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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트로
한 며칠 뭐에 홀린 사람처럼 살고 있습니다. 배추를 사다가 삼겹살 쌈을
먹으면서 배추는 까면 깔수록 상태가 좋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닌 밤
중에 면도를 하면서 밝은 촉수에 비친 비주얼이 오랜만에 맘에 들었습니다.
이유가 뭘까 하며 면도기를 문지르자 하루사이에 생긴 흰 수염들이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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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서 미소가 지어집니다. 제가 50대에 들어와 대머리가 까지기 시작
했는데 대충 모자(100개)로 커버했고 내가 제 머리통 꼭대기 볼 일이 없어
느끼지 못한 것 같아요. 잔나비랑 산행 갔다가 찍은 사진6 장중에 1장이
정수리를 적나라하게 찍었고 저는 충격을 받아 그 길로 머리를 밀어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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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밀고서 하루면 손님 중 한명은 그냥 나가버립니다. 잔나비가 생일
선물로 AHC아이 크림을 한 팩 보내왔어요. 주저리주저리 효능을 말하던데
제 보기엔 콜라겐 T4 성분이 주 성분이니까 안티 에이징 효과가 있겠지요.
혹시 압니까? 양파 같은 녀석이 가져다준 화장품이니까 정말 피부 텐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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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나고 머리털도 날지 말입니다. 예, 효과를 보면 대박이고 머리털이 안
난다해도 나를 기쁘게 해주려는 녀석의 맘 씀씀이가 고마울 따름입니다.
비주얼이든 맨 탈이든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내가 날마다
죽고 날마다 산다고’ 한 것 같습니다. 날마다 면도를 해야 배추 속처럼 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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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처럼 들립니다. 최근 도울 의 ‘마가복음’에 이어 ‘도마복음’을 읽고 충격의
도가니탕입니다. 도울 선생님의 강의를 200편 쯤 들었는데 마가복음에서는
양식비평을 배웠다면 도마복음은 내 신학전체를 뒤흔드는 엄청난 임펙트로
내게 들이대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양파를 까야 할지 살짝 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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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긴하지만 이 나이에 나를 흥분시키는 일이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도마복음 텍스트를 구조분석 하다가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어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에 관련한 패러다임인데 죽으면 가는 나라 말고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하나님의 통치의 실현’으로 설명하고 있습디다.
그것도 MECHANISM을 디테일하게 다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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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 (Gospel of Thomas) 1-10절
1. 원문 구조 분석
그분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1a)
"이 구절들을(1b)
온전히 이해하는 자들은(1c)
죽음을 맛보지 않으리라"(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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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셨다(2a)
탐구하는 자들은(2b)
발견할 때까지 멈추지 말라(2c)
발견하면 불안해질 것이며(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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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해질 때에 그들은 경탄할 것이며(2e)
모든 것 위에서 다스리게 되리라(2f)
다스린 후에 그들은 안식하리라."(2g)
예수께서 말씀하셨다(3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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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지도자가 '보라 천국이 하늘에 있다 하면(3b)
공중의 새가 너를 앞설 것이요(3c)
천국이 바다에 있다' 하면(3d)
물고기가 너를 앞설 것이다(3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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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천국은(3f)
너희 안에 있고 너희의 밖에 있느니라(3g)
네가 네 자신을 알 때(3h)
너는 알려지게 되고(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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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네가 살아 계신 아버지의 자녀임을 이해할 것이다(3j)
그러나 네가 네 자신을 모른다면(3k)
너는 빈곤 중에 살게 되고(3l)
네 자신이 곧 빈곤(Poverty)이니라."(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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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셨다(4a)
늙은이는(4b)
7일 된 어린아이에게(4c)
삶(place of life, and that person will live)에 대해(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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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기를 주저하지 않는다(4e)
왜냐하면, 먼저 된 자 중 많은 이가 나중 되겠고(4f)
홀로 되리라 (will become a single one) "(4g)
예수께서 말씀하셨다(5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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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얼굴 앞에 있는 것을 알라(5b)
그러면 너에게서 감추어진 것들도 들어 나리라(5b)
왜냐하면 밝혀지지 않을 숨김이 없고(5c)
묻힌 것 중 다시 들림을 받지 않을 것이 없나니라(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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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제자들이 물어 여쭈었다(6a)
저희가 금식하기를 바라십니까?(6b)
