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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욱 찾기] 이경의
S#1. 프롤로그. 1999년. 인도 기차역. 오후
뒤엉킨 소음과 인파들로 가득한 낡은 기차역.
기차를 기다리는 황갈색 피부의 현지인들과 배낭을 멘 관광객들이 한데 섞인 혼란스런 풍경들.
선로 저쪽으로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기차역사는 더욱 분주해진다.
분주한 기차역사 어딘가, 카메라가 누군가의 시선으로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선로를 향해 간다.
턱까지 차오른 숨소리. 부딪히는 어깨 너머로 정차해 있는 기차가 보인다.
객차를 지나가는 발걸음, 빠른 걸음으로 이리저리 누군가를 찾고 있는 그녀, 지우(21.여)다.
지우, 까치발을 들어 차창을 살펴가며 기차를 따라 걸어가는데,
기차에 오르는 사람들 사이로 객차 사이에 몸을 내민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인다.
지우 : !!
남자를 향해 달려가는 지우. 하지만 사람들에 가로막혀 쉽지가 않다. 사람들에 가려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가 사라졌다하며...
지우의 마음이 더욱 급해진다.
지우 : (안타까운) 잠깐만......
이때, 출발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덜컹- 하며 육중한 열차 바퀴가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기차가 서서히 속력을 높이고...
다급해진 지우, 달려가며 절박하게 소리친다.
지우 :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이름이... 뭐에요? 이름이 뭐냐구요~!!
그 때 빵~ 하며 들려오는 기적 소리.
남자를 실은 기차, 하얀 연기를 뿜으며 순식간에 멀어져 버리고,
더는 따라오지 못하고 주저앉는 지우, 흩어지는 연기 속으로 뿌옇게 사라지며......
스틸 사진처럼 이어지는 인도의 풍경들 위로, 떠오르는 타이틀. 김종욱 찾기
S#2. 뮤지컬 공연장. 낮
오픈을 앞두고 셋업 중인 무대 위. 아직은 세트가 세워지지 않은 빈 무대. 너저분한 작은 공사장 같다.
여기저기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비슷한 옷차림의 스태프들, 편안 복장의 배우들, 각자의 등퇴장로를 체크하고 있고,
그 사이로 수경(40대 초반. 여)도 보인다.
멀리서부터 큰 소리로 작업 지시하던 후드 점퍼 차림의 스태프가 성큼- 무대로 오른다.
무대 한 번 빙- 점검하고는, 무대 중앙으로 오며 쓰고 있던 후드 벗으면, 프롤로그에 등장했던 얼굴, 지우(31.여)다.
지우 : 1막은 엘리베이션 등장이니까 위치에 정확하게 서주세요. 넘버 헷갈리면 사고 납니다.
(가운데 서서) 센터에서 채리가 솔로 시작하면...
수경 : 걔가 누군데? 없는 애를 있다 치라는 거야? (지우, 보면) 한두 번도 아니고 맨날 늦어. 아이돌이면 다야?
지우 : (능구렁이 담 넘듯) 아이, 또 왜 이러세요. 다 왔는데 파킹하는데 시간이 걸려서... 벤이 좀 커야죠.
수경 : 그 말을 믿니? 꼬꼬마, 자기 무대감독 맞아?
이때, 상황 모르고 들어서는 우형(무대 조감독, 26.남).
우형 : 꼬꼬마가 뭐예요?
지우 : 몰라도 돼, 이 자식아! (사이) 왜?
우형 : 채리 도착했대요. 차에서 옷만 갈아입고 온다거든요. 큐 들어가십쇼. 무대감독님. (윙크까지 날리는)
지우, 저 눈치 없는 놈 진짜......
지우 : (분위기 바꿔보려고 일부러 힘차게) 자. 자. 전주 4마디 전부터 시작합니다. 배우님들은 상수에서 대기... (하는데)
수경 : 좀, 쉬자. (지우, 보면) 기다렸단 듯 시작하는 거, 좀 그렇잖아?
수경 일어서자, 연습하던 다른 배우들도 눈치 살피다 따라 움직인다.
지우 : (답답하다는 듯 외친다) 십 분 브레이크.
수경 : (가다가) 아, 꼬꼬마 아니, 감독님. (지우, 보면) 나, 라떼 땡기는데...
더블 샷에 시럽 대신 캬라멜 드리즐 약간 해서 익스트림 핫! ...기억하지?
지우 :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사람 좋게 웃으며) 그럼요.
S#3. 카페 안. 낮
지우 : 열라 뜨거운 라떼요.
손바닥을 옷에다 쓱쓱- 문지르며, 주위 둘러보는 지우. 한낮의 카페, 시커먼 작업복 차림이 괜히 머쓱해진다.
목장갑 뭉치 들어 대강 툭툭- 털어보는데,
(최기장) : 작업복도 잘 어울리네요.
지우 : 네? (고개 들어보면) !
말끔한 인상의 최기장(30대 초반. 남). 잘 갖춘 정장 차림이 나란히 서 있는 지우와 이질적이다.
지우 : (놀라서) 여기서 뭐 하세요? (설마...) 저희 약속 했었...(자신 없게)...어요?
최기장 : (보다가) 네. (지우, ?) 아니요. 오늘은 아니에요.
지우 : (휴- 다행이다) 그러니까요. 오늘 비행인 줄 알았는데...
최기장 : 바쁜데 왔죠, 제가?
지우 : (시계 보곤 머쓱하게 웃으며) 5분 있어요.
최기장 : 저도 10분밖에 없어요. (웃는다)
두 사람, 자리에 앉기 무섭게, 지우의 전화가 울린다. 지우, 미안한 얼굴로 돌아 앉아 전화 받으며,
지우 : (상냥하게) 응, 우형아... 그래, 갈게... (수화기 너머로 우형의 목소리 계속되자) 마, 간다구, 가! 이 자식아.
(전화 끊고 돌아보며) 미안해요, 셋업 땐 정신이 없어서... (뭔가를 보고) !!
테이블 위에 놓인 열린 반지 케이스.
지우, 순간 멍해져서 보면-
최기장 : 떠나기 전에 주고 가고 싶어서 왔어요.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좋아한댔죠?
지우 : (멍해져서) 티파니... 오드리 햅번... (정신 차리고 밀어내며) 나랑은 안 어울려요.
최기장 : (가로막듯 그 손 잡으며) 껴 보면, 알게 되겠죠.
지우 : (결심한 듯) 전에도 말했지만 전 아직...
최기장 : (시계를 보곤) 5분 참 빨리 간다.
지우 : 아-!
허둥지둥 일어서는 지우.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인 반지. 재촉하듯 다시 울리는 핸드폰.
지우, 대충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최기장 : 지우씨! (지우, 돌아보면) 이거......
뭉쳐있는 빨간 목장갑 건넨다. 머쓱하게 받아들곤 뛰어나가는 지우.
S#4. 여행사, 실크로드. 낮
직원1 : 아휴, 고객님~ 무비자 입국 시행 된지가 언젠데요~
거대한 대자연의 풍광이 프린트된 벽면. 각종 여행 상품 전단과 홍보물들이 쌓여있다.
파티션 안으로, 여행 상품을 상담하는 직원들의 목소리.
“현지 기후 사정은 저희가 사전에 파악해서 스케줄에 반영하니까 걱정하지 마시구요....”,
“배낭여행이야 말로 요즘 대학생들 필수과목입니다, 필수...”, “에이~ 남미 여행 위험하다는 건 다 옛날 얘기죠...”
들뜬 목소리들 사이로 어디선가......
(기준) : 실종, 납치, 폭력, 강도, 마약......
카메라, 진지한 목소리를 찾아 남들 보다 1.5배는 높은 파티션을 향해 천천히 다가간다.
파티션 넘어가면, 말끔하게 정리된 책상, 네임택이 붙여진 파일들과 발행월대로 꽂힌 여행책자들.
책상 위로 참혹한 사고 현장 사진과 사건 통계 그래프 펼쳐놓고 고객의 전화를 받고 있는 기준(31.남).
기준 : (진지하게) 요즘엔 폭탄 테러까지 일어납니다. 거기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오는 여행자들은 현금 창고라는 인식 때문에
어떤 일을 당할지 장담 못......
이상한 느낌에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기준, 내려다보고 있는 점장과 눈이 마주친다. 어색하게 점장을 올려다보는 기준.
S#5. 여행사, 실크로드 점장실. 낮
책상 위로, 앞서 기준이 펼쳐 보고 있던 사건 사고 스크랩북이 펼쳐져 있다.
점장 : 자네가 무슨 인터폴이야? 이런 걸 왜 모아?!
기준 : (융통성 없이) 전 그저 고객님들께 현지 안전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를 드리고자...
점장 : 그러니까 자네가 그걸 왜 걱정 하냐구! 거기 치안은 거기 시장이 해결하는 거고, 자네는,
(거칠게 홍보 전단 뒤적여 중남미 전단 찾아내) 관능의 탱고, 정열의 카니발로 일상 탈출! 응? 탈출 시키란 말이야. 탈출!!
(후- 한 풀 꺾으며) 고객들이 원하는 건 간단해. 프랑스 하면 에펠탑, 브라질 하면 쌈바, 라스베가스 하면 카지노. 오케이?!
기준 : (약간 자신감이 떨어져 들릴 듯 말 듯) 그래도 알 건 알아야...
점장 : 요즘 회사 감축 때문에 난린 거 알지? (의자 돌려 뒤돌며) 가 봐.
기준, 뒤통수에 대고, 꾸벅-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점장) : 프랑스 뭐?
기준 : 예? 에... 에펠탑
(점장) : 브라질 뭐?
기준 : 쌈바!
점장, 가보라고 손짓- 기준, 다시 인사 하고 점장실 나서려는데,
점장 : (불쑥-) 인도네시아.
기준 : 쓰나미?
점장 : !! (폭발하는-) 발리! 발리!! 허니무너들의 천국, 발리!!
점장실 유리문 밖으로, 두 사람의 모습 보인다.
길길이 날뛰는 점장과 몸 둘 바를 모르는 기준 보며, 절레절레 고개 흔드는 직원들. 그 위로,
(점장) : 당장 나가-!!
S#6. 남이섬. 다른 날. 낮
(버스기사) : 오네가이시마쓰~~
실크로드 여행사 관광버스 주위로, 한 무리의 일본인 관광객들이 주택가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여행사 조끼 입은 버스기사, 관광객들 유도하며, 버스 안의 누군가를 재촉한다.
마지못한 걸음으로 버스에서 내리는 누군가.... 바람머리 가발에 안경, 때 아닌 한겨울 목도리까지. 욘사마 코스프레한 기준이다.
버스기사, 흘낏- 기준을 보더니,
버스기사 : 본사에서 오셨죠? (괜히 목도리 감아주며) 잘 하시겠네. (관광객 향해, 일본어) 욘사마와 기념사진 찍습니다~
주머니에서 호루라기 꺼내 후루룩-
화를 참는 듯 기사가 매준 목도리를 꽉 쥐는 기준, 수줍게 다가오는 일본인 아줌마들을 바라본다.
차라리 초연해진 기준의 얼굴 위로 스산한 바람이 불어온다.
일본 아줌마들, 기준의 옆에 팔짱 끼면,
버스기사 : 하이- 치-즈-
하는데, 수줍던 일본 아줌마의 손이 뒤로, 기준의 엉덩이를 꽉- 쥐며, 헙-!! 놀란 기준의 얼굴에서, 찰칵-
기준 :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아줌마 성추행으로 신고할 거예요!!
시치미 뚝 떼고 얘 왜 이래 하는 표정으로 서 있는 일본 아줌마 때문에 더욱 흥분한 기준.
기준 : 오바상 니크이 데쓰, 혼또 니크이 데쓰!! (おばさん悪いです. 本当悪くて. 아줌마 나빠요. 정말 나빠!!)
기준, 저벅저벅 걸어 나가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점장,
점장 : 한기준이, 어디가? 한 발짝만 걸어. 너 진짜 해고야!
잠깐 멈칫하던 기준,
기준 : ... (침 꿀꺽)
결심한 듯, 도도도도 뛰어가 버린다.
S#7. 지우의 집. 밤
통화하며 집으로 들어서는 서대령(50대 후반. 남). 군복 차림의 강직한 느낌.
서대령 : (전화하는) 좀 더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움직이란 말야! 정확한 통계와 데이터를 제시하면서!
요즘이 어느 시댄데 이 친구가...
들어서는 서대령, 현관 입구에 붙여둔 부적을 손으로 꾹~ 잘 누른다. 현관 바닥에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하이힐 보인다.
서대령, 끌끌-혀 차며, 신발 바로 놓는데, 지혜(27세) 외출준비를 하며 분주하다.
서대령 : 어디 가? 이 밤에.
지혜 : 우리 닥터 정이 나오라네, 이 밤에.
서대령 : 거... 아직 선은 넘지 마라. 언니도 있는데...
(지우) : 내가 뭐?
들어서는 지우. 양말에, 점퍼에, 주섬주섬 벗어 바닥에 던진다.
지혜, 소파에 철퍼덕 기대앉은 지우에게 가서 등 돌리면, 지우, 자동으로 남은 지퍼 올려주고.
지혜 : (돌아서며) 짝짝이지?
지우 : (보다가) 너무 커. 뽕 빼.
지혜 : 눈 말야. (대답 안 듣고 가려다, 신경 쓰이는 듯) 너무 큰가?
서대령 : (아니라는 듯 절래절래) 커. 커. (지우에게 슬쩍)근데 지우 너 최기장 안 만나냐?
지우 : 누구? (모르는 척 하다) 아... 바쁘대. 오늘도 뉴욕 갔어.
서대령 : (일부러 오버) 와~ 스케줄 꿰고, 벌써 그런 사이야? 야. 대단한데.
지혜 : (거들며) 그래, 밀고 당기는 것도 애들이나 하는 거지, 그 나이엔 적당히 당기면, 넘어가 주는 거야.
어쩌면 그 남자 언니 인생의 마지막 남자일 수도 있어.
지우 : (픽 웃으며) 마지막?
서대령 : 그래. 처음이자 마지막 운명. (밀어붙이며) 얌마. 워낙에 딱인 궁합이라잖아.
삼재를 물리칠 귀인이라는데, 잘 좀 어떻게...
지우 : (흔들리지 않겠다는 듯) 만난 지 얼마나 됐다구...
서대령 : 선보고 한 달이면 견적 쫙 나오지. 그 친구 추진력 하나는 확실한 줄 알았더니...
지혜 : (지우 패션 보며) 저러고 다니다 들킨 거 아냐?
서대령 : 들켰어? 그랬어? (따라가며) 옷은 절대적으루 지혜꺼 입어야 된다구 내가...
지우 : (2층 계단으로 가며) 하루 이틀이지. 이제 핑크색만 봐도 토할 거 같애.
서대령 : (지우가 벗어 던진 점퍼 들어 보이며) 그렇다고 이런걸....
하는데, 툭-! 바닥에 떨어지는 목장갑. 그 안에 숨겨져 있던 ‘반지 케이스’
서대령, 말을 멈추고, 지혜도 놀라 제자리. 지우, 갑작스런 정적에 돌아보면......!!
지우 : 아빠, 있잖아...
순간- “이야-!!” 기쁨에 들뜬 서대령과 지혜의 함성- “드디어 해냈구나” 자기들끼리 신나하고,
“그런 거 아니야~” 지우 말려보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S#8. 기준의 집. 다음 날. 아침
열린 문 앞으로, 나란히 서 있는 등산복 차림의 매형(40대 초반)과 은진(6, 여).
발레복 입고 있는 은진. 볼록 나온 배에 안경까지, 썩 요정 타입의 아이는 아니다.
매형 : 사랑하기 좋은 날이야, 안 그래 처남?
은진, 안으로 들어가더니, DVD 플레이어에 DVD 넣어 플레이 한다. 만화 ‘꼬꼬마 텔레토비’ 가 나온다.
노래에 맞춰 잔뜩 텐션된 상태로 춤추는 은진.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한 기준의 방. 열 맞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물건들이 인상적이다.
매형 : 뭐, 별 다른 건 없구, (유치원 가방에 봉투 넣으며) 발레 교습비. (자부심에 들뜬) 샛별 반 프리마돈나잖아.
기준 : ... 어디 가세요?
매형 : 응, 도봉산. 이번 작품 배경이 안나푸르나잖아. 현장감 넘치는 글을 쓰려면 취재는 필수지.
기준 : 이번엔 책 나오는 거예요?
매형 : 나올 거야. (사이) 조만간.
기준 : ... 그러시겠죠.
매형 : (모른 척 하고, 은진 보며) 공주님, 아빠, 갑니다~
매형, 나가고, 기준 돌아서며,
기준 : 그거 10년도 넘은 만화 아니야?
은진이 비뚤게 둔 리모콘, 스윽- 바로 세우며 은진, 눈치 채고, 쳇! 리모콘 들고 툭- 비디오 꺼버린다.
기준 : (약간 미안해서) 아침은 먹었어?
은진 : 우유 있으면 한 잔 주던가.
기준의 차림을 아래위로 훑어보고, 스윽- 안경 치켜 올리며,
은진 : 오늘 회사 안 가?
당황하는 기준의 위로, cut to-
벌컥- 문 열리며, 다짜고짜 기준의 등짝 후려치며 들이닥치는 누나(한기숙. 30대 후반. 여).
기준 : (피하며) 말로 해, 누나. 말로.
누나 : 말로?! 서른 넘어서 백수 된 놈, 골로 안 보내는 게 다행이지!
누나 성에 안 차는지, 두리번거리다 우산이 보이자, 그대로 휘두르며 돌진한다.
기준, 누나의 우산 공격 피하려 박스 안에 든 서류파일 하나 꺼내 막아내고. 뒤늦게 들이닥친 매형 간신히 누나 말린다.
매형 : 처남이라고 어쩔 수 있겠어. 주변머리 없어 짤린 거를...
누나 : 그걸 위로라고 하냐? (다시 기준에게) 요즘 같이 취업하기 힘든 때에. 너 이제 뭐할 거야?!
기준 : ... 사업.
누나/매형 : 뭐?
기준 : 사업 할 거라구!! (누나, 매형, 벙-. 나름 진지하게) 나도 내 이름 건 보람차고 의미 있는 일 한 번 해보고 싶어.
장삿속으로 사람들 이용하지 않고 기업이념이란 게 뭔지, 고객감동이란 게 뭔지,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고!
나름 진지하고 감동적인...줄 알았는데,
누나 : 공익 광고를 찍어라!! 영업도 못 뛸 놈이 사업은 무슨. (다시 우산을 휘두르며) 너는 내 업보다. 너는 내 업보.
제 풀에 꺾여 우산 던져두고 나가는 누나.
매형 : (할 말 없어) 하여튼 액션 있는 여자라니까.
(누나) : 빨리 안 나와?!
후다닥- 따라 나가는 매형.
어질러진 방을 치우려던 기준, 서류 파일을 들었다가 도로 주저앉는다. 휴~ 한숨 쉬는 기준.
S#9. 뮤지컬 공연장. 다른 날. 낮
테크 리허설(공연을 앞두고 기술적인 부분을 체크하는 리허설)이 한창이다.
분주한 크루들 사이로, 지우, 무대 한 가운데 서서 석연찮은 얼굴하고 있다.
무대 중앙, 일정 공간이 분할된 엘리베이션 수직 이동 무대다.
지우 : (조감독에게 무전으로) 움직여봐.
지우가 서 있던 무대 공간, 천천히 위로 이동해 수평무대에 맞춰진다. 마치 주인공처럼 홀로 중앙에 선 지우.
