로 뽑는다고 하니까 한나라당은 지역구에 청년과 여성을 내려 보내겠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경쟁이 되면 더 개혁적인 인식을 주는 쪽이 이기기 때문에 더욱 개혁적인 안들이 나오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들도 있다."
"그게 어느 정도 빨리 착근될 것인지가 문제지만, 일단 상자는 열린 것이다."
"최근 20대 청년들의 국회 진출 등을 두고 논쟁을 한 적이 있는데, 생각해보니까 의미 없는 논쟁인 것 같다."
"넌센스죠. (선진국에는) 19살, 20살 국회의원들이 나오는데...우리 사회가 다른 사회와 달라서 유교적 질서가 있다. 무시할 수는 없는데, 문제는 기존 정치권의 기성 세대가 20대, 30대와 소통하고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고민을 해결할 능력도 없다는 것 아닌가. 우리도 집에 가면 자식이 있지만 그 친구들을 보면, 대학을 졸업했는데 인생을 설계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학벌의) '마이너리티'가 아니라 '메이저리티'가 그렇다. 그러니 기가 막힌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한 세대가 훌쩍 쓸려 내려간다. 그런 세대의 분노에 대해 사회가 무감각했던 것이다. 지금 정당들이 겪고 있는 혼란도, 그것(젊은 층의 분노)이 눌리고 있다가 터져 나오니까 안철수 교수와 같은, 정치권에서 보면 '무명'에 가까운 인물인데도 (유권자들이) 몰입을 하는 것이다."
"안철수, 김난도 교수처럼 위로, 소통, 공감으로 청년들의 지지와 존경 사랑을 받는데, 이제는 '더 이상 위로하지 말고 대안을 내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올 때인 것 같다."
"그렇다. 처음에는 내가 외롭고 서럽우니 벗이 돼 주면 고맙지만, 그래서? 그 다음은? 내일 아침 나는 뭘 하지? 이렇게 된다. 늘 위로만 받고 살 수는 없으니까. 개인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심리적인 상태라면 어떤가. 요즘 친구들은 우리 세대보다 더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 것 아닌가. 우리 사회가 그들을 어떤 '스펙'의 칸막이에 집어넣어 버렸다. 이제는 그들이 '더 이상 밀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한 데까지 온 것 아닌가. 막말로 (정치권은) '강요된 변화'를 맞고 있다고 본다."
"대구 출마, 지역주의 벽 맞서기 위해 정면 돌파 하겠다"
"대구 출마를 선언했는데, 지역구는 결정이 안 됐나?"
"정초에 내려가서 이제는 출마 희망자들과 지역 위원장들을 모셔 놓고 요구를 했다. 내가 '서울에서 내려왔으니 비켜' 하는 것은 예의도 아니고 해서 제가 지역구를 결정해야 하니 같이 의논하자고 했다. 15일 전당대회 끝나면 나도 지역구를 결정하고 1월 말이면 이사를 해야 한다. 이제는 솔직히 의견을 나눠달라. 출마 의사자들, 그리고 여러 조건을 봐서 두 세 개 지역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조언을 구하겠다고 했다."
"대구의 출마 희망자, 야권의 지도자들과 의논을 할 것 같은데, 기왕 갈 것이라면 상징성 있는 곳에 가야 하지 않나."
"그렇다. 거기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다거나 표 밭이 좋다고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서구냐, 중남구냐, 수성구냐, 하는 문제일 것 같다."
"그렇다. 도심에서 전파력이 확장될 곳에 가야 할 것 같고, 누가 보더라도 정치적 이슈를 던지면 퍼져 나갈 수 있는 그런 지역이어야 할 것 같다. 석패율 제도 도입을 여야가 논의하고 있는데 석패율 제도가 도입되도 나는 등록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대구에서 20년, 30년 고생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치열한 성적을 거둔 사람에게 영광이 돌아가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다만 내가 (대구에) 양질의 '선수'들을 스카웃해 올 수 있도록 해달라. (전당대회에서) 김부겸에게 계급장 하나 달아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당을 대표할 권위가 있으면 좋은 사람들 모셔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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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 사회의 기성세대 자신들이 봐도 점점 대한민국 전체의 정치 지형에서 외톨이가 돼 같다는 것을 느끼지 않겠나. 그것을 호소할 작정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총선에서 당선될 생각이 없나?"
