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영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우리들의 인사법法 / 김경순
우리들의 인사법法 / 김경순
1.
지문이 세면대 밸브에 쌓여간다
암묵적인 약속처럼
조심스럽게 잡고 올렸다 내리며 안녕,
밸브를 감싸 쥐고 그 위에 나의 지문을 포갠다, 새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매머드를 화석으로 만나듯
비 젖은 발자국에 서로의 무게로 깊이를 더하듯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매일 조우하게 되는 것일까.
만나지 않으려 이렇게 만나는 것일까.
안녕, 안녕,
헤어질 때와 같이.
2.
당신이 지나간 보도블록을 밟았을 때
내가 사려던 책을 당신이 집어 들었을 때
한 소리에 동시에 고개를 돌렸을 때
지구 반대편에 있는 당신과 나도…
춥다는 핑계로 귀 접어 주머니에 넣고
입이 벌어져 있으면 자꾸만 우리는 말이 쏟아질 것 같아요,
아침마다 지우개로 입술을 지우던 나
당신과 나의 선들이 교차하던 순간
내가 웃었기에 당신은 울었다.
6. 계속 되는, 점 / 김경순
1.
가족이 깰까 달빛도 사뿐히 걷는 밤
어둠과 맞닿은 자리에서 더욱 짙어지는 까만 점
밤은 그녀의 등과 마주해 블랙홀이 되었다
별 부스러기 가득한 두 평 우주를 호출하는 등
2.
태양은 햇빛을 저장하기 위해
치타의 몸에 까만 점을 무수히 찍었다지
그 모습이 마치 송송 뚫린 구멍 같아,
바람이 자꾸만 손가락을 넣어 보는 탓에
치타가 뛸 때마다 쉭-쉭-
휘파람 소리 난다지
줄넘기 하듯 그 구멍을 가볍게 통과하면
치타처럼 포효하며 달려볼 수 있을까.
3.
하늘이 바리케이드를 칩니다.
앞뒤가 없는 끝이 환한 구멍
그 안에 들어서면 우리는,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7. 빛이 수직으로 서는 이유 / 김경순
종종 하늘을 향해 손전등을 비추었다
한 치 어긋남 없이 주욱 뻗어나가는 빛
내가 쏘아올린 빛의 끝을 잡아당기고 있다
밤새 팽팽한 빛의 기둥에 제가 가진 가장 빛나는 것을 심어주던 하늘은
다음날이면 또 나를 보러 한숨에 일억 오천만 키로미터를 달려왔다
봉우리며 바위들이 위를 향해 열심히 날을 세우듯
바람이 닦고 지나간 자리를 지키는 나뭇가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