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비산(都飛山) 부석사(浮石寺)
충남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
창건 및 연혁
창건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절에 전하는 이야기다. 통일신라시대 문무왕 17년(677)에 의상스님(625~702)이 창건하였다. 의상스님이 이 절을 창건할 때 삿된 무리가 몇 번이나 방해하자 선묘낭자의 화신(化身)인 용(龍)이 큰 바위를 공중에 띄워 떨어뜨릴 기세를 보였다. 삿된 무리는 도망하고, 의상스님은 무사히 절을 지어 불법을 펼칠 수 있었다. 절을 창건한 뒤 선묘낭자의 호법을 기념하기 위하여 부석사라 하였다.
이 설화는 경상북도 영주의 부석사에 얽힌 설화와 비슷하다. 서산 부석사의 뜬 돌은 저 멀리 바닷가 간척지에 있다. 간척되기 전에는 검은 돌들이 모인 섬으로서 바다에 뜬 듯이 보였다고 한다. 부석섬이라 하였다. 돌들이 검은색이어서 ‘검은여’다. 이 절이 있는 산 이름을 섬이 날았다는 뜻에서 도비산이라 한다.
둘째는 고려 말 때 이야기다. 고려 말의 충신 유금헌(柳琴軒)이 조선이 개국하자 망국의 한을 품고 물러나 이곳에다 별당을 지어 독서삼매로써 소일하였다. 그가 죽자 적감스님이 별당을 사찰로 변조하였고 사찰명도 바다 가운데 있는 바위섬이 마치 뜬 것같이 보이므로 부석사라 하였다.
그런데 최근 발굴 조사에 따르면, 늦어도 고려 전기에는 창건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2023년 12월 14일 서산시청 중회의실에서 ‘서산 부석사’의 고고학적 학술자료 확보 및 역사성 회복을 위한 문화재 조사의 최종보고회를 개최했다. 출토 유물과 발굴 유구 등을 통해 서산 부석사가 늦어도 고려시대 전기에는 창건된 것이 확인됐으며, 고려 말경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제작된 1330년경에 대규모 공사를 통해 부석사의 사세가 확장되고 지금의 사찰 형태가 이어졌다고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수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한 ‘부석사 동종’(1669년)과 ‘부석사 극락전’ 내의 불화(1924년)를 근거로 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 변함없이 사찰의 역사가 이어져 왔음을 뒷받침했다.
창건 이후의 연혁은 자세히 전하지는 않는다. 조선 초기에 무학스님(1327~1405)이 중건하였고 근대에는 만공스님(1871~1946)이 주석하면서 선풍을 떨쳤다.
성보문화재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 안양루, 심검당(尋劍堂),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다.
부석사 범종은 현재 수덕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699년 부석사에서 조성되었다.
*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상
근래 일본 쓰시마 간논지(觀音寺)에 있던 금동관음보살상은 1330년(충혜왕 17) 부석사에서 조성하여 봉안하였는데, 고려 말에 왜구가 약탈한 듯하다. 그런데 2012년 10월 문화재 절도단이 금동관음보살좌상을 훔쳐 국내로 반입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부석사는 2016년 불상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정부를 상대로 불상을 인도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지방법원은 부석사에 불상을 인도할 것을 명령하였다. 2심 고등법원은 지난해 2월 간논지가 20년 넘게 공공연히 불상을 소유해 왔다며 1심과 반대로 인도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원고 측이 불복해 상고했다. 대법원은 2023년 10월 26일 “일본 민법상 간논지가 법인격을 얻은 지 20년이 지난 1973년 시점에 불상의 소유권을 취득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원고 측의 소를 기각하고 “불상의 소유권은 간논지에 있다,”고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