저희는 어떻게 기도해야만 합니까?(6c)
적선은 베풀어야 합니까?(6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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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음식들을 가려먹어야 하는지요?"(6e)
예수께서 말씀하셨다(7a)
거짓말하지 말며(7b)
너희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말라(7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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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천국앞 에 들어나 있기 때문임이라(7d)
결국에는, 밝혀지지 않을 숨김이 없겠고(7e)
벗겨지지 않을 포장함이 없느니라."(7f)
예수께서 말씀하셨다(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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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먹히는 사자의 운이 좋음은(7h)
그가 사람이 됨이라(7i)
허나 사자에게 먹히는 사람의 더러움(foul)이여(7j)
그 사자가 그래도 사람이 됨이라."(7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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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셨다(8a)
바다에 그물을 던져(8b)
작은 물고기들을 가득 건져 올린 어부와 같다고 할까(8c)
작은 물고기들 중(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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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어부는 한 커다란 고기를 발견 하니(8e)
작은 고기들은 다 놓아주고(8f)
아주 쉽게 큰 고기를 선택하느니라(8g)
여기 있는 누구든 두 귀 달린 자는 새겨듣는 것이 좋으리라(8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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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셨다(9a)
보라 파종하는 자가(9b)
씨앗을 듬뿍 들고 나가 흩뿌리니(9c)
혹은 길에 떨어져 (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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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와서 먹어버리느니라(9e)
혹은 바위에 떨어져(9f)
뿌리를 내리지 못해 낟알을 내지 못하고(9g)
혹은 가시에 떨어져(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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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리며 벌레의 먹이가 되니라(9i)
혹은 좋은 땅에 떨어져(9j)
좋은 곡식을 맺으며(9k)
60배 120배의 결실을 맺느니라(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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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말씀하셨다(10a)
내가 세상에 불을 던졌으니(10b)
보라. 내가 그 불이 타오를 때까지 지키겠노라."(10c)
2)해석
<<2절의 "고통스러움"이라는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천국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들이 진리나 진실이 아니었음을 깨달음으로써 느끼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2절에서 예수가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성경의
구약이 된 유대교의 당시 경전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당시 역사적 인간
예수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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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바탕 위에서 예수는 2절을 통하여 두 가지를 전달하고 있다.
첫째, 하늘나라는 죽음 후에 맞게 되는 천국의 개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면에서 발견해야 하는 것' 임을 암시하고 있다. 둘째, 예수가 도마복음
전체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탐구의 결과물로써의 최종 단계를 '
내가 (나 자신을 다스리는) 나의 왕이 되는 것'이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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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절은 51절과 113절로 연결된다. 3절에 등장하는 "나라" "천국"을 영문 도마
복음에서는 이 부분을 "kingdom"으로 표기되고 있다. kingdom을 한글로
번역하면 "나라"이외에 "왕국" 혹은 "세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기독교는
이를 천국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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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후에 등장하는 구절들을 통하여 3절에서의 "나라" 혹은 "왕국"은
"깨달음(득도, 열반, 해탈)을 통해서만 인지할 수 있는 영혼(정신)의 영역"을
의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3절을 통하여 실제로 예수가 말했던
나라(왕국, 천국)는 외형적, 장소적 차원의 왕국이 아니라 내면적(정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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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으로서의 영혼(빛)의 영역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10절, 11절, 50, 57
절과 관련 있음).또한 예수가 도마복음에서 강조한 천국이나 나라는 이를테면
현대 기독교의 교리나 다름없이 되어버린 천국 론 즉, '교회에 자신이 가진
것들을 갖다 바침으로써 그 대가로 얻게 될 것으로 기대하게 되는 미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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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입장티켓'과 같은 성격의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이 부분은 109절
과도 많은 관련이 있다)그리고 3절의 '나라' '천국'을 더 확장하면 29절의
"영혼이 몸으로 인하여 존재케 되는 상태"로 표현할 수도 있다. 또한 이
부분은 뒤에 81, 83절에서도 연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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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인간 예수는 유대인들이 믿는 장소적 개념의 천국을 부정했다.
