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에는 다윗의 승전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블레셋과 아말렉을 평정하고 모압과 암몬, 에돔과 아람까지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모든 외적들을 정벌하거나 속국으로 만들었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다윗이 이렇게 세력을 뻗칠 수 있었던 이유는 유능한 장수이기도 했고 정치적인 감각도 있었지만 운도 좋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는 이집트도 세력이 약해져 있었고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이렇다 할 강대국이 세력을 확장하지 못할 때였습니다. 이제 다윗은 이스라엘 전체를 하나의 통일된 왕국으로 다스릴 수 있게 되었고 국가 체제도 새롭게 정비했습니다. 15~18절을 보겠습니다.
15 다윗이 왕이 되어서 이렇게 온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에, 그는 언제나 자기의 백성 모두를 공평하고 의로운 법으로 다스렸다.
16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사령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역사 기록관이 되고,
17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고,
18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지휘관이 되었다. 다윗의 아들들은 제사장 일을 보았다.
역사기록관과 서기관을 두었다는 부분이 눈에 띕니다. 이스라엘 역사가 공적으로 기록되었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이 기록이 사실이라면, 전설의 시대에서 역사의 시대로 들어섰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이 목록에서 문제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 다윗의 아들들이 제사장 일을 보았다는 기록입니다. 모세오경에 의하면 제사장 일은 레위지파의 고유권한입니다. 다른 지파 사람이 맡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다지파 사람인 다윗의 아들들이 제사장 일을 보았답니다. 이 본문은, 개역개정본에는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들이 되니라’ 라고 되어 있고, 공동번역에는 ‘다윗의 아들들도 사제 일을 보았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레위지파에 속하는 정식 제사장이 있지만 다윗의 아들들도 제사장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신명기 율법에 대한 위반입니다. 그러나 신명기 율법이 기록으로 정착된 것은 다윗 시대로부터 최소한 삼백 년 이상 지난 후의 일입니다. 서기전 1000년을 전후해서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다윗 시대는 통치권자가 종교의식도 함께 집행했던 제정일치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도 이런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9장에는, 다윗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푸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므비보셋은 사울과 요나단이 죽을 때 유모가 안고 급히 도망가다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다리를 절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과의 우정을 생각하면서 그 아들을 자기 아들처럼 돌보았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사울을 지지하는 잔존 세력이 므비보셋을 이용해서 쿠데타를 기도할 가능성을 차단하고 통제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연히 그런 부분도 생각하고 대비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병자호란때 청나라 태종이 인조의 두 아들을 볼모로 데려갔듯이, 정복자가 정복된 나라의 최고지도자의 자손을 볼모로 데려가 자신의 수하에 두고 잘 대접하여 피정복 국가가 저항하지 못하도록 관리하는 것은 고대 국가에서 널리 시행된 관습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