(수경) : 꼬꼬마, 놀이동산 왔어?
머리에 가발용 망 쓰고 들어서는 수경. 웃긴다는 듯 지우 보며,
지우 : (무전으로) 무대 내리지 말고, 지금 상태부터 큐 갑니다.
지우, 무대 덜커덩 내려가고,
지우 : (무전으로) 내리지 말라고, 이 자식아.
수경 : 내 방 따로 안 해 놨더라.
지우 : 그게... 개인 분장실이 하나뿐이라. 채리는 데려오는 스텝도 많고. 죄송합니... (순간, 엘리베이션 움직인다)
누가 큐도 안 받고 GO 가래!
우형 : (멀리서 목소리만) 무전기 밧데리가 다 돼서 잘못 들었습니다.
지우 : 당장 갈아 끼워!
수경 : 스릴 있네. (웃음을 거두고) 근데 내가 탈 땐 확실하게 해 줘. 난 공연 중에 스릴 있는 거 싫으니까.
지우 : (큰 소리로) 너, 설치팀한테 엘리베이션 점검해달란 얘기 했어?
우형 : (더 멀리서) 뭐라구요? 무대감독님?
수경 : 짬밥만 늘면 다 감독이라고 설치지... (가버리고)
지우, 내색 않고 꾹 참는다.
우형 : (무전기로) 조명팀 이펙트 메모리 확인한답니다.
지우 : (큰 소리로) 무대 암전합니다. 조심하세요. 암전 GO! 이펙트 GO!
지우의 구령에 맞추어 깜깜한 어둠 속에 이어 들어오는 반짝이는 ‘Club Destiny'의 간판등.
조명을 밝히니 ‘클럽 데스티니’의 화려한 외관이 드러난다.
무대 가운데에서 완성된 무대를 바라보고 선 지우, 기분이 묘하다.
순간- 데자뷰처럼, 무대 전체가 인도의 ‘카르마 호텔’로 보였다가 사라진다.
흠칫- 놀라는 지우. 이때, 전화 걸려 온다. 액정 보면, 최기장이다.
S#10. 호텔 라운지. 낮
기준, 자리에 앉아 기획안 같은 빼곡한 설명서와 ‘창업 투자사’ 명함을 들여다보고 있다.
기준 앞으로, 핸드폰 통화하는 동창(안효정. 여), 약간 섹시가 흐르는 프로페셔널한 커리어우먼 느낌.
효정 : 제가 지금 미팅중이라서요. 네 네. 곧 전화 드릴게요. (자리 앉으며) 이렇다니까. 요즘 너도나도 창업하겠다고 아주 난리다.
우리 나이만 되도 직장 생활 회의 느끼잖아. 무작정 때려 치고 나오기는 하는데, 사업은 아무나 하니. (기준 흠칫-)
재주 없지, (꿀꺽-) 인맥 없지, (후-) 돈 없지...
기준, 자리 뜨려고 엉덩이 살짝- 들리는데,
효정 : 너 정도 기본 소양은 갖추고 시작하는 거지. (기준, 보면) 대학 때부터 너, 좀 남다르다고 생각하긴 했어.
기준 : ... 내가?
효정 : 순수하면서, 가만 보면...
기준 : 알아. 누구 좀 닮았지?
효정 : 응? (당혹스런) 그래, 신뢰감 있고... 아무튼 야, 딱 사업하기 좋은 얼굴이야.
기준 : 그래?
효정 : 내 명함 받았지? 창투사 많지만, 우리처럼 확실한데 없어. (둘러보며 작게) 여기도 우리가 투자한 거야.
기준 : 정말? (새삼스럽게 둘러보며) 그럼, 나, 사진 좀 찍어도 될까? 자료 조사에 참고 좀 할까 하고...
효정 : 꼼꼼한 거 여전하구나. 그래, 찍어.
기준, 사진기 들고 호텔 모습 사진에 담는다.
프레임 안으로, 라운지 입구에 남자 둘이 지배인의 안내를 받으며 들어오다, 기준 쪽 본다.
기준, 뭐지... 사진 찍는데, 가로막고 서는 남자(형사1).
형사1 : (힐끔-놓여있는 명함 보더니) 안효정씨랑 무슨 관계...
이때, “저기다!” 달아다는 효정 보이고, 형사들 쫓아가며 소란스러워지는 라운지.
S#11. 경찰서. 밤
효정, 담배 피워 물며 유치장으로 가고.... 형사 앞에 앉아있는 기준.
형사 : (힐끔-보며) 얼굴이 딱,
기준 : (휴-한숨 쉬며) 압니다, 제가 좀...
형사 : 사기 당하기 좋게 생겼어. 이렇게 좋은 학교 나오고, 사회생활 지지부진한 양반들일수록 타겟이 되거든.
다른 쪽에서 소식 듣고 온 피해자 몇이서 소란 피운다.
형사 : 아저씨들 거, 가만 좀 있어요! 옛날 여자 못 잊고 여기까지 온 게 뭐 자랑이라고.
피해자1 : (끼어들며) 옛날 여자라니! 첫사랑이라구요, 첫사랑! (하다가, 기준 보며) 너, 한기준이? 나, 재하야, 윤재하!
(다른 데 보며) 조교님!!
피해자2 : 이거 졸지에 동문회 하네.
열 살은 더 먹어 보이는 대머리 조교가 다가와 악수하며, 졸지에 동문회 분위기.
나이를 막론한 피해자 몇, 더 다가오며, “효정이 그 나쁜 년...” 하다가,
대머리조교 : 그래도 니들 똑바로 알아둬. 어쨌거나 효정이 첫사랑은 나였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서로 자기라고 반발-
기준, 그 모습 보다가,
기준 : 그게 뭐 그렇게 중요합니까?
순간- 조용해지는 경찰서 안.
형사 : (의아한) 그게 왜 안 중요합니까?
기준 : 아니, 요즘 세상에 첫사랑이 뭐 그리......
“그게 왜?!”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소리들. 사건 외 관계자들, 경찰서 구류자들까지 너도나도-
왕따 된 기준...... 이게 무슨 상황이지......
형사 : 첫사랑 때문에 경찰서 오는 사람, 많아요. 첫사랑 때문에 술 먹고, 싸우고, 바람피우고... 지금 이 사기사건도 봐,
첫사랑 미끼 한 번 던지면, 대박이거든. 첫사랑 그거, 문제예요... 하긴, 뒷모습이라도 보고 싶은 게 첫사랑이지......
구류자 1 : 그렇지! 내 말이 그거거덩.
구류자 2 : 첫사랑 다시 만나면 내 인생, 다시 산다.
구류자 3 : 억만금을 줘서라도 찾아주기만 하면...
여기저기 너도 나도 첫사랑... 첫사랑... 첫사랑...
경찰서 한가운데 벙 찐 채 서 있는 기준을 둘러싸고 온갖 첫사랑의 아비규환 높아지며......
(기준) : (혼잣말) 첫사랑을... 찾아준다. 괜찮네. 흠흠...
S#12. 택시 안. 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서울의 밤 풍경. 인천 공항을 알리는 교통 표지판.
달리는 택시의 뒷좌석에 몸을 기대고 있는 지우, 지친 얼굴이다.
지우: (전화) 가고 있어요. 네. 네.
전화 끊으며 후- 점퍼에 손을 넣으며 몸을 움츠리다가, 멈칫-주머니에 들어있던 반지 케이스 꺼낸다.
조심스럽게 열면, 유혹하듯 반짝-거리는 반지. 이어 들려오는 산발적인 목소리들.
(지혜) : 그 남자, 언니 인생의 마지막일 수도 있어.
(서대령) : 그래. 처음이자 마지막 운명.
(최기장) : 껴 보면, 알게 되겠죠.
소리를 끄듯 반지 케이스를 탁하고 덮는 지우. 머리가 복잡하다.
망설이던 지우, 조심스럽게 반지케이스를 열어 반지를 꺼내 끼워 본다. 지우의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일상적인 풍경...
지우, 반지 낀 손 들여다보고 있는데... 뭔가에 숨이 막힌 듯. 갑자기 반지를 빼려고 애쓴다.
지우 : 아저씨!!
숨이 끝까지 차올라 얼굴까지 붉어진 지우. 손가락을 비틀며, 다급해져서 발을 구른다. 이러다 손가락을 뽑아 버릴 것 같다.
지우 : 아저씨! 이 것 좀 빼주세요!!
S#13. 도로. 밤
다급히 택시에서 내리는 지우. 탁-! 택시 문 닫히는 소리에-
(플래시 컷 : 릭샤(인도 교통수단)의 문이 탁-!)
막무가내로 떠밀려오는 기억에, 혼란스러운 그녀.
도로 한가운데서, 쫓기듯 두리번거리다 뒤를 돌아보는데, 마주 불어오는 바람-
(플래시 컷 : 모래 바람에 그녀의 눈을 가리는 남자의 손)
손길이 닿은 것처럼 흠칫- 놀라는 지우. 갇힌 도로를 빠져나가려 가로질러 가는데,
어디선가 클랙슨 소리, 빠앙-!!
지우 : !!
Insert (앞으로 등장할 과거 이야기들이 예고편처럼 보이는 순서 없는 이미지 컷들)
- 경적을 울리며 육중하게 움직이는 기차 바퀴.
- 다양한 인종의 장이 펼쳐진 기차역 풍경. 여행객에게 달려드는 아이들.
- 인도의 거리, 거대 사원, 인파 속을 걸어가는 남자의 뒷모습.
현재. 도로
지우 : ... 잘 있었어?
Insert
- 인도 시장. 장난스런 누군가의 웃음소리. 땀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주는 손.
- 사막의 바람 흔들리는 텐트. 모래 위로 난 낙타의 긴 발자국.
- 히말라야가 보이는 풍경으로 낮에서 밤으로 빠르게 보여 지는 하루.
- 사막 한가운데 모닥불. 거센 바람에 날아가는 망토.
- 텐트 밖으로 빨려들 것 같은 어두운 하늘 위에 황홀하게 박힌 별빛들...
현재. 도로 서울의 불빛들이 그녀의 주위로 희미하게 번지며,
지우 : (가벼운 인사처럼) 종욱씨...
지나는 사람들로 사이로 그녀의 모습 서서히 파묻히며...
S#14. 지우의 일상 몽타주 (지우의 집)
모니터 웹 뉴스 리스트들 내려가면,
인간문화재 김종욱 고희연, 공학박사 김종욱 사기 혐의 피소, 강간미수 김종욱 12년형 확정...
지우 : (턱- 괴고 보며) 휴...
그 뒤로, “먼저 좀 가면 안 될까?” “언니 먼저!” 지혜와 서대령의 늘 그런 말다툼 들리고.
켜있는 모니터 구석으로, ‘추억 속의 첫사랑을 찾아드립니다...’ 첫사랑 찾기 사무소 배너 광고.
(공연장) 리허설 중. 모니터 안으로 무대 안 상황들 체크 되고 있다.
모니터 앞의 지우... 딴 생각 하다가, “어?” 큐- 하는 바람에, 엉망으로 엉키고.
(술집) 연습 후 술자리. 단원과 스태프들 사이로, 지우와 수경도 보인다.
수경,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빈 술잔은 지우 쪽으로. 지우, 아니꼬운 표정 감추며, 술잔 채우는데,
어디선가 우당탕-!! 옆 테이블에서 일어난 술자리 싸움. 남자 둘, 휘청거리며 폼 안 나게 뒤엉킨다.
지우 일행들, 에이~ 짜증스럽게 피하는데,
(소리) : 너, 김종욱이 이 씹새끼!
지우, 흠칫- 놀라서 보면, 비틀대다 지우 쪽 테이블로 와르르- 쏟아지는 취객 종욱.
수경 : 아우- 왜들 지랄이야, 진짜-
(지우의 집 앞) 터덜거리며 들어서는 지우. 잔뜩 부운 얼굴로 나오는 서대령과 마주친다.
지우 : 얼굴이 왜 그래? 아빠 오늘 화생방 했어?
서대령 : 지우, 너... (지우, ?) 최기장이랑 헤어졌다며!
지우 : 아빠 그게... (주춤주춤 물러나며) 그러니까 그게... (뒤돌아, 후다닥- 달아나는 지우)
달아나는 지우와 쫓아가는 서대령. 쫓아가다가 헉헉-대며 서는 옆으로,
담벼락에 붙은 문어발 찌라시, ‘한기준 첫사랑 사무소’ ‘성공보장! 미 해결시, 계약금 전액 환불’
벌써 다리 몇 개가 떨어져 남은 다리들만 팔랑팔랑-
S#15. 첫사랑 사무소. 낮
깔끔하게 차린 사무실. 책장 한 편에 ‘FBI실종수사기록’, ‘첫사랑에 관한 형이상학적 고찰’ 책들 꽂혀있고.
꼼꼼하게 책상 정리하던 기준, 아까부터 타이핑 소리 들리는 어딘가를 보며,
기준 : 세 명 성공시키면 독립할게요.
사무실 끄트머리에서 타닥타닥- 타이핑 치고 있는 매형. 원래가 매형의 작업실로 쓰던 공간이다.
기준 : ...... 두 명...
차라리 눈을 감는 매형. 이때,
(고객1) : 여기가...
문 열리며- 점잖은 인상의 사내가 들어선다.
벌떡- 일어서는 기준. 번쩍- 눈을 뜨는 매형. 두 사람의 얼굴에 기대감이 가득하다.
기준 : 어서 오세요, 고객님. 첫사랑을 찾아 드리는 첫사랑 찾기 사무솝니다.
고객1 : 그러니까 찾아서... 하게 해준다는 겁니까? 첫사랑이랑?
기준 : 예?
cut to-
코너에 몰려 겁먹은 얼굴 하고 있는 기준과 매형 앞으로, 고객2, 소주병 들고 휘청거리며,
고객2 : (술 취한) 첫사랑 찾아서 뭐하게, 응? 너 이 새끼, 찾으면 가만 안 둘 줄 알아!
cut to-
커피 잔을 들고 앉은 우아한 인상의 부인. 그 앞으로, 감탄한 얼굴로 이야기에 빠져 있는 기준.
기준 : 미담이네요. 남편 분의 첫사랑을 찾아주시다니.
고객3 : 그 여자 얘길 가끔 했거든요...
기준 : 그렇게 추억을 공유하며 사는 거죠. 성함도 말씀하시던가요?
고객3 : 이름... 예, 그 년... 아니, 그 여자 이름은...
기준 : (적으며) 찾으면, 어느 분께 연락을 드릴까요?
고객3 : 그냥, 그 자리에서 죽여주세요. (흥분) 내 도망간 두 년 놈들만 생각하면 그냥...
커피 잔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S#16. 거리, 상가. 다른 날. 아침
도로 옆에 자리 잡은 평범한 상가. 1층 ‘은진 약국’ 위로,
유리창에 인쇄된 상호. ‘한준기 첫사랑 사무소’ 안으로, 창문 열렸다 닫히며, ‘한기준’으로 정정된다.
(서대령) : 들어와, 임마!!
S#17. 첫사랑 사무소. 아침
청소하던 중인지, 걸레 들고 있는 기준을 사이에 두고 서 있는 서대령과 지우. 서로를 노려본다.
매형은 없고 기준, 신경 쓰이는데.
지우 : 자 왔지? 됐지? 이제 공연장만 쳐들어와봐. 쪽팔리게. (잽싸게 나가려한다)
서대령 : (잽싸게 잡는다) 너는 임마, 입이 삼 천 개라도 할 말 없어.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는 첫사랑 때문에 혼사까지 차버리고.
지우 : 그래서 데려온 데가 여기야? 그래도 아빠 수준이면 퇴임한 국가정보원쯤은 되겠거니 했는데, 뭐야? 여긴. 흥신소야?
기준 : 흥신소 아닙니다.
서대령과 지우, 보면,
기준 : (약간 쫄았다가) 엄연히 법인 신고에 사업자 등록까지 했구, 나름 틈새시장 사업이지 불법적인 일 하는 곳 아닙니다.
지우 : (약간 미안한)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래서 좀 찾으세요?
서대령 : 백 프로란다.
기준 : (약간 당황) 아니, 백 프로까지는... (서대령, 시선-) 근접하긴 하죠.
고객님께서 가지고 계신 정보만 정확하다면. 많으면 더 좋구...
지우 : 정확하고... 많으면... 찾을 수 있다는 거죠?
기준 : 그럼요.
지우 : 잘됐네요. (매형의 책상 쪽으로 가며) 언제 오시죠? 제가 좀 바빠서.
매형의 자리, 할리퀸부터 귀여니까지, 로맨스 소설들로 가득 차 있다.
지우, 그 앞으로 의자 가져가 앉는데,
기준 : 아, 거기는... (지우, 돌아보면) 우리 매...(‘형’하려다)일은 아니고, 가끔 나와서 일 도와주는 친구예요. 박 실장이라고...
지우, 기준을 본다. 걸레 든 젊은 남자... 일 배우는 비서 느낌인데. 서대령도 당황한 듯, 흠-헛기침.
기준 : 박 실장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자리로 가고)
재킷 걸치고 자리에 앉아 자세 잡는 기준. 나름, 프로페셔널 분위기 나온다. 모니터에 서류 양식 띄우고, 손바닥을 비비더니
기준 : 찾으시는 분 고향이?
지우 : 몰라요.
기준 : 나이가?
지우 : 몰라요.
기준 : 출신학교는요?
지우 : 모르는데요.
서대령 : 장난하나?
지우 : 아, 진짜 모릅니다요.
기준 : (두 부녀를 보며) 성함이?
서대령 : 서한수 대령이요.
기준 : (엉겁결에 일어나 꾸벅) 예비역 한기준 병장입니다. 제 말은... 찾으시는 분 성함이... (대답 기다리는데) ...?
기준, 모니터 밖으로 고개 내밀어 지우 본다. 지우, 망설이는데...
서대령 : 선 볼래? 될 때까지? 우리 부대 12개 사단에 공문 한 번...
지우 : 김! ...
서대령, 그치면, 기준의 타이핑 소리 시작되며, 본격적인 의뢰 해결에 들어가는 기준의 긴장된 얼굴 위로,
(지우) : (결심한 듯) 김. 종. 욱. (그의 이름 세 음절 마다, 그의 날리는 머리칼! 옆모습! 그리고 웃는 눈!)
지우의 목소리와 동시에, 기준의 모니터(혹은 자막으로)에 ‘김종욱 찾기 No1’과 함께, 기준의 정보 입력 시작된다.
그 위로, 기내의 소음 들려오며...
S#18. 인도로 가는 비행기 안. 과거
(화면 아래로, 기준이 입력하는 타이핑처럼, 자막. 1999년 12월 13일. 인도 행 비행기)
좁은 이코노미 석 복도 가운데서 낑낑대며 배낭을 올리고 있는 지우. 스물 한 살의 앳된 얼굴이다.
승무원들 다른 승객들을 돕느라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있고. 지우, 누가 좀 도와 줬음 좋겠는데...
스포츠 모자를 푹 눌러 쓴 옆자리 남자, 책을 얼굴에 묻은 채 독서 삼매경이다.
지우, 안간힘으로 쭉- 팔을 뻗는데 티셔츠가 딸려 올라가면서 배꼽이 드러난다.
“아빠!” 지우, 다급히 셔츠를 끌어 내리는데, 그 소리에 지우 쪽으로 고개 돌리는 남자. 일어나 지우의 배낭을 불끈 들어 올려준다.
지우 : (뒤통수에 대고) 감사합니...
남자, 모자 벗으며 돌아보는데...... 코앞에 나타난 완벽한 그의 얼굴.
