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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바람에 띄운 그리움 원문보기 글쓴이: .수정
그옛날 우리가 살던 추억어린 사진 1959년, 4월 남대문로
1959년 3월3일, 풍문여자중고등학교의 졸업식이
어린이들의 갈증을 해소하는 군것질을 팔고있다.
1959년 4월 6일, 유치원생들과 학부모
1959년 4월12일, 창경원 벚꽃놀이
1959년 4월12일, 창경원 벚꽃놀이를 즐기기 위해 입장을 기다리는 시민들
1959년 4월14일, 비가 내리는 광화문의 한 가게 앞에 비닐우산을 늘어놓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1959년 4월14일, 우량아선발대회에서 한 심사위원이 참가한 어린이들의 앉은 키와 몸무게 등을 재고 있다.
1959년 4월18일, 덕수궁에 놀러 나온 여자 어린이들
1959년 4월15일, 급수 리어커가 오면 물동이로 길어나르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1959년 4월15일, 수돗물 사정이 좋지않던 시절 급수 리어커가 오면 물동이로 길어나르기 위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1959년 4월, 남대문로
1959년 4월, 소공동 환구단(원구단) 주변 모습. 환구단 뒤로 반도호텔이 보인다. 환구단은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단을 가리킨다.
1959년 4월의 돈암동. 낮은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1959년 4월, 을지로 입구 도로에는 버스와 전차가 다니고 있다.
1908년 8월, 일제가 설립한 경성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동양척식 주식회사 지금은 외환은행 명동본점 건물이 들어서 있다.
1959년 4월, 종로거리
1959년 8월, 미아리 동네 모습 대체로 낮은 기와집 들이 모여 있다.
1959년, 광화문 사거리 주변 모습 사진 왼쪽에는 서울 시민회관이 건축중이고, 뒤쪽 가운데에 중앙청(구 조선총독부)의 모습이 보인다.
1959년, 남대문로 주변 모습 서양식 건물들이 많이 보인다.
1959년, 명동거리 모습. 명동거리는 50년대에도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1959년, 서울 중심가 건물 앞에 주차된 다양한 모습의 차량들
1959년, 기존의 목조건물을 헐고 준공되어지고 있는 창성동 별관 정부청사 신축지 현장
1959년, 명동거리
1959년, 서울 을지로 입구 오른편 맨 윗쪽 끝 건물이 서울시청
1959년, 종로 거리 건물들 사이에 보신각이 보인다.
1959년, 종로 거리 오른편 건물이 화신백화점
1959년, 종로 대로변 모습 전차가 지나고 있다.
1962년 10월, 공사중인 김포국제공항. 1958년 1월, 국제공항으로 지정되어 1959년, 종합청사를 신축하고 그후 각종 시설의 확충과 기능을 확대하였다.
1962년 3월, 서울 명동에 신축중인 유네스코회관 빌딩
1962년 3월, 서울 중구 명동에 유네스코회관 빌딩 건축공사가 한창이다. 유네스코회관은 1959년에 착공해 1967년 까지 8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1959년 4월30일, 봄바람을 즐기러 강변으로 외출 나온 주부들
1959년 5월8일, 부랑인 일가족이 종로거리에 누워 구걸을 하고 있다.
1959년 5월12일, 제13회 어린이건강심사대회에서 입선한 우량아의 부모들이 시상식에 참석해 수상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1959년 5월23일, 미스코리아와 미스해병 등으로 선발된 미녀들이 오픈카를 타고 시가행진을 하고 있다.
1959년 5월 28일, 관광업계는 관광객유치를 위해 관광용 고급버스를 구입하고 관광버스 시운전 행사를 했다.
1959년 5월29일, 자전거 위에 올라가 제1회 국제마라톤 경기대회 골인장면을 지켜보고 있는 시민과 학생들의 모습.
1959년 5월6일, 바느질과 다림질 등 재봉일을 하고있는 50년대 말의 주부들 방안에는 화로도 있다.
1959년 7월 27일, 지방선거로 야당의원들이 데모. 서장과 맞붙잡은 김두한 의원
1959년 7월 27일, 지방선거로 야당의원들이 데모.
1959년 8월4일. 서울 미아리 일대의 50년대 말 모습
1959년 8월 21일,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국민학교 학생들
1959년 8월 21일,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국민학교 학생들
1959년 8월 26일, 야외가설 무대에서 공연중인 시민위안의 밤 무대
1959년 8월, 미아리 동네 모습 대체로 낮은 기와집들이 모여 있다.
1959년 8월31일, 비가 내려 진흙탕이 된 명륜동 주택가 상점 앞을 지나는 주민의 모습
1959년 8월31일, 장마로 물이 불어난 청계천변 천일극장 뒷편에 밀집한 판자촌의 모습
1959년 8월4일, 여성 피의자가 재판을 받기위해 포승줄에 묶인채 호송관에 끌려 법정으로 들어가고 있다.
