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5년 6개월(1982.3.1.~2017.8.31.)의 교직을 반추하면 부끄러움이 가슴을 확 당긴다.
내 자신이 너무 창피하다. 너무나 무지했다. 그런 좋은 시절을 그냥 소비하듯이 보냈다니.
그래도 다시 잘할 자신은 전혀 없다. 그 시절이 다시 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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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틈 없는 수업과 계속되는 벅찬 교무일!!! 중식지도 및 청소현장지도까지.
언제 유발하거나 될지 모르는 학생들 & 학생들과의 사고. 이때 지도 or 해당교사가 일부 및 상당부문 책임을 져야하는 경우가 있다.
2017학년도 1학기!!!
학생체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교사는 징계대상으로 교감이 보고를 해야한다는 교감의 교직원 대상 전달을 듣고는 어이가 상실.
교탁은 있지만 교단은 30년 전에 벌써 사라진 교실이다.
뒷 줄에 앉은 학생은 칠판을 보고자 고개를 이리저리 돌린다.
간혹 '야! 고개 숙여라. 글짜 안 보인다.'
난 그때마다 이렇게 전달한다. 물론 조용히~~~.
'나의 교실은 자유주의 경쟁교실이다. 네가 먼저 와서 앞자리에 앉으라. 그리고 지금도 앞줄에 몇자리 비워있다.'
덧 붙인다. '남에게 고개 숙이라고 하지 마라. 책만 봐도 다 알 수 있다.' 물론 공책검사는 수행평가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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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정해진 교실에서 표준지식, 정보를 안내하는 자이다. 복도나 교정이 아니다.
자연법과 실정법적 교실지배권을 자연소지하고 있는 교사의 지시에 불응하는 학생들은 교사가 그 학생의 빰을 때려도 되게끔 되어야 한다. 말로 해 봐라!!! 미성년자인 학생들이 웃고 교실을 가로 지르고 야단이다. 미~성년자이다.
교사는 해당방면 국가공인 1급 자격소지자이다. 무해당자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깊은 축적의 내공과 깊이가 있다.
공문이나 교감회의자료 없이 전달했을리가 없다. 행정공문은 당연이고 교감회의자료도 공문이다. 교사를 벌하겠다는 공문결재자가 누구인지 그 공문에 나와 있다. 이런 자부터 실수만 하면 바로 빰을 때려서 벌로 다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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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프러시아(독일)의 대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 ~ 1804) 曰: 나의 강의실엔 옷의 단추가 하나 없거나 복장이 불량한 자는 입실을 불허합니다. 질문도 강의 중엔 불허합니다. 조용한 수강외의 다른 것은 나의 강의사색에 방해가 됩니다.(그의 강의실엔 독일내외의 수재급 학생들과 상공인과 귀부인들, 러시아 장교들도 돈을 내고 청강을 했다. 공짜가 아니다. 모두 최고급 옷으로 화려하게 차려입고 입실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강의자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눈에 보이게 옷으로 표현하였다. 검소하거나 단정한 옷이 아니다. 장교는 예복이었고 학생과 신사 숙녀는 최고급 복장이었다. 마치 일요일날 神 앞에 깔끔하게 차려 입은 교회예배당의 신자 이상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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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탈주제로 옆으로 빠지는 스토리라서 읽고 싶은 사람만 읽으세요.^^
<진실적 여담 하나>
한국은 태고로 백성을 편하게 대우해주다가 망한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나라이다.
어~~~ 백성수탈이 굉장했다고 하던데???
문헌을 자세히 봐라. 전라도와 충청도만 그렇게 했다. 특히 그곳 아전들이 굉장했다.
다른 지역의 아전들은 그 지역 토착세습부호로 전혀 난폭하지 않았다. 오히려 책임감 있는 지역공직자였다.
세금도 중국/일본/동남아/유럽제국에 비하여 높지 않았고 병역의무도 매년이지만 군포만 내면 면제였다.
조선 백성의 젊은이들은 군포만 내면 생명은 100% 부지. 대영제국의 젊은이들은 용감해 보이지만 5대양6대주 여기저기에서 죽어나갔다. 귀족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날 미국도 약간은 그렇다. 서류상으로는 언제라도 징집가능.
유럽이나 프랑스, 일본처럼 용병제나 국민개병제를 하거나, 중국식 군벌제를 했더라도 농한기에도 세금낸다고 일을 해야할 판이었다.
조선백성들은 문서상 착한 편이긴 했지만 농한기에는 노름의 달인들이었다. 그 전통으로 아직도 명절만 되면 자기들도 모르게 작은 노름이라도 한다. 다행인 것은 비호남, 비충청권의 마을지역마다 자기 농토 소유권자인 소농(小農)인 자가농들이 태반으로 많았고 농사로만 먹고살고자 상당수가 절대적으로 근면했다. 일부 농민이 납부하는 소작료도 그렇게 높지 않았다.
몸만 병들지 않으면 살만했다. 진짜 문제는 병약이었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겨서 그런지 이것의 상술이 조선기록에 없다.
큰 농사가 가능한 평야의 호남이나 충청권적인 수탈행위가 없었다. 경기도나 황해도 지역에서 유래한 향교 주도의 규약 폐해도 없었다. 조선의 영남지역 농장기록부를 보면 다 알 수가 있다. 한강이북과 강원도 등도 호남이나 충청도처럼 그런 문제로는 농민소요가 없었다. 경북 영천이나 경남 밀양의 조선 농장부를 보면 서로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대시하거나 일부러 홀대하는 사건이 없었다. 오히려 당시 곡물의 원만한 분배와 이동, 생산량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는 한문으로 되어 있어 대학교수조차도 전공자가 아니면 알 수가 없다.