지우 : (헉-!!)
스르륵 몸에 힘 빠지며... 쿵-!! 거대한 배낭이 떨어져 지우를 덮친다.
(지우의 회상 속 김종욱은 기준의 시점에서 자신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1인 2역으로,
현실 속 기준이 꿈꾸는 완벽한 남자에 대한 로망처럼 구현 된다)
cut to-
현재 사무실 안. 울려 퍼지는 타자기 소리.
기준 : (타이프 치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턱 선의 외로운 각도. 콧날의 날카로운 지성. 깊고도 낭만적인 목소리...
완전 배우네요... 배우!
지우 : (땅콩 거칠게 까먹으며) 됐거든요. 헐~ (이상한 표정을 지어보임)
기준 : 거 껍질 좀. (그 표정, 보기 싫어서 꿈틀대며) 그래서요?
cut to-
인도, 비행기 안. 부끄러운 듯 배배꼬는 지우.
지우 : 그래서... 사막까지 갈 거예요.
김종욱 : 여자 혼자서 사막을?
기내용 땅콩을 하나 얌전히 집어먹으며 지우, 수줍게 웃으며 고개 끄덕끄덕.
김종욱 : 대단한데요. 가서 뭐하려구요?
지우 : 그게요, 웃지 마세요. 어... 웃으면 안 되는데... (대단한 비밀을 밝히듯) 낙타 타려구요... (말해놓고 저 혼자 웃는다)
김종욱 : 낙타. 그거 생각보다 멀미 많이 한 대요. 키미테 꼭 붙이고 타세요.
진짜로 키미테를 내미는 종욱.
지우 : 키미테. 아... 키미테. 감사합니다.
김종욱 : 그럼, 자이살메르로 가겠네요? 델리에서 자이푸르까지 기차타고 6시간 자이푸르에서 자이살메르까지 12시간.
지우 : 와~ 그걸 다 어떻게 외워요?
김종욱 : 가이드북 한 번만 읽으면 되요. (농담하고 웃는 얼굴) 사막이라... 사실 저 역시 거기가 목적지인데. 같이 가실래요?
주스 마시다 사례 걸린 지우, 놀라 켁켁 거리면, 기준, 능숙한 영어로 승무원에게 물을 청해 건넨다.
컵을 들어 물을 마시는 지우, 찰랑거리는 유리잔 너머로 그의 얼굴을 빤히 본다.
cut to-
조용한 심야의 기내. 군데군데 독서등 몇 개만 옅게 켜져 있다. 독서등 아래서 책을 읽고 있는 김종욱.
옆 자리의 지우, 잠에서 깨며 뒤척이다 힐끔- 그를 훔쳐본다.
조명을 아래로 빛나는 그의 옆모습. 내리깐 눈, 반듯한 코, 날카로운 턱 선에서 목으로 이어지며...
책장을 넘기던 그의 긴 손가락이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 올린다.
지우, 꼴깍......
끈끈한 시선 느꼈는지 고개 돌리는 김종욱. 지우, 눈 감고 잽싸게 자는 척 한다. 꼭 감은 두 눈... 티 난다.
김종욱, 장난으로 계속 지우를 지켜본다. 지우, 눈도 못 뜨고... 몸 뒤척이는 척하며 등 돌린다. 그렇게 자는 척 하다가......
(시간 경과)
어느새 깊이 잠들었던 지우. 어디선가 들려오는 기내방송과 어수선한 소음에 부스스 눈을 뜨는데, 헉!!
코앞으로 바싹- 다가와 있는 김종욱의 얼굴.
김종욱 : (빙긋- 웃으며) 우리, 지금 인도에 있어요.
현재. 첫사랑 사무소
기준 : (키보드 두드리며) 그냥 다 왔다고 하면 되지, 무슨...
모니터 안으로, ‘1999년, 모월 모일, 인도 도착’
기준 : 그래서 그때부터 같이 다녔어요?
지우 : ...... 아뇨.
S#19. 인도 공항 앞.
과거 지우 : 인연이 있다면 다시 만나겠죠.
김종욱 : 그래요, 인연이 있다면...
미소를 지으며 돌아서선 안개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가는 김종욱.
지우, 그를 부를까. 말까. 입술이 달싹거리는데...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해 숨은 가빠지고... 토해내듯 겨우 내뱉은 한 마디.
지우 : 저기요, 이름이...
하지만 김종욱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S#20. 첫사랑 사무소. 현재
기준 : 왜 그랬어요?
지우 : 그냥, 그렇게 쉬우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그가 정말로 내 운명이 맞다면... 한 번은 꼭, 다시 만날 거라고 믿었으니까요.
기준의 타이핑, 툭- 멈추고. 신문 넘기던 서대령도 정지.
그 위로, “멀어져 가네. 내 마지막 운명...” 노래 흐르며,
S#21. 뮤지컬 공연장. 다른 날. 낮
앞 장면의 노래 가사 이어지면 ‘채리’(22.여)가 부르는 솔로. 테크 리허설 현장이다.
객석에서 심각하게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연출과 스태프들. 모니터 옆의 지우와 우형도 보인다.
솔로로 부르는 채리의 노래, 가수 맞아? 싶을 만큼 듣는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음정. 박자. 가사.
신경을 곤두세우고 입모양으로 채리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지우,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부분에서 채리, 가사를 잊고 음음음 랄랄라 하며 웃어넘긴다.
아! 좌절하며 고개를 푹- 숙이는 지우. 옆을 보면, 우형, 채리의 눈웃음에 덩달아 배시시-
지우 : (우형 보며) 좋아 죽지? (사이) 그러다 진짜 죽는다!
우형, 표정 관리하고. 지우, 무대 위의 채리 걱정스럽게 보는데,
(수경) : 저거 언제까지 듣고 있어야 돼?
의상 갖추고 들어서는 수경.
수경 : 자기 꼬꼬마 부를 때만해도 저거 보단 나았지 싶어.
지우 : (약간 당황하며) 네? (애써 태연하게) 선배님은 언제 적 얘기를...
수경 : 왜- 엄연한 데뷔곡인데. 하긴 1집이 끝이지? (무대를 향해 가고)
지우 : (창피해서 더 크게-) 1막 합창 갑니다!!
“리허설 시작합니다.” 스태프들 분주해지고, 다시 시작되는 리허설.
조감독 : 감독님. (지우, 보면) 꼬꼬마가 뭐예요?
지우 : 시끄러, 임마.
<라스트 쇼>의 ‘데스티니 미드나이트’ 오마담(수경)과 쇼걸의 합창이 이어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지우.
S#22. 첫사랑 사무소. 낮
휑했던 사무실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인도의 대형 지도와 각종 포스트잇들, 프린트 자료들.
마치 ‘프리즌 브레이크’의 스코필드 사무실 같은 복잡하고 치밀한 느낌.
기준 : 비행기를 타고 델리까지... 비행시간 총 일곱 시간 반... 오사카에서 잠깐 트랜스퍼로 갈아탔으면... 일본 내 직항기.
그 옆에 더듬이 머리띠를 한 은진이 파란 펜으로 기준이 쓴 오사카, 델리, 뭄바이 등을
옥상카, 델렝. 뿜빠이등으로 획을 첨가해서 단어를 괴상하게 만들고 있다.
델리와 뭄바이 공항을 두고, 기준, ‘델리’에 체크하며, 빨간 선으로 직항로 그린다. 거대한 바다를 직선으로 가로지르는 빨간펜.
기준 : 오사카에서 출발하는 직항기면...
책상 위의 항공사별 모형 항공기들 나란히 보이고, 그 중 ‘ANA’기 모형 꺼내 벽에 붙인다.
동시에 옆으로 프린트 되어 나오는, ‘1999년 **음대 학기 일정’
날카롭게 들여다보는 기준, 최종 기말시험 일자에 동그라미 하며,
다른 프린트 ‘ANA 직항기’ 일정과 비교해 근접한 날짜에 체크! 벽에 붙은 ANA기 아래, ‘1999년 12월 13일’ 선명하게 적는다!
기준 : (뿌듯하게 보며) 후-
이때, 들어서던 매형, 벽면 보고 흠칫- 다가와 은진이 안아 들고 “호-” 감탄해서 들여다보다가,
별표 다섯 개 중요 표시된 지명 하나를 본다.
매형 : 짜이쌀멩류?
기준 : 예? (벽 한번 보고 은진 한번 보고) 자이살메르요, 자이살메르.
기준, 어느새 컴퓨터 앞에 앉아 ‘ANA’기 고객명단 파일에 접속하며,
기준 : 인도 여행객들의 필수 코스죠. 타르 사막, 낙타 트래킹...
모니터로, 항공사 홈페이지가 뜨고.
카메라, 인도의 자이살메르의 사진 속으로 다가가며.
S#23. 인도, 자이살메르.
호텔 카르마에서의 첫째 날. 회벽에 붙어있는 이구아나.
인도인 가이드를 따라 호텔 복도를 지나는 지우. 싱그러운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오랜 여행에 지쳤는지, 완전 초췌한 모습이다.
지우, 당장이라도 눕고 싶을 만큼 피곤한 몸으로 가이드 따라가는데,
지우 : 아빠야!!
복도에 넘어져 있는 지우 앞으로, 이구아나 한 마리가 태연히 창문 밖으로 빠져나간다.
지우, 발목이 제대로 꺾였다. 통증으로 얼굴 구기며 일어나려는데 부웅-! 지우의 몸이 공중으로 들어 올려진다.
지우, 놀라서 보면 어디선가 보았던 외로운 각도의 턱선. 김종욱이다!
김종욱 : 급할 때 아빠 찾는 사람은 흔치 않죠. (가볍게 웃으며) 잘 지냈어요?
지우, 놀랍고 창피한 마음에 김종욱의 품 안에서 몸을 웅크리며, 배시시- 웃는다.
S#24. 인도, 호텔 카르마 숙소 안. 같은 날.
사뿐히 지우를 내려놓은 김종욱, 말릴 새도 없이 신고 있던 신발과 양말을 벗긴다.
지우 : (당황하며) 저... 저기요. 거긴 안 되는데. (순간- 김종욱 발목을 비틀면) 악-!!
순식간에 편안해 지는 지우... 문득- 차가운 느낌에 고개 들어 보면,
찬물을 받은 대야에 지우의 발을 담그고 손으로 물을 끼얹어주는 김종욱.
발 아래로, 고개 숙이고 있는 김종욱을 황홀하게 바라보고 있는 지우. 작은 방 안에 쪼르르... 물 떨어지는 소리.
김종욱 : 아무래도 낙타 타는 건 무리겠어요. 하루 이틀은 많이 불편할 텐데... ...... 제가 같이 있어드릴까요?
헙! 하는 지우, 이때, 노크 하며 고개를 내미는 가이드. 인도식 영어로 시간이 다 됐다며 종욱을 재촉한다.
종욱, 잠시 기다라고 말하고, 지우 보면,
지우 : 아뇨. 이렇게 다시 만나겠죠. 우리가 정말...
종욱 : (지우의 말을 이어 받아) 인연이 있다면?
종욱, 소리 없이 웃으며 돌아서 나간다. 지우, 붙잡을까 말까 갈등하다 결국 포기한다. 문이 닫힌다.
(시간 경과)
침대에 걸터앉은 지우, 수화기를 들곤
지우 : Could you tell me... when he comes back? Really? he already checked out this morning?
(저기 그 남자 언제 돌아오나요? 네? 벌써 체크아웃 했다구요?)
침대에서 마구 구르는 지우.
지우 :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지.
(시간 경과)
깊은 밤. 잔잔한 음악소리가 들려오는 지우의 방. 울다 지쳐 잠든 지우, 노크 소리에 눈을 뜬다.
문을 열자 왈칵 들어서는 인도인 가이드, 축 늘어진 남자를 부축하며 들어온다. 김종욱이다!
가이드 : (지우의 표정 보고) You know this man? I have never seen anyone before who got travel sick on the camel.
(나, 낙타 타고 멀미하는 사람 처음 봤어.)
가이드, 털썩- 종욱을 침대에 눕히더니 나간다. 침대 곁에 앉은 지우, 가만히 종욱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종욱, 속이 좋지 않은지 인상을 찌푸린다. 인상을 써도 근사하다. 가까이서 보니까 더 잘생겼다.
숨만 쉬어도 멋진 이 남자… 사람이 아닌 듯 아름답다. 지우, 살며시 그의 뺨에 손을 대본다. 침이 꿀꺽!!
지우, 더욱 조심스럽게 손으로 얼굴을 만져본다. 지적인 콧날. 깊고 선해 보이는 눈매. 외로운 각도의 턱선.
순간, 턱하고 지우의 손을 잡는 종욱의 손. 너무 놀라 흡! 하고 숨이 멈춰버린 지우.
김종욱 : (눈 감은 채로) 이대로 잠시 만요...
두 사람, 그렇게 정지한 채로 사막의 밤은 깊어간다.
S#25. 첫사랑 사무소. 밤
앞 장면의 밤 하늘, 첫사랑 사무소의 창밖으로 연결되며 어둠 속.
사무실 한 쪽에 환하게 켜진 모니터 앞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기준. 화면 가득, ‘error' 메시지가 깜빡깜빡-
기준 : (괴로워하는) 아 흑-
그 소리에, 잠에서 깨는 매형. 긁적이다가 시계 보고,
매형 : 아직두야? 백날 붙들고 있어야 뭐 해, 직접 찾아가면 될 걸. 여행사에서 왔다고 하면, 협조 안 되나?
기준 : 엄연한 공갈에 사깁니다.
매형 : 전직 직원이잖아. 혹시 알아? 안 짤렸음 점장까지 됐을지? 나, 한기준 점장이다! 생각 하고, 가는 거야!
기준 : 매형 알잖아요. 저 거짓말 못해요.
매형 : 당당하게! 저돌적으루다가!
기준 : 진짜 못 한다구요.
매형 : 나 실크로드 한 점장인데!!
S#26. 항공사 사무실. 낮
전 장면과는 전혀 다른 강단 있는 모습의 기준.
기준 : 그 동안 실크로드가 여기랑 거래한 지가 얼마야. 이런 정도의 고객 정보는 요청하면 즉시 공유되어야지 않나?
꼭 점장인 내가 직접 와야 돼? (누군가 커피 가져다주자) 어유, 감사합... (하다가)
정신 차리고, 거만한 자세로 커피 마신다.
항공사 : 찾으시는 출국가가...
기준 : (후룩-마시며) 1999년. 인도.
S#27. 항공사 사무실 앞 복도. 낮
서류 파일을 들고 위풍당당하게 나오는 기준.
항공사 : (기준 뒤에 대고) 안녕히 가십시오, 점장님.
기준, 뒤도 안 돌아보고 거만하게 손만 까딱. 문 닫히는 소리 들리면 후루룩- 다리 풀린다.
갑자기 초조함 몰려오며 들킬 새라 빠르게 걸어가는 기준. 걸어가며, 서류 속에서 고객명단 확인해 본다. 수많은 이름들 사이로,
기준 : 김종욱...... 김종욱...... 있다!!
S#28. 뮤지컬 공연장 로비. 낮
공연장 안으로 이어진 출입구에서 지우가 철수하는 세트팀장을 급히 따라 나온다.
지우 : 팀장님, 팀장님!
팀장, 귀찮다는 듯 걸음 멈춰 선다. 팀원들 먼저 나가고.
지우 : 부탁드릴게요. 엘리베이션 좀 교체 해 주세요. 저대로는 위험해요.
세트 : 서감독, 말 진짜 이상하게 하네? 누가 들으면 우리 책임인 줄 알겠어.
지우 : 제 말씀은... 아시잖아요. 공연 두 달 넘게 버텨야 되는데, 너무 낡았어요.
세트 : 그러니까, 나한테 이러지 말구, 회사에다 직접 말해. 예산 집행이 안 되는데 날 보고 어쩌라는 거야.
세트팀장, 나가버린다.
지우, 따라 나가려다 관둔다. 로비 한가운데 서서 답답한 얼굴.
지우 : (지르듯) 씨발, 진짜!!
터뜨리고, 다시 공연장 들어가려는데,
지우 : ??
언제 왔는지 문 앞에 서서 바짝- 얼어있는 기준.
cut to-
공손하게 상황 보고 하는 기준.
기준 : 핸드폰이 꺼져 계시더라구요.
지우 : 그렇다고 여길 오시면...
기준 : 댁으로 갈 걸 그랬나요?
지우 : 아뇨! 그게 아니라...
프레스 리허설 때문에 로비에 사람들 왔다 갔다 하고, 무전에, 이것저것 물어오는 스태프들.
지우, 정신이 없다.
지우 : 미안한데, 오늘은 그냥- (하다가, 아예-) 아무래도 안 되겠어요, 죄송합니다.
기준 : 예? 갑자기 왜...
지우 : 아시겠지만, 아빠 때문에 할 수 없이 간 거지, 전 처음부터 별로였어요. (가려다) 계약금은 안 돌려주셔도 괜찮아요.
아빠한테는 제가 말할게요. (급히 돌아서는데)
기준 : (자존심 상한) 누가 돈 때문에 이럽니까?
지우, 멈춰서 보면.
기준 : 달랑 이름 하나로 시작했어요. 아직 찾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온 거잖아요.
지우, 이 남자가 왜 이래... 당황스러운데,
지나가던 사람들, 기준 멘트에 힐끔-거리지만 아직은 대수롭지 않게 지난다.
지우 : (신경 쓰여서)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나중에 전화로...
기준 : 전화해도 안 받으면서! 저요, 이대로 포기 못 합니다!
결정적 멘트! 일순- 조용해지는 로비... 이것은 영락없는 사랑싸움이다.
사람들, 서로서로 귓속말하며 그 둘을 지켜본다.
소문이 퍼지는 걸 뻔히 보고만 있는 상황. 지우, 미치겠는데,
지우 : (조용하라는 듯 목소리 죽여) 이봐요! 여기 제 일터예요.
기준 : (눈치 없이 계속한다) 겁나는 건 이해하지만 일단 시작한 거 끝까지 가봐야죠. 안 그럼 전 뭐가 됩니까.
이런 말 안 하려고 했지만 저, 지우씨가 처음이라구욧!!
지우 : (허걱!)
사람들도 다들 허걱!! 기준, 화난 지우 표정에 움찔-
지우 : (벙 쪄서) 나 진짜... 어이가 없어서... 뭐 이런...
기준, 서류철을 손에 쥐어주고는 종종 걸음으로 걸어 나간다. 가다 돌아서서 로비가 울릴 만큼 쩌렁쩌렁하게.
기준 : 저 이래 뵈도 인맥도 넓고... 괜찮습니다. 지우씨, 실망시키지 않을 자신 있어요. 기다릴게요. 연락주세요.
저 혼자 의기충전해진 기준, 양 팔까지 흔들며 인사한다.
사람들, 오~ 의왼데 하는 얼굴로 지우 보고 기가 막힌 지우, 기준이 나간 쪽을 바라보며 서 있다.
(기준) : 그래, 재하야- 오랜만이다.
S#29. 기준의 차 안, 낮
주인 닮아 깔끔한 차. 신호에 걸려 정지해 있다.
기준, 브루투스 이용해 전화를 걸고 있다.
기준 : 그때 경찰서에서 보고 진짜 반가웠는데. 근데, 재하 너, 그때 국정원 다닌다고... 아... 식약청으로 옮겼어?
(생각하니 화나는) 왜? 맨날 인스턴트만 먹던 놈이 왜! 식약청엘 가냐고!