(예수는 당시 유대인들이 따르던 율법에 저항하는 새로운 천국운동을 전개
하였다.)역사적으로는 당시 갈릴리와 유다 지방을 로마제국이 지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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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 전체적으로 3절은 도마복음의 근간, 뿌리, 규범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중요한 구절이다. 추가적으로 나는 개인적으로 3절의 "살아 계신 아버지"
이란 문구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은 성경에 자주 등장
하는 하나님과는 구별해야 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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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가는 예수가 당시 유대인의 율법에 저항하고 있었으며, 당시 예수가
천국운동을 전개할 때 종교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그 이유가
잘 드러난다. 예수가 도마복음 전체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도반들에게 현실적으로, 육체적으로 살아 있는 상태에서 끊임없는 탐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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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함으로써 자신을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상태, 즉 해탈과 같은 정신적인
깨우침을 얻는 데 있다. 또한 3절에 등장하는 살아 계신 아버지는 50절에
등장하는 "빛"이라 표현할 수도 있다. 그 빛은 내면에 존재하는 영혼의 빛
그리고 외면에 존재하는 만물의 형체를 드러나게 하며, 그 생명을 유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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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빛을 동시에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줄에서 예수는 자신의 내면
과 밖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천국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을 매우
안타까운 심정으로 빈곤 중에 살아가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5절은 천국
운동을 하는 도반(제자)들에게 가해질 박해의 공포에 당당히 맞서도록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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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하여 도반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또한 5절은 '나라(천국)은 죽음
후에 가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안과 밖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진리는
숨겨지지 않고 결국 드러나게 된다는 필연성을 선포하는 맥락에서 써진
구절이다. 나라가 사람들의 안과 밖에 이미 와 있으나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 도마복음 3절에 이미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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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지의 핵심
논지의 핵심(하나님 나라 현재성)은 '부활'과 직결 되는데 우리가 아는 대로
마태는 부활의 역사성을 증거 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직접 보지 않았어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근데 누가 모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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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사적 부활이 무슨 의미냐며 오래 동안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냥 다시 살아난 것(Live again)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로 일으키심을
받았다(He was raised up)는 리차드 개핀의 ‘부활과 구속‘을 읽고 난리가 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래서 제가 정립한 부활 신학은 창조의 완성이며,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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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성취, 새 창조, 중생, 통치의 실현으로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역사적
부활은 약속을 지키실 것에 대한 보증이고 불의가 극복되고 정의가 실현되기에
하나님의 온전한 통치가 시작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때 그 온전한 통치의
수단으로 성령의 역할이 말씀의 비중만큼이나 크다는 뜻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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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성령의 역할을 인격적인 것에만 한정시키지 말고 비인격적인
(물리적인, 파워풀한)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단은 ‘묶인 개’가
아니란 말일까? 한 번 구원이 영원하지 않고 매일매일 새로워지는 것이라면
내가 매일매일 새로워져야 하는데 말씀을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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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실존을 인정하기 때문에 성령의 절실한 도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여기
까지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것(성령)이 물리적인 힘을 포함한다니
이해가 되지 않지만 흥미진진합니다. 다만 성령께서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
시킨다는 보다 구체적인 증거가 필요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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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오순절 계통의 성령 론 자들의 진위가 실망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격적인 역할로의 성령 론 자들도 몰라서 그렇지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 되는데 실망스럽게 할 수 있다는 여지도 함께 남겨놓고서.
예수님의 부활이 이 세상에는 아무런 타격을 주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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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은 사단이 자기 어리석음을 깨닫는 데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한 후에 제자들에게 인생 끝까지 형통하고 무탈한 삶이 열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더 고난을 받았고 수욕 당했으며, 결국 예수님
보다 더한 고문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다가 순교 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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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부활을 이 세상에서 맛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부활
때문에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 상황
이나 처지가 바뀌는 것이 아닌 나의 세계관이 바뀝니다. 우리는 완전히
가치관을 u턴 하지 않았습니다. 몸을 입고 산다는 사실도 변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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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믿었다고 공중 부양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갑자기 독심술을 갖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시간이동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연봉, 사업번창, 건강
회복 다 그대로 입니다. 다만 내가 바뀌고 내 세계관이 바뀔 뿐입니다.
더는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없다고 하는 이 세상의 말을 믿지 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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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순교할 수 있지요. 생명은 결코 죽음에 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
사건이 부활입니다. 부활의 영성으로 산다는 것은 부활의 몸을 나눠주며
산다는 뜻, 말씀이 필요한 사람에게 말씀을, 양식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양식을,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그것을 나눠주는 것, 그래서
그들이 부활을 맛보게 하는 일 그것이 부활을 사는 방식일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이고요. 부활의 영성은 쉼과 사랑의 영성이니까요. 선교는
부활을 맛보게 하는 일이 되겠지요.
2023.6.7.WED.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