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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불상이라고 하면 으레 관촉사(灌燭寺) 석조관음보살상, 속칭 은진미륵(恩津彌勒)을 떠올리면서 통일신라보다 조각 솜씨가 떨어진다고 말하곤 한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그렇게 적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은진미륵은 이 지역에 있었던 예외적인 작품의 하나일 뿐, 왕실에서 발원(發願)한 불상은 더없이 정교하고 화려하다.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의 '금과 은' 특별전(3월 28일까지)에 나온 '금동세지보살상'(보물 1047호)은 상감청자를 빚어낸 고려인들의 솜씨를 남김없이 보여 준다. 금강산 장안사에서 나왔다는 이 보살상은 아담한 크기(높이 18cm)로 보관(寶冠)엔 세지보살(勢至菩薩)의 상징인 정병(淨甁)을 새겼고, 오른손으로는 연꽃에 감싸인 법화경 일곱 책을 살포시 잡고 있다. 날렵한 몸매를 휘감고 도는 아름다운 영락(瓔珞) 장식은 세 겹 연화대좌까지 길게 늘어졌다. 엷은 미소를 머금은 앳된 얼굴엔 명상의 분위기가 조용히 흐른다.
이런 스타일의 불상은 원나라 라마교에 연유한 것으로 장안사가 기황후(奇皇后)의 원당(願堂) 사찰이었다는 사실과 긴밀히 연관된다. 기황후는 명문가 여인으로 고려 출신 환관인 고용보(高龍普)의 추천으로 궁녀가 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원나라 순제의 황후로 된 분이다. 기황후는 고국 장안사에 거액의 내탕금(內帑金: 판공비)을 내어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키고 많은 불상을 봉안했다고 하니 그때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국립춘천박물관에는 이와 쌍을 이루는 '금동관음보살상'이 한 점 있다. 보관에 화불(化佛)을 새긴 것이 다를 뿐이다. 이번 특별전에 함께 전시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지만 고려 조각예술의 자존심을 보여 주는 불상을 모처럼 만나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큰 안복이 아닐 수 없다.
조선일보 201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