끊고- 괴로워하는 기준. 손에 들린 동창회 명부 보면 동사무소 박훈에 엑스표. SK텔레콤 안세호에 엑스표. 국정원 고재하에 엑스표.
뒤에서 빵빵 거리는 소리. 정신 차리고 다시 출발하려는데 전화 걸려온다.
기준, 후다닥- 받으며,
기준 : 미안하다, 재하야. 식약청도 좋지. 근데 국정원에 아는 사람... (사이) 여보세요? (깜짝 놀라) 네... 저녁이요?
S#30. 한식집. 저녁
날 선 군복 차림의 서대령, 앉아 있다. 맞은편에 잔뜩 쫀 기준 앉아 있다.
서대령 : 들지.
기준 : 네? 네...
서대령 : 잘 좀 부탁하네. 자네도 장차 딸 키워보면 알겠지만, 것들도 여자라고 도통 이해하기가 어려워. 술 한 잔 하지.
기준 : 아 저는...
서대령 : 왜 술 안 하나?
기준 : 아니, 뭐 그렇다기 보단... 건강에 별로 이로울 게 없어서... (말을 어떻게 끝내야 할지 고민하다) 말입니다.
서대령 : (도량 있게) 그래, 건강 생각 하면 안 마시는 게 낫지. 젊은 사람이 생각이 바르구만. 그럼 운동은 좀 하나?
기준 : 전 별로... 땀나는 거 싫지 말입니다.
서대령 : 그럼 뭘로 건강은 챙기나?
기준 : 주로 비타민을 먹습니다.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는 서대령.
얌전하게 냅킨 펼쳐서 턱 앞에 받히던 기준, 왜 그러시냐는 듯 보면,
서대령 : (사이) 허험. 힘들지? 내가 퇴임이 얼마 남질 않아서 말이야. 올 해 안엔 꼭 좀 보내고 싶은데
그 김종욱이란 놈이 걸림돌이란 말이야. 만나서 잘 되던 깨지던 좌우당간 결정을 봐야지 안 되겠어.
우리 지우가 봐서 알겠지만 심성이 좀 여려야지.
기준 : (그럴 리가) 네? 네. 좀 여리십니다.
insert
사무실에서 땅콩 거칠게 까먹으며 이상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지우.
서대령 : 엄마 없이 커서 그러나, 어릴 때부터 소심한 데가 있어요.
insert
무대 로비에서 지우 소리 지른다. “씨발, 진짜!!”
기준 : 네. 참 소...심... 하시지 말입니다.
서대령 : 그래서 말인데. 이거 받게.
오래된 다이어리를 내미는 서대령.
기준 : 이게 뭡니까?
서대령 : 지혜가 찾았는데 인도 다녔을 때 기록했던 건 가봐. 일기장은 아니고 다이어린데. 나는 안 봤어.
나는 절대 안 봤는데 자네한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힌트라도 찾아보라고. 우리나라에 김종욱이 어디 한 둘이야.
기준, 천금을 얻은 듯하다.
기준 : 감사합니다. 아버님. 아니 대령님. 감사합니다.
서대령 : 그러니까 지우가 포기하고 싶어 해도 지치지 말고, 자꾸 극장으로도 찾아가고. 집에서는 내가 쫄 테니까.
안 되면 되게 하라. 대한민국 군인 정신으로, 알겠나?
기준 : (의기충전해서 군대식으로) 네! 알겠습니다!
서대령 : (문득 얘도 남자라는 생각에) 근데 자네는 연시가...
기준 : 네?
기준, 서대령 올려다보며 얌생이처럼 젓가락으로 한 톨 한 톨 얌얌얌.
서대령 : 아닐세. 밥이나 먹게.
S#31. 첫사랑 사무소. 밤.
스탠드를 켜서인지 고즈넉한 분위기의 사무실. 마법 상자를 열 듯 조심스럽게 다이어리를 열어보는 기준.
깨알 같은 글씨로 적힌 짧고 간결한 일정들.
12월 13일 pm 6:00 인도 델리 도착 12월 18일 오전, 갠지스 강 투어
12월 28일 자이살메르로 이동 (기차로 26시간 소요) 12월 29일~31일 발목 부상으로 여행 불가
“발목 부상” 대목에서 기준, 안으로 빨려 들어갈 듯 뚫어지라 보면
S#32. 과거. 인도, 호텔 카르마. 둘째 날.
붕대가 감겨 있는 지우의 발목. 풍경이 내다보이는 식당(가디 사가르 호숫가 근처)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지우와 김종욱.
들려오는 음악소리. 시원하게 부는 바람.
지우 : 남들은 모르는 습관 있어요? 저는 잘 때 음악을 켜두는 습관이 있거든요. 너무 조용한 게 싫어서요.
종욱 : 음... 저는 스텐드 끄고 열 세면 자요. 그리고 잠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몰라요. (사이) 업어 가지 마세요.
지우 : (순진하게 정색) 제가 어떻게요.
종욱 웃자, 지우 부끄러워서 바로 잡히는 잔 들어 마시는데,
지우 : 써-!
김종욱 : 사막이라 여기 맥주, 얼마나 독한데. (레모네이드 부어주며) 샨디에요.
지우 : (마시며, 시선은 김종욱 향한 채) 달콤하다...
카르마 밖으로 인도의 석양이 진다.
S#33. 과거. 인도, 호텔 카르마 숙소 안. 밤.
(종욱) : 전 소파에서 잘 게요.
종욱, 스탠드 아래, 1인용 소파 위에 인도풍 천을 펼친다.
지우 : (살짝 아쉬워서) 앉아서 자면 아침에 다리 아프지 않아요?
종욱 : 괜찮아요.
웃어 보이며 스탠드 아래에서 책을 펼치는 종욱.
지우, 침대에 돌아누워 CD를 켠다. 조용한 음악이 흐른다. 눈은 말똥말똥 숨은 쌕쌕 침은 꼴깍.
제 심장박동 소리가 너무 큰 것 같아 죽어버릴 것 같은 지우. 음악소리를 키운다.
지우 : 저기요. 한국엔 언제 돌아가요?
종욱 : 모레요.
지우 : 그럼 내일은 델리로 가야하는구나.
종욱 : 그렇죠.
지우 : 아, 그렇구나.
땅이 꺼져라 한숨 쉬는 지우.
지우 : 여기서 한국으로 바로 가는 비행기는 없죠?
종욱 : 그렇죠. 공항이 없으니까.
지우 : 아, 그렇구나. (소리 나지 않게 발버둥 친다)
잠시 후 - 스탠드 끄는 소리에 지우, 눈을 반짝 뜬다.
지우, 누운 채로 손가락으로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맨발의 지우, 숨을 죽이고 종욱이 자고 있는 소파로 다가간다. 잠든 종욱의 모습은 정말이지… 사람이 아닌 듯 아름답다.
지우, 종욱의 얼굴을 향해 가까이 가는데 갑자기 CD가 딸깍, 정지한다. 놀라 웅크리는 지우, 종욱은 눈 감은 채 꼼짝 않고 있다.
완전한 침묵 속에서 지우, 용기를 내 종욱에게 키스한다. 종욱, 그대로 있다.
한번만 더…. 딱 한번만 더. 다시 키스하는 지우.
순간, 종욱의 입술이 움직인다. 너무 놀라 눈을 번쩍 뜬 지우, 입술을 떼지도 못하고 붙이지도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른다.
종욱의 손이 지우의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는 그 때, CD 트랙 바뀌며 PLAY 되는 로맨틱한 음악. 지우, 다시 눈을 감는다.
두 사람, 사막의 별빛을 받으며 깊게 키스한다.
S#34. 뮤지컬 공연장. 낮
공연이 임박한 무대. 완성된 무대를 돌아다니며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는 지우.
지나는 스태프와 단원들, 다들 한 마디씩- “오늘은 남자 친구 안 오나?” , “신파멜로가 따로 없던데.” , “좀 봐줘... 귀엽던데...”
지우 : (버럭-) 아니라니까!!
사람들, 흩어지며... “그러게 하지 말라니까... 한참 예민할 시기에...”
지우, 말을 말자... 세트 점검하려고 무대 시트 든 서류철 여는데,
지우 : 뭐야, 이거...
보면, 무대 시트가 아니라, 기준이 주고 간 김종욱 찾기 계획서.
지우 : 돌겠네, 진짜... (무전기에 대고) 조감독! 왜는 무슨... 시트 가지고 빨리 튀어 와, 자식아.
조감독 기다리던 지우. 기준의 시트 들여다보는데, 엑셀로 컬러 도표까지. 꼼꼼과 세심의 결정체.
이때, 무전기 울린다.
지우 : 뭐야, 당장 튀어오라니까 왜 무전질이야.
(조감독) : (무전) 남자친구 분 오셨는데요.
아씨... 지우, 쪽팔리는데, 주변에선 속 모르는 환호 소리...
S#35. 뮤지컬 공연장 앞. 낮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지우를 기다리고 있는 기준. 공연장을 나오는 지우, 마뜩찮은 표정으로 다가오며.
지우 : 또 왜요?
기준 : (깍듯이) 지난번엔 당황스러우셨죠?
지우 : 네?
기준 : 지우씨 입장은 생각 못하고 제가 너무 마음이 급해서... 이제부턴 조심하겠습니다.
지우 : 뭐... 그래주시면 좋지만...
삐죽삐죽- 어색해 하고 있는 둘. 역시나 멀리서 보면, 싸우고 난 연인들의 어색한 화해 장면 같다.
이때, 주차장을 돌아 나가는 극장 버스. 버스 창문 열리며,
조감독 : 감독니임~ 채리 땜에 프레스 회견장 장소 바뀌었대요. 스위트 연습실로 오세요. 저희 먼저 가 있을게요~
휘둥그레지는 지우.
창문 마다, 머리 내민 단원들, 휘파람 날리며 제각각 한 마디씩- “잘 어울린다.” “서 감독, 국수 먹여줘.” “오늘 큐 안 불러도 돼.”
지우 : 야!! (쫓아가지도 못하고) 미치겠네...
기준 : 그럼... 찾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 남자, 상황 뻔히 보고도 혼자 자기 차로 간다.
지우 : 저기요...
기준 : (보면) ?
지우 : 사무실 가시죠? 약수동.
기준 : 예, 그런데요?
S#36. 거리, 차 안. 낮
기준의 차, 주홍색 신호등에 부드럽게 정차-하고.
지우 : 서면 어떡해요, 밟아야지!
기준 : 신호가 그렇잖아요.
지우 : 그러니까 밟았어야죠!
기준 : 어디 배달 갑니까? 거 참... 이런 분이 어떻게 인도에 갈 생각을 하셨어요?
지우 : 네?
기준 : 그렇잖아요. 뭐, 마음의 평화, 그런 거 찾는 사람들이 가는 곳 아닌가.
지우 : (잠시 생각하며) 사진을 하나 봤어요. 어떤 풍경 사진이었는데, 보는 순간 뭔가... 운명적 기대감 같은 게 생겼달까.
여행사에 가서 물어봤더니, 인도래요.
그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지우의 표정.
기준, 지우의 그런 모습 새롭게 보는데...
지우 : (바뀐 신호 가리키며 멀뚱히) 안 가요?
S#37. 그룹 스위트 연습실. 늦은 오후
단상 앞으로 연출과 주연 배우를 비롯한 중심 배우들 앉아있고. 기자들과 방송사 카메라들, 질문과 사진촬영에 한창이다.
채리 : 저희 스위트 멤버들도 제가 뮤지컬 하는 거 너무 너무 부러워해요. 근데 부족한 것도 많구,
또 현장에서 제가 제일 어리기도 하고, 다른 것 보다두, 연습 안 늦구, 선배님들, 감독님들 말씀 잘 들으려구요.
연출 : 말은 이렇게 해도, 감각을 타고 난 친구죠. 무대 경험도 많고......
쇼케이스 진행되는 거 확인하고, 나가는 지우. 맞은편으로 수경과 마주친다.
지우 : 왜 여기 계세요?
수경 : 저 사람들이 뭐, 나 보러 왔게?
그렇게 말하는 수경이 조금 쓸쓸해 보이는 지우.
지우 : 커피, 드실래요?
S#38. 그룹 스위트 연습실 로비. 늦은 오후.
자판기 커피 내미는 지우.
지우 : 죄송해요. 라떼가 아니라서.
수경 : 됐어. 먹다 버리지, 뭐. (마시며) 자기, 애인 생겼다며?
지우 : 네?! 누가 그래요? 연출님이 그래요? 조명감독님? 세트팀... 우형이 이 새끼!!
수경 : 다-
지우, 머쓱-해지고.
지우 : 애인 아니에요. 그냥, 일 때문에 만난 사람이에요.
수경 : 그러다 사귀고 그러는 거지 뭐, 남녀사이 별 거 있어?
지우 : 아니라니까요! 그 사람하고는 절대! 절대! 아닙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머리 모양, 말투, 옷 입는 거 하며 다 맘에 안 들었어요.
그뿐이게요? 얼마나 소심하고 쪼잔한지 심심하면 삐지고 요만한것 가지고도 계속 따지고 거기다 깔끔은 또 얼마나 떠시는지..
아우- 그런 사람, 용건만 끝나면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요!
무덤덤하게 듣고 있던 수경, 지우에게, 어딘가 보며 턱짓-
지우, 돌아보면... 바로 뒤에서 지우가 두고 간 가방 들고 서있는 기준.
지우 : ......!
기준 : (그 자리에 가방 내리며) 두고 가셨길래...
그대로 돌아서서 나간다.
지우 : 저기요!
수경 : 잘 마셨어. (남은 컵 두고 일어나며) 근데, 맛없다.
유유히 사라지는 수경.
지우, 뭐, 저런... 보다가, 기준 쪽으로 급히 달려 나간다.
S#39. 기자 회견장 앞. 늦은 오후
허겁지겁 뛰어 나오는 지우. 하지만 이미 기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지우 : (찾아보는) 한기준씨~ 한기준씨~
지우, 답답하고 미안하고...
지우 : 야- 한기준!!
괜히 허공에 대고 화풀이하는 지우... 하필이면... 지우, 속상해서 거리에 있던 휴지통 뻥!! 차는데,
지우 : !!
날아간 휴지통에 가게 앞 천막 지지대가 부딪쳐 미끄러지며, 받치고 있던 천막 무너지며 길가에 세우둔 자동차 덮치고.
도난 경보등 시끄럽게 울리며... 여기저기 개 짖고...
Insert.
인터넷 검색 사이트, 뉴스 창에 오른 기사. ‘**뮤지컬 스태프, 공연 전날 기자 회견장에서 행패. 출발부터 삐걱?’
또 다시 오른 기사. ‘**라스트 쇼의 첫 공연. 오직 채리의 명연기만이 빛났다.’
S#40. 차 안. 다음 날. 낮
운전하는 매형의 옆으로, 나란히 출근하고 있는 기준.
차 안에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은진의 발레복, 인형, 만화책들, 먹다 남은 과자 봉지 하며... 난리다.
불편하게 앉아 옷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 터는 기준. 혹시나 하고 핸드폰 확인해 보는데, 지우의 연락은 없었다.
매형 : 아직?
기준 : ......
매형 : 그 여자 말야... 어때? (기준, 보면) 궁금해... 솔직히 말하면 말야, 이번에 새로 구상하는 소설의 모델이거든.
굉장히... 순수한 사람 같애.
기준 : (혼잣말로) 퍽이나.
매형 : (빠져들며) 키야- 내 생각엔 말야, 인도 같은 여자일 것 같아. 뭐랄까, 눈빛에 슬픔이 영롱한 게... 신비롭고 청초하면서...
(기준, 하품-하고) 매혹적인 뭔가 그...
매형의 차가 사무실에 가까워지는데, 문도 안 열린 상가 앞으로, 기준을 기다리고 있는 지우. 예의 그 점퍼 차림.
매형 : 저 남자 누구야?
S#41. 첫사랑 사무소. 오전
아무렇게나 앉아서, 앞에 놓인 커피 마시다 옷에 흘리고, 또 아무렇지 않게 툭툭- 닦아내고...
작업 준비하며 그런 지우를 관찰하는 매형.
기준 : (삐졌다) 안 오실 줄 알았더니...
지우 : (잠시 망설이다) 오래 알던 선배님인데, 뭐 하나 꼬투리 잡히면 계속 놀리셔서... 자세한 얘기 하고 싶지 않았어요.
(사이) 미안해요.
기준 : (보다가) 그 말, 이제부터 적극 협조하겠다는 걸로 알겠습니다.
기준, 김종욱 리스트 내밀면 넘겨보며 놀라는 지우.
지우 : 이 사람들을 전부 다? 저기... 사진 찍어다 주시면...
기준 : 안 되죠. 십 년이면 인상 완전 변합니다. (매형 얼굴과 자신 얼굴 비교하며) 삼십대와 사십대, 차이 확 나죠?
지우 : 그렇다고 제가 일일이 따라다녀요? 하는 일 관두구?
기준 : 공연 올라갔으니까 월요일엔 쉬잖아요. 정보도 빈약한데, 의지까지 희박해서야 되겠습니까?
지우 : 그래도 여기까지 찾아왔잖아요. 시작이 반 아닌가? (매형 쪽 쳐다보며) 안 그래요, 박 실장님?
매형, 자기 말하는 줄 모르고 있는데...
기준 : (당황해서) 박 실장님... 어이- 박 실장!
매형 : (두리번거리다가) 나?
기준 : (말 돌리는) 아니 그래서, 협조 한다는 겁니까, 안 한다는 겁니까?
지우 : 한다구요, 해! 해!
옥신각신하는 두 사람. 그런 두 사람을 보는 매형의 벙진 표정 위로,
(지우) : 그 사람, 내가 못 알아보면 어쩌죠?
S#42. 김종욱들. 몽타주 (카페. 다른 날)
(기준) : 그 사람이 먼저 알아보면 되죠.
긴장한 표정의 지우.
다른 쪽으로 손님인 척 하며 상황 지켜보고 있는 기준. 신문 너머로, 파이팅! 보내고.
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김종욱. 지우, 대번에 아니다 싶은데,
김종욱 : (지우 보자) ... 혹시?
지우 : ??
김종욱 : (감격해서 다가오며) 세상에... 내가 널 얼마나...
지우 : 누구세요? 왜 이래요?
(소리) : 오빠~!!
다른 쪽에 있던 여자 일어난다. 김종욱, 바로 그리로 가며, “어유- 못 알아봤다, 야. 살 쪘니?”
(지우) : 지금의 날 보고, 실망할 수도 있고.
(성형외과. 다른 날)
성형외과 전문의 김종욱. 컴퓨터 모니터로 지우의 전신, 비포 앤 애프터 보여주며,
김종욱 : (마우스 움직이며) 가슴은 더... 키워야겠죠?
모니터 속 지우의 가슴에 클릭질-
(지우) : 아니면, 내가 그 사람한테 실망하면 어떡해요.
(농촌 다방. 다른 날)
김마담 : 종욱씨 왔어?
다방 앞에 경운기 세워져 있고. 들어서는 시골 노총각 김종욱, 지우 보자 다가와 앉으며,
김종욱 : 새로 온 거여?
기준, 급히 달려와, “어이- 아저씨”
(뮤지컬 공연장 앞. 다른 날)
커다란 뮤지컬 포스터가 붙여진 공연장 앞.
공연을 보고 나오는 관객들 사이로, 달려 나오는 지우를 픽업하는 기준. 지우, 차에 오르면 급출발하는 자동차.
기준 : 왜 이렇게 늦었어요? 잘못하면 배 놓치겠어요.
지우 : (숨차하며) 알죠? 공연 시작되고 나서, 하루도 못 쉬었어요. 언제까지 이래야 되요?
