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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공중재림의 징조 (32-39절)
1. 32, 33절,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줄 알라”하십니다.
무화과나무는 감람나무, 포도나무와 함께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 나무는 모두 열매를 맺는 나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본문의 말씀을 주시기 하루 전인 마태복음 21장에 보면 고난 주간의 둘째 날에 예수님이 성전을 청결케하시고(마21:12-17)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표적(마 21:18-22)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기간 동안 행한 기적들은 모두 살리는 기적이었는데, 유일하게 이 무화과나무를 향해선 죽이는 표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로 상징되는 이스라엘이 종교적 행위라는 잎만 무성한 체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회개의 열매, 믿음의 열매, 선교의 열매를 맺지 못했기에 이를 저주하여 죽이신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여 죽이신 표적처럼 이스라엘은 회개의 열매를 맺기를 거절하고,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지 않음으로 결국 A.D. 70년 로마에 의해 멸망을 받고 만 것입니다. 여하튼 이런 상징적인 사건이 있은 지 하루 뒤에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다음과 같은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32, 33)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다시 말해 겨울철 동안 죽은 것 같던 무화과나무에 새잎이 돋는 것을 보면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다시 말해 종말의 때가 임박했음을 알라 하신 것입니다. 앞서 살핀 것처럼 무화과나무가 상징되는 이스라엘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함으로 저주를 받아 A.D. 70년 로마에 의해서 멸망을 받고 역사 속에서 사라졌지만, 이렇듯 사라졌던 이스라엘이 1900년 만인 1948년 5월 14일에 다시금 역사 속에 등장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는데, 이것이 바로 종말의 때가 임박했음을 알리는 가장 확실한 시대의 표적이라는 겁니다.
2. 34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하십니다.
a.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하셨는데, 여기서 ‘세대’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게네아’인데, 이 단어는 ‘족속’, ‘가문(race)’, ‘자손’, ‘후손(generation)’, ‘시대(age)’ 혹은 ‘동시대 사람’ 등으로 해석될 수 있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선 앞뒤의 문장(context)을 살펴보아야 한다는 뜻인데, 32, 33절이 무화과나무의 회복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하는 말씀이라면 34절에서 말씀하는 “이 세대”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지켜본 세대(generation)라고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을 지켜본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우리가 지난 시간에 살펴본 종말의 사건들(4-14절)과 인자의 임하심(15-51)에 관한 일들, 즉 공중재림인 휴거의 사건과 지상재림의 사건이 “다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b.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세대(generation)’는 구체적으로 몇 년을 의미하는지가 궁금해지는데, 예수님 당시의 헬라인들은 남자가 자라 성인이 되는 30년을 한 세대로 보았고,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보낸 40년을 한 세대로 보았습니다. 그런가 하면 모세가 쓴 시편 90편 10절에서는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 하심으로 한 세대를 70년 혹은 80년으로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짐승들을 쪼개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는 장면을 소개한 창세기 15장에서는 한 세대를 100년으로 묘사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산비둘기와 집비둘기를 쪼개지 않고 진열하자 이에 하나님이 진노하사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40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할 것이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창 15:13). 이렇듯 이방 땅에서 400년 동안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4대 만에(in the fourth generation) 가나안 땅에 다시 돌아올 것이라 하심으로(창 15:16), 100년을 한 세대로 묘사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에서는 ‘세대(generation)’를 설명하는 기준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만일 한 세대(generation)를 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하는 시간으로 본다면, 본문에서 말하는 세대가 모세의 표현처럼 70년이나 80년이 될 수도 있고, 창세기 15장의 말씀처럼 100년으로도 계산할 수 있는 유동적인 시간이라는 겁니다.
정리하면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는 말씀에서 설명하는 “이 세대”는 무화과나무에 새잎이 돋는 것을 지켜본 세대, 다시 말해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독립을 지켜본 세대를 의미하는데, “그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즉 이스라엘의 독립을 지켜본 세대가 다 돌아가시기 전에 종말과 재림의 사건이 모두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씀이고, 그 구체적인 기간은 70, 80년이 될 수도 있고 100년, 120년이 될 수도 있는 유동적인 시간이라는 겁니다.