1959년 9월16일, 추석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기 위해 서울역 광장에서 줄을 이루고 있는 귀성객들
1959년 9월16일, 추석을 맞아 고향으로 내려가는 서울역의 귀성객들이 광장에 줄을 이루고 있다.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모델을 둘러싸고 촬영에 열중하고 있다. 1959년 9월1일, 좋은 앵글의 작품사진을 만들기 위해
1959년, 도로 공사 모습
1959년 6월 26일, 정간 당했던 경향신문이 다시 속간케 되었음을 알리는 대자보가 경향신문 사옥 앞의 게시판에 나붙었다.
정간당했던 경향신문이 1959년 6월 27일, 조간부터 속간케 되었다. 직원들이 그동안 내려졌던 사기를 사옥 옥상에 다시 게양하고 있다.
1962년 1월, 광화문 세종로 사거리
1962년 1월, 시민들이 출근을 하기위해 줄을 서서 전차를 기다리고 있다.
1962년 1월, 광화문 아카데미극장 매표소 앞에 영화를 보기위해 나온 시민들의 줄이 이어져 있다.
1962년 1월, 눈 오는 세종로 거리에 펼쳐진 좌판에서 상인들은 물건을 팔고 있지만 시민들은 무관심 한채 바쁜 걸음을 옮기고 있다.
1962년, 창경원(현 창경궁) 수정궁 앞 연못이 얼어 시민들이 스케이트를 타며 겨울을 즐기고 있다.
1962년, 청계천 주변 판자촌
1962년, 추운 겨울 세종로에 상주하는 한 노숙자가 근처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1962년, 기찻길 옆으로 판자집이 즐비한 가운데, 아이들이 철로에서 놀고 있다.
1962년 서울 시내버스 여성 버스차장 모습. 대중 교통수단인 모든 버스에는 여성 버스차장이 근무해 운임 수납 업무와 손님의 승하차를 통제하는 등, 안전운전을 위한 보조역을 했다.
1962년, 서울 청계천 주변 길가에서 넝마를 줍고 있는 사람들
1968년 6월, 도로확장 공사가 되기 전의 효자동
1968년 7월15일, 중학입시 무시험 발표
1968년 10월 12일, 종로3가 창녀촌
1968년 10월1일, 서울 모습 1968년 10월1일, 서울시청 주변 모습.
1968년 10월5일, 초만원을 이룬 추석 귀성열차
1968년 8월24일, 악명 높은 김형욱 중앙정보부장(행방불명)
1968년 10월 17일, 정강자씨 등 젊은 미술가들이 한강변에서 전위예술을 공연하고 있다.
2003. 8. 26, 한국 최초 행위예술가 정강자. 가수 남일해 누이동생이다.
1968년 11월 29일, 운행 70년만에 폐차 처분되어 차고에 몰려있는 서울의 전차 1968년 11월 3일, 새벽 3시 30분 대구시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 큰 불. 아래 왼쪽이 계성고등학교
서문시장 제3지구 1층에서 연탄 과열로 큰 불. 멀리 동산병원 본관 건물이 보인다.
1968년, 봉천동 꼭대기 까지 차곡차곡 들어차 있는 가옥들
1968년, 봉천동 주민들이 마술단 공연을 보기위해 공연장 앞에 줄을 서 있다.
1963년 9월 7일, 자하문으로 가는 청운동 언덕길을 달리던 서울 시내버스가 때마침 휘발유를 가득 싣고 고갯길을 내려오던 트럭에 들이받혀 인근 가옥과 충돌하는 바람에 길에서 놀던 어린이 5명중 2명이 즉사하고 승객 39명이 중경상을 입는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피해자는 대부분 하교하던 학생들이었다. 사진은 사고현장의 모습
사고현장에 학생들의 가방이 길에 나뒹굴고 있다.
사고현장의 부서진 버스의 내부 모습
사고현장의 부서진 트럭과 버스의 잔해
효자동 야간 도로공사 대낮의 교통불편을 막기위해 심야에 도로포장 보수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인부들
60. 4. 19, 서울 효자동 전차종점에서 경무대로 꺾어 올라가던 데모대가 경찰의 무차별 총격을 받고 100여명이 흩어졌다.
1960년 4월 29일, 학생데모대가 경무대로 가는 것을 경찰이 최초로 발포한 곳이다. 해무정 앞 지금의 종합청사와 국립박물관 사이 효자동으로 가는 길
서울 효자동 전차종점에서 경무대로 꺽어 올라가던 데모대가 경찰의 무차별 총격을 받고 100여명이 쓰러졌다. 1968년 6월, 도로 확장공사가 되기 전의 효자동
95,10,22, 금융실명제 실시후 대기업들을 대상으로 세일에 나선 괴자금과 5-6공 비자금의 연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치자금 보관소로 애용되었던 상업은행 효자동지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