숨 고르고, 가방 부스럭 거리더니 호두과자 꺼내 우물거린다.
기준 : 아니, 지금 어디 꽃구경 갑니까? (신경 쓰이는) 에이- 거, 흘리겠네. 어-어? 팥 떨어지잖아요!
지우, 대충 훌훌- 털어내고는, 두어 개 쥐어서 기준 앞에 건넨다.
지우 : 기다리느라 밥도 못 먹을 거 같아서...
기준 : (질색하는) 호두과자 안 먹습니다.
지우 : 에이- 거. 혼자 먹기 좀 그렇잖아요.
기준 : 그럼 안 드시면 되겠네.
지우, 쳇! 혼자서 우물우물 먹고. 흘리고. 털고...
기준 : 아, 거! 흘리지 좀 말아요!
(섬. 선착장)
떠나는 배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지우.
지우 : 마지막 배 떠난 거예요? 어떡해... (기준 노려보며) 일부러 그런 거죠!
기준 : 네?
지우 : 일부러 그랬어. 일부러... 남자들 다 똑같다더니...
매표소 구멍 안에서 고개를 내미는 판매원.
판매원 : 아가씨~ 표 받아요.
지우 : 네? 네...
S#43. 도로. 다른 날. 낮
멈춰선 차 안에서 일정표를 들여다보는 지우와 기준. 거의 막바지다. 지우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기준 : 원래 주인공은 등장이 늦잖아요.
지우 : 끝까지 안 나오면요?
기준 : 지우씨 같음 어떡할래요? 지우씨 공연에서 주인공이 안 나오면?
지우 : 그럴 일 절대 없죠!
기준 : 잘 아네요.
기준, 차에서 내리는데... 멈칫- 지우, 옆에서 따라 내리며,
지우 : 왜요?
보면... 주택가 상갓집에 걸려있는 조등. 지우, 순간 말문이 막힌 채 그 자리에 서 있다.
기준 : 내가 갔다 올까요? 아니, 우리 그냥 가요.
지우 : 괜찮아요. (기준, 보면) 꼭 해피엔딩이라고는 안 했잖아요.
(시간 경과)
기다리고 있는 기준. 초조해서 차 밖에 나와 서성이고 있는데, 저쪽으로 걸어 나오는 지우가 보인다.
지우 멀리서, 아니라고 고개 흔들고.
기준 : 휴...
다행이다 싶은 마음에 저절로 환해지다가... 다시 흠흠- 정색하며,
기준 : 얼른 타요. 한 군데만 더 가고 마무리 합시다.
지우 : 오늘은 여기까지 할래요.
기준 : 가까운 데라... (하다가)
보면, 지우의 표정, 기준이 본 적 없는 쓸쓸한 얼굴이다.
기준 : (보다가) ...가요. 데려다 줄게요. (차에 타려는데)
지우 : 먼저 가요.
기준 : 지우씨는요?
지우 : 그냥 어디 좀 들렸다 가려구요.
기준 : 어디? 술집? 음주가무 나 엄청 싫어해요. (으름장 놓듯) 나는 같이 안 갑니다!
지우 : (쓸쓸한 미소) 오늘은 나도 혼자 있고 싶어요.
그 말에 보란 듯 차에 오르는 기준. 탁-! 차문 닫고 시동까지 건다.
차창 앞으로 지우의 걸어가는 뒷모습이, 정말로 몹시 쓸쓸해 보인다.
기준 : (못 본 척 가려다, 결국-) 아유-정말!!
푸르륵- 시동 꺼진다.
S#44. 호프집. 밤
“꺄악-그렇지, 그렇지!” 호들갑스런 지우의 비명 소리.
지하에 틀어박힌 허름한 호프집. 오래된 내부와 다 떨어진 메뉴판.
벽면에 가득 붙은 ‘조기 축구회’ 사진과 상패들, 축구 경기 신문스크랩들이 인상적이다.
사장이 대단한 축구광인 듯, 작은 TV 안에도 축구 경기가 한창이다.
의자 위에 거의 올라앉아 열렬하게 경기 보고 있는 지우. 딱 봐도, 취했다.
그런 지우 올려다보고 있는 기준, 아까 그 여자가 맞나 하는 표정이다.
지우 : (TV보며) 드리블로 치고 들어가야지. 아휴- 지랄을 해라, 지랄을- (기준, 흠칫-) 어-어? 그게 왜 옵사이드야!!
(속 타서 원샷-하며) 사장님!!
피처에 맥주 가져 오는 사장, 언제 적 ‘be the Reds' 티셔츠 입고.
기준, 더러운 테이블, 김빠진 맥주, 기름에 쩐 통닭하며,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다.
기준 : 지우씨... 제발 좀 가요...
지우 : 가긴 어딜! 경기도 안 끝났는데!!
기준 : 안 끝나긴-! 2002년 월드컵이잖아! 쫌 있음 안정환이 골 하나 넣구!
그제야 자세히 보이는 TV화면, 2002 월드컵 스페인전이다. 녹화된 테잎인지, TV 아래로 비디오 테크가 플레이 되고 있다.
옆으로, ‘이태리전’, ‘한일전’, ‘감동의 슛 100선’ 등 축구 관련 녹화 테잎들 보이는데... 아니나 다를까, 안정환의 헤딩슛-!
지우 : (기뻐 날뛰는) 골! 골!! 어뜩해-!! (기준 붙들고) 봤어요? 봤어? 안정환, 덩크슛!
기준 : (지우, 뿌리치며) 그건 농구고!
그러거나 말거나, 지우, 좋아 죽는다.
지우 : 나 눈물 날라 그래. 너무 좋아. 너무 좋아!!
거의 우는 지우, 진짜로 좋아서 우는 건지 슬퍼서 우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런 그녀를 씁쓸하게 바라보는 기준.
(지혜) : 미친년, 진짜.....
S#45. 지우의 방. 밤
한심하단 표정의 지혜와 놀란 서대령 앞으로, 늘어진 지우를 메고 있는 기준. 다리를 후들거리며 간신히 2층 계단을 오르고 있다.
서대령, 방 문 여는 안으로, 털썩- 침대 위에 지우를 내려놓는 기준. 휘청- 하는 걸, 간신히 주변 붙잡고 선다.
기준의 눈앞에 펼쳐진 지우의 방, 독특한 소품들과 여러 장의 사진들(오프닝 타이틀에 나왔던 인도 사진들),
방 한 쪽을 차지한 음반 컬렉션과 구석에 놓인 어쿠스틱 기타.
서대령 : 자네 뭐 하는 사람인가? 술 안 마신다더니, 항상 일을 이런 식으로 하나?
김종욱 만나는 핑계로, 순진한 내 딸 꼬여서 술이나 마시고.
기준 : 그게... 아니지... 말입니다... 따님께서 성격이 뭐랄까...
이때, 지혜가 물수건 챙겨 들어오다, 서 있는 기준 보고,
지혜 : 이 사람이 김종욱이야?
기준 : 네? 아니, 저는...
기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누워 있던 지우, 술 취한 목소리로,
지우 : 누구 보고 김종욱이래?! 야, 서지혜 너, 미쳤어? 우리 종욱씨... 저런 비리비리한 사람 아니야... 모독하지 마...
지혜 : (지우 이불로 싸버리는) 야, 야! 언니야, 쫌!
지우 : (싸여지면서도) 종욱씨, 저 사람 아냐! 저런 사람 아냐! 함부로 갖다 대지 말라구!
좀 전까지 혼냈던 서대령도 무안해하며 기준 이끌고 방을 나선다.
안에서, 지우의 주정 계속 되고. 자존심 상하는 기준.
S#46. 지우의 집, 아침
아침 햇빛에 부스스 일어나는 지우. 주위를 둘러본다. 일어나 좀비처럼 걸어가다가 거울보고, 자기 모습에 흠칫-
지우, 나가다가 문득-
지우 : !!
어제 입고 나갔다 벗어둔 옷가지며, 배낭, 주머니 뒤져서 탈탈 털어본다. 바닥에 수북이 쌓인 카드며 명함들 빠르게 넘겨보더니,
휴... 뭔가를 확인하고 그제야 좀 마음 놓이는 듯.
지우 : 후...
바닥에 주저앉는 지우. 더는 못하겠다 싶은 얼굴인데,
(서대령) : 참- 보기 좋다.
지우 : (흠칫-돌아보며) 아빠.....
서대령 : 서른 넘어 다 늦게 첫사랑 찾는다고 난리더니, 그래, 찾다찾다 안 되니까, 고작 찾아주겠다는 놈하고 연애질이냐?
서지우, 내가 분명히 말해두는데 나는 걔 사윗감으론 딱 싫다.
지우 : 뭔 소리야. 누가 걔랑 한 대?
지혜, 맞은편 방에서 옷 갖춰 입고 나오며,
지혜 : (수그러들어서) 난 나쁘지 않던데.
서대령 : 뭐, 임마?! 어디가? 아빠랑은 완전 딴 판이잖아. 남자가 남자다워야지.
지혜 : (내려가며) 언니 들춰 업고 온 거 보면, 나름 책임감도 있구.
서대령 : 들춰 업긴 개뿔. 질질 끌고 왔지. 내 딸 가지고 동네 골목 다 쓸었어.
지혜 : 귀엽잖아. 언니한테 그 정도면 괜찮아. 뭘 더 바래.
지우 : 야. 나도 인생 있다.
지혜 : 언니는 그런 말 할 자격 없어. 그 남자, 어제 완전 상처 받았을 걸.
지우 : 내가 뭘?
지혜 : 진짜 몰라? 언제 정신 차릴래? 내년 추석 때 차릴래?
지우 : 아, 내가 어쨌기에?
지혜 : 아 직접 가서 여쭤 보세요.
서대령 : 왜들 이러냐. 아침부터.
지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지우도 들어가 버린다.
서대령 혼자 오도막하니 서 있다가
서대령 : 한기준이랬나?
그새, 출근 준비 마친 지우, 서대령 비켜나 현관으로 향하는데,
서대령 : 얌마. 너 아직 출근시간 남았잖아.
지우 : 어디 좀 들렸다가 가려고.
서대령 : 근데 지우야. 잠깐만. 그 친구 말야, (지우, 보면) 태어난 년시가 어떻게 된대?
지우 : 아빠!!
멋쩍어 하는 서대령 두고, 툴툴대며 나가는 지우의 위로,
(매형) : 사랑을 이루려는 자, 그 심연을 들여다보라.
S#47. 첫사랑 사무소. 낮
소파에 앉아 기준을 기다리고 있는 지우.
매형, 작업 준비를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고 있다.
지우 : (알듯말듯한 표정) ... 누가 한 말이에요?
매형 : 응? (살짝- 수줍은) 내가.
지우 : 아닌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매형 : 무슨 소리. 내가 1998년에 처녀작으로 썼던...
지우 : (놀라서 보며) 아직은 사랑을 몰라?
매형 : !!... 알아요?
지우 : 그럼요, 그때 학교에서 친구들이랑 얼마나 돌려봤는데. 세상에... 근데 신작은, 언제 나오세요?
매형 : 응? 아... 그게... 조만간... (하고는, 신나게 설명하는) 그게 말이지, ‘러브스토리’ 같은 하얀-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 얘긴데...
남자 주인공이 산을...
문 열리며, 출근하는 기준.
기준 : (뜻밖에) 웬일이에요? 이렇게 자발적으로...
지우 : 어제는, 고마웠...을 거라고들 하더라구요. 저는, 기억이 잘 안 나서...
기준 : 저도 잘 기억이 안 나서요. 그냥 아침에 일어나니까 세상에... 양복 한 벌이 버려져 있더라구요. 제일 아끼던 거...
매형 : 응? 누나가 처남 입사한다고 사준 그거?
지우 : ... 처남이요?
기준, 매형, 아차! 당황하고-
지우 : (둘러보며) 가내수공업 냄새가 나더라니... 뭐, 아무렴 어때요.
기준 : 웬일로 아량 있게 나오시네요. (빈정댄다) 잘못한 거 많~은 사람처럼.
지우 : 그래요. 잘못했어요. 미안하다고 말하려고 왔어요. 근데 참 기준씨 못났다. 남자가 돼서 삐죽거리나 하고...
지우 보다가 나가버린다.
기준 : 사람 참, 좀 놀린 걸 가지고 정색을 하고 그러냐. 무안하게.
매형, 창문으로, 거리로 나서는 지우의 모습 확인하며,
매형 : 모처럼 마음에 쏙 드는 여자야...
S#48. 뮤지컬 공연장. 저녁
객석으로 입장하는 관객들. 공연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각이다.
무대를 점검하고 있는 지우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가득하다.
지우 : 하우스 오픈, 공연 15분 전으로 미루겠습니다. (우형에게 무전) 밴 도착했어?
관객들 많아서 정문 입장 안 되니까 후문 비상구 열어두고...
(우형) : (무전) 왔어요!!
지우, 휴... 하지만 이미 여유가 없는 상황. 지우, 걸음 재촉해 배우들 대기실로 가며,
지우 : 1막 시작하고 채리 등장까지 12분 여유 있다. 의상 챙기고, 분장은 포인트만 해. 떠 보이네 마네 소리 하면, 작살이다, 응?
(분장실 들어가서) 스탠바이 해주세요!
수경에게 가는 지우. 무대 뒤로, 분장 점검하고 있는 수경.
지우 : 걱정 많이 하셨죠?
수경 : (애써 태연하게) 벌써 오셨대니?
수경, 모르게 땀 닦으며 일어서는, 초조했었는지, 땀 때문에 머리칼 사이로 연결한 마이크가 살짝 떨어져 있다.
지우, 아는 척 하는지 않고, 자연스럽게 분장 고쳐주는 것처럼 마이크 고정하며,
지우 : 선배님, 혹시 채리 호흡 짧아지면 선배님께서 좀 받쳐주세요.
수경 : (일어서며) 언제는 안 그랬니?
수경, 나가고, 지우, 따라 나가는데, 막- 들어오는 채리 보인다.
지우 : (화내려다 꾹- 참고 가며, 들으라고 일부러 무전으로) 공연 5분 전입니다.
(채리 지나치며) 채리 등장 전까지, 우선 팔로우 조명으로 대체 하고...
진땀 빼며 공연 시작하는 지우.
S#49. 첫사랑 사무소. 밤
(기준) : 지우씨. 아직 공연 중이죠?
늦게까지 혼자 남아있는 기준. 수화기를 붙잡고 있다.
기준 : 아까는 제가 좀 실수를 했어요. 지우씨 놀리는 거 싫어하는데 눈치 없이 방정맞게...
전화기 버튼을 삐 눌러 버리는 기준.
Eff) : 메시지가 취소되었습니다.
기준 : 방정맞게가 뭐냐? 방정맞게가... 에이, 다시...
다시 수화기 들려는데 바로, 전화 걸려온다. 기준, 후다닥- 받으며,
기준 : 지우씨? 아깐 미안해요, 제가 입이 방정맞아서... (사이) 매형...? (약간 짜증) 매형, 저 지금 좀 바쁜데... 네?
S#50. 산 입구, 파전집. 밤
기준에게 전화하고 있는 매형. 제대로 갖춘 등산객들 사이로, 때 아닌 바바리 차림이다.
메모지와 볼펜 들고 나름 취재하는 작가 분위기 설정.
등산 동호회 쯤 돼 보이는 일행들 사이에 끼어 앉아 얼큰하게 막걸리 앞에 두고,
매형 : (전화) 월출산 김삿갓이라고, 산장지긴데, 등산가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하대.
얼굴도 곱상한 게 뭔가 사연 있어 보이고, 수도승 같은 분위기도 좀 나고... 인도 갔다가 그 왜, (주위에 묻는) 어디?
(주위에서, “타르 사막, 타르 사막”) 그래 거기, 사막도 가고... 게다가 이름도 김종욱이라네.
주위 사람들, “그 친구 이름이 종욱이었어?” “생긴 것만큼 이름도 근사하네.” 다들 한마디씩들 하는데.
(기준) : 감이 좀, 오지 않아요?
S#51. 뮤지컬 공연장, 근처 식당. 그날 밤
지우 : 뭐가요?
기준이 출력해 온 블로그 글들. ‘월출산 김삿갓’, ‘베일의 산장지기’ 타이틀 뿐, 그의 얼굴 사진 하나 없는 빼곡한 감상 글이다.
기준 : 난 오는데... 좀 자세히 읽어 봐요.
지우 : (대충 보다가) 와, 이건... (기준, 기대감에 차는데) 최소 1박 2일이다. (탁- 내려두며) 못 가요. 월요일 하루 쉬는데...
기준, 출발부터 도착까지, 코스 계획표 짠 거 보여주며,
기준 : 월요일 아침 일찍 출발하면, 화요일 새벽에 도착합니다. 정확하게 무박 2일이예요.
지우, 도저히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지우 : (혼잣말처럼) 김종욱 때문에 참 사람 피곤하네.
기준 : 어? 지금, 김종욱 욕했다, 그쵸? 피곤하다고 막 짜증냈어, 그 사람한테?
혼자 좋아하는 기준 보며, 어이없어 하는 지우. 음식 나온다. 한 그릇에 나온 부대찌개. 지우, 먹으려고 하면,
기준 : 잠깐만요, 아줌마, 여기 빈 그릇 하나...
하는데, 어느새 푹- 숟가락 담가버리는 지우. 후루룩- 소리 내며 맛있게 먹는데,
기준, 보다가... 숟가락 넣고 같이 먹는다.
S#52. 기차역. 낮
기준을 기다리고 있는 지우. 딸랑 등산가방 뿐, 간편한 차림이지만, 어딘가 능숙한 여행가 느낌이다.
이때 어디선가... 분위기를 깨며, 짤랑거리는 소리 들린다.
지우 보면, 등산복에 등산용품, 온갖 등산 도구까지, 풀세트로 갖추 온 기준.
걸을 때마다 가방에 매달린 스테인레스 등산용품들이 부딪쳐 짤랑거린다.
지우 : (어이없는) 히말라야 가세요?
기준 : 어디, 동네 약수터 가요?
지우, 마주 서 있는 기준, 쿡- 찌르면, 무게 때문에 비틀-하는 기준. 모양 빠진다, 진짜...
S#53. 기차 안. 낮
마주 앉아있는 기준과 지우. 기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멀미약 꺼내더니, 창문에 이리저리 비추며 붙이려고 애쓴다.
지우 : 아니, 얼마나 간다고 그런 걸 붙여요.
기준 : 제가 차를 오래 못 타요. 몸이 예민해서. 잠자리만 바뀌어도 잘 못 자고...
지우 : 여행사 직원이었다며?
기준 : 여행사 다닌다고 다 여행가나요? 그래도 저 정보자료 하나는 확실했습니다.
지우 : 항공기 예약, 숙박, 환율... 그런 거 말구, (생각에 빠져들며) 그 나라의 공기, 거리의 냄새나 사람 사이의 느낌...
그런 건 모르잖아요.
기준 : 또, 또... 저 표정 나온다.
지우 : 응? (유리창에 비춰보는데)
기준 : 인도 얘기 할 때, 김종욱 얘기 할 때, 눈 이렇게 가늘어져가지고...
지우 : (삐죽대며) 워낙 멋진 기억이라 생각만 해도 눈이 부셔서...
기준 : 훌륭하시네. 그렇게 좋으면 왜 다시 안 만났대?
지우 : 만나기로 한 날, 오사카에서 한국으로 오는 트랜스퍼 비행기를 놓쳤어요. (기준, 보면) 그 날 비가 엄청 왔거든요.