이렇듯 성경에서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은 한 세대의 기간을 자의적으로 정하고 휴거의 날짜를 특정했다가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1988년 휴거설입니다. 미국의 에드가 C. 화이제난트라는 (나사에서 근무한 바 있는) 공학자가 이스라엘의 독립 기념일인 1948년 5월 14일부터 40년 뒤인 1988년 나팔절 기간(9월 11일과 9월 13일)에 휴거의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 주장을 해서 우리나라의 다미선교회처럼 큰 물의를 일으킨 사건이 있었습니다. 화이제난트가 40년을 한 세대로 계산을 해서 이런 주장을 펼친 것인데, 그는 당시에 “88 Reasons Why the Rapture Will Be in 1988(1988년에 휴거가 일어나는 88까지 이유)”라는 책을 발간하여 1988년 휴거설을 퍼뜨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1988년 나팔절이 끝나도 휴거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자, 화이제난트는 자기가 계산을 잘못했다며 또 다시 1989년과 1993년 휴거설을 주장하다가 거짓으로 드러나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미선교회의 이장림이 1992년에 휴거 사건이 일어난다는 주장을 한 적이 있는데, 이는 1993년부터 7년 대환난이 시작되고 2000년부터는 천년왕국이 시작된다는 계산을 근거로 날짜를 정한 것입니다. 어떤 경우든 예수님이 “아무도 모른다”(36)하신 휴거의 날짜를 특정하는 사람들은 모두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c.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이스라엘이 경험하게 될 지상재림의 사건이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징조가 7년 대환난의 중반부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15) 사건이라면, 교회가 경험하게 될 공중재림(휴거)의 사건이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징조는 겨우내 죽은 것 같던 “무화과나무에 새잎이 돋는 사건”(32) 다시 말해 A.D. 70년 로마에 의해 멸망을 받은 이스라엘이 1948년 5월 14일 다시금 역사 속에 등장한 사건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세워짐으로 그 동안 이스라엘을 대신해서 2000년 동안 선교의 열매를 맺는 사명을 감당하던 교회가 떠날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여하튼 이스라엘의 회복을 지켜보는 세대가 바로 휴거의 사건에 참여하게 될 마지막 세대, 무화과나무의 세대라는 겁니다.
3. 35절,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앞에서 주신 종말에 관한 말씀들(4-34)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확증하기 위해 맹세하며 주신 말씀입니다. 하늘과 땅이 사라져도 예수님이 주신 예언의 말씀들은 사라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맹세하며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렇듯 예수님이 맹세하여 주신 종말과 재림에 대한 말씀들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참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성경에는 종말과 재림에 관한 예언의 말씀들이 성경 전체에 4분의 1인 1800구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1500구절 가량이 구약성경에 300구절 가량이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비해 초림에 관한 예언의 말씀들은 300구절 정도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예언들은 모두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동안 문자적으로 역사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처럼 초림에 관한 예언들이 문자적으로 역사적으로 성취되었다면, 종말과 재림에 관한 예언들도 문자적으로 역사적으로 성취될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겁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35)하십니다.
4. 36절,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하십니다.
25장 열 처녀의 비유에서도 살펴보겠지만, 휴거의 사건은 신랑되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데려가시는 사건입니다. 신부와 약혼한 신랑이 아버지의 집에 가서 신부를 위한 처소를 예비한 뒤 이 예비한 처소로 신부를 데려감으로 혼인예식이 시작되는 것인데, 문제는 신부를 데려가는 구체적인 시간은 신랑도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신부를 위한 처소가 예비되면 신랑의 아버지가 신랑에게 신부를 데려오라는 지시를 내림으로 혼인예식이 시작되는 것인데, 이 날짜는 신랑도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님도 알 수 없다 하신 날짜를 특정하고 이 날 휴거의 사건이 일어난다는 주장을 하면 그 사람이 바로 예수님보다 자신을 높이는 이단의 수괴인 것입니다.
5. 37-39절,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하십니다.
a.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38)라는 말씀은 사람들이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적인 삶을 살다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휴거의 사건이 일어나고, 이후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는” 것과 같은 7년 대환난의 사건이 일어난다는 의미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3절에서도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하셨습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상적인 삶에 취해 주의 오심을 예비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땅에 남겨져서 환난을 피할 없게 될 것입니다.
b. 37절에서는 “인자가 임하는 때”를 “노아의 때”로 묘사하고 있는데 누가복음 17장 28절에서는 여기에 “롯의 때와 같을 것”이라는 말씀을 더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때와 롯의 때는 모두 죄악이 관영한 세대였고, 갑작스럽게 종말의 사건을 맞이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두 시대에는 뚜렷한 특징이 있었는데, 노아의 때가 네피림으로 상징되는 하이브리드 인간이 창궐하던 세대라면, 롯의 때는 동성애가 만연하던 세대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가 바로 유전자공학과 AI 로봇 기술의 발달로 인간과 짐승, 인간과 컴퓨터, 인간과 로봇이 결합된 현대판 네피림(하이브리드 인간)이 탄생하고 있는 세대이고, 롯의 때와 같이 악하고 음란한 동성애가 창궐한 세대라는 겁니다.
c. 노아의 때와 롯의 때의 또 다른 특징은 하나님이 택하신 의인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놓으시고 난 뒤에 심판을 행하셨다는 겁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방주에 들어간 뒤에 홍수의 심판을 내리셨고, 롯과 두 딸이 소돔성을 빠져나와 소알성으로 피신한 뒤에 유황불의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21)하신 7년 대환난이 시작되기 전에도 신랑되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하늘의 안전한 처소로 옮겨놓으신 뒤에 비로소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겁니다.