그 전통의 여파로 21세기 대한민국조차도 공공질서를 파괴하는 자에게 징수하는 과태료나 과징금이 거의 공짜 수준이다.
유럽에서 온 고급지식인에게 이를 설명해주면 한국은 벌금이 거의 없어서 천국이라고 한다.
의심나면 진짜로 물어봐라. 물어 볼 적에 4년제 대학 이상을 나온 40대 이상의 전문직 종사자에게 물어봐야 한다. 경륜이 짧은 젊은 이나 시중에 돌아다니는 무직한 놈들은 패스.
그 무의식적 전통적 유습으로 수업난장판 악동에게도 거의 무제한급 자유를 주고 있다.
어~~~ 그럴리가???
설명 필요없다. 자유가 넘친다는 미국이나 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그따위 짓을 수업 중에 해 봐라.
해당교과 학년유급, 그리하여 미이수인 경우엔 졸업이 연기되고, 그 따위 짓 발생 즉시 학부모 래교통지서는 기본이고 벌금이 나온다.
법정과징금으로 미납부시 재판 없이 바로 강제집행경매에 들어 간다.
안 낼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마을마다 서당이 다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
그 서당에 노비의 자식도 돈만 내면 다닐 수 있었다.
아무도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이 지구상에 노예급인 노비가 사학기관에서 공부할 수 있는 나라는 고려와 조선이 유일했다.
놀부흥부전의 놀부도 노비출신이다. 흥부전을 끝까지 읽어 보면 놀부의 마지만 호박에 놀부의 옛주인이 나타난다.
'야! 이놈 놀부야~~~. 내가 왔다. 너의 옛 주인이다.' 물론 놀부는 혼비백산의 혼절.
그래도 노비들은 생고생이었겠지??? 한때 조선백성의 40%가 노비였다면서.
어!!! 많이 아네. 세종대왕님의 종천법으로 조선중기엔 노비가 무척 많아서 국고가 격감했다.
물론 ^^ 주인을 잘못 만난 경우는 고생 많이 했지. 주인의 家産이니까말이다.
하지만 노비도 역외노비인 경우는 60이 넘으면 노비이면서 자유인이었고 少노비도 나라에 세금도 내지 않았다.
그리고 임진왜란때도 자기 주인이 의병장만 아니면 참전하지 않았다. 꼭 이런 것을 설명해 주야 하나?
그럼 역내노비는?
마당쇠마냥 일만 적당히 하면 주인장이 다 먹여 살려줬다. 결론적으로 몸만 건강하면 결코 배고픈 백성이 아니었다.
그럼 조선이 왜 망했나?
간단하다. 장사를 못하게해서 망했다.
특히 역외노비들은 재산도 자식들에게 상속을 했다. 양반이나 평민들만 상속을 한게 아니다.
조선시대 상속문서를 보면 다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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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옆으로 빠지는 스토리입니다.^^ 안 읽어도 됩니다. 희망자만 탐독요망.
<장사란 무엇인가?>
장사꾼은 이윤 때문에 남을 잠깐 속이기는 하지만 상호간의 긴 신뢰를 자기 생명으로 여기고, 농사꾼은 남을 해치지 않아서 착해 보이지만 절대로 남을 믿지 않는다. 믿는 순간 바로 손실이다. 쌀을 빌려간 친구는 절대 갚지 않는다. 아니 갚을 수가 없다.
뭐, 이리 설명이 어렵나?
장사가 상업이 될 적에 그 위력은 상상초월이다.
Adam Smith의 국부(비교우의)론과 Carl Menger의 국민소득(한계효용)론에 잘 나와 있고, Cantor가 이를 그의 수학 무한(극대극소)집합론에서 증명으로 상세히 설명해 놓았다. 영국과 오스트리아, 독일의 고급지성은 혼자 있어도 그 차원이 까마귀나 까치처럼 떼지어 각자 떠드는 동아시아급 유생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다시 한번 더 설명하지만 농촌은 아무리 부유하다손 치더라도 남을 도저이 믿을 수가 없고, 무역도시는 아무리 가난해도 더 많은 돈을 벌고 믿음과 신뢰가 약속으로 그 도시를 대규모로 번창시킨다.
그리고 농촌보다는 도시야말로 친환경적이고 자연을 확실히 보호하고자 아주 노력한다.
이건 분명하다. 시골의 전원주택보다는 도시의 아파트가 훨씬 더 수학적으로도 친환경적이다.
자세히 보면 시골의 전원주택들은 자연훼손이 말이 아니다. 자연보호가 아니라 자연을 공짜로 말아먹고 있다.
전원주택의 숫자가 수용한계를 벗어난다면 그 골짜기는 망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농촌은 남존여비가 저절로 그 지정된 힘을 얻지만 도시는 그런 거는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여성들이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되어 그 사회를 리더한다.
소비의 주체는 알겠는데 생산의 주체라니?
가내공장의 생산라인이나 큰 공장의 점심시간에 가 봐라.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더 많다. 특히 밥 퍼주는 분은 100% 여성분이다.
이제는 이해를 하겠지.
인간이란 존재는 죽을 때도 돈을 헤아린다. 급하면 유언이라도 남긴다.
돈이야말로 복음(福音)이다. 상업만이 공업과 농업을 살리고 많은 사람들이 큰 돈을 동시에 왕창 함께 기분 좋게 벌게 할 수 있다.
일부 잠깐 속이는 면도 있지만 속이기는 것이 아니다. 크게 계속 길게 자기도 모르게 멀리 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까지 베푸는 것이다.
교활해보여도 소상인은 목사급이고 대상은 교구장급이고, 자기 배를 기다리는 무역상의 노심초사는 결론적으로는 예수님의 자비와 동격이다.
나도 더 이상 설명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