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이란 이스파한을 미사일 공격했다는 뉴스로 떠들석하다.
그 이스파한은 내가 1977년 근무했던 지역이라 감회가 새롭다.
찬란한 페르시아의 문명의 발상지인 고도 이스파한은 곳곳이 문화유적이 즐비한 곳이라
휴일이면 관광을 다녔던 추억이 많다.
이란인들은 다른 아라비안과 달리 순수혈통이라,
아프리카 유색인이아닌,깔끔한 백인이어서인지 인불들이 참으로 잘생긴 민족이다.
특히나 그 사람들은 한국인들을 많이 좋아했다.
어느지역을 가던지 친절했고,다정다감하기만 했었다.
팔레비 국왕이 통치하던 시절이라, 사회는 자유스러웠고 남녀도 자연스럽게 어울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당시 해외인력부 사무실에 근무했는데, 같은사무실에 대사관 관계 현지인 근무자가있어서 자주 어울리기도 했다.
그 녀석은 농구를 무지 좋아해서 한국의 농구선수들을 줄줄히 꿰고 있었다.
주말이면 녀석은 나를 집으로 초대해서 시내 구경을 시켜주곤 했다.
그 당시 수영장이 있는 호텔에 가서 수영을 하고, 볼링을 치고, 여대생들과 차를 마시면서 즐겁게 지내곤 했다.
때로는 신기한곳들도 구경시켜주곤 했는데 ~ 지금와 생각해보면 게이가 아니었을까 생각도 들기는하다.
어두컴컴한 극장의 분위기도 그렇고, 가깝다는 친구들과의 모임도 분위기가 그랬던것 같다.
시내에는 입장료가 비싼 성인극장이 있었는데 ~ 휴일이면 일반근로자이던, 임직원이던 그 곳에 가면 모두 만날수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수없던 에마누엘 부인의 사랑같은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으니
얼마나 개방된 사회였던지를 짐작할 수 있으리라 !
그러던 때 호메이니가 돌아와, 하루아침에 게엄이 선포되어 시내곳곳에 총성이 울리고,외출이 금지되고
우여곡절끝에 주변 여러나라를 경유해서 귀국해야했던 과거가 생각난다.
당시에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외근무를하면, 병역특례를 받는제도가 있어서,
전국의 공고졸업생들이 같이 근무를 했었는데~ 다른 동남아 근로자와는 달리,
여리고 젊은 코리언들. 그들 눈에는 귀엽고 예쁘기만 했으리라
더군다나 한국인들은 콧수염을 기르지도 않고 옷차림도 단정했던터라 더욱 열광했는지도 모르겠다.
주말이면 그런 녀석들을 픽업하러 찾아오는 이란인들의 차로 현장 정문앞은 항상 북적거리기일수였다.
다음에는 내가 경험했던 당시의 이야기를 추억을 더듬어서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비가 내리는 봄날의 토요일 저녁 입니다. 좋은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감회가 새롭겠네요.