II. 데려감을 당하리라(40-41)
40절부터 51절까지는 휴거의 사건을 앞둔 교회가 어떤 믿음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지를 교훈하신 말씀인데, 오늘은 그 가운데 40절과 41절의 말씀을 살펴봅니다.
40, 41절,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하십니다.
1. 이 말씀은 무화과나무에 새 잎이 돋는 것을 지켜본 마지막 종말의 세대가 경험하게 될 휴거의 사건을 묘사한 말씀인데, 두 사람이 밭을 갈고 있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날 것이고, 두 사람이 매를 갈고 있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 하십니다.
근본주의 종말론 학자들 가운데는 예수님의 감람산 강화가 교회가 아니라 이스라엘에게만 주신 종말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주신 종말에 관한 말씀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제자들과 유월절 만찬을 나누시면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주신 ‘다락방 강화’(요 13-16장)가 유일하고, ‘감람산 강화’(마 24, 25장)는 이스라엘에게만 주신 종말에 관한 말씀이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을 근거로 방금 읽은 40절 41절의 말씀도 장차 교회가 경험할 ‘휴거의 사건’을 묘사한 말씀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경험할) ‘지상 재림의 사건 때 일어날 일들’을 묘사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구체적으로 살피면 본문에서 “데려감을 당하는” 사람들은 휴거의 사건에 참여하기 위해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받기 위해 데려감을 당하는 것이고, “버려둠을 당하는” 사람들은 7년 대환난에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천년왕국에 참여하기 위해 남겨지는 사람들이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 해석이 무리가 있는 것은 40절 41절은 36절의 말씀인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하신 말씀을 설명하시는 과정에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40, 41절 말씀이 지상재림 때에 있을 사건을 묘사한 것이라면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겁니다. 공중재림인 휴거의 사건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사건이기에 (36절의 말씀처럼) “그 날과 그 때”를 알 수 없지만, 지상 재림의 사건은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뒤 이미 정해진 시간에(1260일+1260일 후에) 일어나는 사건이기에 성경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날과 그 때”를 알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기에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하신 36절의 말씀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주신 40절과 41절의 말씀은 지상재림의 사건이 아니라 휴거사건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겁니다.
2. “두 사람이 밭을 갈고 매를 갈고 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는 말씀은 또 남자들이 밭을 갈고 여자들이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맷돌을 가는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휴거의 사건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예정된 시간에 찾아오는 지상재림의 사건과는 달리 휴거의 사건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갑작스러운 사건이기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38), “밭에서 일을 하고 집안에서 맷돌을 가는” 일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휴거의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는 겁니다.
3. “밭을 갈고 매를 갈다가 데려감을 당한다”는 말씀을 휴거의 때를 기다리는 성도들의 관점에서 살핀다면 종말의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주의 오심이 임박했다는 핑계로 “밭을 갈고 매를 가는” 일상적인 삶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1992년 다미선교회 사건 때 여기에 미혹된 많은 교인들이 직장과 학교를 버리고 휴거의 순간을 기다리다가 이것이 거짓으로 드러나자 삶 자체가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본 적이 있는데, 마지막 때를 기다리는 성도들은 주님이 오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밭을 갈고 매를 가는” 일상적인 삶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겁니다.
4. 마지막으로 두 사람이 함께 밭을 갈고, 두 사람이 함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맷돌을 갈았다는 말씀을 통해 이들이 가족과 같이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렇듯 매일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이라 할지라도 휴거의 사건이 일어날 땐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게 된다는 겁니다. 구원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라는 뜻인데, 아무리 부모형제가 예수를 잘 믿고, 친구가 예수를 잘 믿어도, 내가 예수를 믿지 않으면 주님이 오실 때 휴거의 사건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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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음이 즐거워야 행복해 진다고 합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모든것이 긍정적으로 보이게 되므로
얼굴엔 늘 미소를 짓게되고 밝고 유쾌하게 된답니다.
얼굴에 환한 웃음과 함께 오늘도 멋지게 시작하시고요.
항상 웃음이 있는 그런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