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14.최정주 피아니스트의 행복한 그림산책.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친애하는 벗에게~
피렌체! 이처럼 찬란한 도시는 여태껏 본 적이 없었어. 르네상스 이후로 이 곳은 늘 눈부셨지. 마치 도시 전체가 광합성을 하는 것 같거든. 게다가 여기 하늘은 말 그대로 쪽빛이야. 아마 미켈란젤로도 거기서 힌트를 얻었을 거야. 결국 최후의 심판의 배경색은 자연의 재현인 셈이지.
<냉정과 열정사이> 봤겠지? 나 역시 독일 만하임에서 그 영화를 봤으니, 거의 십년 전의 일이군. 유유히 흐르는 아르노 강, 연인들의 성지라 불리는 두오모 성당, 그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늘씬한 지오토 종탑, 도시를 한 눈에 굽어볼 수 있는 미켈란젤로 언덕.......고색창연한 피렌체에서는 그 흔한 러브스토리조차도 더이상 식상하지 않아.
대략 눈치챘겠지? 맞아. 난 미켈란젤로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거야. 하지만 그 전에 그 유명한 단테와 보카치오를 잊을 순 없겠지. 우선 <신곡>부터.......난 정말 산문시 울렁증이 있나봐. 이전에도 이 장르의 작품 중 어느 하나라도 끝까지 읽은 적이 결코 없거든. 이번에도 역시나 .......초반에 포기했지. (그나마 가장 흥미로워 보이는 지옥편 부터 시작했는데 말이야.)그리고 리스트의 단테 소나타를 들었어. 원작을 표현하기엔 너무나 단출할테지만.
<데카메론>은 확실히 흥미진진했어. 중학생이 읽기엔 다소 낯 뜨거운 장면들도 있었지만 고전(古典)이란 이름하에 교묘하고 너그럽게 용서가 되었지. 난 이래서 문학이 좋아.
그래, 다시 미켈란젤로야. 그런데 말이야. 그거 알아? 소네트의 대가 페트라르카처럼 미켈란젤로도 시인이었데. 다빈치야 화가이자 의사이자 과학자인건 익히 알았지만.
미켈란젤로가 추남인건 알고 있었지. (이와 반대로 다빈치는 미남이었고.) 그런데 어디가 그리 못생겼던 걸까? 음.......드높은 자존감과 대비되는 오뚝하지 않은 코?! 자화상을 남기질 않아서 대단히 아쉽지만, 그의 작품엔 종종 화가의 얼굴이 어른거려. 그 뭉툭한 코말야.
질문 하나 하지. 독신주의 예술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매우 괴팍할 거 같다고? 물론 그렇겠지. 노처녀 노총각도 충분히 고약한데 하물며 예술가 독신주의자야.......그런데 내가 묻는 건 그들의 성질 기질이 아니라 예술성이야. 미켈란젤로도 다빈치도 19세기의 장승업도 평생 홀로 살았고 오직 예술에만 전념했지. 만일 그들에게 가정이 있었더라면 그 천재성의 일부는 방전 되었을 거야. 사소한 일에.
난 화가로서의 미켈란젤로도 좋지만 조각가로서의 미켈란젤로가 더 좋아. 정말이지 그는 피그말리온 그 자체야. 그가 손대면 차디찬 대리석에도 어느새 뜨거운 피가 흐르고 생명력이 깃들어. 중세 천년동안 잠들어 있던 그리스 로마의 미술을 그의 두 손이 깨운 거야. 해부학적인 근육, 신체의 고전적 비율, 섬세한 주름, 그림자가 주는 명암과 입체감.......그 유명한 <피에타> <다비드 상>.......어느 것 하나 허투루 볼 수 없었어.
“천재에 대해서 궁금하다면 미켈란젤로를 보라.”라고 전기 작가 롤맹롤랑이 말했듯이 그는 겸허한 천재였다고 해. 인격 또한 나무랄 데 없었던 거지. 하지만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그러한 아름다운 결과가 아닌 자신과의 싸움, 즉 그 과정이야. 통상적으로 천재들은 자의식이 대단히 강하다고 하잖아. 그들은 자신의 빼어난 재능을 세상이 신속히 알아주길 갈망하지. 만일 그렇지 않으면 절망하게 될 테니까. 뭐.......미켈란젤로야 애초부터 메디치 가문의 기대주였고 교황의 눈에 들고도 남을 대예술가 대접을 받았으니까 그점에 있어선 불만을 품지 않았겠지만, 끊임없이 샘솟는 그 우쭐함, 그 교만을 어떻게 다스렸을까?! 인간의 힘으로 억눌렀다면 한계에 봉착했을 건데, 그는 신에게 자신을 의탁했지. 그가 지혜로운건 바로 이점이야. 천지를 창조하셨지만 결코 으스대거나 생색내신 적이 없는 하나님으로부터 완벽한 겸허함을 배운거지.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화인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도 반드시 눈여겨보려고 해. 사실 난 인상주의와 그 이후의 표현주의 추상주의가 더 좋아서 그런지, 미켈란젤로의 그림처럼 인물 군상이 조밀조밀 밀집되어 있는 걸 그다지 좋아하진 않아. 일단 정신없거든. 게다가 천장에서 수많은 인물들이 떨어질 거 같은 그 무시무시한 착시!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별로 유쾌하진 않겠지. 하지만 어쨌든 구약(천지창조)과 신약(최후의 심판)의 정확한 고증이며 걸작이야.
그럼에도......이 남자 해도 해도 너무 하더군. 여성들과 심지어 아기 천사들조차 있는 우람한 근육을 봐. 꼭 그래야 했을까? 그는 여성을 몰라도 너무 몰라. 갑자기 르누와르의 목욕녀들이 그리워져. 그녀들이 좀 살집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예쁘고 무엇보다도 여성스럽거든. 여성은 여성다워야 해.
실로 다양한 시대별 음악을 들었어. 바로크 이전 르네상스의 조스캥 데 프레, 고전파의 하이든, 낭만파의 롯시니와 베르디, 독일후기낭만파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모든 시기의 음악과 기막히게도 잘 어울리더군. 이렇듯 걸작은 어느 시대든 아우를 수 있어서 아름다운 것이겠지. 그의 작품은 앞으로도 계속 그 진가를 인정받을 거야.......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가치는 더더욱 상승한다고 봐야겠지. 노처녀인 나는 하루하루 지날수록 감가상각 되는데 말이야.
“나는 화가와 연애를 한다.” 이것이 교수님의 지론이야. 렘브란트도 페르메르도 마티스도 벨라스케스도 그녀의 자상한 애인이 되어 주었지. 그런데 생전에도 괴팍하던 독신주의자 미켈란젤로의 그 성깔은 여전해! 그래, 그런 사람이 어디나 꼭 있기 마련이라니까. 음악에서는 베토벤이 그렇잖아. 처음부터 베토벤이 살갑게 다가오더라~~이러한 연주자를 지금껏 못봤어.
그럼에도 그 성마른 양반과 대화 정도는 가능하다는 게 어디야. 아마도 이 다음에는 좀 더 사근사근해지겠지. 자꾸 만날수록 정든다잖아.
첫댓글 그림과 걸맞는 음악의
조합이 좋았어요~^^ ㅋ
거기에 복습처럼
글까지 남겨주니,
기억의 잔재는
조금 더 길어지겠군요~^^
수업 끝나고 맵시자님과의 솔직 담백 수다도 즐거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