기준 : (갸우뚱-) 그 때쯤에 오사카는 그렇게 비 안 오는데...
지우 : 또, 또 가보지도 않곤 인터넷만 보고...
기준 : 왜 이래요? 교환 학생으로 살 때, 그 동네 화과자는 내가 다 만들었는데.
지우 : 호두과자요?
기준 : 화,과,자,요!!
지우 : 아님 말지 왜 화를 내? 나도 화과자 먹어본 적 있어요. 것도 일본에서.
기준 : 혹시 배고파요? (일어나며) 잠깐만요- 대신 내가...
일어나서 선반에 올려둔(거의 끼워둔) 배낭 내리려 애쓰며,
기준 : 먹을 걸 좀 싸왔는데... (안 빠진다) 이게... (애쓰며) 왜 이렇게... (낑낑대는데)
지우 : 아, 됐어요! (기준 버티고) 그냥 앉아요, 배 안 고프니까.
기준 : 잠깐만 있어 봐요... 이게...
배낭 쏟아지며 와르르- 물건들 바닥에 흩어진다. 음식부터 버너, 담요에, 생쌀까지...
별 게 다 있다 기준, 바닥에 흘린 쌀을 손으로 쓸어 모으며,
기준 : 뭐, 해요... 좀 도와줘요...
지우 : (창피해서, 고개 돌리고 눈 감아버리는) ...
기준 : (큰 소리 못 내고) 지우씨... 지우씨...
“좀, 지나갑시다~”
기준, 몸 웅크리고. 지나는 사람들 발에 채이며...
S#54. 간이역. 낮
간이역에 멈춰선 기차. 다시 출발하는 위로,
“어? 기준씨! 일어나 봐요... 기준씨... 야!”, “뭐야? 우리 내려야 되는데... 가잖아... 어-어-지나가네...”
(지우) : 자면 어떡해요? 아니면 나라도 깨웠어야지.
(기준) : 쌀 줍느라 피곤해서 그랬어요! 그러게 좀 도와달라니까...
기차는 떠나고...
S#55. 산 입구. 저녁
허름한 시골 버스가 멈춰서며, 버스에서 내리는 기준과 지우. 초췌하다.
S#56. 산장 가는 산길. 늦은 저녁
주르륵- 미끄러지는 기준. 그새 등산 헬멧까지 썼다. 그리 높지도 않은 중턱에서부터 난관이다.
낡은 배낭 하나 멘 지우, 날다람쥐처럼 쓱쓱- 오르다가, 기준 때문에 멈춰 선다.
지우 : 스틱 안 가져왔어요?
기준 : (정신없는) 예? 뭐요?
지우 : 지팡이요, 지팡이!
기준 : 아, 지팡이... 그것만 두고 왔는데. 너무 길어서...
지우, 한숨 쉬며, 다가가 팔 내민다.
지우 : 잡아요.
기준 : 아녜요. 지우씨도 힘든데... (지우, 내밀고 있으면) 고맙습니다.
잡는다. 기준의 손을 끌어당겨 주는 지우.
지우 : 산장까지 얼마나 멀어요? 금방 어두워질 것 같은데.
기준 : 저도 처음이라서... 전화해서 나오라고 할까요? 김종욱씨한테? 그럼, 감동이 적으려나...
지우 : 여길 뭐라고 설명해요.
기준 : 여기가...
멈추고 둘러보는 기준. 방향을 알 수 없는 우거진 산중턱. 기준, 겁난다.
기준 : 지우씨... (지우, 올라가다 보면) 같이 가요.
지우 올라가는데, 뒤로 주르륵- 미끄러지는 소리에 돌아보면, 나무둥치를 잡고 다시 올라오고 있는 기준.
지우, 내려가 기준의 가방을 밀어주고...
시간이 흐른 듯... 땀에 젖어 있는 기준과 지우. 산은 이미 어두워졌고, 지우도 많이 지쳐있다.
기준 : 지우씨, 괜찮아요? 지우씨... 나 보여요?
지우 다가가, 기준의 헬멧에 달린 랜턴을 켜면,
기준 : 깜짝아-! (가슴 쓸어내리며) 놀래라...
지우 : 아무래도 길을 잃은 것 같은데...
기준 : 안돼요... (소리치는) 여보세요! 누구 없어요!! 사람 살려요!!
지우, 왜 저래... 기준 보는데,
기준 : 김종욱씨- 야, 김종욱... 이 추워죽겠는데, 나쁜 놈아... (지우, 어이없어 보는데) 왜요! 내가 뭐 틀린 말 했어요?
지우 : 노래 좀 해 봐요.
기준 : 나 지금 노래 할 기분 아니거든요?
지우 : 산에서 길을 잃지 않는 제일 좋은 방법은, 두려움을 없애는 거예요.
기준 : 나... 아무데서나 노래하고 그런 사람 아닙니다.
지우, 올라가는데, 그 뒤로- 뭔가 귀에 익은 노래... 꼬꼬마 가사가 반복되는 만화주제곡.
지우 : 왜 하필 그 노래에요?!
기준 : 왜라니... 나, 어릴 때 얼마나 좋아하던 노랜데 (계속 노래)
지우 : 거짓말! 알죠? 알고 있었구나? 언제부터?
기준 : 알죠, 그럼! 대학교 신입생환영회 때 불렀다가... 조용히 군대 갔지만... 몰라요? 이 만화, 진짜 인기 있었는데...
우리 은진이도 좋아해요.
지우, 말 못 하고 성큼성큼. 기준, 노래하며 뒤따라가고. 기준의 노래 들리며, 지우, “고만해요, 좀!” 그러거나 말거나 노래는 흐르고..
기준의 노래... 지우의 귀에 점점 아릿해지는... “지우씨?” 기준이 지우를 흔든다. 지우, 아까와는 다르게 의식이 희미하다.
기준의 자신의 배낭을 앞으로 메고, 지우를 들쳐 업는다. 다리가 후들후들... 끄응- 하고 일어서며,
기준 : 김종욱... 만나면 가만 안 둘 거야...
기준의 등에 업혀있는 지우, 멀리로 산장 불빛을 본다.
지우 : 저기...
기준 : 지우씨, 다 왔어요. 조금만 참아요...
산장이 눈에 들어오고... 기준, 지우를 업고 산장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면, 지우의 눈앞에 아른거리는 불빛...
산장 문 천천히 열리며... 불빛을 등지고 나오는 누군가...
순간- 모닥불 위로 아른거리는 김종욱의 얼굴, 환하게 번졌다 사라지며...
S#57. 산장 안. 밤
(소리) : 심을 종, 묵묵할 묵.
산장에서 모닥불을 지피고 있는 산장지기. 김종묵.
김종묵 : 김종묵이에요. 제 이름은. 실망을 끼친 것 같아 죄송하네요.
지우 : 아니에요. (기준 보고 싸늘히 웃으며) 누구 때문에 오랜만에 산도 타고...
모른 척 하고 배낭에서 짐 풀고 있는 기준.
김종묵 : 그래도 대단하시네요. 초행자가 타기엔 쉽지 않은데, 여자 분까지 업고 왔으니.
지우, 조금 놀란 듯 기준 보면, 기준, 이제야 좀 알겠냐는 듯 으쓱- 해 보이는데,
(김종묵) : 얼마나 힘들었는지,
기준, 짐 정리 끝내고 후- 멋있게 돌아서는데,
김종묵 : 울더라고요.
Insert.
산장 도착 문을 열고 선 김종묵 앞으로, 지우를 업고 선 기준, 서럽게 소리 내 운다.
S#58. 산장 앞. 밤
산장에 널어놓은 양말에서 물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산장 앞에 시들어가는 모닥불과 쓰러진 술병들. 그 앞으로, 대청마루에 나란히 앉아있는 기준과 지우.
기준 : 결국 또, 아니네요.
지우 : 김종욱씨, 그렇게 쉬운 남자 아니거든요.
기준 : 어련하시겠지요. (웃고-) 부러워요, 그 김종욱이란 사람.
난 아마 그 사람처럼 누구 마음속에서 평생 기억되는 사람은 못 될 거야.
지우 : 왜 이래, (툭- 치며) 한기준이 뭐 어때서. (기준, 보면) 남자답잖게 섬세하지, 책임감 있지,
오늘 보니까 오~ (기대하는데) 눈물도 많구.
기준 : (창피한) 에이-참- 눈이 시려서 그랬다니깐...
기준, 창피한 듯 쑥스러워 하고, 지우, 그런 기준을 물끄러미 보다가,
지우 : 궁금해요, 기준씨 첫사랑.
기준 : 그냥 보통 아줌마겠죠, 뭐. 마지막으로 본 게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이었으니까.
지우 : 한 번두 고백두 못 하구?
기준 : 후회만 했죠. 조금 더 일찍 만났더라면, 조금 더 용기가 있었더라면...
지우 : 괜찮아요. 인연이 아니라서 그런 거니까.
기준 : 아뇨. (지우, 보면) 그만큼 절실하지 않아서 그랬을 거에요. 솔직히 이젠 잘 기억도 안나요.
사랑이 희미하면 추억도 희미하다잖아요.
몰랐던 기준을 만난 것 같은 지우. 새삼스럽게 기준 보는데...
기준, 옛날 얘기한 게 좀 쑥스러운 듯 웃으며 지우 보다가... 눈 마주치는 두 사람.
흠칫- 어색하게 고개 떨구는 기준에게 슬며시 입술을 부딪쳐오는 지우. 놀란 기준... 점차 자연스럽게 키스하는 두 사람...
S#59. 산길. 트럭 안. 다음 날. 아침
운전을 하고 있는 김종묵. 김종묵의 옆으로, 기준과 지우. 기준, 가운데 끼어 앉아 묵묵히 앞만 보고, 지우는 내내 창밖만.
산길을 덜컹대며 달리는 트럭 안에서, 들썩거리는 내내 아무 말도 없는 둘. 차 안에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
김종묵 : (조심스런) 어젯밤에... 무슨 일이라도...
지우 기준: (동시에-) 아뇨!!
흠칫- 서로 봤다가, 이내 모른 척 하고. 다시 흐르는 정적... 트럭, 덜컹일 때 마다 흔들거리는 둘.
S#60. 기차역. 낮
기차가 선로에 들어와 있다. 기차역으로 들어서고 있는 기준과 지우. 앞서 달려가는 기준의 뒤로, 지우의 달리기가 좀 쳐진다.
어색한 분위기 탓에 서로 채근도 못하고. 기준, 가다가 지우에게로 오며, 탁- 지우의 손을 잡는다. 지우, 멈칫- 보면,
기준 : 놓치면 안 되잖아요.
지우의 손을 잡고 달리는 기준.
S#61. 기차 안. 낮
느리게 출발하는 기차 안으로, 막- 객차 문을 열고 들어서는 기준과 지우.
두 사람, 복도를 사이에 두고, 다른 의자에 앉는데, 지우, 달리면서 발목을 무리했는지 또 아프다.
기준 : 괜찮아요?
지우 : 가끔 이래요. 신경 쓰지 마요.
기준, 보다가 안 되겠는지, 지우의 맞은편 자리로 오더니 신발을 벗겨 자신의 무릎에 올린다.
지우 : (당황해서) 됐어요!
기준 : 가만있어 봐요. 지우씨 아프면, 내가 더 불편해요.
기차가 달리고... 지우의 고개가 서서히 떨어진다. 잠든 지우를 바라보는 기준.
기준, 자리 옮기며 지우에게 점퍼를 걸쳐주고 일어서려다, 그대로 앉아 어깨를 받쳐 준다. 지우 잠들고...
기준, 맞은편 창문으로 그런 모습 보다가... 자기도 살며시 지우에게 머리 기대 본다. 잠시 후... 기준도 눈이 감기고...
창문 밖으로 서울역이 보이고... 역으로 들어서는 기차 안에 나란히 머리 맞대고 잠들어 있는 지우와 기준.
기준, 지우에게 덮어줬던 점퍼를 어느새 목 끝까지 끌어올려 자고 있는데... 종착역을 알리는 방송 나온다.
지우 : !
잠에서 깨는 지우, 벌떡- 일어난다. 그 바람에 기준, 몸 꺾이며 잠에서 깨고.
잠 덜 깨서 두리번거리는 기준. 벌써 서울이라니... 어쩐지, 아쉬운 기분이다.
S#62. 뮤지컬 공연장 앞. 오후
급하게 멈춰선 택시에서 내리는 기준과 지우. 나란히 등산 배낭 메고 공연장 향해 달려간다.
속도 떨어지는 지우, 배낭 벗어 손에 쥐면... 기준 뒤에서 말없이 받아들고, 지우 보면,
기준 : 잘 하고 와요!
지우 : (달려가며) 알았어요! (달리다가, ? 돌아보며) 어딜 와요?
기준 : 네? 뭐... (말 찾다가) 뒤풀이 해야죠!
지우 : 우리가 무슨 엠티 갔다 온 줄 알아요?! (들어가다가, 돌아보며) 길 건너에 깔끔한 집 많아요.
지우, 들어가고.
후- 쾌청한 기분으로 돌아서는 기준. 지우의 배낭 하나 더, 어깨에 짊어지고. 휘청- 뭔 여자가...
S#63. 일본식 주점. 밤
일인용 바 형태의 일본식 주점.
기준이 바에 자리 잡고 앉아 지우를 기다리고 있다. 긴장된 표정으로 물 마시는 모양새가, 맞선 보러 나온 동네 총각 같은데...
옆으로, 혼자 온 손님 하나가 자리 앉으려고 하면,
기준 : (잽싸게 의자에 손 올리며) 죄송한데, 여기 자리...
손님, 그냥 가고- 기준, 젓가락이랑 물 세팅하며 아예 자리맡아 둔다.
기준, 지우 쪽을 향해 팔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테이블에 올렸다가, 턱에 괴었다가, 이러저러 해보고 있는데,
맞은편으로 털썩- 마주앉는 지우. 순간- 차렷-자세가 되는 기준.
기준, 기준이 세팅해 둔 물 벌컥벌컥- 단숨에 들이 키고,
지우 : (당연히) 술 시켜야죠?
cut to- 듬성듬성 떨어져 앉은 사람들 사이로, 나란히 붙어 앉아 있는 기준과 지우.
비슷한 등산복에, 바닥에 나란히 놓인 시커먼 배낭 두 개가, 마치 커플룩 같다.
기준 : 딱, 이런 분위기의 가게였어요. 일본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곳도... 그 때 화과자 진짜 많이 먹었다.
지우 : 그렇다고 호두과자까지 미워해요?
기준 : 고만고만하게 생긴 건 다~ 싫어요.
지우 : (웃고-) 하긴, 생긴 것만 예쁘지, 화과자 먹다 체하면 약도 없대요.
기준 : (조금 놀라는) 어, 그걸 아네요?
지우 : 제가 좀 알죠.
술집 안에 흘러나오는 부드러운 음악.
지우 : 어! 나 이 음악 좋아하는데... (흥얼흥얼)
기준 : 음대 나왔다면서, 노래는 이제 안 해요?
지우 : (계속 흥얼대며) 꿈은 그냥, 꿈이죠, 뭐.
기준 : 지우씨가 그런 말 하니까 이상해요.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사람이.
지우 : 내가요? (살짝- 들뜨며) 날개 잃은 천사... 뭐, 그런 건가?
기준 : 현실성이 약간 떨어진단 거예요.
지우 : 뭐에요?!
기준 : 하지만, 지금 그대로도 좋아요.
기준, 그 말 하고 어색한 듯 술잔 비운다.
지우, 그런 기준 보다가...
지우 : 기준씨 참, 좋은 사람 같아요.
S#64. 기준의 집. 밤.
지우의 그 말 떠올리며, 입가가 씨익- 벌어지는 기준. 설레임에 잠이 오지 않는다.
뒤척이다가 방 한 쪽에 세워둔 배낭 보는데, 배낭 생김... 어딘가 이상하다. 기준, 다가가 배낭 열어보면, 이런- 지우의 배낭이다.
기준, 도로 잘 두려다가, 배낭에 쌓인 흙먼지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 한다.
안에 있는 물건들 꺼내 대강 밖으로 꺼내고, 탈탈-터는데, 남은 잡다한 물건들 쏟아진다.
기준, 모아서 정리하다가, 뭔가를 보고
기준 : !!
마치, 홀린 듯한 표정이다. 내려다보면, 기준의 손에 들린 옛날식 주민등록증.
S#65. 지우의 집. 다른 날. 밤
지우의 방 한 쪽에 아무렇게나 놓인 배낭. 바뀐 거 미처 알지 못한 듯 그대로 놓여있다.
방으로 들어서며 발목에 찜질하는 지우, 방 저쪽에 놓인 배낭 보다가, 무슨 생각났는지 배시시 웃으며,
지우 : 날개 잃은 천사?
괜히, 목 돌려 어깻죽지 확인해 보고. 이때, 아래로, “그게 무슨 소리야, 지혜야” 서대령의 놀란 목소리.
지우, 뭐지? 나가는데, 막 2층 계단으로 올라오는 지혜, 드레스 같은 예쁜 옷을 입고 한껏 꾸민 차림.
냉정을 유지하고 있는 얼굴. 그러나 사실은 울음을 참고 있다.
지혜 : 우리 헤어졌어.
지우 : 뭐?
지혜 : (자기 옷 내려다보이며) 보여? 병원 때문에 데이트 한번 하기 힘든 사람이, 며칠 전부터 약속 정해 나오라는데,
기대 안 할 여자 있어? 나갔지. (사이) 헤어지재.
지우 : 지혜야...
아무 말도 못 하고 다가가는데, 지혜 그런 지우를 뿌리치다,
지혜 : (자존심 상해 뚝뚝 흘리며) 아우 씨- 쪽팔려, 진짜... 난 프러포즈 하는 줄 알고...
지혜, 혼자 서서 울고... 지우와 서대령, 어찌할 바를 몰라 안타깝게 보고 있다.
S#66. 공연장 로비. 다음 날. 낮
아직 공연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시각. 로비를 지나가는 관계자들 저쪽으로, 지우가 보인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지우, 주위 살피더니, 벽에 붙은 블랙 멀티비전에 이리저리 얼굴 비춰보는데,
멀티비전에 전원 들어오며 팟-! 엉덩이춤 추는 채리의 그룹 ‘스위트’ 뮤직비디오 영상 나온다.
지우 : (흠칫- 떨어지며) 놀래라... (화면 속 채리 보고) 노래 좀 제대로 하자, 쫌.
훈계하다가, 깜찍한 율동 보면서 살짝살짝- 따라해 본다. 채리 따라서 포즈 취하며, 방향 바꾸는데 !!
어디서 나타났는지, 지우를 보고 있는 기준. 순간 동작 멈추는 지우, 어색하게 몸 풀며,
지우 : 어? 왔어요? (다가가며) 무슨 일이에요?
그런 지우에게 뒤바뀐 지우의 배낭 내미는 기준. 지우, 보다가...
지우 : 이거 전해주러 온 거에요? 하여튼 기준씨... 근데 난 집에 두고 왔는데, 다음에 만날 때...
기준 : 다음에 만날 일 없을 것 같은데요.
지우 : 네?
기준 : 찾았어요. (사이) 김종욱씨.
퉁- 배낭 떨어뜨리는 지우의 앞으로, 김종욱의 주민등록증 내미는 기준.
지우, 놀라서 빤히 보는데...
기준 : 나 보면서 얼마나 웃겼겠어요.
지우 : ... 미안해요.
기준 :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거죠.