"(당선될 생각이 없는) 그런 선거를 왜 치르나.(웃음)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4년 전에 내려왔을 때 대구 사람들이 비웃었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 실세였다고? 니 뭔데' 하는 게 있었다는 거다. 그런데 유 대표가 (대구 수성을에 출마해) 32% 득표를 했다. 많은 사람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런데 중간에 가 버렸다. 저도 (대구 출마를 선언한 뒤에) '너도 (유시민과) 마찬가지냐' 하는 말들이 있다. 대신 다행이 지금은 비꼬지는 않더라. 이제는 '대구에서도 경쟁이 되는 선거가 나오겠네' 하는 사람도 있다. 대구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있다. 젊은이들의 분노는 서울이나 대구나 다르지 않다. 그 다음에 대구 사회의 기성세대 자신들이 봐도 점점 대한민국 전체의 정치 지형에서 외톨이가 돼 같다는 것을 느끼지 않겠나. 그것을 호소할 작정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어느 정도 마음을 열어주면 그 다음부터 정치적 이슈를 가지고 치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처음에는 건방 떨면 싫어한다."
"고등학교를 어디에서 나왔나?"
"대구중학교와 경북고를 나왔다."
"그리고 서울대로 갔으니 TK 주류인가?"
"내가 줄만 잘 섰으면 고 박사와 안 논다니까.(웃음) 제가 (정치적 선택으로) 제 아버지 출세길도 막고 그랬지만...이제는 그런 저에 대해 (대구 사람들이) '괄목상대' 라는 식의 판단은 해 주는 것이다. 즉 '네 초식이 별 볼일 없는 줄 알지만 강호에서 몇 년 내공을 닦았다니 한번 보자' 하는 정도까지는 될 것 같다."
"그 점이 그 지역에서 김 의원이 갖는 경쟁력인 것 같다."
"왜냐 하면 다른 우리 지역위원장들에게는 그런 커리어가 없으니까. 그 사람들이 아예 제 값을 못 받은 것이다. 부당하죠. 차별이다. 제가 50대 중반이니까, 제 다음 세대 정도는 다 평준화 세대다. 유시민 대표가 평준화 1세대다. 그만큼 세상이 바뀐 것인데, 아직도 오랜, 일종의 '토호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다. 이제는 호소하려 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대구 경북의 어느 지역이든 70대 한나라당 현역 의원과 붙으면 승산이 있다고 볼 수 있을텐데?"
"한나라당도 바보가 아닌들 그렇게 (고령 의원들 공천을) 할 리가 없을 것이다. (웃음) 정치적 나이로 붙는 것은 안 된다. 지역주의라는 거대한 벽에 맞서려면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대구 사람들) 당신들이 나를 버리는 이유가, 여전히 당신들이 한나라당을 선택하는 이유가 그만큼 타당하고 명분이 있는 것이냐, 하는 질문을 던져서 돌파해야 변화가 온다. 대구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정면으로 던져서 붙어 봐라 하는 사람도 있다."
"정면 돌파를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게 해야 대구의 다른 출마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나."
"부산에 출마하는 분들은 있지만, 대구에 야당 유력 인사가 출마한다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부산은 노무현의 존재, 김영삼의 존재가 있다. 야당 지도자 김영삼이 뿌려놓은 밭, 노무현이라는 정치사의 돌출된 위인이 존재했던 곳, 이런 것들이 있다. 6.25 이후로 도시 성격 자체가 부산은 '오픈'된 곳이고 개방된 곳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자기중심의 사회 질서가 무너지지 않았던 대구와 부산은 조금 다르다."
"최근에 '더 이상 한나라당 출신으로 생각하지 말아달라'는 내용의 '눈물의 편지'도 의원들에게 보낸 적이 있다. 한나라당 꼬리표는 이제 뗀 것인가?"
"대구까지 간다는데, 이제 꼬리표 가지고 시비는 안 걸겠죠.(웃음) 눈물의 편지, 그리고 내가 쓴 <나는 민주당이다>라는 눈물의 책, 소위 '김부겸 정치'에 있어서 자기 논리의 완결성을 위해 내 스스로 뭔가 꼭지를 따야 하는 것 아닐까. 과거 김원기, 노무현, 제정구와 함께 국민통합추진회의를 만들어서 길거리 정치를 몇 년 했다. '통추' 막내로 지냈던 적이 있고, 앞으로 내 정치가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통추를 하면서) 내가 첫 번째 과제로 삼았었던 '탈지역주의'에 대한 도전은 해봐야죠. 앞으로 이 새로운 상상력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하면 정치 그만 하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