지우 : 처음엔... 찾고 싶지 않아서 말 안 했어요... 그러다 보면, 아빠도, 기준씨도 다 포기할 줄 알았구요.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점점 더 말할 수가 없게 됐어요...
기준 : 처음부터 찾을 마음은 있었어요? 말 해봐요. 한국에서 만나기로 한 날, 공항에, 나갔어요?
지우 : ... 말했잖아요, 비 때문에 오사카에서 환승비행기를 못 탔다구.
기준 : 그 날, 오사카 공항에 비 같은 건 안 왔습니다. 지우씨는 일부러 안 간 거에요. 혹시라도 그 사람이 안 왔을까봐.
완벽한 첫사랑이 깨지게 될까봐 엔딩 같은 건 만들지도 않은 겁니다.
지우 : 끝까지 가면 뭐가 있는데요? 아무 것도 없어요.
기준 : 그러니까!! (사이) 다시 시작할 수 있잖아요.
돌아서 나가는 기준. 기준의 발걸음 멀어지고. 그 자리에 한참을 먹먹히 서 있는 지우.
S#67. 뮤지컬 공연장. 밤.
(공연 전 무대 위)
공연이 시작되는 시간. 분주하게 준비하는 스태프와 배우들. 막이 내려진 무대 위에서 공연 전 점검을 하는 지우.
주머니에서 무전기 꺼내다, 기준이 주고 간 김종욱의 주민등록증을 들여다보는 지우.
이때, 무전 온다. “무대감독님”
지우 : (시간 확인하며, 무전) 대기해 주세요.
이 때, 지우의 눈에 들어오는 무대 뒤 드리워진 커튼, 흔들리고 있다. 지우, 커튼을 다가가 젖히면,
(인터 컷 : 훅 들어오는 하얀 기차 연기. 그 사이로 드러나는 지우(21세)의 얼굴, 인도 기차역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는다.)
(지우) : 음악...
(모니터) 모니터 들여다보고 있는 지우. 긴장된 표정.
지우 : 큐-
지우의 사인과 함께, 수경이 부르는 “데스티니의 밤” 시작된다.
모니터와 무대 위 확인하는 지우... 모니터 화면 속으로
(인터 컷 : 남자의 손바닥 위로, ‘2000. 1. 20. pm 7:20 김포공항' 글자 쓰는 지우, 이어 그 밑으로 새겨지는 글씨. “꼭 나와 줘요”)
(공연장)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춤과 노래들. 수경과 극중 쇼걸들이 부르는 노래.
지우, 모니터로 그 모습을 보고 큐 사인 내리고 있다. 모니터 안으로, 공연 점점 더 치달아가고...
(인도) 속력을 내는 기차를 따라 달려가는 지우. “이름이-! 이름이 뭐예요!” 이어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 “당신 이름은요? 당신은?!”
(공연장) 쇼걸과 수경의 노래가 끝나고, 채리가 등장한다. 천천히 시작되는 채리의 솔로곡.
(인도) 기차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는 지우.
김종욱이 남기고 간 일기장을 펼치면, 그 안에서, 툭- 바닥으로 떨어지는 그의 주민등록증.
(공연장) 대사를 주고받는 수경과 채리. 그리고 그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지우.
채리와 수경의 대사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노래. 절정으로 가는 무대를 보고 있는 지우.
(인도 컷) 그의 신분증을 꼭 쥐고 울음을 참는 지우. “내 이름은...”
환호하는 관객들,
(인도 컷) 지우, “내 이름은...”
(공연장) 절정으로 치닫는 무대 위로, 김종욱을 본 것 같은 지우.
지우 : !
이때- 텅-!! 거대한 소리 들리며, 무대 위로 가득 피어오르는 먼지.
엘리베이션이 무너져, 무대 한 가운데가 거대한 구멍처럼 뻥 뚫려 있다.
공연장 전체가 크게 술렁이고, 지우를 지나쳐 가는 스태프들... 비명 사이로, 수경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환상에 사로잡힌 듯 멍하게 있던 지우...!!
지우 : (비명처럼) 선배님- !!
S#68. 기준의 집. 밤
은진 : 네, 한기준씨 핸드폰입니다.
TV 볼륨 줄이며 핸드폰 받고 있는 은진.
은진 : (대답 없는) 여보세요? ... 첫사랑 찾고 싶으세요?
뚝- 끊긴다. 은진, 힐끔- 내려다보고 다시 볼륨 키우는.
들어서던 기준, TV화면 속으로 ‘스위트’ 뮤직 비디오 보고, 낮의 지우 떠올리며 한편으로 씁쓸한.
은진 : (채리 보며) 노래 더럽게 못 하네. (채널 돌리며) 우유 한 잔 부탁해. (반응 없자) 우유! 삼촌!! (돌아보면)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 있는 기준.
은진, 일어나서 똥똥한 배로 화면 가리면, 기준, 은진 번쩍- 들어 어깨에 메고 화면 본다.
은진 : (신나서) 삼촌! 돌려! 돌려!!
은진을 들어 올린 채, 무거운 줄도 모르고 멍-하게 화면 보고 있는 기준. TV 화면 안으로, ‘뮤지컬 <라스트 쇼>, 무대 붕괴사고’ 화면.
S#69. 경찰서 앞. 밤
서대령, 경찰서를 나오고. 뒤따라 힘없이 걸어 나오는 지우.
서대령, 모른 척 하고 앞서 걸어 나가는데...
지우 : ... 아빠.
앞서가던 서대령. 걸음 멈추고 돌아본다.
서대령 : 너 왜 그렇게 혼자 잘났니? 엄마 없이 기집애 둘 간수하느라 나도 힘들어. 그러니까 제발 말 좀 들으면, 안 되겠냐?
그냥, 남들처럼 살아. 편한 일 하면서, 결혼해서 좀 그렇게 살란 말야.
지우 : 사고잖아. 내가 아니라, 무대가 무너진 걸, 왜 내 인생이 무너진 것처럼 말하는데?
서대령 : 근데 왜 하나 편 들어주는 놈이 없어! 그게... 잘 살고 있는 거야? 봐! 이 놈, 저 놈, 다 빠져나갈 구멍만 찾는데,
혼자서 뒤집어쓰는 게 멋있는 건 줄 알아, 임마?
그대로 돌아서 가버리는 서대령.
덩그러니 남은 지우. 눈물 나려는 거 꾹- 참는다.
S#70. 뮤지컬 공연장 앞. 밤
‘공연을 잠시 쉽니다.’ 팻말과 함께 굳게 잠겨 있는 문.
빈 주차장에 아무렇게나 차를 세우고, 황망히 서 있는 기준. 지우에게 전화 걸어보지만, 그대로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간다.
삐-울리지만,
기준 :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
전화 든 손 힘없이 떨군 채, 어둠에 잠긴 공연장을 황망히 보는 기준. 하필이면... 자책감이 몰려드는 기준.
기준 : 으이그- 이 바보!!
답답하다...
S#71. 지우의 집. 밤
핸드폰에 귀 기울이고 있는 지우. 삐- 시작되는 사서함 메시지. 수화기 멀리서 들려오는, “으이그- 이 바보” 하는 기준의 목소리.
지우, 그 소리 ‘다시 듣기’ 누르는데,
(지혜) : 언니.
뒤돌아보면, 지혜다. 지혜, 예전의 발랄함은 사라지고, 마치 지우를 보는 것 같은 차림이다. 툭- 바닥에 봉투 던지며,
지혜 : (무표정하게) 힘 내.
누가 힘을 내야 할지 모르는 얼굴로, 툭~ 던지고 가는 지혜.
지우, 바닥에 든 봉지 보면, ‘호두과자’다. 호두과자 하나 꺼내, 우물우물해 보는 지우.
지우 : 이상하게... 맛없네.
눈물이 그렁한 지우.
S#72. 첫사랑 사무소. 며칠 후. 낮
적막한 사무실. 가라앉은 기준 때문에 매형도 자기 자리만 지키고 있다.
이때, 문이 열리고. 기준, 지우일까 싶은 기대감에 보는데- 정장 차림의 여자 하나가 사무실로 들어온다.
기준 : (손님인 줄 알고) 어서 오세요...
여자 : 여기가 박상훈 작가님 작업실이라고...
구석에서 작업하고 있던 매형, 뭔가 직감한 듯 벅찬 얼굴로 일어난다.
여자 : 안녕하세요. 수출판사 기획팀, 서수진이라고 합...
매형 : (말 끝날 새도 없이) 이리 앉으세요. 이리로... (기준 보며) 한 실장-
상기된 얼굴로 출판관계자를 만나는 매형.
기준, 커피를 내리다가, 서류철 사이로, ‘김종욱 찾기 프로젝트’ 보인다. 그녀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S#73. 호텔 커피숍. 다른 날. 밤
분위기 좋은 카페 어디선가, 쉴 새 없이 떠드는 남자의 목소리. “아니, 언제 봤다고 사랑이야, 사랑이...”
신나게 떠드는 남자의 앞으로, 여성스러운 정장차림으로 무표정하게 앉아있는 지우.
선본남 : (겨우 멈추며) 지우씨 생각은 어떠세요?
지우 : 혹시 화과자 좋아하세요?
선본남 : 예? (기분 맞추려고) 그럼요! 얼마나 이쁩니까... 보기도 좋은 게, 먹기도 좋다고...
지우 : 잘못 먹음 죽는대요.
선본남 : ... 네?
이때, 지우의 핸드폰 울린다. 벙 찐 선본남 앞에 두고, 전화 받는 지우.
지우 : (전화) 여보세요?
S#74. 병실. 낮
수경 : 뭘 그렇게 빤히 봐?
아직 절룩이는 걸음에 그래도 굳이 하이힐 챙겨 신는 수경. 병원 퇴원이지만 특유의 화려한 차림을 잊지 않는다.
그 앞으로 들뜬 기분을 애써 감추고 있는 지우. 믿기지 않는 듯.
지우 : 왜 저를 다시 추천하셨어요?
수경 : 그럼, 그 긴 커피주문을 어떻게 일일이 하니?
지우, 가만히 웃고- 수경, 도도하게 팔 올리면, 얼른 가서 어깨 부축한다.
수경, 걸음 옮기다,
수경 : 근데, 꼴이 그게 뭐야?
지우, 배시시 - 웃고.
S#75. 첫사랑 사무소. 다른 날. 낮
기준 대신해 전화 받고 있는 매형.
매형 : 허, 거참-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찾습니까? 우리 처, 아니 사장님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사무실로 기준 들어온다.
매형 : 오셨네. (바꿔주며) 이젠 이름도 모른다네... 쯧쯧...
기준 : (전화 받고) 네, 첫사랑 사무소 한기준입니다. 네... 네...
기준, 전화 받으며 모니터에 정보 입력하는...
기준 : 아... 그럼 여행지에서 만나신 분이군요? 10년 전에, 비행기에서 처음... 옆자리요? 네, 인연이란 게 다 그렇죠, 뭐.
그래서 어디로... 인도... (듣고 있는 기준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며) 인도에... 자이살메르...
듣고 있던 매형, 자리에서 일어나며... 덩달아 멍-해진 얼굴로 기준 보는데.
기준 : 혹시 성함이...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기준의 위로,
(Insert 비행기에서 첫 등장하는 김종욱, 지우의 발목을 치료해 주는 김종욱, 사막에서 지프를 모는 김종욱.
기준이 자신으로 김종욱을 상상했던 인도의 장면들에서 김종욱의 얼굴 빠르게 사라지며)
정적이 흐르는 사무실 안. 멍한 얼굴로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기준. 모니터 안으로 ‘의뢰인’ 옆에 깜빡거리는 커서.
기준, 기계처럼 손 올려 그 이름을 타이핑한다. 의뢰인, 김.종.욱.
(시간 경과)
어두워진 사무실. 하얀 모니터 앞으로 조용히 앉아있는 기준. 모니터 안에 보이는 ‘김종욱’의 이름의 의뢰인 파일.
‘delete'키에 손가락 올려두고 있던 기준, 김종욱의 “욱” 자를 지웠다가 다시 썼다가 한다.
S#76. 뮤지컬 공연장. 재 오픈일. 낮
객석으로 들어서는 관객들... 그 모습 보며, 상기된 표정의 지우. 후- 심기일전, 심호흡 하며,
지우 : (무전으로) 배우들 스탠바이 해주시구요...
이때, 우형이 지우를 보며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온다.
우형 : 감독님, 채리...
지우 : (또 시작이네) 비상구 열어놓고, 다음부턴 차에 분장도구 싣고 다니라고...
우형 : 못 올 거 같습니다.
지우 : !!
우형 : 지방 공연 갔다가 중간에 꽉 막혔다구, 공연 취소시켜야 할 것 같다고...
지우 : (버럭-) 미쳤어!! 누구 마음대로 공연 취소야! (바쁘게 걸어가며) 코러스던 스윙이던, 노래, 동선 다 외우는 사람 있으면
무조건 무대에 세워!!
지우, 우형과 갈라지며, 반대편을 정신없이 가는데,
수경, 커피 마시고 있다가-
수경 : 자기가 알잖아. 다-
지우 : 네?!!
cut to- “선배님, 선배님!” 수경 붙들고 늘어지는 지우.
수경 : 야- 찢어져-
뿌리치며 가버리고, 반대편으로 연출 보이자, 후다닥- 달려가는 지우.
지우 : 연출님! 이건 말도 안 돼요-!!
연출, 어딘가로 향해 손짓 하면, 스태프들 와서 우르르- 지우 끌고 나간다.
무대 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지우.
S#77. 뮤지컬 공연장. 밤
공연 시작이 가까워오고... 모니터가 설치된 지우의 자리, 와이어리스를 한 우형 보인다.
우형 : 공연 시작 스탠바이...
무대 열리며...
우형 : 큐-
우형이 조정하는 모니터 안으로, 긴장된 표정의 지우 보인다. 분장을 마친 지우, 제법 그럴싸하다.
S#78. 뮤지컬 공연장 앞. 밤
기준의 차가 서 있다. 차 안에 앉아 망설이는 기준. 서류 들고 멋있게 차에서 내리다가, 그대로 턴하며 다시 돌아선다.
진짜 가져다 줄 수 있을까?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S#79. 뮤지컬 공연장. 밤
수경과 쇼걸의 합창이 끝나고, 드디어... 채리를 대신한 지우의 솔로 무대.
무대로 나서는 지우, 관객석 보는데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덩달아 머릿속까지 까매지는 것 같다.
결국 도입부에 노래 시작하지 못하고, 원래 그런 것처럼 전주 다시 시작되는데...
무대 바닥으로 탁-탁-가볍게 발 구르는 느낌 전해온다. 뒤로, 드레스 아래서 지우를 응원하듯 박자 맞춰주고 있는 수경.
지우, 그 박자를 따라서... 하나, 둘... “겨울밤처럼 춥고 어두운 이곳...” 시작되는 노래.
모니터 보고 있던 우형, 흠칫- 놀라 모니터 다시 확인한다. 지우의 노래, 채리가 부르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서서히 절정으로 갈수록 자신감을 찾는 지우. 한 번쯤 이곳에 꼭 서 보고 싶었다...
그리고 객석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기준. 늦게 들어왔는지, 자리를 찾지 못하고, 계단 어귀쯤에 선 채로.
낯설지만 아름다운 지우를 본다.
지우와 수경의 대사가 이어지고. 눈빛으로 대화하듯 지우의 대사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수경.
그렇게 1막의 마지막 노래, 다 함께 부르는 ‘데스티니 미드나이트’
S#80. 뮤지컬 공연장 무대. 밤
공연이 끝난 무대 한 가운데. 관객이 빠져나간 썰렁한 무대 위로, 분장 지우지 않은 채 덩그러니 서 있는 지우.
아까의 순간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 잠시 그렇게 서 있는데, 무대 뒤에서 걸어 나오는 수경.
수경 : 어때? 만화주제곡 부르던 거랑은 다르지?
지우 : (돌아보며) 선배님. 오늘, 감사합니다.
수경 : 오늘만? 늘- 감사해. (안아주며) 또 할 건 아니지?
지우, 웃고-
수경 : 밖에 애인 왔드라.
지우 : 네?
수경 : 가봐.
수경, 지우에게 자신의 꽃다발을 건네준다.
S#81. 뮤지컬 공연장 로비. 밤
꽃다발을 든 채 로비로 걸어 나가는 지우. 로비 저쪽, 늘 있던 그 자리에 기준이 있다.
기준을 보는 지우, 살며시 벅찬 감정을 누르며, 애써 아무렇지 않게,
지우 : 오랜 만에 만난 얼굴이 왜 그래요?
기준, 지우 보다가...
기준 : 보고 싶었어요. 아니 보고 싶었대요.
지우 : 네?
기준 : ... 김종욱씨가.
툭- 꽃다발 떨어뜨리는 지우.
S#82. 뮤지컬 공연장 앞 카페. 밤
일상적인 풍경 안에, 기준과 지우. 여느 연인들 사이에 섞여 있는 두 사람.
애써 유난스럽지 않은 그 모습이, 오히려 더 평범한 연인들의 모습처럼 보인다.
지우 : 결국엔 찾았네요. 축하해요.
기준 :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찾은 거죠. 아니면 정말... 인연이거나.
지우 : 인연 같은 거, 정말 있을까요?
기준 : 없으면? 나 괜히 알려준 건가? 또 사고 쳤네. (사이) 미안해요.
지우 : 기준씨가 왜, 그냥 할 일을 한 것뿐인데...
기준 : 그러게요. 할 일을 한 것 뿐 인데... 괜히 먹먹하네.
지우의 핸드폰 울린다.
기준 : 가봐야죠. 다들 기다리는데. (일어나며) 모레 다섯 시 비행기래요. 꽤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을 거래요.
적어도 네 시까지는 공항에 가야 될 거예요.
지우 : 기준씨...
기준 : (보면) ...
지우 : ... 고마웠어요. 다... (악수 청하고)
지우의 손을 쥐었다가, 그대로 돌아서는 기준. “잘 한 거야, 잘 한 거야.” 중얼거리는데... 표정은 참담하다.
S#83. 지우의 방. 밤
지우의 방에 걸린 여러 장의 사진들. 집게에 꽂혀 있던 사진들, 살짝- 손가락으로 들어 보이면,
한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 감춰져 있다. 뭔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물체를 담은 사진이다.
사진 들여다보면, 빵하고 기적소리 들린다. 기차가 곧 떠난다는 안내방송과 함께.
Insert. 인도. 기차역. 과거 지우(21세), 종욱의 손바닥에 뭔가를 써준다. “2000년 1월 20일 pm 7:20”
지우 : 이 날까지 생각해보고 공항에 나와 줘요. 내가 진짜 운명이 맞다면.
돌아서 저벅저벅 걷는 종욱, 기차 난간에 올라서 돌아보면, 지우 절룩거리며 따라온다.
종욱 : 무리하지 마요. 나중에라도 아플 수 있어요.
지우 : 물어 볼게 하나 있어요.
기차가 출발한다. 천천히 가기 시작한다. 지우, 기차를 따라 빠르게 걷는다.
지우 : 이름이 뭐예요?
종욱 : 당신은?
지우 : 저요? 내 이름은…!!
빵하고 기적소리 들려오면서 갑자기 속력을 내는 기차. 저만치 사라지는 종욱의 모습.
뛰던 지우,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고 주저앉는다. 숨을 몰아쉬는 지우. 그러다 문득- 카메라를 들어 떠나는 열차를 담는 지우 찰칵-
(지우의 방) 지우, 10년 전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서대령) : 그 놈, 만날 거야?
지우, 돌아보면 방으로 들어서는 서대령.
지우 : 모르겠어. 정말 인연이 맞는 건지 자신이 없어.
서대령 : 인연이길 바라는 거야, 아니길 바라는 거야.
지우 : 그런 건 정해져있는 거잖아. 아빠가 그랬잖아. 기다리면 다 나타난다구.
서대령 : 그거야 너 보기 딱해서 그랬지.
지우 : 뭐야- 나 은근히 믿고 있었는데... 김종욱도 그래서 헤어진 건데. 운명이라면 다시 볼 것 같아서...
서대령 : 마, 그러니까 넌 아직 멀었다는 거야. 운명이다 싶으면 붙들어야지.
그런 두 사람 위로, 현관 벨소리.
서대령 : 지혜 왔나 보다.
지우, 문 열어주러 먼저 내려가고. 지우의 방을 새삼스럽게 둘러보는 서대령. 폴라로이드에 담긴 사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서대령 : 망할 놈. (하다가) ?
S#84. 지우의 집. 현관 앞. 밤
벙 찐 지우의 앞으로, 고개 숙인 채 청혼 자세로 무릎 꿇고 있는 남자.
닥터 정, 반지 내민 채, 그 자세로 외운 대로 말하는,
닥터정 : 결혼이라는 게, 사실은 무서웠어. 너랑만 만난 게 솔직히, 억울했다. 너랑 헤어지고, 밀린 소개팅 다 나갔는데,
너만큼 예쁜 여자 없더라. 내가 겁쟁이면서 엄마 핑계대서 미안해, 지혜야. (고개 드는데) ... 누구세요?
지우 : 아, 나는 저기 언니... 지혜, 지금 잠깐...
이때 집으로 들어서는 지혜. 맨 얼굴에, 대강 묶은 머리하고 빵 봉지 들고 있다.
닥터 정 보고 당황한 지혜. 닥터 정도 그런 지우 보고 당황한 얼굴이다.
닥터정 : 자기... (아래 위 보며) 예쁘다, 진짜...
지혜, 뚜벅뚜벅 걸어오더니, “야, 이 나쁜 놈아!” 들고 있던 빵 봉지로 닥터 정 때리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무릎 꿇고, 다시 외운 거 외우기 시작하고... 지혜가 들고 있던 봉지에서 지우가 심부름 시킨 책이 나온다.
지우, 마당에 떨어진 책 주워들어 보면, ‘제2의 귀여니’ 띠지와 함께, 활짝 웃는 매형의 사진이 인쇄된 책. 로맨스박. ‘첫사랑, 그니’
지우, 흙 묻은 책 탈탈- 털며,
지우 : 기집애, 엄한 박 실장님한테...
돌아서며, 지혜와 닥터 정의 소동을 귀엽게 보고 있는 지우.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마음 한켠이 무겁다.
S#85. 여행사, 실크로드.
D -1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는 여행사. 전화응대 하고 있는 직원들과 ‘신비의 India’ 홍보 전단 배치하고 있는 점장.
문 열리며, 누군가 들어온다.
점장 : 어서오십...(하다가) 한 대리?
기준이다.
S#86. 여행사, 실크로드 점장실. 낮
직원1, 뭔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 커피 가져다준다.
거나하게 다리 꼬고 앉아있는 기준. “응, 땡큐-” 받아들고 마시며,
기준 : (팜플릿 들고) 인도라... 여기 뭐, 가볼만 합니까?
그 모습, 마뜩찮은 표정으로 보고 있는 점장.
점장 : (아니꼬운 거 참고) 그럼요, 고.객.님. 인도하면 영혼의 나라 아닙니까. 세속적인 것들에서 벗어나서...
기준 : 점장님이 먼저 가셔야겠네요.
점장 : (꾹- 참고) 하하하- 그런 가요... 고객님은 어떻게... 인도에 가실 생각을 다... 여행이라고는 통 안 가셨던 것 같은데...
기준 : 관심이 좀 생겼습니다. 어떤 여자 때문에.
점장 : (놀라서) 한 대리 여자 생겼어? (하다가) 같이... 가시려구요?
기준 : 아뇨. 그 여자는요, 갔다 왔대요. 십 년 전에.
점장 : (실망하는) 그럼, 혼자?
기준 : 도대체가 어떤 나란지 궁금해서요. 도대체 공기가 어떻고, 냄새가 어떻길래...
점장 : (조금 이상한) 한 대리... 자네 괜찮아?
기준 : 어떤 나라에요, 점장님? 도대체 뭐길래, 십 년을 기억하는데요? 냄새도, 공기도, 사람도...
도무지가 잊지를 못한데요. 도대체가 그게 뭐라구...
점장 : 한 대리... 왜 그래...
점장,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유리창 밖의 직원들, “뭔 일이래...” 구경하고.
S#87. 지우의 집. D-day. 아침
지우, 검은색 자켓에 지퍼 올리며, 평소와 다름없는데.
벌컥- 방 문 열리며, 옷 잔뜩 걸린 행거 밀고 들어오는 지혜. 예전과 같은 생기가 돈다.
지혜, 침대 위로 옷들 코디네이션해서 빠르게 정렬하며,
지혜 : 김종욱이 만난다며? 골라 봐.
지우, 벙 쪄서 보는데... 지혜, 그런 지우의 위로, 이것저것 옷 대주며,
지혜 : 십 년만의 첫사랑인데, 어떻게 되던, 제대로 한 번 보고 와야지. (하나 골라 주며) 이게 낫다. 그나마.
(나가며) 구두 골라 놓는다!
나가고. 지우, 지혜가 골라 준 옷 들고 거울 앞에 서 본다.
지우 : (처음의 인사) ... 잘 지냈어? (이름 말하려다) 휴...
한숨 내쉬는 지우.
S#88. 기준의 집. 오전
쾅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에, 선반 위의 물건들 후두둑- 바닥으로 떨어진다.
물건에 이마 맞고, 부스스- 잠에서 깨는 기준. 평소와 다르게, 늦잠에, 지저분한 몰골하며.
일어나, 툭- 바닥의 물건 발로 차서 치우고 현관문 여는 기준.
누나 : 너... 뭐야? 회사 차린 지 얼마나 됐다구, 이 새끼가 빠져가지구.
(찰싹-찰싹- 등 때리며) 나이 서른 넘어서, 사춘기야? 니가? 응?!
기준 : (확- 뿌리치며) 아- 쫌-!!
누나, 놀라서 기준 보면,
기준 : 나도 그냥 내 멋대로 살게 내버려 둬! 남들처럼 떠나고 싶을 때 떠나고, 돌아오고 싶을 때 돌아오고,
자유롭게 살게 가만 두란 말야!
누나 : ...기준아, 너... 왜 그래...
기준 : 아- 몰라! 나도 그냥 확! 인도나 가버릴래!
누나, 가슴 아픈 듯 그렁해져서 보다가...
누나 : (찰싹-찰싹-) 지랄을 해라, 지랄을 해! 광고 찍냐?! 무슨- 자유에, 인도에, (때리고)
기준, 구석에 쫓겨서 따가운 거 문지르고 있는데,
누나 : 당장 옷 안 입어!!
S#89. 공연장 무대 뒤. 낮
공연이 시간이 다가오고. 지우, 공연 준비 하며 무대 체크 하고 있다.
평소 차림의 지우. 아직 공연 시간 남은 듯 다들 급하지 않은 듯 여유 있게 공연 준비하는데,
(채리) : 무대 감독니임...
지우, 돌아보면, 채리다. 지우, 놀라며, 후다닥- 시간 확인하고, 휴...
지우 : 너 여러 가지로 사람 놀래 킬래?
채리 : 지난 번 일은 죄송하구요... (뭔가 내밀며) 감사했습니다.
채리가 내민 선물. 그룹 ‘스위트’ 채리의 새로 나온 씨디다.
채리 : 감독님 제일 먼저 드리는 거예요. 싸인... 해드릴까요?
지우, 어이 없이 보다가, 웃으며-
지우 : 그래, 해 주라.
채리, 싸인 하고 건네다,
채리 : 어? (내려다보며) 감독님, 구두...
지우, 웬일로 하이힐 신고 있는. 그러고 보니 검은 점퍼 안으로 살짝- 원피스 자락이 새나와 있다.
(시간 경과)
분장 마친 채리가 여기저기 여유롭게 돌아다니다, 수경한테 혼나고 있고...
무대 위에서 모니터 체크 하고 있는 지우, 시계를 본다. 4시까진 공항으로...
조감독 : 무대감독님?
지우 보면, 조감독 우형, 어디서 났는지 턴테이블 레코드판 내밀며,
조감독 : 싸인 부탁드립니다.
지우가 낸 만화 음반 레코드다. 지우 어이 없이 보다가, 싸인 휘리릭-
S#90. 첫사랑 사무소. 낮
넋 빠진 사람처럼 멍-하게 앉아있는 기준. 전화벨 울리자 한참 있다 느릿하게 받는다.
기준 : (힘없는) 네, 첫사랑이나 찾아주는 한기준입니다...
매형, 흘깃- 기준을 본다. 누나한테 억지로 이끌려 나와, 옷차림이며, 넥타이에 머리, 평소와 다르게 느슨하다.
기준 : (전화 듣고 있다가) 참나- 싫다고 간 사람을 어떻게 잡습니까!
버럭- 화내고 전화 끊어버리는 기준.
S#91. 뮤지컬 공연장. 낮
무대 위의 채리와 수경의 모습. 공연이 시작되고, 모니터를 체크하고 있는 지우와 우형.
모니터를 확인하던 지우. 다시 시계를 본다. 3시가 훨씬 넘은 시간.
시계 들여다보던 지우, 우형에게 와이어리스 건네며,
지우 : 어떻게 되던 나, 한 번 보고 싶다.
우형 : 네?
뒤돌아 급히 계단 지나 출입구로 향하는 지우. 신고 있던 구두 벗고는, 무대 한켠에 흩어져있는 낡은 운동화로 바꿔 신고 달려간다.
S#92. 거리. 낮
공연장을 나와 거리로 달려 나가는 지우. 급히 지나는 택시를 잡으려고 손을 내민다. 그러면서 걸음 멈추지 않고... 마음이 급하다.
지우 : 종욱씨... 잠깐만...
S#93. 인천공항 안. 낮
탑승 수속이 시작된다. 공항을 가득 채운 다양한 사람들...
누군가, 탑승권을 확인하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S#94. 첫사랑 사무소. 낮
기준에게 커피 내미는 매형. 기준, 멍한 얼굴로 매형 보고는, 무표정하게 커피 마시는데,
매형 : 어, 그건 설탕 넣은... (보다가) 거, 안 마시는 줄 알았는데...
멋쩍어 하며, 다시 자기 커피에 설탕 넣는데.
(기준) : 매형.
매형, 돌아보면,
기준 : 어디, 남는 김종욱 없어요?
이때, 다시 걸려오는 전화.
기준 : (전화 받으며) 첫사랑 한기준... 이 사람아, 그렇게 좋으면, 그럼, 끝까지 쫓아가서 잡아!!
탁- 전화 끊고 넥타이 풀어 당기는 기준. 후- 숨 돌리다가, 문득-
기준 : 저, 매형.
매형, 가보라고 손짓- 기준, 뛴다-
S#95. 인천공항 안. 낮
공항에 들어선 지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무작정 안으로 들어선다.
수많은 사람들... 어지러운 소음, 여기저기서 나오는 방송... 이착륙을 알리는 안내판 돌아가고...
출국장 게이트를 발견하고 무작정 달려가는 지우. 활주로가 보이는 유리창으로 거대한 보잉기가 움직이는 게 보인다.
지우 : 종욱씨!!
S#96. 도로. 택시 안. 낮
달리는 택시 안. 가만있지 못하고 안절부절 하고 있는 기준. 택시 기사, 노래까지 들으며 느긋한 얼굴인데...
기준 : 아저씨, 쫌...
택시기사, 달리다가 주홍색 신호에 멈춰 서려는데,
기준 : 아저씨, 밟아요!!
택시기사, 놀라서 붕-
S#97. 인천공항 안. 낮
출국장 게이트를 헤매듯 지나쳐가는 지우. 땀인지, 눈물인지... 젖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황망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지나치는데,
이때... 지우의 걸음, 멈칫-한다. 앞으로, 탑승 라인에 서서 걸음을 옮기는 남자의 뒷모습.
인도의 기차역에서 걸어가던 김종욱의 뒷모습 겹치며... 그 사람, 김종욱이다!
지우의 걸음이, 한 걸음, 한 걸음, 느려지며, 주위의 소리들이 점점 사라지고... 끌리듯 다가가는 지우,
이때 남자, 걸음 옮기다 잠시 둘러보듯 고개 돌리는데...
지우 : !!
공항의 모든 소리가 일시에 사라지며- 거대한 공항, 부감으로-
인파 사이에 숨바꼭질 하듯 두 사람. 남자, 다시 고개 돌리면...
S#98. 인천공항 앞. 낮
택시 멈추며, 기준이 도착한다. 공항 입구까지 주차장이 되어 길게 늘어선 리무진과 자가용들.
기준, 차들과 사람들을 지나 죽을힘을 다해 뛴다!
S#99. 인천공항 안. 낮
인파 사이를 헤치며 빠른 걸음으로 돌아 나오는 지우. 탑승 라인을 나와, 그런 지우를 쫓는 김종욱의 시선.
얼핏- 사람들 사이로 지우의 모습 보이는데... 그 모습, 사라지려는 찰나-
(김종욱) : 서지우!!! 서지우!!
그 소리가, 공항을 가득 울리며... 들어서는 기준도, 돌아서던 지우도,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우뚝- 걸음을 멈추는 지우. 천천히 다시 돌아서고... 다시, 필사적으로 달려 올라가는 기준... 에스컬레이터가 보인다.
기준, 에스컬레이터를 달려 올라가는데... 멀리 지우가 보인다. 그리고 그 옆으로 김종욱도 보인다...
그대로 그냥 돌아서는 기준... 그러나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기준을 밀어 올리며,
기준, 계단을 내려가 보지만 그대로 제자리걸음 된다. 그렇게 제자리걸음 하며 뒤돌아 서 있는 기준의 위로... F.O.
S#100. 일 년 후. 어느 카페. 낮
화면 느긋하게 카페의 풍경을 따라 가는데, 무선 자동차 한 대가 테이블 아래를 부웅- 지나간다.
자동차가 테이블 아래로 구두 신은 여자의 발을 툭- 건드리면, 자동차를 주워드는 손. 지우다.
지우의 맞은편으로, 서너 살 쯤 되 보이는 남자 아이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조종기를 들고 있다.
꼬마의 입가를 닦아주는 지우. 그런 지우의 시선 저쪽으로, 뒷모습의 여자와 마주앉아 있는 기준이 보인다.
기준, 어색해서 애써 쾌활하게 웃는 얼굴에 쩔쩔매는 모습이 역력하다.
지우 : 좋아 죽네, 아주...
꼬마 : 우리 엄마요?
지우 : 아니, 누나 남자친구.
꼬마 : 아줌마 남자친구가 왜 우리 엄마랑 놀아요?
지우 : 아줌마 아니라니깐! (하다가) 어쩌겠니. 첫사랑이라는데...
꼬마 : 엄마!!
꼬마, 달려가고, 뒷모습의 여자, 그대로 아이를 안고 걸어 나간다. 반대편으로 지우를 향해 걸어오는 기준.
기준 :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마. 난, 우연히 만난 거다.
지우 : 우연히? 그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몰라?
기준 : 그건 누구처럼 우연히 만나서 십년을 우려먹는 사람 얘기고, 난, 기껏해야 십 분이다, 십 분.
지우 : 십 분? 기다리는 사람은 한 시간 같고, 하루 같은데...
기준 : 그치? 그치? 이제야 좀 알겠지? 거 봐, 하여튼 자기가 당해 봐야...
지우 : 뭐야, 이거? 그래서 지금 일부러 만났다는 거지? 우연을 가장해서...
기준 : 왜 이래? 먼저 자리 비켜준 게 누군데?
지우 : 오사카에서 한국까지 날아가게 한 첫사랑이잖아. (하다가) 무슨 얘기했어?
기준 : 자기는 무슨 얘기했는데?
지우 : 또, 또... 별 얘기 안 했다니까. 금방 나왔잖아. 그때 자기가 공항 앞에서 또 질질 짜는 바람에.
기준 : 안 울었다니까! 난 그냥 자기가 김... 그 놈 따라 간 줄 알고... (슬쩍-) 잘 산대?
지우 : 왜? 또 찾아줄래?
기준 : 야!!
웃으며, 기준의 팔짱 끼는 지우. 두 사람, 나란히 걸어가며...
지우 : 근데 오사카에서 한국으로 언제 왔다구?
기준 : 글쎄? 여름이었던 거 같은데... 8월인가...
그때의 이야기하며, 다정하게 걸어가는 두 사람의 위로,
S#101. 에필로그. 오사카 공항
오사카 공항. 2000년 1월 20일.
(소리) : 한국에 꼭, 가야돼요... 제발요...
티켓 창구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남자. 십 년 전쯤의 기준이다. 좋게 풋풋한, 사실은 촌스러운.
승무원 : (일본어) 죄송합니다. 저희가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기준 : 도와주세요. 한국에서 좋아하는 여자가 결혼을 한단 말입니다.
승무원 : ... 잠시만요. (모니터 확인하며) 아, 1분 후 인도에서 오는 비행기가 있네요.
서울로 가는 트랜스퍼를 취소하시는 분이 계시면, 가능하실 수도 있겠지만...
기준, 배낭 멘 채로 발을 동동 구르고 섰는데, 기준을 스쳐가는 낯익은 배낭의 여자. 지우다.
지우 : 티켓... 3일 후로 바꿀 수 있을까요?
승무원 : (보면서) 어렵겠는데요.
기준 : 혹시, 서울 가세요?
지우 : 네!
기준 : 제가 살 게요! (뒤로 바짝 줄 선다)
지우 : 그러실래요?
기준 : 화물칸이라도 상관없어요. 제 운명이 달린 일이거든요. 근데 왜 중간에서 안 들어가시고...
지우 : 운명을 운명으로 남겨두려구요.
기준 : 네?
지우 : 있어요, 그런 거.
기준 : 고맙습니다. (지우, 가려는데) 참, 이거... (화과자 건네며) 화과자예요.
지우 : (받으며) 고마워요.
기준 : 조심하세요. 생긴 건 이래도 먹고 체하면 약도 없어요.
지우, 빙긋- 웃고. 두 사람, 인사하고 각자 반대로 창구를 빠져나간다.
승무원 : 손님~ 여기 티켓...
다시 와서 티켓을 받아드는 기준. 가려다 지우를 본다. 지우도 문득- 기준을 돌아본다.
서로 갸웃-하고, 각자 공항 어딘가로 사라지는 두 사람... 두 사람의 모습, 인파에 묻혀 사라지고,
이리저리 공항의 풍경을 따라가는 화면 안으로, 어디선가, “기숙씨?” 공항 공중전화에서 전화하고 있는 십 년 전의 매형 보이고,
그 뒤로 막 발령받은 신참 최기장, 선배 기장과 걸어가다,
지나는 스튜어디스들 인사 받으며, 헤벌쩍- 고개 돌아가다가... 선배에게 혼나며 종종 걸음으로 나가고.
출국장으로 나오는 사람들, 그 사이로 덥수룩한 수염을 달고 나오는 김종묵...
십 년 전, 아직은 어떻게 닿을 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인연들이 지나가는 공항을 풍경 위로, The end
첫댓글 감사히 다운받아갑니다!^.^
감사합니다. 다운받아가요!
소장용으로 다운받습니다 감사해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